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65
065화
전차. 예상은 했다만 역시나 내가 알던 것들에 비하면 열화를 넘어 열등하다 표현해도 과언이 아닌 이 물건. 이걸 어찌 써먹어야 할까.
어디서 주워들은 몇 가지 전차 교리가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다만 지금 도움이 될 만한 건 없어 보인다.
아무리 뛰어난 훈련소 교관일지라도 공익을 특수부대로 만들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애초에 주어진 전차도 그리 많지 않다.
신형 기뢰, 신형 비행기, 신형 투척탄 등등 매일같이 신무기가 쏟아지는 시대지만 대대적인 보급까지 이어지는 건 얼마 없다.
베이강이 밀어주고 포슈가 추진력을 더했다지만 3월까지 내 수중에 떨어진 르노 전차는 고작 29대.
원래 계획은 30대였는데 최전선까지 이송하는 과정에서 한 대 날려 먹었단다.
베이강은 겨우 내가 요구한 전차 구성요소 세 가지를 어찌저찌 때려 박았다만 다른 관점으로는 단점을 최대한 숨기는 데 그친 물건이라 볼 수도 있다.
전차의 첫 데뷔. 사실 전차가 홀로 전선을 가로질러 적 참호를 다 파괴해줄 거란 상상 따윈 설계도 나오기 전부터 진작 집어치웠다.
그럼 이 초기 전차에 기대할 수 있는 최고의 역할은 바로 하나.
탱커.
딱 우리 프랑스에 걸맞은 무기다.
이제 겨우 1915년.
독일도 부랴부랴 소형 박격포를 참호에 도입한 시기. 움직이는 전차를 정확히 파괴할 직사포 따윈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내가 볼 땐 적이 파괴하는 전차보다 자기 무게를 못 이겨 퍼지는 전차가 더 많지 않을까.
아무튼, 그럼 적은 누가 죽이냐.
바로 넘치고 넘치는 보병이다.
전차 뒤에서 경기관총만 갈길 수 있다면 충분하다.
영국 마크 1 전차의 가장 큰 효과는 적한테 주는 공포감이라고 했던가.
베이강한테는 주야장천 전차의 기대 역할에 대해 역설해왔다만, 솔직히 말한다.
이건 움직이는 소형 토치카다.
“그리고 지금은 그것만으로 충분해.”
충분함을 넘어 차고 넘치지. 왜냐면 독일군은 토치카가 움직일 거라 생각해본 적이 없을 테니까. 마치 캐나다군이 대량 가스 공격을 예상치 못한 것처럼.
“전차 부대 전부 준비 완료되었습니다!”
“선두에 보내. 바로 뒤로 보병 붙여서.”
복잡한 교리도.
신박한 아이디어도 필요 없다.
작고 투박한 르노 전차는 적 참호 앞까지 엔진 소리를 멈추지 않고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
***
툭.
“뭐야, 시발….”
참호에 기대 고개만 내민 채 앞을 바라보던 한 상병은 몰래 피우려고 입에 문 담배를 입에서 떨어트렸다.
이를 발견한 한 하사가 다가와 호통을 쳤다.
“야, 이 새끼야! 내가 참호에서 담배 피우지 말랬지! 적 포격 맞고 싶어서 미친 거야?”
“…하사님.”
귀를 때리는 고함에도 병사의 시선은 여전히 다른 곳으로 향해 있었다.
“저거, 뭔지 아십니까.”
“뭘 말하는데.”
상병의 시선이 고정된 방향으로 하사 또한 눈을 돌렸다.
멀리서 보이는 희끄무레한 무언가. 멀어서 자세히 보이진 않지만 움직이는 것 같다. 아니, 지속적으로 떨리는 공기를 통해 작지만 확실히 들리는 소리.
분명 저 무언가들은 움직이고 있다.
“자동차?”
망원경을 꺼내 자세히 들여다보던 하사는 이내 병사처럼 굳어 감상을 표현할 수단을 순간적으로 잃었다.
저건 자동차가 아니다. 바퀴가 안 보일뿐더러 저리 쇳덩어리로 점철된 자동차는 들어보지도 못했다.
과연 저게 무엇일까 머릿속에서 아는 정보를 토대로 추측이 오갔지만 의미는 없었다.
정신이 돌아오고 그가 해야 할 일은 딱 하나.
“적이 온다! 모두 전투 준비! 적의 공격이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또 한 번의 참호전을 준비하는 일이었다.
여전히 저들이 어찌 독가스 속에서 살아남았는지 모르지만.
적은 오고 있고.
자신은 이를 막아야 한다.
하사는 익숙하게 기관총을 잡았다.
***
연대장이 되고 나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
그건 작년의 나처럼 개인화기 들고 이리저리 구르며 적을 대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명령을 내린 뒤, 내가 할 것은 딱 하나.
뒤에서 전선을 지켜보며 결과를 기다리는 것.
어찌 보면 33연대가 내 손에 들어오고 처음으로 행해지는 공세다.
