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78
078화
복귀하고 한 일주일 정도 지나니 페탱이 하고자 하는 일이 정확히 눈에 보인다.
“자네의 종합적인 평가는 어떤가?”
“변함이 없으셔서 좋습니다.”
“그럼 내가 고작 전투 몇 번 이겼다고 우쭐대며 새로운 대공세 플랜이라도 만들 줄 알았나?”
“그건 아닙니다만 그래도 효율을 제외한 모든 것을 배제할 줄은 몰랐죠.”
여전히 신문사들은 ‘페탱이 지휘봉 잡았으니 진짜 전쟁 끝나는 거 아니야?’라고 떠들어 대던데. 내가 다 스크랩하고 있어서 잘 알지.
그런 국민들의 기대를 바로 쓰레기통에 무심하게 처박아 버리는 것부터 대단한 거다.
“영국 애들이 뒷목 잡고 쓰러질지도 모르겠네요.”
“불만 있으면 자기들끼리 진격해보든가.”
벨기에 전선은 처음으로 프랑스 영토를 벗어나 밀어낸 서부 전선이다. 당연히 이는 독일의 발작 버튼을 연타로 누른 격이고 이에 복사가 밀린 프린터처럼 독일은 병력을 내몰고 있다.
“근데 병력으로 밀어붙이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결국 피해는 커질 것이고, 전쟁 끝내고 싶으면 벨기에 전선이 답이 아님을 저들도 알게 될 테니까요.”
“적 지휘관들이 과연 그걸 모르겠나. 저들 또한 우리가 그러했던 것처럼 전략적 선택을 하지 못한 것뿐이네.”
자기들이 선전해댄 것도 있고 더 밀려들어 오면 보급로와 점령지가 위험해진다는 생각이었겠지.
“거참, 전쟁을 뭐 이리 복잡하게 하는지. 결국 이긴 놈이 장땡 아닌가.”
“…자넨 내 꼭 데리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드는군.”
“에이, 제가 군주론을 신봉하는 건 아닙니다. 저도 민주주의의 한 시.민. 아닙니까?”
등에 한 몇백만 표를 업은 시민이긴 하다만 아무튼 난 위험한 사상가가 아니라고! 날 위험물 보듯 쳐다보는 상관의 시선에 마음의 상처가 오늘도 늘어간다.
“저의 평가는….”
“평가는?”
“역시 제가 손댈 필요가 없다, 입니다.”
“음?”
방어에 한해서는 든든한 국밥과도 같은 존재답게 무슨 일이 있어도 내주지는 않겠다는 의지가 곳곳에 덕지덕지 묻어나더라고.
그럼 굳이 내가 나설 게 뭐 있어? 조용히 뒤에서 지지나 하면 내 역할은 끝이지.
‘이게… 참모?’
상관이 무능하면 누구보다 힘들지만 복귀했더니 상관이 일을 다 끝내놨다면 그냥 놀아도 되는 거 아냐?
아, 뭐 하지? 온갖 쓸데없는 회의니 작전토의니 같은 일은 빼먹어도 되겠지? 그래, 무려 전쟁 영웅인데 설마 빠진다고 뭐라 하겠어.
어차피 미래도 틀어졌겠다, 밑천도 다 털렸겠다 나머지는 우리 사령관님이 알아서 다 해줄-
“표정을 보아하니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스읍, 예?”
나도 모르게 흐르는 침을 닦으며 의문을 표했다.
“그렇다고 내가 공세 준비를 안 한다는 건 아냐.”
“아?”
“자네가 해야지 그건.”
“에?”
아니, 내 역할은 끝났잖아. 오페라에도 구성 순서라는 게 있는데 난 뱉을 대사 다 씨부렸고 당신 서사의 시작을 위한 모든 준비를 끝냈는데?
이제 조프르가 잘 익기만을 기다리며 천천히 소화시키면 끝 아니신가?
“자, 잘 못 들었습니다?”
“너, 못 쉰다고. 다시 말해주길 원하나?”
“아니….”
“억울한 척하지 말게. 파리에서 잘 쉬다 왔잖아?”
“그건 다-”
“날 위해서다? 뭐, 필요한 일이었다?”
이젠 내 대사까지 뺏으시네. 그럼 다 알면서 왜 이러시는 건데요.
이런 위기 상황이라면… 난 배운 유서 깊은 세 가지를 써먹겠다.
먼저 ‘싫어요!’
“변명이 아니라 제가 벨기에 전투 이후 전장에 나가는 게 점점 두려워졌습니다. 공포에 몸이 굳더라고요.”
다음 ‘안 돼요!’
“그리고 저 전차도 뺏기고 이끌던 연대는 박살 나서 해체 수순 밟고 있잖아요. 예? 중앙 애들이 막, 내 거 다 빼앗고 옷도 벗길라 그러고…”
마지막 ‘하지 마세요!’
