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70
070화
솔직히 말하자면, 난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그리 즐기지 않는다.
요즘 군인은 자라나는 아이들의 꿈과 희망이자 이 나라 아이돌이라는 것은 잘 안다만 그래도 싫은 건 싫은 거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다만 가장 큰 것을 뽑자면.
‘저 눈빛들.’
기차에서 내리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역에는 수많은 이들이 선팅 따위 없는 창문으로 날 쳐다보고 있다.
고작 스물여섯 살한테 뭘 그리 많이들 바라는지 시선들이 참으로 다양하기 그지없다.
그럴수록 본래의 나는 숨기고 저들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기분이다.
뭐, 자초한 바임을 인정한다. 난 지금 저들의 도움이 필요하니까.
“후우….”
기차가 완전히 역에서 멈추고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내리기 직전, 난 눈을 감고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되뇌었다.
‘나는 상처받았다. 나는 파괴되었다. 나는 고문받았다. 나는 상처-’
억울하게 군대에 끌려온 일.
중대가 조사받을 당시 여러 거짓 증언에 힘들어했던 일.
상부의 지능에 아무런 기대를 안 했는데도 실망할 수 있었던 일.
여러 기억이 스쳐 지나가고 다시 눈을 뜨자 갑자기 눈물이 차오를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 내 이름은 이제부터 베르게르 ‘드레퓌스’ 모헬.
너무 원통했고 억울했으며 분노했던 만큼 고통스러웠다. 난 이때까지 스스로도 모를 만큼 힘들었던 것이다!
우울증 환자들이 자기 상태를 객관적으로 인지하지 못하듯 나 또한 몰랐으나 더 이상은 아니다.
지금 내 피해인지감수성 레벨은 MAX에 도달한 상태.
당장이라도 ‘이젠 더 못 참아!’ 상태에 돌입 가능하다.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이미 역은 발 디딜 틈도 없이 인파로 가득 차 있었다.
“모헬 중령님! 이번 나는 고발한다 사건에 대해 한 말씀만 해주십시오!”
“적 벨기에 우회를 제5군은 처음부터 인지하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사랑해요, 베르게르!”
“우린 당신을 믿습니다!”
“응?”
뭔가 이상한 말도 들렸다만 난 꿋꿋이 한 발 한 발 움직여 그들 사이의 좁은 길을 걸어갔다.
이 자리에서 저들의 질문을 다 받을 수도 없거니와 그럴 필요도 없으니까.
일단 중요한 것은 내가 파리에 얼굴을 비쳤다는 거다.
‘결과는 확실히 봐야지.’
이 혼란을 잠재우든, 아예 키워서 화려하게 불태우고 야전으로 복귀하든.
몸으로 인파 사이의 길을 지키는 여러 사람의 등을 지나 난 준비된 차로 향했다.
그때, 악다구니에 가까운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당신도 권력이 탐나서 파리에 온 거잖아!”
“감히 조프르 총사령관을 모함하지 마라!”
오, 몇 안 되는 조프르의 찐팬들이신가. 하긴, 이 많은 사람이 다 날 좋아한다면 그게 더 이상한 거지.
딱히 신경 쓰진 않는다만 그래도 확실히 짚어주곤 가야 할 놈들이다.
안 그러면 불리한 질문은 피했다 어쨌다 신문 팔아먹으려는 놈들이 있을 테니.
차를 타기 전, 난 잠시 날 따라온 파비앵에게 물었다.
“지금 몇 월이지?”
“6월입니다.”
“곧 여름이군.”
“그렇습니다.”
“슬슬 참호 속에서도 덥겠어.”
그러곤 날 위해 준비된 르노 차량에 탑승했다.
저치들을 상대해줄 필요는 없다만 충분한 대답이 되었을 거다.
6월, 파리는 슬슬 더워지고 있는데도 프랑스의 아들들은 군복을 입고 있었다.
***
역에서 군중들을 벗어나 내가 도착한 곳은 바로 시외에 위치한 클레망소의 저택이었다.
“허허, 오자마자 시원하게 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더운 건 사실 아닙니까.”
진심으로 난 이번 여름이 무섭다고.
널리고 널린 시체는 치우지도 못하며 병사들의 청결은 길거리 거지만도 못하다.
앞으로 전염병으로 무지막지하게 죽을 거란 뜻이다. 어쩌면 적 포탄에 죽는 숫자보다 더 많이.
