The youngest of the returning tycoons RAW novel - Chapter 105
105화 약점을 만들어
엄현주와 유태규 부부가 빠진 저녁 식사 자리.
엄상현 회장이 별말 없이 식사를 시작한 탓에 리스트 사기 건이 조용히 묻힐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런데 슬쩍슬쩍 눈치를 보던 엄현식이 입을 열었다.
“현태야, 경찰에 신고한 건 아니지?”
역시 엄현식이 엄현태의 속을 긁기 시작했다.
“우리 그룹이 망신당하는 것보다는 돈을 좀 잃는 게 나아.”
“…….”
“속은 상하겠지만 이번은 그냥 참고 넘어가라.”
“…….”
화가 난 엄현태가 그를 째려봤지만 입을 열지는 않았다.
아버지 앞이라 말싸움할 수도 없었고, 엄현식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기에 말려들고 싶지 않았다.
엄현태는 비참한 기분으로 저녁을 끝내고 방으로 돌아왔다.
“부탁할 게 있어.”
소파 맞은편에 앉은 아내 배희진에게 얘기했다.
“무슨 부탁이죠?”
“SW시스템로에 대해 취재를 해 줘.”
“아주버님이 로디복권 시스템사업 때문에 설립한 회사 말인가요?”
“맞아.”
“그건 왜……?”
“형은 이번 경쟁에서 나에게 졌어. 그런 형이 날 우습게 보는 걸 참을 수가 없어.”
“……!”
“강릉 별장까지 내려갔던 형이 갑작스러운 로디복권 시스템사업으로 복귀했어. 그런 사업에는 분명 뒷거래가 있었을 거야.”
“알겠어요, 무슨 뜻인지.”
엄현태가 형이 설립한 SW시스템로에 대한 취재를 부탁하는 그 시각, 현호는 남현민과 통화 중이었다.
[특혜 분양 리스트 조작단만 아니었으면 재기수사명령이 효과를 발휘했을 텐데요…….]
수화기 너머로 실망감이 감도는 남현민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현호는 그의 심정이 이해되었다.
찌라시에 리스트의 존재가 알려졌을 때만 해도 기분이 들떴다.
때마침 특혜 분양 재기수사명령을 내렸던 그였기에, 그 리스트가 드러나면 그의 존재가 더욱 부각될 수 있는 기회였다.
현호는 그의 기분에 맞춰 대답했다.
“저도 무척 아쉽습니다. 하지만 다른 기회가 있지 않겠습니까?”
[물론입니다. 내가 검찰에 있는 한 성국그룹과 얽힐 일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그때 검사장님의 활약을 기대하겠습니다.”
[그나저나 요즘 글로리 엔터와 송우미디어가 잘되는 것 같습니다. 하는 것마다 대박을 터트리네요.]
“과찬이십니다. 그저 열심히 할 뿐이죠.”
말은 이렇게 했지만, 사실 남현민의 얘기가 사실이었다.
글로리 엔터테인먼트의 두 번째 영화 연쇄살인범과 형사의 이야기를 다룬 이 개봉하자마자 연일 매진 행진을 이어 갔다.
그뿐만 아니라, 송우미디어가 발굴한 아이돌과 솔로 가수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더구나 월드컵으로 유명해진 드림Four는 이미 한류 스타가 되었다.
[과찬이 아닙니다. 이게 다 엄 사장의 능력이죠.]
“하하, 어쨌든 칭찬을 들으니 기분은 좋네요.”
[다음에 기회를 봐서 식사 한번 같이합시다.]
“당연히 그래야죠.”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통화를 끊은 엄현호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번졌다.
* * *
새 정부가 들어서고 각 조직의 인사가 속속 발표되고 있는데, 최해식에게도 좋은 소식이 있었다.
[금융감독원장에 재경부 차관 최해식 내정]
“해식아, 축하해.”
“처남, 축하해.”
“외숙부, 너무 잘됐어요.”
“이렇게 앞으로 나아가면서 장관도 하셔야죠.”
최해식의 금융감독원장 내정 소식에 성북동 식구들은 일제히 축하했다.
“매형, 누나, 고마워요. 그리고 너희들도 고마워.”
최해식이 답례를 하자 장남 엄현식이 얼른 다음 말을 이었다.
“외숙부, 가족과 지인들 모여서 축하파티라도 하셔야죠. 제가 좋은 장소로…….”
그의 말을 최해식이 끊었다.
“마음만 받을게, 현식아. 지금 카드 신용불량자가 300만 명이 넘어서 민심이 흉흉해.”
