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88
088화
“이딴 계획을 뒤에서 밀어준 이가 누구라고?”
“루이 데스페레 대장입니다.”
“세상이 미쳐 돌아가니 늙은이 노망도 받아들여지는군. 그냥 살로니카 전선에 처박혀서 나오지 말 것이지.”
정갈한 수염 사이로 연기가 흘러나옴과 동시에 베이강은 오랜만에 분노에 가득 찬 포슈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전선을 지키면서 내려오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독일군이 베르됭의 우위를 기반으로 다른 곳을 공략할지도 모른다는 판단에 포슈는 이제야 베르됭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가 도착했을 때 본 베르됭은 패잔병들의 집결소나 다름없었다.
반파되어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화포들.
단기간에 극심한 피해로 후송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병사들.
재편은커녕 뒤죽박죽인 부대 현황들.
무엇하나 그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포슈의 걸음걸이에 맞춰 걸어가던 베이강은 설명을 이어갔다.
“현재 니벨 공세 계획은 실패로 판명 났습니다. 다만 당장의 지휘권 박탈은 혼란만 야기한다는 총참의 판단으로 니벨 사령관의 자리는 보존되었습니다.”
“그게 다 판단이 아니라 정치라네, 이 친구야. 그것들은 페탱 공세 계획을 듣고 자신들이 필리프 페탱이라도 된 줄 알았던 거야. 그도 아니라면 페탱 공세 계획이 성공할 것을 두려워한 거겠지.”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데스페레 장군과 란레작 장군의 불화는 소문이 자자하니까요.”
그런 상황을 고려하면 니벨은 페탱과 비교 대상으로 총참이 내놓은 패다.
이런 더러운 사정은 이젠 놀랍지도 않다. 그보다 지금 베이강을 놀라게 하는 것은.
‘포슈 장군님께서 이리 감정적으로 화를 내시다니.’
마른에서도 이런 면모를 보이신 적은 없다. 그러나 지금의 옆모습만으로도 포슈 장군은 명백히 분노에 가득 찬 악귀처럼 보였다.
“버러지들… 그저, 가만히 있는 것도 못 하는군. 이 나라는 벌레들이 좀먹고 있어.”
지휘사령부 막사에 도착하자 손에 든 시가를 아무렇게 옆으로 던져버린 포슈는 곧장 천막을 힘껏 젖히고 들어갔다.
그곳에는 니벨을 비롯한 참모진들이 위치하고 있었다.
“오, 포슈 장군님! 잘 오셨습-”
“당장 공세를 중단하시오.”
니벨 소장을 만나자마자 가장 먼저 뱉은 말. 그것은 바로 공세를 중단하라는 말이었다.
“….일단 앉으십시오. 먼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어떻게든 분노한 포슈의 모습에 니벨은 자리를 하나 가리켰다.
그러나 포슈는 천천히 앉아서 눈앞의 놈과 대화할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너무 무례하게 대하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전 포슈 장군님의 부하가 아니니까요.”
“20만을 넘는 병력을 날려 먹고 뭐? 앉으라? 자넨 아직도 내가 책임소재나 체면 따위를 따지리라 보는가?”
“일단 눈앞의 독일군부터 어찌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신의 적은 독일이다. 그러니 도와주러 왔으면 닥치고 도울 방안이라 내놔라. 지금 분노에 가득 찬 포슈의 귓가엔 니벨 소장의 말이 그리 들렸다.
안타깝게도 지금의 포슈는 그간 알려진 사람과는 다른 상태였다. 이성적인 대화 방법은 이미 지휘막사에 들어오기 전 시가와 함께 내다 버렸다.
니벨의 눈앞까지 다가간 포슈는 서로의 모공이 보일 만큼 두 안면 사이를 좁혔다.
“지휘권이라, 그래. 내가 네놈의 지휘권을 박탈하고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운 다음 밑바닥으로 처박는 데 얼마나 걸릴 것 같나. 삼 일? 일주일?”