뭐 유권자가 아닌 군바리는 눈앞의 노인한테 창고에 박아둔 치장물자 같은 존재겠지. 전쟁 끝나야만 꺼내서 써먹어 볼 법한.
그래서인지 저 웃음이 정말 아무런 걱정 따위 없어 보인다.
“샤를 드골 대위, 전 생각지도 못한 방법이었습니다. 애피타이저? 극장 포스터? 아니, 그는 거대한 건물을 짓기 위한 반석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당장 드골 대위처럼 모헬 중령님을 대신해서 마이크를 잡고 싶은 의원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그 정도입니까.”
“국민들에게 정치인들은 지난 1년간 외면받아 왔습니다. 그러니 더욱 안달 날 수밖에요.”
뭐 얼핏 들어는 봤다. 뒤가 없는 소수정당 애들이 날 그리 두둔하고 있다고. 그렇다고 언급 한 줄 해줄 생각은 없다만.
“반면 집권 여당인 민주공화국동맹 의원들은 조용하지요.”
“이해는 합니다. 다 각자 입장이 있으니까요.”
딱히 그들이 침묵한다고 뭐라 할 생각 없다. 정확히는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달까.
내가 이 나라 수백 명 의원들을 다 알지도 못할뿐더러 아는 게 없다. 방해만 안 하면 난 그들이 무슨 짓을 하든 관심 꺼줄 거다.
그런 내 태도가 의외라는 듯 클레망소는 희미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손으로 턱을 쓰다듬는다.
“이거, 알려진 것보다 더 신기하신 분이군요.”
“뭐 특별한 게 있겠습니까. 저보다 몇 배는 더 사신 의원님이 더 신기할 뿐입니다.”
“허허, 무슨 말씀을.”
아니, 진짜로. 이미 이 나라의 총리도 해봤잖아. 나이도 70을 넘겼으면 슬슬 쉬고 싶을 때 아닌가.
나라면 인생 말년 느긋하게 모은 재산으로 플렉스나 하면서 살 텐데 눈앞의 노인은 또 한 번의 거대한 도전을 하고 있으니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굳이 표현하자면… 자발적 노동법 위반? 은퇴 실패? 뭐든 좋은 인생은 아닌 거 같은데.
뭐, 당장은 계속 활동해주는 게 나로서는 좋다만.
“그래서, 다음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건 클레망소 의원님의 선택에 따라 달렸습니다. 전 여전히 의원님을 믿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빙빙 돌려 말하는 대화는 내 전공이 아니라 그냥 가공도 안 하고 바로 뱉었다.
그가 조프르 로비를 터트린 것을 잘 안다만 그걸로는 부족하다.
“이거 시작부터 협력에 금이 가는 이야기를 너무 쉽게 하시는군요.”
“원래 전쟁터에서는 뒤통수에서 날아오는 총알이 더 무서운 법입니다.”
협력? 그건 우리 사이에 신뢰가 존재할 때나 가능한 일이잖아. 우린 이제 처음 만났는데 무슨 말인가.
아무것도 모르는 일개 중령이었다면 전 총리의 말에 홀딱 넘어갔겠지만 난 아니다.
“그럼 하나만 묻겠습니다. 만약 푸앵카레 대통령이 말하는 그놈의 ‘거국적 내각’에 다시 합류할 수 있게 된다면 안 하실 겁니까?”
“…그건 그때 가서 봐야 할 일 아닙니까.”
그래도 거짓말은 안 하네. 이는 원래 클레망소가 노리던 루트기도 하다.
이 시국에 푸앵카레 세력을 완전히 축출하고 정권을 잡는다? 그건 장담컨대 지금 프랑스 영토 내에서 독일군을 몰아내는 것보다 더 어렵다.
다만 하나 확실히 해야 하는 것은.
“전 푸앵카레 대통령을 적대하는 게 아닙니다. 조프르 파벌이 권력 놀이에 취해 있는 게 싫은 거지.”
“허나 조프르와 푸앵카레 대통령은 한 세력이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의원님, 그래서 제가 온 겁니다. 그 둘을 분리시키려고. 총리 때 정교분리 해보셨으니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아시지 않습니까.”
인기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정계. 반면 그 정계 뒤에 숨어 한 발자국 빠진 채 있는 군부.
이 둘의 간극에 내가 파고들 생각이다.
단, 내 뒤통수가 안전하다면.
“푸앵카레 대통령은 장담컨대 조프르 대신 침몰하길 원하진 않을 겁니다.”
