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157
157화
대공황의 여파를 우리 프랑스가 체감하게 된 건 그다음 해였다.
프랑스 최대 교역국인 미합중국에서 새로 발표된 법안.
스무트-홀리 관세법.
발의한 리드 스무트나 윌리스 홀리 의원 따윈 별로 중요하지 않지만 그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2만여 가지의 수입품에 평균 59%, 최대 400%까지 관세를 부과한다는 것이다.
비록 벨 에포크 시대의 호흡기였던 언더우드 관세법 같은 환상을 바란 것은 아니었다만 스무트-홀리 법안이 우리 프랑스한테 전하는 메시지는 확실했다.
‘우린 너희의 수입품 따위 필요 없다, 우리 국내시장에 발들일 생각 하지도 마라.’
식민지가 시들시들해지는 시대에 미합중국은 홀로 거대한 시장이나 마찬가지였다.
끊임없는 성장과 늘어나는 소비 인구로 최고의 시장이었던 미국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그제서야, 프랑스는 깨닫게 되었다. 이번 공황이 전과 같은 수준이 아님을.
그리고 이는 곧 내가 움직일 시기가 다가온다는 의미였다.
이미 밑밥은 아주 차고 넘치게 깔아놨다.
작년부터 주구장창 공황이 온다고 이야기했었고 현 내각과 의회가 합심하여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그 대비책이 무엇인지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건 현 정권의 일 아닌가? 내가 제시해줄 필요는 없었다.
‘솔직히 1년이면 뭐라도 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되려 공황 따위 없다고 소리치다니.’
우리도 공황이 왜 일어나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만 저것들도 왜 안 오는지를 설명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무슨 반발심인지 되려 호언장담하며 다들 프랑스의 경제 미래는 밝다고 소리쳐왔다.
아무튼, 수확이 시간이 다가온다.
그 증거가 바로 파리 시내에 다시 보이기 시작한 시위대다.
“실업률이 그리 나쁘진 않을 텐데.”
“임금은 나쁩니다.”
“그렇군.”
아주 명쾌한 답이다. 모든 열강의 곳간이 동시다발적으로 증발하는 시기.
자본가들의 공포는 곧 노동자들의 고통으로 돌아온다.
내가 파리에 상주한 뒤로 파리에서 시위하는 간 큰 놈은 거의 없었다.
있어도 아주 합법적인 선 내에서 시위가 일어났다.
그러나 다시금 우리 프랑스 노동자들의 손에 들린 화염병과 각목을 보아하니….
“우리 국민들께서 화가 단단히 나셨군. 빅터, 자네라면 저들을 어찌 달래겠는가?”
“지금 화난 노동자들을 달래기 위해서면 역시 자본가를 때려잡는 법밖에 없지 않습니까. 클레망소 총리도 국외로 자산을 빼돌린 자본가들을 때려잡으며 국정운영 능력을 보충하셨습니다.”
“틀렸네. 지금은 달랠 때가 아니야.”
잃은 신뢰를 다시 회복하기에는 늦었다. 새로운 얼굴마담을 세워도 아마 국민들은 신뢰하지 않겠지.
더는 정책이 필요하지도 않다. 어차피 이제 정부가 뭐라고 떠들든 국민들은 안 믿을 테니까.
노동계에서는 마르크스주의의 승리, 자본주의의 몰락이라고 떠든다만 우리 프랑스에선 솔직히 그 정도는 아니고 그간 억눌렸던 문제들의 폭발 정도라고 보고 있다.
“임금 삭감에 경찰도 시위하는 시대야. 베트남에서도 반란이 일어났다더군.”
아직 적의 규모나 식민지의 분위기까지 자세히 전해듣진 못했다만 분명 좋진 않을 거다.
벌써 올해의 절반 가까이가 지나간 지금.
난 간을 보고 있다. 좀 더 정확히는.
‘기다릴까, 아니면 움직일까.’
수동과 능동 사이에서 마음이 오가고 있다는 표현이 정확하리라.
시간이 지날수록 내 인내심은 줄어들고 있다.
신호는 이미 주위 사람을 통해 충분히 내비쳤다.
‘내가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하면 좀 과격할 텐데…’
그걸 한번 느끼신 분들께서 더 잘 아실 테고.
여름이 끝나기 전에 난 움직일 거다. 이리 다짐하며 며칠을 더 기다렸다.
그리고 끝내 먼저 움직인 것은 저쪽이었다.
“두메르그 대통령께서 저녁 식사에 초대하셨습니다. 부디 꼭 와주시길 바란답니다.”
가스통 두메르그 대통령의 인내심은 그리 길지 않았다.
***
국민들의 인기를 등에 업고 당당히 수상 자리까지 직행하게 될 히틀러.
비록 내가 아돌프 히틀러라는 인간을 이곳에서 처음 알게 된 것은 맥주홀 사건 정보가 프랑스 측에도 들어오면서였지만 여하튼, 난 그를 매우 높게 평가한다.
