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87
087화
“빠르군, 빨라.”
피해가 컸던 상황. 지휘관으로서 이런 말을 해선 안 됨을 알지만, 오랜만의 시원한 전투다.
6km 거리의 외각에서부터 샤를루아 시내까지 진입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이틀 남짓.
이쯤 되면 샤를루아에서의 적의 저항이 그리 거세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키치너의 빠른 판단이 돋보인다.
병력이 부족하고, 화력 지원은 어려우나 페탱의 계획만큼은 저지하겠다는 의지.
키치너의 전략대로 이번과 같은 전투를 수십 번 가까이 반복한다면 힘이 빠진 우린 후퇴해야 할 테니까.
“이번 전투는 기존의 대치 중이던 참호전의 병력을 후퇴하고 새로운 전열을 정비하려던 움직임으로 분석됩니다.”
“그간 열심히 지켜온 전선을 이리 쉽게 내줬다니.”
“그래서 대단한 겁니다. 베르됭과 같은 소모전을 여기서도 열려고 했다면 필시 저희가 이겼을 테니까요.”
나와 함께 최전선을 달리는 슈티른은 적의 빠른 판단에 혀를 내둘렀다.
“아무리 그래도 전선을 물린다는 게 그리 쉬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비단 전략을 떠나 후방의 정치나 여론까지 생각한다면 더더욱.”
“독일‘제국’의 장점이자 단점 아닙니까. 확고한 추진력.”
지휘관의 권한이 막대한 독일이기에 실시간으로 가능한 일이다. 우리 프랑스였으면 전선을 자체적으로 내뺀다는 것은 군사재판감일 텐데 말이다.
“고작 2주. 베르됭을 기점으로 새로운 바람이 서부 전선에 불기 시작하고 수백km 전선이 개판나는 데 걸린 시간이네.”
“저, 그렇게 보시면 안 됩니다. 독일이 먼저 움직였으니까요. 엄밀히 말하자면 전선은 저들 때문에 틀어진 겁니다.”
굳기 고개 돌려 보지 않아도 슈티른 중령이 괴상한 눈초리를 하고 있겠지.
“그래, 역시 자넨 아무것도 안 했는데 다 독일 탓이지? 자네다워….”
아니나 다를까 말투에서부터 진이 빠진다는 투다.
이 몸은 무려 페탱 학과 졸업을 앞둔 학생이다. 슈티른 학개론 따위 거저먹는 과목이라고.
“길어지면 저희도 위험합니다. 전선을 비틀어버린 만큼 곳곳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을 테니까요.”
“최악은 후티어 참모장이 교환을 택할 때지. 예를 들어 중앙과 룩셈부르크를 다 내주는 한이 있더라도 벨기에를 수복한다거나.”
갑자기 양측이 곳곳에 병력을 결집시키고 이동시키고 있으니 서로 다른 목적을 향해 엇갈릴 수도 있다.
‘절대 그래선 안 되지. 내가 왜 이 고생을 하고 있는데.’
샤를루아에서 벨기에 수도로 향하지 않는다면 후티어는 즉각 벨기에 전역에 퍼져있는 군사까지 긁어모아서 날 막으려 할 거다.
이미 우리의 진격로에 있던 기존의 참호 전선은 전부 개박살이 나지 않았나.
수십만 대군이 아래로 향한다면, 장담한다.
북부 전선 참호의 3분의 1은 사라진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생기겠지만.
‘아니면 여기서 한번 기다렸다가 막아? 아니지. 그럴 시간이 어딨어.’
오스카 폰 후티어, 역사에 다양하게 기록된 뛰어난 지휘관이다.
그러니까 난 상대 안 하련다.
그냥, 넌 우리 꽁무니나 따라와라.
***
후방. 그들의 눈과 귀가 언제나 전선의 소식을 향해 있는 것은 당연하다.
전쟁터의 아들들이 먹는 게 부실하더라.
입는 옷이 해어졌다더라.
오늘은 어디어디에서 전투가 이어졌다더라.
매일같이 시민들의 자극을 이끌어내는 내용투성이지만 그게 연 단위로 이어진다면 무뎌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요즘 들어 무뎌지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로워졌다.
그도 그럴 게.
[베르됭 전투, 단 하루 만에 사상자 10만 초과!]전선에서 들려오는 수치들이 오랜만에 미쳐 날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3일 만에 사상자가 15만? 이, 이게 무슨….”
“지금 베르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그들이 듣는 소식은 아무리 빨라도 며칠 전의 것들.
과연 지금 이 순간 최전선에 어떠한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시민들은 알고 싶어 했다.
그리고 결과는 참혹했다.
2주일간의 공세로 인해 사단 13개가 이등병부터 최고지휘관까지 재편해야 할 판이었고 2년간 키워온 야포 800문을 날려 먹었다.
니벨 공세의 첫 결과물이었다.
