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218
#218화
후르릅.
따뜻한 녹차는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준다.
손에 전해지는 온기와 몸 안으로 흘러들어오는 열기가 몸과 정신을 풀어준다.
“아빠는 준비되었다. 말해봐.”
“별거 없습니다. 베를린 공세가 끝나면 정보부 전체가 나치 친위대 조사에 착수해도 부족할 것이라는 게 폴 파요레 국장의 판단이었습니다.”
“그래서 널 보냈다? 얼마나 일손이 부족하길래 널 보내. 그런 건 예산을 늘리면 해결돼.”
예산의 축복은 참으로 마법과도 같아 불가능해 보일 것도 가능하게 만들어 준다.
괜히 6주짜리 전쟁 계획이 나왔겠나. 그게 전부 국가 예산을 깡그리 털어먹던 시절이라 가능했던 자신감이다.
“슈츠슈타펠의 범죄는 전국적으로 몇 년간 이어져왔습니다. 증거를 하나하나 수집해서 다 처벌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른다는 의미입니다.”
“조사는 몇 년을 해도 부족할 거야.”
아마 독일의 행정력이 제대로 작동할 즈음에나 완전히 마무리할 수 있지 않을까.
어디 사건 몇 개 해결하는 수준이 아닌 수십, 수백만 명을 조사해야 할 일.
완벽히 마무리는 절대 못 하고 적당히 주동자들 위주로 처벌하는 수준에서 멈추지 않을까 싶다.
‘연관된 사람 다 처벌하려면 포그롬 참여한 독일인 다 처벌해야지.’
그 정도로 촘촘한 체로 거르면 살아남을 독일인이 얼마나 되겠나.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하다.
“근데 그거랑 가스파르 네가 여기 있는 거랑 무슨 상관인데.”
“분명 전쟁통 속에 도망치거나 숨는 놈들이 있을 테니 제가 잡아야지요.”
“폴 파요레부터 털어봐야겠네. 미친 게 아니고서야 부자를 같은 곳에 보낼 생각은 안 할 텐데 말이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만 만약에 나와 가스파르가 하루아침에 사라졌다고 보자.
그 혼란은 누가 잠재울 건가. 광기에 잡아먹힌 프랑스는 누가 멈출 건가.
어쨌거나 가스파르는 내 아들이다. 모헬이란 이름을 달고 있는 순간부터 반쯤 나의 분신이란 의미다.
그 이름만으로도 핵심 권력에 근접했을 터인데.
‘사지로 보내? 감히 네놈이?’
돌아가면 이 새끼가 누구 사주라도 받은 게 아닌지 사돈에 팔촌까지 전부 조사해 봐야겠다.
“하아, 아버지. 제가 가고 싶다 했습니다.”
“….네가?”
“국장님이 가지 말라는 거 무시하고 억지로 나온 겁니다.”
가스파르가 직접 요청하는 그림이라면 이야기가 약간 다르긴 한데.
잠시 손에 머리를 기대어 고민해본다. 가스파르가 굳이 자원해서 목숨 걸고 최전방까지 나와 볼 꼴, 못 볼 꼴 다 보는 이유.
“아들아, 혹시 마음이 바뀌었니?”
“아니요.”
“그럼 왜?”
이 자리를 물려받으려면 어쨌거나 군대 이력은 필수다. 그보다 더 좋은 게 바로 전쟁 이력이고.
심지어 이기는 전쟁이라면 이름만 올려놓아도 최고의 커리어가 될 터.
‘괜히 예전에 장교들이 식민지 뺑뺑이 다니는 게 아니었지.’
가스파르가 야전에서 가져갈 수 있는 건 그거 하나뿐이다.
솔직히 말해 스물 언저리 애 하나가 수백만이 돌격하는 전장에 변화를 줄 수 있을 거라곤 생각 안 한다.
숟가락만 올리는 느낌이긴 하겠지만 어쩌겠나. 그게 현실인걸.
근데 그게 아니라면 도대체 왜. 나라면 강제로 나오라 해도 안 가려고 발버둥 쳤을 텐데?
“아버지를 이해하고 싶어서 나왔습니다. 혹시나 이상해지시면 막을 생각도 있었고요.”
“…. 내가 그리 믿음을 못 줬나.”
“그게 아니라. 언제까지 온실 속 화초로 남고 싶지 않았거든요.”
소신껏 내게 말하는 아들이 대견스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아니꼽기도 하다.
‘그딴 게 뭐가 중요하다고.’
온실 속 화초면 어떤가. 전쟁의 참혹함을 조금 덜 알면 어떤가. 그게 나쁜 것도 아닌데 왜 직접 나와서 고생하려 한단 말인가.
하다못해 물려받을 생각이라면 이해라도 하겠는데 그것도 아니니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다.
‘…. 내가 납득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닌가.’
덩치가 나보다 커진 지 오래다. 자라는 시절 하나씩 옆에서 가르쳐주는 아버지는 아니었으니 이제와서 강제할 자격은 없는 걸까.
그냥 그 모든 것을 떠나.
