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47
047화
막았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이루 말할 수 없는 감격이 내 온몸을 강타했다.
끝내 파벡은 군을 물렸다. 정확히는 분쇄 기계에 고기 집어넣기를 그만뒀다.
왜냐면 그가 얼마를 더 투입하든, 아라스 앞에 설치된 분쇄기 칼날은 여전히 날카롭다는 걸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허나 너무 늦은 깨달음. 그사이 이미 참호 앞에는 시체가 땅을 빼곡히 메꿨다.
딱 해가 질 때쯤 물린 군. 아마 그는 밤을 세워가며 퇴각을 해야 할 거다.
“적이 물러간다!”
“···막았어, 우리가 막았어!”
승리의 기쁨이, 당장 살았다는 안도가 퍼진다.
나도 마찬가지.
“씨발··· 더럽게 힘드네.”
하루 종일 전장을 오가며 수없이 많은 명령을 내렸다. 그 명령 한 번, 한 번으로 누군가의 죽음이 희생일지 개죽음일지 결정되었다.
이제야 뜨거웠던 머리가 조금 식고 눈의 피로가 몰려온다. 그리고 그보다 더 큰 희열이 몰려온다.
어느 정도 전장 정리가 시작되자 난 참호 위로 올라갔다.
주위 병사들의 상태와 전장의 상태가 보이도록.
참호 아래 죽은 시체들이 보인다. 고통에 신음하는 병사들이 치료를 위해 이동하는 게 보인다.
그러나 보이지 않지만 모두를 울고 웃게 만드는 게 있다.
내가 찬찬히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하자 날 발견한 병사들도 모두 날 쳐다본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어느새 참호 아래 병사들에게 둘러싸인 형태.
마치 며칠 전 아라스 중앙 광장을 연상케 했다.
그들 또한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내가 무슨 말을 하길 기다리는 것 같았다.
그런 그들에게 난 진심을 담아 말했다.
“우리가, 해냈다.”
그 말이 울리자마자, 다들 전처럼 총을 머리 위로 들고 악을 쓴다.
“와아아아아!”
“우리가 해냈다고!”
“우리 손으로 아라스를 지켰다!”
광장에서 외쳤지만 이 자리에서는 그러지 못하는 이들의 몫까지, 병사들은 목청이 터져라 외쳤다.
우리가 이겼다고.
자신들의 손으로 아라스를 지켰다고.
그 하나만으로, 그들은 희생에 의문을 가지지 않는 듯했다.
광장에서와 달리 나 또한 그들과 다를 바 없이 손에 꽉 쥔 총을 하늘에 흔들었다.
우린 이겼다.
우리가 해낸 거다.
우린 잠시 모든 것을 잊고 그저 승리에 취하였다.
마치 진통제처럼 우리를 잠시나마 고통에서 해방해 주도록.
***
“추격은 나섰지만 솔직히 교전은 어렵습니다. 적에게 남은 군이 적지도 않거니와 우리가 입은 피해가 너무 큽니다.”
“역시 그렇군. 최소한의 추격과 피해만 주고 빠지는 걸로 하지.”
페탱 사단장님도 바로 수긍하는 걸로 보아 비슷한 판단을 한 거 같다.
우리의 승리는 압도적이다.
적의 주력 바이에른 사단은 전멸. 퇴각하면서 수리한다면 쓸 수 있을법한 포까지 다수 버렸으며 파벡의 퇴각에 합류하지 못한 이들 수백을 포로로 잡았다.
엄청난 전과이고, 개전 이래 손꼽히는 승리다.
그럼에도 이 자리에서 눈치 없이 헤벌레하는 자는 없었다.
“사상자는 2천 6백 정도입니다. 실종을 포함한 수치이며 지금도 추가 집계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치료와 후송은.”
“어렵습니다. 치료는 어떻게든 아라스 시민들의 도움까지 받아서 이어가겠습니다만 후송은··· 지금 아미앵 상황이 풀리기 전까지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보급로가 하나도 없진 않을 터인데?”