내심 뒤에 빠져 있으니 별로 긴장되지 않을 줄 알았다만.
“이 짓도 사람이 못 할 짓이군.”
내 명령에 죽어가는 병사들이 전보다 확실히 보인다. 그러면서도 계속 내 입에선 누군가의 죽음을 요하는 말이 튀어나온다.
아무리 비장의 수가 있고 유리한 입장이어도 누군가는 죽어야 한다. 그래야만 다른 이가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난 개인의 생존만큼 큰 감정에 휩싸였다.
다행인 점은 독일군이 또 한 번 가스 공격을 해오는 일은 없다는 점이다.
아군까지 함께 죽어서인지 아니면 아직 준비하지 못한 건지 모르겠다만 가장 큰 변수가 사라진 셈.
결과는 순식간에 드러났다. 바로 아군이 적 참호 앞에 도착한 시점에서.
“이겼군.”
“적진까지의 접근만 가능하다면 질 수 없는 싸움이니까요. 저희가 물꼬만 터주면 자연스레 77연대도 점령이 쉬워집니다.”
참호라는 게 그렇다. 작은 틈도 뚫어내기 힘들지만, 한번 뚫으면 그다음은 일사천리.
적한테는 2선, 3선 참호는커녕 후방군이 이동할 기동로조차 제대로 없다.
왜냐고?
저 참호 영국군이 만든 참호거든.
좁은 참호 속에서도 구역을 나누고 반듯이 나무로 벽면을 채운 뒤 배수관과 대피로, 대피호까지 만든 독일 참호를 생각하면 안 되지.
독일 애들은 심하면 뒤로 참호선 10개는 판 뒤 참호 내부 전투가 일어날 것까지 대비해 개미굴이 따로 없는 구조로 짓지만 여긴 얼마 전까지 영국군이 주축으로 지키던 이프르.
그딴 거 없다.
우리 BEF군과 자치령군은 참호의 사전적 정의에 충실히 따르고 있다구.
참호: 인공 구덩이.
끝.
밭고랑처럼 길게 파서 없으면 진짜 큰일 나는 부분만 만들어서 쓴다.
생각해보면 변태처럼 ‘후욱후욱, 모든 상황에 대비해 다 때려 박아야 해!’라는 독일 놈들 강박증이 더 미친 거다.
아무튼 간에, 오래 볼 것도 없다.
최후방에서 포격하던 독일 포병이 물러나는 모습은 이미 그들이 내빼겠단 의지가 보인다.
“두고 볼 순 없지. 한번 끝까지 가보자고.”
질서 정연한 후퇴 따윈 없을 거다.
우린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순간까지 전진할 테니까.
“끝까지 가자고. 점령한 참호에 일부만 남기고 다시 진격하도록.”
이후 뒤처리는 내 알 바가 아니기에 난 자신 있게 외쳤다.
견고함을 넘어 지루해진 북부 전선에 난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
든든하게 선두를 지켜주던 전차는 딱 세 번의 교전 만에 대부분 뒤에 남겨두게 되었다.
그러든가 말든가 우리 6사단은 멈출 수 없었다.
도망치는 독일 제4군 26사단과 스토커처럼 뒤를 쫓는 우리 6사단.
적의 포격 세례에도, 대놓고 위협당하는 측면에도 우린 경주마처럼 앞으로만 나아갔다.
우리의 진격로가 피로 점철되어 있지만 괜찮다.
왜냐면 다 빼앗겨 가던 이프르 지역에서 26사단은 빠져나가기 바빴으니.
그거면 된 거다.
이틀 만에 8km를 싸우며 밀어낸 6사단. 당연히 궤멸에 가까운 타격이 있다.
“더는 진격이 힘듭니다. 중상자들은 전부 버리고 진격했음에도 더는 나아갈 수 없습니다.”
33연대 참모들이 내린 결론. 나도 비슷하게 생각한다. 우린 이제 꼼짝도 못 하겠다.
“남은 전차는.”
“4대입니다. 그마저도 어찌 될지 모릅니다.”
“잘 싸웠군.”
비꼬는 게 아닌 진심이다. 극한까지 쥐어짜 냈고, 난 본전 이상을 뽑아냈다 본다.
“저… 연대장님, 그럼 이제 어떻게 합니까?”
한 지휘관의 질문에 모두가 내 다음 명령을 기다린다.
“기다려.”
“허나 당장 오늘 적 28사단이 저희를 덮쳐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나도 아네.”
이프르 전역이 이미 독일군 손에 넘어간 지역인데 우린 그 속으로 깊숙이 들어온 거니까.
“근데 우리가 지금 전투는커녕 이동이라도 할 수 있나?”
장담컨대, 없다. 지금의 33연대는 기동 능력 자체를 상실했다.
전멸해버린 중대들.
진격을 위해 버리고 떠난 수많은 병사들.
어쩔 수 없다. 잔혹하지만 우린 나아가야 했다.