그럼 그만큼의 희생을 치러 베르됭은 되찾았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골든타임을 놓친 프랑스군은 이제 참호와 요새의 새로운 조합을 대면하게 되었고, 우려하던 대로 되찾으려면 얼마나 많은 병력을 죽음으로 더 내몰아야 할지 감도 안 잡혔다.
누가 보더라도 지금 베르됭은 양국의 한판 승부가 펼쳐지고 있다.
국민들은 따가운 시선으로 총사령부와 정부의 대응을 지켜보고 있다.
모두가 불안한 거다. 너무나도 암울한 숫자는 다시 한번 패전을 가리키는 것 같으니.
이 도시에 사는 모두가 그렇듯, 온갖 불안감에 하루하루 마음이 타들어가는 한 아이의 어머니이자 아내인 샤를로트는 오늘도 걱정에 잠을 제대로 못 이뤘다.
“우으으.”
“괜찮아, 괜찮아. 울지마.”
이젠 익숙하게 혼자서 아이를 들고 달래는 샤를로트. 홀로 아기를 키우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녀는 엄마로 하루하루 성장해 나갔다.
그녀는 아이를 안은 채 식탁의 신문 활자에 시선을 두었다.
그녀의 불안감이 느껴졌는지 손님은 그녀에게 말했다.
“부인, 너무 걱정할 것 없소. 모헬 중령은 지금쯤 신나서 벨기에를 누비고 있을 테니.”
“남편을 전쟁터 보내놓고 걱정을 안 할 수가 있나요?”
말이나 되는 소리냐고 일축한 뒤 그녀는 이어서 빠르게 뒷장 내용까지 훑었지만, 다행히 오늘도 염려될만한 소식은 없었다.
“내 장담하겠소. 그 색, 아니 친구 걱정만큼 쓸데없는 게 없을 거요.”
“그럼, 왜 이른 아침부터 찾아오신 건가요? 저희 남편 상관이시면 다시 북부로 안 가보셔도 되나요, 샤를 란레작 장군님?”
당찬 샤를로트의 말은 란레작에겐 ‘내 남편은 지금 목숨 걸고 싸우고 있는데 당신은 남의 집에서 뭐 하냐’라는 타박처럼 들렸다.
‘나는 그 자식놈 때문에 이 나이에 수백km를 오가고 있거늘….’
란레작은 순간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이 나이 먹고 젊은 처자와 말다툼하기엔 기력이 부족했다.
매일같이 의회와 총참에서 싸우는 마당에 여기서 분란을 더했다간 진짜 죽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늙은이의 인내심을 발휘한 란레작은 젊은 부인의 말에 웃음을 지어보았다.
“허허, 내 말하지 않았소. 모헬 중령의 부탁으로 여기에 왔다고.”
“말씀하세요.”
“크흠, 편지로는 아마 말을 듣지 않을 거라면서 내게 간곡히 부탁하더군. 부인, 혹시 잠시 몇 달만 오를레앙에 내려가서 지내는 게 어떻소?”
“왜요?”
“나야 정확한 사정은 모르지만, 모헬 중령이 나한테까지 부탁한 것을 보면 중요한 일이 아니겠소?”
고작 이런 부탁을 자신이 와서 해야 한다는 게 어이가 없지만 란레작은 북부를 떠나기 전 처음으로 모헬 중령의 애절한 표정을 봤었다.
그때 뭐라더라.
‘제가 휴가 가서 아기가 있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아마 제 아내는 편지로 말한다고 들을 리가 없습니다.’
‘끼리끼리…’
‘예? 아무튼 잠시 고향에 내려가서 안정을 취하게 만들어주십시오. 꼭 입니다!’
태연하게 수만, 수십만이 죽을 계획을 짜던 놈이 고작 이딴 부탁을 간절히 한다는 게 어이없었지만, 이제 와서 보니 약간은 이해가 된다.
‘누가 그놈 아내 아니랄까 봐.’
남편이 이렇게 부탁하는데도 파리에 남겠다는 태도를 보니 평범한 여인은 절대 아닌 것 같다.
“별 이유가 없다면 제가 파리를 떠날 일은 없을 것 같네요.”
사실 모헬이 결혼했다는 사실 자체부터가 놀라워 찾아온 게 반, 부탁을 들어줄 겸 찾아온 게 반이었다.
그러나 그의 머릿속에 샤를로트 모헬이 파리에 남는 시나리오는 없었다.
그리고 이건 생각보다 큰 문제였다.
‘모헬, 그놈이 자기 아내보고 파리에서 떠나라는 이유가 뭐겠어.’
바로 이번 페탱 공세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칼춤 한번 출 생각인 거다.
그리고 이 비열한 놈은 자기 가족한테 그 모습을 보이기 싫은 건지 아니면 피해가 갈까 우려한 건지 모르겠지만.
일단 시골에 가족을 보내고 홀로 파리에서 성대한 처형식을 거행할 생각인 거다.