그의 곤란한 표정을 읽은 최유경이 거들었다.
“외숙부 말씀이 옳아. 이럴 때 금감원장 내정자가 축하파티를 하는 건 공직자의 자세가 아니야.”
“외숙부, 여러 카드사도 위태로운 것 같던데요?”
현호의 물음에 최해식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작년에 송우카드가 어려움을 겪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아주 심각해.”
“처남, 성국카드는 상황이 어때?”
누구보다 성국카드가 궁금한 엄상현이었다.
작년, 성국그룹의 작전으로 송우카드가 큰 어려움을 겪었다.
부도 위기에서 겨우 벗어나는 사이 실적 1위는 성국카드가 차지했다.
“글쎄요. 자세히 얘기해 드릴 수는 없지만, 전반적으로 모든 카드사가 어렵습니다. 그나마 송우카드는 작년에 개선과 지원이 이루어져 사정이 나은 거고요.”
“그렇군.”
엄상현은 성국카드에 관해 더는 묻지 않았지만, 그의 입가에 미미한 미소가 퍼졌다.
현호는 그 미소를 포착했다.
‘외숙부의 말뜻을 이해하셨네.’
최해식은 송우카드의 사정이 낫다는 얘기했다.
그 말이 성국카드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 *
엄상현 회장의 가족이 최해식을 축하해 주는 그 시각.
성국그룹 안명기 회장은 성국카드 사장에게 보고를 받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의 심기가 굉장히 불편해 보였다.
“몇 달 사이 대출연체율이 세 배로 높아졌습니다.”
“…….”
“대출통합관리와 연체 정보 공유 등으로 인해 카드 돌려막기가 막히자 급속도로 증가한 면도 있습니다.”
“작년 송우카드 꼴을 보고도 이 상태가 될 때까지 뭐 했어?”
작년 송우카드는 불법적 카드회원 신규모집부터 높은 연체율까지 여러 문제점을 드러냈다.
그 과정에서 금감원의 징계와 공정위의 과징금 등, 시장과 사람들의 신뢰가 깨지면서 부도 위기까지 몰렸었다.
그런 상황으로 몰아갔던 게 안명기 회장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성국카드 또한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성국카드 사장은 주눅 든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회장님.”
마침 한종혁 법무팀장이 회장실로 들어왔다.
“한 팀장, 카드사들 상황이 어떤지 알아봤어?”
“상황들이 좋지 않습니다. 한두 개 회사는 파산될 거라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정부 쪽 대응도 알아봤어?”
“논의하는 것으로 압니다만…….”
한종혁이 말끝을 흐리자 안명기 회장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얘긴데 뜸을 들여?”
“카드사들에 대한 대응은 작년 송우카드가 기준이 될 거 같습니다.”
“뭐어?”
“작년 송우카드사의 경우에서처럼 대주주에게 일정 부분 책임지게 할 거 같습니다.”
못마땅한 듯 안명기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작년 엄상현 회장은 송우카드를 살리기 위해 그룹 내에서 지원금을 마련한 후에야 채권단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송우카드가 기준이 된다면 성국그룹 내에서 지원자금을 마련해야 한다.
자기 돈을 써야 하는데, 그에게 기쁜 소식이 아니었다.
송우카드 사태가 없었다면 기준이 달라질 여지가 있겠지만, 이미 그런 방법으로 정상화되어 가는 좋은 예가 있으니 정부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제기랄.’
더구나, 송우그룹 엄상현 회장의 처남인 최해식이 금감원장에 내정된 것도 안명기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최해식이 금감원장에 내정됐지.”
“그렇습니다.”
“평가는 어때?”
“평가가 제법 좋습니다. 송우그룹과 관련된 특혜 시비도 없고요.”
“자네는 그런 평가를 믿나?”
“예? 아, 글쎄요. 회장님은 믿지 않으시는군요.”
“엄상현이 가만히 있었을 리 없어.”
“하지만 찌라시에서조차 특혜 얘기가 나온 적이 없습니다. 상당히 관리를 잘했거나 정말 그런 일이 없었거나, 둘 중 하나일 겁니다.”
“음…….”
안명기는 동의하듯 고개를 주억이고는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최해식 약점을 만드는 게 낫겠지?”
“예……?”
“성국카드 뿐만 아니라 다른 일에도 금감원의 협조는 필요해. 최해식이 거저 해 줄 리는 없으니 약점이라도 잡고 있어야지.”
“아……!”
한종혁은 그 말의 의미를 알아차렸다.