지금은 민주주의의 가치 자체가 떨어지는 전시다. 그럼에도 이리 불타오른다면 진지하게 레볼루숑의 불씨가 메마른 파리의 인심을 태울지도 모른다.
과연 내년에도 파리 시민들이 투표를 할 것인가. 아니면 쟁기와 망치를 들 것인가는 전적으로 정부의 대응에 달려 있다.
“정확히 무엇을 원합니까.”
“조프르, 조프르와 적대해주시길 원합니다. 지난 1년간 그가 보여준 무능은 이미 신물 납니다.”
너가 푸앵카레 내각으로 들어가 서서히 집어삼킬 거 잘 안다.
근데 조프르가 버젓이 살아 있게 된다면 난 마른강 거위알 신세 아니냐고.
내 말에 클레망소는 대놓고 표정을 바꾸며 차갑게 변했다.
“후우, 이보게. 아니, 모헬 중령님.”
“그냥 편히 말하시지요.”
“그래. 우린 같은 목표를 보고 있지만 순서가 틀리지 않았나. 만약에 내가 조프르를 적대한 다음 의장으로 입성하지 못하게 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은가. 오히려 나만 침몰하게 되겠지.”
“푸앵카레 대통령이 얼마나 조프르를 감쌀 것 같습니까? 이미 그의 전쟁 계획에 죽은 프랑스 청년만 백만을 넘겼습니다. 그가 아직 저 자리에 있는 것은, 아무도 책임 소재를 묻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고작 전시란 이유로.”
“그래서 나보고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전면에 나서달라? 그리해서 얻는 것은 고작 자네의 신뢰이고?”
“제 신뢰뿐이겠습니까. 원래 민주주의 정치란 게 서로 사이 안 좋으면 상대편의 적을 영입하게 되어있지 않습니까.”
조프르를 쳐내야 될 것 같다면 조프르와 반대되는 위치에 선 페탱의 주가가 오르게 된다. 당연히 이 수식은 클레망소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거다.
정치는 언제나 대체제를 찾아서 우위를 점하는 싸움이니까.
‘현대에서도 그랬지.’
젊은 층의 지지를 위해서 정책 대신 유명한 젊은 사람 하나 끌어들여서 얼굴마담 세우면 끝나더라고.
“파리의 정치인들이 총사령관과 대척하기 싫어하는 것 잘 압니다. 그러니 기회 아닙니까. 조프르의 실각이 확실시되는 순간 의원님의 가치는 측정할 수 없게 될 겁니다.”
“좋아, 만약 내가 전면에 나선다면, 자네는 무엇을 해주겠나?”
“흐음, 순서는 제가 아니라 의원님께서 자꾸 까먹으시는 것 같습니다.”
군인으로서의 본분은 무엇인가. 총 들고 나가서 잘 싸우면 그만 아닌가.
“지금 저랑 함께하는 게 시민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십니까?”
“…….”
나한테 자꾸 무언가를 바라는 것 같은데, 아니지 아니지. 당신이, 나한테, 권력을 얻기 위해서 부탁해야지.
당신은 페탱까지 갈 수준도 아니야.
비록 일개 중령이다만 지금 이 나라에 베르게르 모헬이란 이름의 가치는 무엇일까.
루덴도르프도 중령 아니었나. 그는 고작 타넨베르크 한 번과 이후의 자잘한 전과로 독일의 포슈가 되지 않았나.
감히 말하건대, 이번 달 한정으로 내가 곧 프랑스 민심이다.
시민들의 희망이자 안쓰러운 영웅, 그게 나니까.
그런 영웅의 조력자로 나타난다는 사실 자체가 조연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거다.
“의원님, 전 무리한 요구를 하지도 누구처럼 권력에 미치지도 않았습니다. 전 이 빌어먹을 전쟁을 끝낼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조프르한테 개처럼 달려갈 수도 있습니다.”
“자네, 진심인가?”
“물론이지요. 지금 의원님이 어중간하게 계시면 안 됩니다. 조프르와 함께 침몰하시든지, 아니면 저희와 함께 전쟁을 끝내든지 하나만 선택하셔야지요.”
당신조차 조프르를 적대하지 않으면 저 인간을 막을 사람 자체가 사라진다고.
내가 무리하게 클레망소를 움직이고자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방파제처럼 육군이 한 인간에게 집어삼켜지는 걸 방지해온 조제프 갈리에니 장군. 그는 대전쟁 중에 죽는다.