“아니, 그리고 전 참모라고는 1도 모르는 인간입니다! 무슨 전술이니 군사교리니 하는 것들 모른다니까요? 저 군사 학력도 낮잖아요. 제가 에콜 뭐시기라도 나왔으면 몰라. 일개 청년한테 무책임하게 수많은 프랑스의 인재들을 맡기실 생각이십니까? 그런 짓은 도의적인 차원에서라도 하면 안 됩니다!”
진짜 일하기 싫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니까? 약간의 지식을 더해 변칙을 만들 순 있어도 정공에서의 나는 장담컨대 드골이랑 비슷한 수준이 아닐까.
나한테 ‘닥치고 돌겨어어억!’을 바라는 건 아니잖아요.
“이런 말씀 드려서 매우 송구스럽습니다만 전 할 만큼-”
“송구스러우면 하지 말게.”
“아니 말은 끝까지 들어주셔야죠. 제가 하고자 하는 말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능력의 문제라는 겁니다.”
99퍼센트의 진실에 1퍼센트 게으름을 섞은 나의 본심이다.
‘아, 이래서 참모직 안 하려던 건데.’
페탱이 설마 내가 참모 자리에 부족하다는 걸 몰랐을까. 그럼에도 어떻게든 쓸모가 있겠지라는 심산으로 끌고 와버렸다.
그리하여 난, 능력도 없는 주제에 과한 자리를 얻었고 지금처럼 능력 밖의 일을 떠맡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했다.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전, 부적합합니다.”
“모헬 중령.”
“말씀하십시오.”
“새로운 전차 연대가 어제 예정대로 만들어졌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아나?”
“….”
얼마 전부터 특허 라이선스 비용이 미친 듯이 들어온다고 듣긴 했는데 그거랑 연관된 일인가.
“포슈 장군이 나섰다네. 자네 손에 전차 연대를 쥐여 주겠다는 약속 때문에.”
“그거는 릴 전선 당시 약속 아닙니까?”
“또 한 번 도와주신 거지. 무려 총사령부를 적대하면서까지 말이야. 여전히 모르겠나?”
어, 뭔가 날 위해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알겠는데 솔직히 여전히 모르겠는데요.
근데 모른다고 하면 또 날 벌레 보듯 할까 봐 분위기 따라서 입을 다물었다.
“누가 자네한테 덤터기라도 씌우려고 하는 줄 아나. 자넨 그냥 하면 되는 거야. 자넬 위해 움직이는 이들이 적지 않음을 안다면 그리 나오면 안 되는 거야.”
난… 솔직히 라이선스 비용 많이 들어와서 기분은 좋았는데. 총참한테 전차 내주는 게 그리 나쁜 건가? 어, 그냥 줘버리면 안 되나? 어차피 당분간 공세의 ‘공’ 자도 안 꺼낼 거면서.
“다시는 내게 그런 징징거리는 소리는 하지 말도록.”
“…예.”
아주 나만 이기적이고 나쁜 놈이지?
아니, 근데 나 진짜 못 하는데. 그럴 능력 없어서 이러는 건데. 몰라주는 건 자기면서 왜 내가 몰라주는 것처럼 말하는 건데.
그러나 한마디도 못 뱉고 난 페탱의 집무실을 나와야만 했다.
약간의 찝찝함이 남았지만, 차마 저 자리에서 꺼내진 못했다.
***
모헬이 아리송한 표정으로 방을 나가자 밖에서 대기하던 한 남자가 들어왔다.
“슈티른인가.”
“베르게르, 그 친구가 웬일로 어깨가 처져서 나가네요?”
“일하라고 했더니 저러더군.”
“음.”
듣지 않아도 무슨 상황이 벌어졌는지 슈티른 대령의 머릿속에서 생생히 펼쳐졌다.
‘조금 일하라는 말은 아니셨겠지.’
페탱 아래에서 갈려나간 지난 시간들. 그 경험으로 볼 때 모헬의 하루하루가 순탄치 않을 것임을 알았다.
“때론 한 사람에게 너무 많은 부담을 주는 게 아닌가 싶을 때도 있습니다.”
“부담? 저 새끼한테 부담이라 했나? 이보게, 슈티른. 지칭 대상이 잘못되었네. 부담은 저놈 자식 머릿속에 떠오르는 무언가를 실행하려 할 때마다 우리가 받고 있다네.”
“아…. 그런가요?”
생각해보니 또 그것도 틀린 말이 아닌 게, 매번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모헬 중령은 떠오른 아이디어를 절대 구상 단계에서 놔두지 않고 즉시 실행에 옮겼다.
그래놓고 매번 나중에서야 ‘어우, 이게 되네?’라는 소리를 들으면 억장이 무너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
그리 보면 페탱의 말은 틀린 부분이 없었다.
“그래도요. 변수라는 게 있잖습니까.”
“하하, 변수? 저놈 자체가 변수야.”
“어… 좋은 뜻이십니까?”
“말이 어렵나? 나한테 매우 나쁜 뜻이라네. 매번 내 머릿속을 헤집어 놓고 남의 계획 따위 다 짓밟는 자식이니까.”
그런 것치고 페탱의 어조엔 전혀 기분 나빠하는 기색이 없었다.
“근데 적한텐 더 나쁜 뜻이야. 내 여태 보니까 그렇더라고.”