그의 연설 능력이나 사상 전염성만이 아닌, 바로 그가 권력을 장악하려는 수단을 특히나 말이다.
그는 당대 독일의 제도 내에서 아주 합법적으로 수상 자리에 올랐고, 그 뒤에 법을 뜯어고쳤다.
우리 프랑스의 레볼루션 정신에는 어긋나지만 난 그 방법을 한 발짝 먼저 써먹으려 한다.
대신, 국민들의 지지에 군사력까지 등에 업은 채로.
“허허, 혼자 사니까 쉽지 않을 줄 알았는데 요즘 좋은 만남을 이어가고 있소.”
“사람이라면 응당 가족을 이뤄야지요.”
“비록 내 자식이 없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요? 난 프랑스에서 최초로 임기 도중 결혼한 대통령이 될 것이오.”
“부디 그대로 되시길 바랍니다.”
시답잖은 늙은이의 연애 이야기. 어린 가족 이야기. 누가 먼저 스타트를 끊냐로 우린 2시간째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결국 식사가 끝나고 술상이 다시 차려지고 나서야 두메르그는 슬쩍 첫 주제를 꺼냈다.
“내 급진당 출신 대통령이지만 전 국민의 지지를 받는 대통령이요. 클레망소 총리도 나만큼의 지지를 받진 못했지.”
두메르그 대통령, 비록 급진당의 시대에 어울리게 급진당 출신이지만 이곳저곳 다 잘 어울리는 양반이다.
현 프랑스 주류 진보당인 급진당에서 내분 없이 두루두루 잘 지내는 것만으로도 이미 그는 정치인으로서 능력을 입증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근데 진보 이야기를 꺼내니, 나도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다.
“저는 진보 계열에서 어느 위치쯤 되겠습니까?”
나야 당연히 보수 쪽은 그냥 손짓 하나로 휘청이게 할 수 있는 군바리지만 진보에서는 미약하게나마 부족한 점이 있을 거다.
그나마 클레망소 전 총리와의 인연, 그리고 전에 함께 손을 잡았던 추억이 아직은 적대까지 가지 않게 만들었을 뿐이다.
아니면 그냥 저쪽에서 나랑 다 걸고 싸우기 무서웠거나.
“으음, 모헬 소장은 진보 계열이라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을 가졌소.”
“그게 무엇입니까?”
“젊음.”
예전에도 비슷한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내 윗사람들은 하나같이 결국 시간이 모든 것을 내 손아귀로 넣어줄 것처럼 말했었다.
내가 젊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두메르그 대통령의 진솔한 설명은 이어졌다.
“현 급진당이 창설된 게 1901년이오. 그리고 내 장담컨대 1901년 이후로 태어난 모든 청년은 소장을 위해 기꺼이 투표소로 향할 것이오. 수많은 젊은이들이 소장을 우상으로 삼고 입대했을 정도인데 고작 종이쪼가리 함에 넣는 것이 무에 어렵겠소?”
“매우 긍정적이군요.”
“압도적이지.”
“급진당 의원들도 비슷합니까?”
“하원이야 국민들을 따를 뿐이지. 상원은 약간 다를지도 모르지만.”
엄청난 칭찬이지만 난 그저 담담히 술잔을 들이켰다.
다음은 그의 차례였다.
그는 좀 더 직접적인 질문을 꺼냈다.
“출마할 생각이 있소?”
“무엇으로, 언제인지 말씀하시질 않으셨습니다.”
“다시 묻겠소. 나를 대신해서 대통령직에 오르고 싶소?”
본인을 대신해서라… 임기가 내년 6월에 끝나니 아마 그때 내가 출마할 생각이 있는지 묻는 것이겠지.
급진당 영입 이야기 따위는 꺼내지도 않는 것을 보아 요즘 분위기를 어느 정도 읽은 것 같다.
“당장은 없습니다.”
“‘당장은’이라, 충분하오.”
그럼에도 ‘당장은’이라는 단어가 못내 걸리는지 두메르그는 다시 잔에 술을 가득 채웠다.
우린 잔을 한 번도 부딪히지 않고 자신의 질문이 끝날 때마다 들이켰다.
“제 차례입니다. 여전히 급진당은 중도좌파의 온갖 이념이 혼재하고 최근에는 좌파 연정을 시도하던데. 권력을 위해서라면 어느 당과도 손을 잡을 수 있습니까?”
“이제 와서는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치다 보니 제 색을 잃어버렸지만 본디 진보라함은 발전을 추구하는 자들이오. 여기에 철학과 종교를 전부 빼고 이야기하자면 인간은 합리적이지도, 완벽하지도 않다고 보지. 그렇기에, 우린 다양한 색을 보여줄 수 있소. 그게 합당이고. 답이 되었소?”
내가 끄집어낸 것은 진보라는 이름을 단 주제에 국가 발전을 저해하며 의회에서 온갖 패악질을 하는 급진당을 꼬집은 거다.