“…….”
“난 너 같은 놈이 내 부하든 아니든 관심도 없다. 그러니, 명령이다. 지금 당장 이 빌어먹을 공세를 중단하라.”
그도 안다. 이건 빌미를 제공하는 것일 수도 있다. 누군가 나중에 다 된 계획을 포슈가 멈춰 세웠다고 떠벌릴 수도 있겠지.
그러나 포슈는 자신이 가진 힘과 위치를 모르진 않았다.
그는 이 나라의 유일무이한 장수다. 프랑스 공화국을 구해낸 난세의 영웅이자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인력이다.
그리고 그 장수는 장담컨대 자라나는 새싹 따위 프랑스 땅에서 뿌리 한 줄기 못 내리게 할 능력이 충분했다.
“…. 군을 물리도록.”
“허나 사령관님!”
“물려. 일단은.”
칼만 안 들었지 방금 포슈의 말이 최후통첩이었음을 모를 만큼 니벨은 멍청하지 않았다.
니벨의 입에서 직접 군을 물리겠단 명령을 듣고서야 포슈는 다시 몸을 곧게 세우고 분노를 가다듬었다.
“지금부터 이곳의 모든 상황, 전략, 지휘결정을 공유받도록 하겠네. 당연히 자네의 독단적인 결정은 이제 없을 거야. 혹시 항명이라도 하겠나?”
“항명은 지금 누가 하고 있는 지 모르겠군요.”
“닥치게. 난 네놈 뒤에 누가 있던 이제 관심도 없으니. 만약 내가 명령한 것과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을 한다면 난 저 요새를 되찾는 데 조금의 힘도 보탤 생각이 없다네.”
설득은 없다. 협상할 바는 더더욱 아니고.
이런 것들은 그저 존재만으로 해롭다.
그가 사랑하는 조국은 저런 것들에 의해 무너져선 안 된다.
‘이제 가만히 앉아서 구경하는 일은 없을 거다.’
더러운 것은 피하는 게 아니다. 치우는 거다. 그걸 배우기까지 무려 2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이젠 치울 때라고 포슈는 생각했다.
일단은 가장 먼저, 20만의 넘는 병력을 좀먹은 눈앞의 벌레부터.
***
막대한 추가병력과 함께 베르됭에 도착한 포슈 장군은 3일 만에 뫼즈 강을 따라 병력을 넓게 포진시켰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다가오는 적으로부터 한 위치를 고수해야 하는 독일군을 괴롭히기 딱 좋은 구도를 만들겠다는 거다.
“희소식이네.”
“포슈 장군의 전술변화가 우리한테 무슨 영향이 있는 겁니까?”
“있지. 저기가 이제 아주 많은 병력을 필요로 할 거거든.”
결집된 힘으로 한꺼번에 요새를 되찾겠다는 생각은 가져다 버리고 다시 정석으로 돌아간 거다.
유일한 장점인 마음대로 위치를 바꾸며 적을 공략한다면 적어도 다른 수가 보일지도 모르니까.
물론 아무리 포슈 장군이라도 지휘권을 잡자마자 베르됭 요새를 되찾을 거란 생각은 안 한다만 적어도 한 시간에 사단 하나를 날려 먹는 기적은 이제 없겠지.
“그럼 독일군도 당연히 삼킨 베르됭을 뱉을 생각이 없으니 더 많은 병력을 필요로 하는 건 마찬가지고.”
“베르됭 전역 쪽에서 우리한테 오는 위험은 줄어들겠군요.”
“그래, 파비앵. 심지어 중앙을 비우신 것도 아니잖아.”
우린 이미 북부에서부터 내려와 중앙 전선에 위치하고 있다.
여기서부터 홀로 적 참호를 측면 혹은 후면에서 공격하며 내려간다면 오랜 시간이 걸리거나 적 참호가 바라보는 방향이 바뀌었겠지만 중앙 전선은 여전히 철저한 대치가 이뤄지고 있다.