“유지는 되나, 지금은 모든 보급로가 위험합니다. 게다가 이런 말씀 드리긴 뭐하지만 저희의 후송이 우선적으로 이뤄질 것 같진 않습니다. 바닷길이 아니라면 이 자리에서 자체적인 해결이 최선입니다.”
“아라스 도시에 최대한 협조를 구하도록.”
어찌저찌 포장했지만 결론적으로 살 놈은 살겠지만 심한 놈은 죽을 거란 의미다. 여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고.
모든 전투가 참호에서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아라스 인근 전초기지들에도 어찌 되었든 독일군이 접근했었고, 일부는 잠시지만 넘어갔었다.
다만 적의 주력이었던 13군단과 파벡의 후퇴에 그들 또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사단 하나가 증발한 수준이군···.”
페탱의 혼잣말처럼 나 또한 전장 직후라 그런지 수치가 절실히 체감되었다.
‘···너무 많이 죽었다.’
이게 최선이었음을 안다. 적의 피해는 몇 배나 심각했음 또한 잘 안다. 그럼에도, 너무 많이 죽었다.
가장 열심히 싸운 우리 33연대는 3분의 1이 사라져버렸다.
어제까지 나와 마주하던 이들 세 명 중 한 명은 이제 없다. 그러한 사실이, 나를 휘감았다.
그렇다고 이에 짓눌릴 내가 아니다만 마음은 무겁다.
잠시 무거워진 분위기를 넘기고자 난 입을 열었다.
“우리에게 시급한 문제는 이겁니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랑스.”
“릴이 무너졌고 우린 버텼으니 그 사이의 랑스로 양군이 집결하겠군.”
“랑스의 교전은 더욱 커질 겁니다.”
벨기에 국경에 가장 가까운 릴이 무너질 것은 모두가 알았지만 랑스까지 내준다는 계산은 안 했을 거다.
만약 랑스를 내준다면 영국의 상륙 지점은 더욱 제한될 거다. 당연히 독일이 북부에서 더욱 수월하게 전쟁을 이어갈 테고.
“허나 우린 가지 못하지 않나?”
“예, 저희는 못 갑니다. 대신, 다른 이들이 있지 않습니까?”
“아··· 생각해보니?”
브루제르의 물음에 옆에서 조용히 듣던 슈티른 대령이 입을 열었다.
“아라스는 더 대치하고 있지도 않으니 주위 전체가 안전하다고 봐도 무방하지. 더욱이 우리가 있으니 적이 미쳤다고 어중간하게 공격하겠나.”
“즉, 최소한의 전초기지, 지원 부대와 예비 병력을 유지하고 전부 보내도 상관없습니다.”
“적의 13군단은 사실상 사라졌으니까.”
지금도 우리 병사들이 열심히 치우고 있는 저 시체들. 과연 몇 구나 될까. 최소 만오천은 넘는다고 장담한다.
“이제 아라스는 안전합니다.”
“그럼 결정 났군. 남는 병력은 전부 랑스로 보내려고 하는데 어떻소? 브루제르 장군?”
“···뜻대로 하시오.”
“좋소. 브루제르 장군께서는 나와 함께 갈 이들을 선발하도록 합시다.”
남는 병력. 당장 아라스에서라면 비교적 멀쩡한 브루제르 장군의 군일 거고, 그다음은 11군단이고, 마지막은 비교적 쉬운 싸움을 해온 전초기지 인원들일 거다.
그중에는 모리스 가믈랭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
우린 떠나지 않는다. 떠날 수가 없다.
내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천막으로 급조한 군 병원.
병원이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열악하지만 이조차 아라스에 가깝기에 가능한 일이다.
파비앵과 몇몇 이들을 이끌고 천 하나를 젖히고 들어가니 괴성과 함께 또 다른 전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끄아아아악!”
“참으세요! 지금 잘라내지 않으면 썩습니다!”
“모르핀, 모르핀 더 투약해!”
“살려줘! 그마아아안!”
“꽉 잡아!”
전쟁의 결과가 눈앞에 나타난다. 살육에 명예가 어딨고 긍지가 어딨단 말인가.