“아하. 그러니까 모헬 중령이 날뛰면 먼저 망하는 건 적이니 괜찮다는 의미시군요!”
“그래. 일단 일하러 보내면 뭐라도 토해내겠지. 조금이라도 입에 물고 안 뱉으려 하면 옆에서 살짝 도와주면 되네. 이거 봐, 결국 일하러 가잖아.”
슈티른의 정확한 문맥 파악에 페탱은 고개를 끄덕이며 차를 홀짝였다.
‘중장님 태도에서부터 여유가 보여…. 이젠 모헬 중령을 다루는 데 있어선 극한의 경지에 이르신 거겠지.’
시간이 지나면 자신도 저리될 수 있을까. 스스로 자문해봐도 답은 무조건 ‘아니오’로 귀결된다.
계급에 대한 존중? 그런 개념이 모헬 중령의 머릿속에 박혀 있을 리가 있나. 그간 보아온 모헬 중령은 타인을 딱 두 가지로 구분한다.
지금 물어도 괜찮은 사람과 나중에 물어도 되는 사람.
그런 그에게 몇 안 되는 예외가 아마 페탱이 아닐까 싶다.
“때론 모헬 중령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이번처럼 일하러 가라는 말에 비 맞은 강아지처럼 나가는 모습 같은 경우에 말이죠.”
“내 팁을 하나 주자면 베르게르 모헬이란 인간은 그냥 굴려. 개처럼 굴리다 보면 어떻게든 되는 법이라네.”
아까 나갈 때의 태도, 진심일까 혹은 연기일까. 연기라기엔 그의 진실된 감정이 온몸에서 드러나던데.
“그리고 굳이 이해하려 하지 말게. 그게 자네한테도 편할 테니.”
“그렇게 하겠습니다.”
페탱의 충고에 슈티른은 깔끔히 모헬을 이해하길 포기했다.
설령 페탱 중장이 노동법을 위반해도 모헬 중령은 절대 관계를 끊지 않을 거란 확신도 있었기에 문제될 것도 없어 보였다.
“이건 영국의 해양 보급 계획서입니다. 동시에 영국의 벨기에 상륙에 관한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현재 영국군의 사기가 높아서 그런지 벨기에 후방 상륙을 주장하는 의견도 많습니다.”
“거기 두게.”
“그럼 가보겠습니다.”
“고생하고.”
가져온 서류만 페탱에게 건네주고, 슈티른은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불과 저번 달까지 야전에서 두 발로 뛰느라 힘들었다면 여기서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힘들었다. 총알에 죽겠다는 공포 대신 일만 하다가 죽을 것 같다는 불안감이 매일 든다.
“하아, 오후도 바쁘겠군.”
완벽주의자 상관 밑에서 일하는 게 쉽지만은 않은 것 같다.
그래도 배부른 불평이라 여기며 움직이던 차, 아까 나갔던 모헬 중령이 보였다.
건물 바로 앞 벤치에 죽은 나무늘보처럼 늘어진 채로 팔만 달랑달랑 흔들고 있는 모습.
조용히 다가가 보니 혼자 뭐라고 쉬지 않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 움직이기 싫다. 숨도 쉬기 귀찮아. 그냥 자살할까? 아니지. 그래도 조프르 모가지는 따고 죽어야 하지 않을까?”
“….”
자신이 온 줄도 모르고 여전히 볼이 벤치 나무에 눌린 채로 오른팔로 진자운동을 반복한다.
“에이, 무능한 조프르 끝장내고 나서 죽기엔 내 인생이 아깝다. 이제 한 가정의 가장인데 이런 생각은 하면 안 돼.”
모든 프랑스인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인간은 지금 따사로운 햇빛을 받으며 입과 한 팔만 움직이고 있다. 그런 모습을 발견하게 만든 자신의 발걸음이 후회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래도 이번 전쟁만 끝내면 쉴 수 있을 거야. 진짜 그땐 페탱 중장님이 아니라 중장님 할아버지가 우리 집 문 두드려도 안 열어줄 거다. 내가 다시는 일하나 봐라!”
무언가 대단한 결심이라도 한 듯 모헬은 벌떡 일어나 벤치에 제대로 앉았다.
‘지금, 내가 뭘 들은 거지?’
한창 바쁜 지금 식사 시간도 아니기에 벤치 인근에 있는 사람은 모헬과 자신, 둘뿐이란 게 다행이었다.
“에라이 싯팔. 그래, 내가 더러워서 움직인다! 절대 포슈 장군이랑 페탱 사령관님 무서워서 그런 거 아니다!”
이번에는 씩씩거리며 주먹을 하늘 높이 치켜들고 외쳐댄다.
저게 우리나라의 희망이란 말인가. 저놈한테 독일 놈들이 그리 갈려 나갔고. 게다가 이젠 총참도 쓸어버리려고 한다.
‘아, 아버지.’
오래전 돌아가신 아버지를 절로 찾게 된다. 이 세상은 미친 게 틀림없다. 그게 아니라면 슈티른은 자신이 미쳐버릴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