‘전문용어로 어그로라고 할까.’
우릴 막을만한 후보들이 꽉 붙잡힌 상태라는 거다.
우리가 박살낸 참호가 몇십km나 될까. 계산하진 않아서 잘 모르겠다.
다만 이게 우리의 주목적은 아니었다.
2년간 독일군을 지켜준 참호. 참으로 잘 만들었다만 이건 덤이라고 덤.
아마 이대로라면 뷔이용을 떠날 때 우리 병력은 15만도 안 남을 거다.
여기서 우리에겐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하나는 계획대로 룩셈부르크로 향하는 것. 그러나 가능성은 점점 희박해진다.
기존의 대치를 깨고 참호를 나오기 시작한 중앙군의 힘까지 합세한다면 룩셈부르크 진입은 불가능한 일은 아닐 테지만 정치적으로나 현 서부전선의 전술적인 판단으로는 안 될 거다.
두 번째는 여기서 우리도 도장깨기처럼 이어지는 어디어디 독일군이 만든 참호 박살내기를 그만두고 베르됭으로 향하는 것.
‘이것도 가능할지는 모르겠군.’
이미 무리한 계획에 피해도, 남은 병력도 부족하다.
베르됭에 도착한다 한들 하루아침에 요새를 되찾게 되는 것도 아니다.
곧 뷔이용을 떠나야 한다.
지금 북부군은 멈추면 죽는 말이다. 우리가 멈추는 순간 적한테 가해지는 위협이 사라지고 다시 이런 기회가 오지 않을 거다.
하룻밤을 꼬박 세우고 다음 날 아침이 밝아 올 때까지 고민을 해봤지만 여전히 모르겠다.
약간의 무력감과 함께 괜히 힘이 빠지기도 한다.
“역시 룩셈부르크는 무리였나?”
나 또한 알프레트 폰 슐리펜과 다를 바 없이 무리한 목표설정으로 무의미한 결과를 만들어 낸 건가 싶기도 하다.
홀로 해 뜨는 모습을 지켜보며 생각에 빠져있는 날 슈티른 대령이 깨웠다.
“뭐 그리 눈에 힘이 풀렸나.”
“하아, 원하는 게 있는데 못 얻어서 그렇습니다.”
“세상에 얻기 어려운 것도 있는 법이지.”
옆에 앉아서 별거 아니라는 투로 가볍게 말하는 그. 내 고민일 얼마나 깊은지 모르기에 저리 말하는 거겠지.
“룩셈부르크로 향하려 했는데 역시 우리만으로는 무리였나 싶군요.”
“뭐, 욕심이 과하긴 했어. 적 참호도 다 눈에 보이는 족족 파괴하고 싶고 중앙 전선도 뒤로 내빼게 만드는 와중에 후티어로부터 후방까지 안전하길 바란다니. 자넨 여기에 룩셈부르크까지 적이 얹어줘야 저울이 맞다고 생각하지 않았나?”
“그걸로 부족하죠. 독일하고 전선 정리하는 김에 내부 정리도 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럼 그땐 제가 좀 편해지지 않겠습니까?”
“으음….”
나한테서 아이스크림을 양손에 쥐고 과식하는 어린 뚱땡이를 투영하는 것 같은 슈티른 대령. 그러거나 말거나 난 진심이었다.
무려 2년. 2년 만에 찾아온 기회다. 적이 먼저 내준 틈이자 그간 쌓아온 모든 것을 투자해서 벌려놓은 구멍 아닌가.
결국 나도 다음은 없다는 생각에 당장 머릿속에 가득하다.
“판단이 안 서서 괴로운 모양이군. 그간의 모습과는 사뭇 달라서 인상적이야.”
언뜻 내 고뇌하는 모습이 재밌다는 듯이 말하며 홀로 여유로운 모습에 괜히 기분이 나빠진다.