‘내가 왜 군대에 남았었는데.’
아들만큼은 절대로 이딴 지옥에 보내지 않겠다는 일념 하나로 버틴 거였단 말이다.
과거의 노력이 허사가 되어서 허탈하기보다는, 저 눈동자 속의 돌이킬 수 없는 마음 앞에서 무력해지는 기분이다.
“…. 그래, 뭐 이런 곳에서 배우는 게 있겠지.”
“정보부 소속이라 큰 위험은 없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아 참. 샤를로트는 뭐라고 하던?”
그녀의 심정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처음에는 결사반대했어도 끝내 아들의 선택을 존중했겠지. 샤를로트는 그런 여자다. 현명함만큼 빠른 인정과 결단력을 가진.
“말 안 했는데요?”
“…뭐?”
“출장 좀 가게 되었다고만 알고 계실 겁니다.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어머니께서 하필 전국 자선 투어를 다니고 있으셔서 어쩔 수 없이 편지만 남겨두었습니다.”
“야 이 새끼야!”
“……?”
저게 내 새끼라니. 저런 무책임한 놈이 내 아들이라니. 책임감과 사명의 대명사 베르게르 모헬의 아들이 저딴 무뇌아라니.
아아, 벌써부터 그려진다.
자선 행사 다니고 집으로 돌아왔더니 사라진 아들. 남겨진 편지.
그리고 파리에 울려펴진 분노의 표효.
분명 샤를로트라면 가스파르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을 거다.
‘나, 날 찾았을 거야….’
이성이 날아간 애들 엄마는 날 찾았을 거다. 나와 가스파르가 한날한시에 야전에 나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면 아마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인맥을 동원해 상황 파악에 들어갔겠지.
샤를로트가 내린 판결이 무엇인지 아직 모르지만 절대 알고 싶지 않다.
모레 파리로 돌아가는 일정을 더 미룰 순 없나.
그래, 사내가 한번 지휘봉을 들었으면 수도 하나로는 만족할 수 없는 법.
‘깔끔하게 모스크바!’
이번 전쟁은 장기전으로 가는 게 좋아 보인다. 단기전이라고 딱히 피해가 적거나 전쟁예산을 덜 잡아먹는 것도 아니더라고.
대전쟁이 5년이었으니까 이번에는-
“아버지? 괜찮으세요?”
“어, 어.”
“비록 걱정되시겠지만 전 나와서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니 돌아가시면 어머니께 너무 걱정 말라고 전해주세요. 많이 걱정하셨을 거예요.”
“너, 너도 같이 돌아가는 건 어떠니?”
“그럴 순 없습니다.”
고개를 저으며 거절하는 게 마치 단호한 내 목의 단면을 보는 것 같다. 아주 여지없이 깔끔하다.
‘아니 그리고 이 자식. 은근슬쩍 나한테 떠넘기고 있어?’
누구한테 배운 비겁함이야. 난 저런 거 가르친 적 없다.
의자를 살짝 끌어 조금 다가온 가스파르는 두 손으로 떨리는 내 손을 감쌌다.
“아버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네놈 걱정이 아니라 내 걱정 중이거늘. 이런 아비의 타들어가는 마음을 저 새싹 같은 놈이 알기나 할까.
“설마 어머니가 죽이기야 하겠습니까?”
“아?”
알고… 있어?
잠깐, 처음부터 다시 대화를 해볼 필요가….
“저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허나 이미 가스파르는 자리에서 일어나 모자까지 쓴 채 걸어나가고 있었다.
잠깐 대화를 놓친 틈을 타 사라진 아들.
그제야 저 자식이 날 훤히 꿰뚫어 보고 있었음을 확신했다.
“아….”
방을 나간 아들,
홀로 남겨진 나.
야전에 남게 된 아들,
파리로 돌아가야 하는 나.
살아갈 날이 많은 가스파르 모헬,
곧 죽을 베르게르 모헬.
.
.
.
***
베를린 거리로 나온 가스파르는 한 건 해결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아버지라면 어떻게든 잘 해결하시겠지.”
아버지가 파리로 돌아가서 잘 설명해주신다면 어머니도 걱정을 덜 하실 거다.
그 과정에서 약간의 수고가 있겠지만 베를린도 점령한 연합군 총사령관에겐 아무것도 아니겠지.
어느 독일인 자본가로부터 몰수했던 폭스바겐 차량을 탄 가스파르는 방금까지 느꼈던 가족의 온기를 떠올렸다.
‘아직도 미련이 있으신가.’
은근히 이런 최전방을 전전하기보다는 본인의 위치를 이어받길 바라시는 것 같다.
끝까지 아쉬움이 묻어나는 대화는 되려 가스파르에게 아버지 또한 정에 이끌리는 한 인간임을 상기시켜줬다.
‘원래 그러셨었나?’
딱히 철인이라든가 피도 눈물도 없다고 느낀 적이 없긴 했다.
그게 자신의 앞에서만이라고 생각도 해봤지만 주위 인간관계를 생각하면 높은 곳에 올라 사람 자체를 거부하시는 사람은 아니다.