그때, 누군가 달려와 경례 대신 입부터 열었다.
“저희 후방에 대규모 병력입니다!”
“아군인가, 적인가!”
“아직 파악된 바 없습니다.”
“…전군 전투 준비. 다른 곳에도 즉시 알려.”
우리 뒤통수를 때릴 수 있는 이들이면 아마 4군에 소속된 어느 부대겠지.
포위야 진작 되었을 테고 중요한 것은 딱 하나다.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는가.
이젠 나도 연대 막내와 같은 운명이다.
아군이 도착할 때까지 버텨서 살아남거나.
아니면 포위섬멸 당해 죽거나.
우리가 뒤로한 이들은 먼저 저세상으로 떠났을 거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하루? 반나절?
아니. 잘 버텨봐야 서너 시간.
장담컨대 그 안에 내 몸뚱아리에도 총알이 박힐 거다.
그 사실을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알았지만 다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자리를 털고 일어나 각자 위치로 향한다.
“전부 적 조준! 일제 포격으로 선두부터 때린다!”
“탄약 재보급 이제 없으니까 균등하게 나눠! 야, 이것들아. 없으면 보슈들 거라도 주워서 쓰라고!”
나도 망원경으로 어찌 발버둥 쳐야 최고의 졌잘싸가 될 수 있을지 지켜봤다.
“…잠시만.”
뭔가 이상하다. 대형도 이상하고 사전 포격 같은 공세 전초 요소들이 없다.
그때 파비앵도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나한테 다가왔다.
“중령님, 말 탄 기수가 선두입니다.”
“저 깃발…. 외인 연대 깃발 아닌가?”
어렴풋이 본 기억이 있다. 말 탄 기수가 선두를 달려오는 것부터가 이상하지 않은가.
“제2 외인 보병 연대 깃발이 맞습니다. 아군! 아군입니다! 전투 중지! 아군이다!”
흥분한 파비앵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이 소식은 순식간에 입에서 입으로 퍼졌다.
“맞군. 아군이야. 제2 외인 보병 연대면 모리스 가믈랭 중령이 지휘관인 곳이지.”
살았다. 씨발, 죽을 자리가 여긴 아니구나.
살았다는 생각에 죽음 앞에서도 초연했던 부랄이 저절로 떨리는 것 같다.
‘아까 죽기 전이라고 개소리 안 지껄이길 잘했군.’
다들 조용히 자기 위치로 가길래 나도 그냥 입 다물었는데, 최고의 선택이었다.
모리스 가믈랭.
여전히 뭐 하는 놈인지 모르겠지만 오늘만큼은 네가 내 엄마요, 아내요, 자식이다.
잘생긴 얼굴은 아니다만 사에서 생으로 운명이 바뀌니 뭐든지 가능할 거 같다.
내 입술은 이미 임자가 있으니….
볼따구 딱 대.
***
예상은 했다만 역시나.
대육군 최정예라고. 가장 용맹하고 강력한 온갖 수식어들을 달고 다니는 6사단.
개중 선두에 서지 못할 바엔 안 싸운다는 33연대.
과연 이 꼬라지를 보고 누가 이들이 그 33연대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규모부터가 반토막 난 것을 떠나 불과 일주일 만에 이런 거지꼴이 될 수 있단 게 놀랍다.
명령을 받자마자 바로 움직인 제2 외인 보병 연대.
스스로가 느끼는 경쟁심을 떠나 이번 작전은 너무 많은 게 걸려 있었다.
수면 따윈 당연히 사치였고 설령 적을 만나도 무리해서라도 돌파할 생각이었다.
이미 6사단은 제 한 몸 불살라 적 진영으로 뛰어들었다지 않은가. 가믈랭은 이런 와중에 제 한 몸 사릴 만큼 비겁하진 않았다.
이프르 지역 최후방 작은 할레바스트 마을에서부터 시작된 6사단의 발자취를 따라 외인연대는 나아갔다.
그리고 지난 며칠간의 처절한 흔적들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이 어디로 향했는지 정보 따윈 필요 없었다. 모든 환경이 당시의 상황과 그들의 목적을 말해주고 있었으니.
버려진 전차와 병사들.
수습하지 못한 지휘관들의 시신.
심지어 데리고 갈 수 없어 학살한 포로까지.
그리 미친 듯이 따라와 도착한 반대편 이프르 지역의 끝. 그곳에는 모헬 중령이 기다리고 있었다.
만약 이프르 전선이 마라톤이었다면 그는 멀쩡한 자신과 달리 명백히 숨을 헐떡이며 결승 지점에서 기다리는 승자다.
그럼에도 느끼는 안도감은 자신의 적수가 어디 이름 모를 독일군의 총탄에 죽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이리라.
그리 생각하며 다시 마주하게 된 베르게르 모헬.
“빨리 와. 어서 볼 딱 대.”
“……?”
그는 과도한 진격에 미쳐버린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