“페탱 사령관님은 뭐라고 하십니까.”
“일단 이대로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보시지만, 아마 멈춰야 한다고 생각하실 거야. 여기서 더 진격해봐야 30km라네. 그 이상은 병력이 없어. 사단 몇 개만 가지고 더 나아갈 게 아니라면.”
“그렇겠죠.”
뷔이용에서 어느 방향으로 가든 우린 멈춰야 할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 되돌아가야 할 거다.
‘늪에 빠진 꼴이야.’
잠깐은 목적지에 다가가 볼 순 있어도 살고 싶다면 늪을 나가야만 하니까.
“이미 페탱 공세는 역사에 둘도 없이 성공한 계획이라네.”
“이제 와서 니벨이 날려 먹은 병력을 우리가 썼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은 사치입니까.”
“의미 없는 상상이지. 그래서 자네 결정은 뭔가?”
슈티른 대령은 내 의견을 직설적으로 물어왔다.
내가 원하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내가 하려는 것.
이 세 가지로 딱 정리해보면 달라지는 것은 없는 것 같다.
“전 독일군이 물러나길 원합니다.”
룩셈부르크? 난 그 좁쌀만 한 국가가 멸망하든 해방되든 딱히 관심도 없다.
오래전부터 룩셈부르크라는 땅은 내게 부둣가의 방파제 하나의 가치 정도밖에 없었으니까.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페탱 사령관님을 설득할 겁니다.”
“무엇을?”
“중앙 전선 참호 부수면서 나가는 것도 그만두고. 지금 뷔이용에 병력을 남겨두지도 말자고요.”
“응?”
“그럴 병력이 어딨습니까. 후티어도 막고, 중앙 전선도 풀어주고, 룩셈부르크까지 먹자? 과욕입니다. 언제나 말하지만, 전 주제파악이 확실한 사람입니다.”
“……”
직접 베르됭에도 안 간다.
룩셈부르크 땅을 저 위에서부터 내려온 내가 먹을 수 있을 거란 망상은 이미 집어치운 지 오래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난 여전히 선택하기 어렵다.
그럼 넘겨야지.
“뷔이용에 분대 하나도 남기지 않고 전부 룩셈부르크 방향으로 진격하자고 할 겁니다.”
“그랬다간 어찌 될지 말하지 않아도 알 터인데.”
“가다가 내려갈 겁니다. 베르됭 쪽으로. 그럼 독일이 어떤 반응이라도 보이겠죠.”
결과가 어찌 되든 그건 독일의 선택이다.
그들이 무리해서라도 전선을 물리고 날 막으러 올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 눈엣가시인 우리를 최우선으로 제거하려 할 수도 있다.
고작 베르됭 하나 빼앗기는 피해보다 우리가 망가트린 전선과 전역이 훨씬 뼈 아프단 사실은 슬슬 인정해야 할 때니까.
“그리고.”
“그리고?”
“다시 도망쳐야죠. 가만히 있다간 죽을 거 아닙니까?”
“…….”
슈티른 대령은 입을 떡 벌린 채 공허한 눈으로 날 탐색한다.
“그,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게 맞는지 의심스럽군.”
“맞습니다. 협박. 전 협박하는 겁니다. 애초에 페탱 공세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적의 병참선과 점령지를 건드려서 전선을 물리게 하는 것 아닙니까? 굳이 직접적 파괴까지 갈 필요가 있습니까?”
내가 열심히 공부하고 학습했던 알프레트 폰 슐리펜 선생님의 계획은 왜 성공할 뻔했을까?
그건 바로 모든 것을 진심으로 걸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우린 우위를 점했다는 생각에 너무 안일했다. 간절함이 부족했다는 의미다.
내가 이리 간절히 원하면 독일도 무슨 반응을 보이겠지.
‘물론 아닐 수도 있지만.’
결정은 그들의 몫으로 남겨두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