적어도 이 자리에서 그딴 말을 꺼낸다면 내 친히 저들 옆에 눕게 해줄 자신이 있다.
입구를 지키고 서 있을 수 없기에 난 바로 이어진 다음 병동 막사로 걸음을 옮겼다.
병동은 이미 어느 정도 치료가 된 이들이 누워 있었다.
내가 들어서자, 아는 얼굴이 하나둘씩 보인다. 날 보며 웃으며 다가오려 하지만 반갑지 않았다.
“충성.”
“모헬 소령님! 충성!”
가장 앞에서 날 발견하자마자 경례하는 페리스 병장.
“자네 팔은 뭔가.”
“아, 이거 말입니까?”
전완근에서부터 시작된 붕대가 어깨까지 감고 있는 걸로 보아 가벼운 타박상 따윈 아닌 듯했다.
“박격포 쏘는데 하필 적 포탄이 옆에 날아와서 파편이 팔에 박히지 뭡니까? 다행히 딱 한 조각 박혀서 바로 쏙 뽑아내고 치료하니 캬아, 이리 좋은 병실을 내줍니다.”
좋은 병실은 무슨. 나무판자로 된 침대에 모포 깐 게 전부인데.
“야, 페리스. 넌 바로 복귀해야 하는 거 아니야? 너 어제도 다른 팔로 블랙잭 했잖아!”
“닥쳐! 난 환자라고! 크흠, 아무튼 전 좀 쉬어야겠습니다. 보시다시피, 환. 자. 아닙니까?”
환자라는 단어를 강조하며 오른팔을 살짝 휘적여보던 페리스 병장은 통증이 있는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븅신, 복귀는 무슨. 저 새끼 이제 팔 안 올라간대요. 너 방아쇠는 당길 수 있니?”
“닥치라고.”
파편이 박혔다면 근육이 찢어졌을 거고 여기서 해줄 수 있는 처리라곤 봉합과 소독이 전부.
팔이 안 올라간다는 저 말도 아마 사실이 아닐까.
한 명씩 지나가며 상태를 보려 할 때마다 그들은 힘든 몸에도 내게 경례하기 위해 엉거주춤 일어난다.
그 모습에 난 말로 형용하기 힘든 감정이 들었다.
도대체 왜.
너희를 죽기 전까지 싸우게 만든 나한테 이러는 걸까. 무엇이 저들을 이 병동에서도 웃게 만드는 걸까.
내가 해준 게 뭐 있다고. 너희 인생이 무너지는 이 순간까지도 날 따르는 걸까.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난 의연히 그들 사이를 걸어갔다. 마치 당연하다는 듯 뻔뻔히.
“좋아, 다들 이상 없군. 빠르게 회복하고 복귀하도록. 혹시나 엄살이라면 두고 보자고.”
안다. 저들 중 태반은 다시 전장에 서지 못할 거다.
아니. 이전과 같은 ‘정상인’의 생활을 영위하기 힘들 거다.
참전자들의 처우가 얼마나 열악한지 난 누구보다 잘 안다.
프랑스라는 국가는 수백만 참전자들에게 나눠줄 연금은커녕 참전수당조차 챙겨주지 못할 거다. 저들의 치료비, 무너진 일상과 생계를 조금도 책임져 줄 능력이 없다.
나 또한 마찬가지.
그럼에도 떠나기 전 한 가지를 더 전했다.
“아, 혹시 페리스, 방아쇠를 못 당긴다고 했나? 걱정 말게. 자넨 설령 후방으로 가더라도 내 밑에서 죽을 때까지 일해야 할 테니. 그러고 보니 얼마 전부터 군납용 와인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더군. 아마 와인 할당제 때문이겠지.”
“어··· 소령님?”
“쉬기는 무슨. 어디서 자기 혼자 편하려고··· 다른 새끼들도 쉬려는 놈 있으면 정신 차려라. 니들은 내 밑에 들어온 순간 못 쉬어.”
“아···.”
안다. 설령 나라도 앞으로 모든 이들을 다 책임질 수 없다는 걸.
그럼에도, 난 저질렀다.