‘뭐, 애당초 능력도 없으면 관계를 맺지도 않으시겠지만.’
그런 사람이다. 능력을 입증했을 때 신뢰를 주는.
그래서 가스파르는 본인이 더욱 아버지 뒤를 이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저 국회의사당 안에 있는 사람들만 해도 각국의 괴물들이다.
자신이 한평생을 노력해도 저 인간들 중 하나가 될까 말까인데 저런 인간들을 이끄는 사람이 되는 것?
“역시 아니야.”
권력은 처음부터 쥐지 않는 게 옳다.
이런 생각조차 아버지의 위명에 짓눌린 압박감에 비롯된 것인가 싶지만 설령 그렇다 한들 알게 뭔가.
부담감에 도망치는 애새끼와는 다르다. 그는 담담히 현실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어엿한 지성인으로 자라왔다.
독일이 그토록 자랑하는 국민차 폭스바겐을 타고 번화가를 빠져나와 브란덴부르크 문을 지나 10분쯤 운전하니, 꽤 오래된 양식의 건물이 보인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베를린 경찰청사였다.
차에서 내려 건물 입구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걸었다.
한 층 정도 내려가니 작게나마 들리는 비명.
“끄아아아아악!”
철컥.
두꺼운 철문을 열고 들어가니 분위기가 20세기 카타콤이라고 불릴 만하다.
자연적인 채광이 조금도 없고 사방이 돌로 이뤄져 있어 공간 자체만으로 숨이 막힐 것만 같다.
“어디 뭐 좀 나왔습니까?”
“우리가 부른 죄목을 인정하긴 하는데 신기한 게 나치 추종은 멈추질 않네. 아직 나치가 안 망했다고 믿는 부류 같아. 아니면 전후에 포로 대우를 바라거나. 돌아갈 수 있단 희망을 놓지 못한 거지.”
“웃기지도 않네요.”
예전에는 너덜너덜해진 고문 현장을 봤다면 위장에서부터 올라오는 불쾌감이 있었으나 어느덧 가스파르는 꽤나 익숙해졌다.
‘여전히 직접하고 싶진 않지만.’
그렇다고 죄책감을 느끼진 않는다.
이곳 지하에 있는 놈들은 대부분 슈츠슈타펠, 그것도 고위급이다.
속칭 SS라 불리는 이놈들은 한때 3백만에 이를 만큼 거대한 규모였으며 때로는 사조직으로, 때로는 사회감시와 비밀경찰로, 또 때로는 국가범죄 실행에 동원되었다.
“쿨럭…. 너희는 얼마나 깨끗하냐. 슈츠슈타펠이 너희 불의 십자단이랑 다를 게 뭔데!”
“어우, 다를랑 삼촌이 들었으면 죽을 기회도 없을 소리네.”
시작은 비슷했을지도 모른다. 참전자들의 지지를 받았고 사회로부터 외면받는 자들이 합류했으며 종국에는 무력을 지니며 국가의 한 축을 담당했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러나 불의 십자단이 마피아를 때려잡고 사금융을 박멸하고 있을 때 나치 돌격대는 반나치 정치인을 습격하고 있었다.
의자를 가져와 바로 앞에 두고 거꾸로 등받이에 기댄 가스파르는 처음부터 일관되게 정중했다.
“자자. 그렇게 반항하지 마시고요. 계속 협조 안 해주시면 저 또 내일 찾아와요?”
“…….”
“닥치란 의미는 아니고, 대화는 하자고요. 어디 보자, 하인리히 힘러 보좌관이셨다고? 보좌관들끼리 서로 커넥션이 있었을 텐데 그 이야기부터 해 봅시다. 어제 어디까지 이야기했더라?”
“루돌프 헤스 보좌관….”
“아, 그 친구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아, 하아. 수용소로 갔소.”
“왜?”
“자기 상관이 전투기를 개조해 프랑스와 협정을 맺으려고 떠나버렸으니까. 부관이 그 개조를 도왔고.”
“저런.”
가스파르는 한숨을 푹 쉬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내일 뵙겠습니다.”
아직도 프랑스 정보부가 호구로 보이나. 안 그래도 사람 부족해 신경이 날카로운데 이딴 장난에 어울려줄 여유도 없었다.
“아니, 잠깐만! 내 말 좀 들어봐!”
“내일 들을게요. 다음에도 재밌는 이야기 준비해주세요.”
거짓말도 그럴듯하게 치든가.
‘우리 아버지가 베르게르 모헬인데 비밀 협정이었어도 내가 모르겠냐.’
가스파르가 알기로 나치와의 접촉은 없었다. 고로 저자는 여전히 잘못된 정보를 주기 위해 발악 중이라는 뜻.
조사한 이력만 봐서는 반나절도 버틸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나치에 대한 충성심이 강했나 보다.
‘역시 난 사람 보는 눈이 없나.’
오늘도 사소한 일상에서 주제파악을 하게 된 가스파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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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 전역 따윈 없다-21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