그리고 이는 공세가 진행될수록 명백히 보여진다.
당장 부인이 읽던 신문만 보더라도 구도는 확실하다.
막대한 희생으로 베르요새를 하나도 되찾지 못한 중앙군과 로베르 니벨.
반면 이번에는 적 베를린까지 직접 진격해서 카이저 모가지를 따올 기세인 필리프 페탱.
이를 앞장서서 진두지휘하고 있는 게 바로 베르게르 모헬이란 인간이다.
그럴진대.
“저희 남편은 소심해서 저한테 말도 제대로 못 붙였거든요. 그런 주제에 전쟁터에서 얼마나 힘들겠어요. 원체 마음속의 말을 잘 하질 못해요.”
“응?”
“안 그런가요? 언제나 속으로 끙끙 앓다가 혼자 불이익은 다 보는 착한 성격인데.”
“아, 음. 그, 그렇긴 하지. 자기 생각을 다 말 안 하긴 해.”
“못 한 거겠죠. 제가 군대는 안 가봤지만 자기보다 윗사람들한테 어찌 편하게 말하겠어요?”
한숨을 푹 내쉬며 그런 남자를 두고 혼자 시골에 내려갈 순 없다고 말하는 모헬 부인.
란제작은 잠시 생각했다.
모헬이 하고 싶은 말을 못 하고 산다라? 아니, 그 반대 아닌가?
프랑스 최고 지휘관들이 모헬 아가리를 어떻게든 열어서 목구멍 깊숙이 숨겨둔 말을 꺼내고자 한다.
그놈은 조금만 기분 상하면 그것들을 꿀꺽 삼킨 채 ‘흐흐, 어디 한번 해봐라. 너희 다 끝장이야!’라고 비웃으며 상관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고.
심각한 괴리감에 혹시 사기 결혼을 한 게 아닐까 싶은 기분까지 든다.
“크흠, 모헬 중령이 이 말도 덧붙였네. 오를레앙에 자기 와인 창고가 있는데 거기에 세상 모든 와인이 다 모여 있을 거라-”
“생각해보니 결혼하고 한 번도 본가에 안 들렀던 것 같긴 하네요. 주인 없는 집에 먼지가 잔뜩 쌓이진 않았을는지.”
“……?”
샤를로트 부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갑자기 가도 괜찮을 것 같은 뉘앙스를 풍겼다.
‘음, 아니면 모헬 중령이 사기를 당한 건가?’
부인이 참으로 이 시대에 드문 성격이었다.
이유가 뭐였든 간에 란레작은 샤를로트의 입에서 떠나겠다는 약속을 받고 집을 나왔다.
매일이 기대되는 삶. 작년까지만 해도 바닥까지 추락한 그의 명예는 여태껏 살아온 삶의 의미까지 의심하게 만들었으나 지금은 정반대다.
“어서 두 사람이 파리로 돌아왔으면 좋겠구먼.”
기대되고 또 기대된다. 이 파리가 뒤집어지는 날을. 프랑스를 좀먹는 벌레들이 밟혀 죽게 될, 그날을.
그때가 오면, 프랑스는 달라지리라. 란레작은 의심치 않았다.
***
한 달이 채 지나지도 않았는데 서부 전선의 추정 사망자가 50만을 넘겼다.
병력을 모은 속도에 비해 너무나도 빨리 소모되는 양군.
우리도 예외는 없었다.
샤를루아까진 어찌어찌 병력의 우위와 압도적인 화력, 그리고 적의 장기적 전략에 의해 쉽게 점령했다만, 우리가 기수를 틀어 아래로 향하자 진정한 북부군만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사방에서 우리를 저지하려는 독일군.
단기간에 만든 참호를 어떻게든 뚫고 우리를 치려는 독일군.
이를 영국군 주축으로 막으려는 우리.
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이 악물고 무시한 채 진격하려는 프랑스군.
이미 우리도 사망자가 7만을 넘겼다.
우리가 아래로 내려가면서 독일 참호를 보이는 족족 박살내며 더 큰 걸을 노린다는 것쯤은 적 또한 안다.
그러거나 말거나 페탱은 사상자가 만 단위를 넘겨도 배에 힘 딱주고 다른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아래로, 더 아래로.
아르덴 숲 벨기에 방면을 지날 때쯤 우리에겐 30만의 병력이 있었다.
40km 정도 더 진격해 스당을 지날 때 즈음, 강력한 적의 저항으로 남은 병력은 20만. 후티어의 몸부림이 점점 강해졌다.
예상은 했다만 역시 북부에 있던 병력만으로 장거리 진격은 미친 병력 소모가 필수 불가결이다.
설령 죽지 않아도 누군가는 남아서 그 자리에 참호를 파고 적을 막거나 우리 뒤통수를 지켜야 하니까.
어느덧 아미앵을 떠난 지 한 달이 되어가는 시기, 한 소식이 들어왔다.
페르디낭 포슈가 베르됭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