그래도 나름 다수당이고 전통도 있으며 프랑스의 한 국가 정신이니까.
그러나 두메르그는 대답을 회피했다.
진보가 인간의 결함과 다양한 감정을 이해하는 것을, 마치 의회와 국가로 폭넓게 그는 적용한다.
‘아주 자비롭기 그지없어.’
여기서 조금 더 삐딱하게 보자면, 저들은 본인들이 저지른 모든 실수가 용인되고 그럼에도 그들이 국가를 발전시키고 있다고 진실되게 믿는다.
그럼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해보고 싶다.
“만약 누군가가 이 나라를 더 발전시킬 수 있다면, 그럼 권력도 내주실 겁니까?”
“베르게르 모헬 소장.”
서로 병 하나씩은 비웠으나 두메르그는 조금도 취한 기색 없이 내 이름을 불렀다.
“이상적인 소리는 그만 하시오. 어차피 정치 생리가 그리 돌아가지 않음을 잘 알지 않소.”
“몰랐습니다. 과연 어디까지가 급진당 내부에서 허용되는 선인지 말이죠. 저 또한 나름 선을 그어놓은 상태라.”
내 인내심의 선. 내가 지난 20년간 쌓아온 경력이 장식용이 아님을 보여주게 될, 그 선을 그어놓은 지 오래다.
여전히 의회에서 모였다 하면 무조건 오른쪽에만 않는 이들. 그럼에도 몇 년 전까지는 국민 투표의 6할까지 먹었던 집단. 이들이라고 예외는 없다.
두메르그 대통령은 더 이상 잔에 손을 가져대 대지 않았다. 곧고 똑바로 뜬 눈을 깜빡이지도 않은 채 나를 바라봤다.
“하고 싶은 말이 있군.”
“절 부른 사람은 대통령님이십니다.”
선제시.
너희가 지금 생각하는 내 가치와 양보할 수 있는 선을 꺼내길 원한다.
“너무 많은 방법이 있겠지만, 일단 내 다음 임기까지는 마치겠소. 비록 공황이 왔지만 내 지지율은 크게 떨어지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나와 당은 별개요. 한번 당을 이끌어 보는 게 어떻소.”
“당수라.”
고작 그건가. 지금 자신들의 목에 칼이 들어왔는데도 움켜쥔 두 손을 놓지를 못하겠는가,
“생각해보시오. 당수가 되면 사실상 총리나 마찬가지요.”
아, 그렇긴 하겠지. 다만 너희들에게 손발이 묶인 총리겠지만.
언뜻 들어도 나를 그들의 진흙탕으로 끌어들이려는 게 느껴진다.
선제시를 시킨 의미 자체가 사라질 만큼, 보잘것없는 답에 난 실망스러웠다.
‘클레망소 총리였다면 내부의 잡다한 놈들 이 기회에 싹 정리하고 날 끌어들인 뒤 나와 양분하는 그림을 그렸을 텐데.’
그리하면 오직 양분한 두 권력을 제외하면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 체계처럼 나머지는 벼랑 끝 소수당으로 밀려나게 될 테니까.
크게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 더 큰 실망에 하루를 날린 기분까지 든다.
“소장의 생각은 어떻소? 숨김없이 말해주시오.”
“전… 한때 혁명의 주류였던 급진당은 이제 없는 것 같습니다. 그저 온갖 놈들이 권력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는 꼴로밖에 안 느껴진달까요.”
말을 머릿속에서 정리하면서 잠깐 느끼는 바이지만, 징집제도가 이래서 좋아.
군에 오기만 하면 정신이 전부 ‘안보’에 초점을 맞춰서 개조돼버리거든.
실제로 그게 우리 프랑스의 현실이기도 하지만 군대를 거쳐가는 순간 공산주의자도 내게 열렬한 지지를 보내게 되더라니깐.
좌파 진보 우파 보수. 그 교집합 사이의 애매한 무언가로 남을 생각은 없다.
이왕이면 나의 색은 가장 튀는 것으로 가져가겠다.
“보나파르트주의자들과 왕정복고주의자들은 이미 제 손을 들었습니다.”
“창당인가.”
“당연하지요. 급진당 내부에서도 굳이 맞서려고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군.”
“아아, 맞다. 두메르그 대통령님께는 한 가지 다른 제안을 드리겠습니다. 다음 임기도 하고 싶다고 하셨지요.”
두메르그, 내 비록 지금의 잡탕이 되어버린 의회는 무시하지만 이 인간의 인기 하나는 인정한다.
그러니.
”혹시 저희 당을 대표해서 출마하실 생각 없으십니까?”
최근 들어서는 우익 쪽에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봤을 때 어차피 당신도 급진당에 딱히 미련 없어 보이던데.
‘너가 우리 쪽으로 갈아탈래?’
되면, 그땐 앞서 제안한 총리직 진지하게 고려해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