저들이 바친 희생을 저 후방의 국민들이 몰라줘도. 국가가 무시해도. 난 알아버렸으니까.
어쩔 수가 없다.
그래, 이건 내 마음 하나 편하고자 하는 일이다.
뒤에서 나한테 뭐라 울먹거리며 항변하는 소리는 귀담지 않았다.
이래야만 은퇴하고도 저딴 놈들 생각에 안식을 방해받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
그리 합리화하며 난 병동을 나섰다.
***
얼마나 변했을까. 생각해봤다.
두 달. 고작 두 달이란 시간 동안 우리 아라스 제33보병연대는 어찌 되었나.
절반.
딱 절반이 바뀌었다.
아르덴을 기점으로 한 번.
마른 때 크게 한 번.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라스에서 한 번.
그사이 자잘한 교전 다 빼고 딱 세 번.
큰 전장을 세 번 구른 우리는 절반의 인원이 바뀌었다.
“예상은 했지만 새삼 엄청나군.”
“오히려 적은 수치 아닙니까. 솔직히 우리만큼 교전 많이 한 부대가 어딨습니까?”
“그렇긴 하지.”
대치가 주를 이루는 전장 빼면 우리만큼 많이 구른 부대도 없다. 하나같이 굵직하게 싸웠고, 그만큼 피해도 컸다.
그리 생각하면 여전히 절반이나 남았다고 볼 수도 있다.
“내심 상부에서는 6사단이 랑스로 향해주길 바라는 눈치더군.”
“미친놈들인가 싶군요. 우리보고 얼마나 더 해달란 겁니까?”
“페탱 사단장님이 자리 엎으려는 걸 간신히 막았어. 와가지고 하는 말이 6사단이 나서주면 다른 아군의 희생이 줄지 않겠냐는 개소리나 뱉으니 화가 나실 만하지.”
페탱은 미래에도 그렇지만 지금도 군의 회전율을 중요시한다.
무슨 말인가 하면 한 부대가 전투를 치르고 나면 뒤로 빼내고 다른 부대가 그 위치를 대신해 전투 효율을 높이는 일을 말한다.
그리고 명백히 우리 6사단은 혹사당해왔다.
물론 노리는 것이 있기에 이를 받아들인 거지만.
“참호, 절대 난 우리 애들 거기로 안 보낼 거야.”
“이번 전투에서 저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참호전은 미친 짓입니다.”
만리장성과도 같은 이프르 전선이 드디어 만들어졌다. 점점 고착화 현상을 보이고 양측은 점점 기계적으로 군을 무제한 투입하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나와 페탱은 한 가지 공통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건 바로.
‘절대 이프르 전선 참호에서 안 싸운다!’
아무리 우리가 잘 싸워도, 무기가 좋아도 우린 저 이프르 전선을 뚫을 능력이 없다.
이건 포슈 할아버지가 와도 대치 구도를 무너트리는 건 불가능하다.
‘여기서 한발 빠지는 게 좋아. 정치적으로도, 우리 애들을 위해서도.’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도 이번에 충분히 만들었다.
“적 예상 사상자가 2만이랍니다. 아직 집계 중이긴 한데, 그로 인해 얻은 이점과 적의 손실까지 계산하면 단순히 수치로 추정하기 힘들 겁니다.”
“이제부턴 지휘관의 역할이지.”
페탱과 나의 목적은 단기적이지 않다. 우린 더 멀리 바라보고 있다.
조프르가 적을 내부와 외부 둘로 상정해서 싸우듯 우리 또한 내부의 적과 외부의 적을 나눴다.
일 잘했으면 보고서에 쌈빡하게 제목 붙이고 삐까뻔쩍하게 내용 채워서 상부에 어필해야 하지 않겠나.
그래야 뭐라도 하나 더 타내서 우리 애들 입에 넣고 군복에 달지.
일단은.
“조금만 쉬자···.”
잠부터 청해야 할 거 같다.
3일 동안 한숨도 못 잤더니 머리가 깨질 거 같다.
잠시 눈 좀 붙인다고 눈꺼풀을 닫자마자 난 기절하듯 잠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