최해식이 성국그룹에 협조하게 하려면 약점을 찾는데 시간을 쓰는 것보다 만드는 게 효율적이라는 의미였다.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 * *
최해식이 금융감독원 원장으로 취임하고 며칠이 흐른 후.
“원장님.”
부원장 민영재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원장실로 들어왔다.
“부원장, 어서 오세요.”
“주변에서 불만이 많습니다, 원장님.”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일을 너무 열심히 하신다고, 하하.”
“아, 하하.”
최해식은 자신을 칭찬하는 얘기에 기분 좋게 웃었다.
“원장님, 점심시간이 다 되었는데, 혹시 약속 있으십니까?”
“아뇨. 오늘은 없습니다.”
“그럼, 제가 원장님을 모셔도 되겠습니까?”
“아, 예. 함께 식사하죠.”
“제가 아는 좋은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부원장.”
최해식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원장과 함께 사무실 밖으로 향했다.
* * *
최해식이 민영재 부원장과 함께 도착한 곳은 보기에도 상당히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이었다.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룸으로 들어왔다.
“부원장,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닙니까? 우리끼리 점심 한 끼 하는 건데.”
최해식은 기대보다 더 고급스러운 곳이라 은근히 부담스러웠다.
민영재가 부원장이기는 하지만 이전에 사적으로 알던 사이가 아니기에 아직은 서먹한 관계다.
그 서먹함을 없애 보려고 그의 점심 제안을 승낙했는데 이런 곳으로 오게 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원장님하고 함께하니 이런 곳에서 식사하는 거죠. 언제 또 오겠습니까, 하하.”
“아, 그런가요.”
최해식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을 때였다.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이에 민영재 부원장이 대답했다.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며 양복 차림의 한 남자가 들어왔다.
“어서 와, 만희야. 이리 와서 인사드려.”
민영재 부원장이 반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의 말에 최해식이 흠칫 놀랐다.
“부원장, 손님이 오기로 되어 있습니까?”
“아, 저, 그게…….”
민영재 부원장이 말을 끝내지 않았는데, 남자는 최해식이 앉은 테이블 가까이로 성큼 다가와 허리 숙여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최해식 원장님.”
“아, 예. 처음 뵙겠습니다. 그런데 두 분이 아는 사이신가요?”
최해식의 물음에 민영재 부원장이 먼저 대답했다.
“원장님, 제 친구입니다.”
“원장님, 무례를 용서하세요. 영재가 원장님과 함께 식사한다길래 제가 잠깐만이라도 뵙게 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아, 예.”
최해식이 어색한 웃음을 짓자 민영재 부원장이 말을 덧붙였다.
“이 친구는 박만희라고 합니다. 저와 대학 동기이고, 무역회사를 합니다.”
“그렇군요.”
“그리고 원장님 부친 되시는 최상국 장관님과는 인연이 있는 친굽니다.”
“예에? 제 아버님과요?”
화들짝 놀란 최해식의 눈이 커졌다.
지금은 세상에 계시지 않지만, 최해식의 부친은 오래전 재경원 장관을 역임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아버지 얘기가 나오자 최해식은 호기심 깃든 얼굴로 물었다.
“제 아버님과 어떤 인연이 있습니까?”
“최상국 장관님 제자입니다. 대학에서 장관님께 배웠습니다.”
최해식의 맞은편에 앉은 박만희가 대답했다.
“아, 그러시군요.”
“젊은 시절부터 최상국 장관님을 존경했습니다.”
“아버님이 살아계셨다면 박만희 대표님을 보고 기뻐하셨을 겁니다.”
“보고 싶고, 참 그립습니다.”
박만희가 이 말을 마치자, 민영재 부원장이 끼어들었다.
“참! 만희야, 장관님과 함께 찍은 사진 아직도 가지고 다니지?”
“사진이요?”
최해식이 궁금해하자, 민영재가 대답했다.
“이 친구, 요즘 말로 얘기하면 최상국 장관님 왕팬이에요. 사진까지 지갑에 넣어 다닌다니까요. 만희야, 보여 드려.”
그의 말에 박만희가 지갑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최해식에게 건넸다.
사진 속에는 박만희와 나란히 서 있는 부친이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석사학위를 받은 후 장관님 찾아뵙고 찍은 사진입니다.”
“그렇군요. 이때 아버님이 이러셨죠.”
새삼스럽게 옛 감성에 젖었다.
박만희가 룸에 들어올 때의 경계심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를 대하는 눈빛마저 따뜻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