정확한 시기나 이유는 모르겠다만 지금까지의 모습을 생각하면 주야장천 조프르의 개짓거리를 막다가 화병으로 뒷목 잡고 쓰러지시지 않았을까.
만약 갈리에니가 죽고, 클레망소조차 조프르를 방치한다면 나와 페탱의 싸움은 기한 없는 싸움이 될 거다.
‘갈리폴리급으로 몇 번은 더 꼬라박아야만 끌어내릴 수 있겠지.’
근데 이조차 늘어져서 미국의 참전까지 조프르가 살아남는다? 그럼 진짜 상상도 하기 싫은 결말이 예상된다.
예를 들어, 조프르의 평가가 조금 사고는 쳤어도 끝내 이긴 총사령관, 뭐 이런 개 같은 경우라든지 말이다.
“물론 당장 조프르 머리카락을 잡고 끌어내리라 하지 않겠습니다. 이번에는 팔다리 한쪽만 자르는 선에서 만족합니다.”
고작 잠깐의 민심에 편승해 수뇌부를 한 번에 갈아치울 수 있을 만큼 조프르의 파벌은 만만치 않다.
그러니, 딱 두 가지 정도만 확실히 하고 넘어가고 싶다.
먼저 이 국가가 꼬인 첫 번째 이유부터.
“제17계획을 세울 당시 참모차장이었던 노엘 에두아르 장군의 실각을 원합니다. 마침 언론도 불타고 있으니 조프르의 오른팔이면 충분히 책임지는 모습이 되겠네요.”
“카스텔노 자작 말인가.”
포슈를 제외하면 실질적인 2인자이자 참모부의 암덩이 같은 존재. 저 새끼가 뱉어내는 작전에 야전에서 죽어가는 인간이 넘쳐난다.
에두아르와 우리 페탱 소장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나중에 들어서 알고 있다.
차라리 무능하기만 했다면 조프르보단 오래 자리보존 했을지도 모른다만 직접적으로 우릴 저격한다면 먼저 쳐내야지.
나의 이런 행위는 추한 뒤끝도, 불타오르는 복수 같은 감정도 아니다.
이건 정당한 등가교환이다. 당신들이 내 말을 무시했고, 뒤늦게 알아차렸다 한들 들어 처먹으려 하지 않은 대가.
“총사령관은 받아들일 것입니다. 자기가 다 뒤집어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만 생각하겠지요.”
“두 번째는.”
“각 사령부의 자율성 보장. 수백km 떨어진 중앙에서 언제 작전 허가받고 전선 통제하고 합니까.”
“전권 총사령관은 어림도 없다는 소리군.”
“그 인간이 앉은 자리에서 벨기에 전선에 손대려 한다면 전선 물려버릴 겁니다. 이프르 이전으로 말이죠.”
아무리 기술이 폭발적으로 발달하는 20세기라지만 여전히 편지가 대세고 라디오 방송국이 막 생겨나는 시대다.
총참에서 북부 전선에 손도 못 대도록 하는 조치.
우리가 알아서 잘 싸울 테니 총참은 중앙 전선 참호에서 알아서 나가 뒤지든 싸워 이기든 하라는 의미다.
“이 정도면, 합의금으로 충분하겠군요.”
“…….”
그저 속으로 온갖 정치 손익계산서를 짜내고 있겠지만 난 안다. 절대 클레망소는 내 제안을 거절하지 못한다.
그는 정치인이니까. 정치인에게는 인기가 곧 표고 그 표는 권력이자 화폐. 즉, 그의 인생 전부다.
가만히 있어도 거국적 내각에 합류할 운명이었다만 이젠 아니지. 클레망소는 내 덕에 의회 왕좌에 입성하게 되는 거다.
그리고 조프르, 넌 아직 총참으로 살아 있어야 해.
사람들이 조프르를 의심, 혹은 비난하는 수준으로 끝나선 안 된다.
프랑스 국민들이 전쟁터에 끌려간 아들과 아버지들이 조프르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하는 수준까지 가야 한다.
세상 모두가 그의 추악한 욕심과 무능을 알고 난 뒤.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고 나서야 그는 비로소 내려올 수 있으리라.
그 전까지는 자리에 먼지 안 쌓이게 내버려 둘게.
자리나 잘 데우고 있으라고. 진정한 총사령관, 필리프 페탱이 앉을 곳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