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rd-rate journalist becomes a tycoon RAW novel - Chapter 21
21화
산장의 외부는 허름했지만 내부는 깨끗했다. 그러면서도 사람이 살았던 흔적은 전혀 없었다.
재환은 거실을 지나서 안방으로 향했다.
안방의 바닥에 깔린 수상한 카펫을 들추니 지하실로 이어지는 문이 나왔다.
이 산장의 목적은 다양했지만 주 역할은 거래의 은폐에 있었다.
자갈치파가 뒷골목에서 사람 처리하는 일을 했지만 멍청하진 않았다.
여차하면 카르텔이 자신들을 내치고 버릴 수 있단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때문에 그들과의 거래 내역을 장부로 정리해 이런 안전가옥 곳곳에 보관해 뒀다.
“10년 전인데도 제법 되네.”
하나나 두 개만 건져가도 이득이라 생각했는데, 책장 하나를 꽉 채운 장부를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이왕 터트릴 거 화끈하게 터트리기로.
책장에 꽂힌 장부 중 한성과 관련된 자료는 싸그리 들고 차로 날랐다.
체력과 시간이 드는 일이었지만 못 할 짓은 아니었다.
노동으로 인해 맺힌 땀을 닦아내고 운전대를 잡았다.
회사까지 돌아가는 길은 아주 흥겨웠다.
재환은 가져온 자료를 기반으로 부정할 수 없는 팩트를 만들어 기사화했다.
상당한 공을 들여 완성한 기사였기에 거짓이라고 해도 믿을 수준이었다.
그렇게 완성된 기사는 해가 뜰 무렵에 세상에 공개됐다.
-오늘의 신문에서 또 특종 나왔네.
-한성 그룹이 깡패를 고용했다고? 이걸 믿으라고?
-위에 증거 떡하니 있는데 안 믿을 거임?
-피해자 A씨는 경찰에서 자살로 수사 중단했지 않음? 경찰도 한통속이야?
이른 아침이건만 재환의 이름을 달고 나온 기사는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댓글창은 전쟁터가 되었고, 한성의 전략실 역시 초토화가 되었다.
“기사 빨리 내려!”
“대표가 쓴 기사랍니다. 편집국장도 못 내린대요.”
“씨발! 그럼 포털 사이트에 연락이라도 넣어서 주목이라도 못 받게 만들던가! 거기 전원이라도 끊어버려!”
기사가 이슈화되는 걸 막으려 갖은 수를 다 썼다.
기본적인 검색어 조작부터, 댓글 조작은 당연하고, 포털 사이트를 통해 기사를 눈에 띄지 않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런 자극적인 소재는 사람들의 입을 타고 퍼지기 쉬웠다.
-한성 진짜 쓰레기임? 전에 한성 반도체 공장의 노동자들 암 걸린 것도 무시했다더니만.
-한성 불매 운동 시작합시다.
-한성이 물건은 잘 만들긴 하는데, 이런 쓰레기 회사의 제품을 사줄 순 없지.
인터넷상에서 사람들이 하나 되어 가는 와중에 지상파 방송사들은 큰 고민에 빠졌다.
“이거 어떻게 해요. 방송해요?”
“하면? 한성 광고 다 나가리 되는데 그거 어떻게 매워! 우린 땅 파서 방송 만드냐?”
“안 하면 그거대로 문제잖아요. 기사 안 나가면 한성이랑 엮였다는 소문 돌 텐데 그거 감당 할 수 있어요?”
한성으로부터 후원금이란 명목하에 상당한 액수를 받아먹은 탓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덕분에 뉴스 시간이 다 되어 가는 데도 데스크는 반으로 나뉘어 싸우기 바빴다.
“야! 그냥 뉴스 빼! 오늘 저녁까지 하지 마!”
“국장님! 그게 말이 됩니까? 그거야말로 끝이에요, 끝!”
“뉴스 뺄 거면 2박 3일 재방송이나 편성해라. 우리 시청률 좀 더 가져오게.”
“예능 국장, 넌 이 상황에서도 그러고 싶냐!”
“방송 20분 남았습니다!”
혼돈의 도가니가 되어갔지만 결단을 내리지 못했기에 각 방송사 대표들이 직접 결정을 내렸다.
“방송해.”
“이번 건 묻고 넘어가. 아침이라 소식 늦은 거라고 하고, 저녁 뉴스 전까지 좀 더 알아보겠다고 말을 하라고.”
“우린 특보로 내보낸다. 오늘의 신문, 강재환 기자한테 연락해서 최대한 빨리 기사 준비해!”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길을 도모해 나갔다.
물론 어느 쪽이든 좋은 결과가 나오진 않을 것이다.
기사의 댓글을 모두 체크한 재환은 의자에 기대 씨익 웃었다.
흘러가는 상황이 아주 만족스럽다.
한성의 기둥을 잡고 한 번 세게 흔들었고, 카르텔 내부에는 배신자가 있다는 소식이 돌 것이다.
밤사이 경찰의 습격으로 유치장에 끌려간 자갈치파는 다시 못 나올 거다.
“아유, 밥이 달다, 달아.”
“당신 밥에만 특별히 소금 듬뿍 쳤는데, 달아? 왜 달아?”
예희는 아침에 귀가한 재환에게 밥을 차려주면서 툴툴댔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집에 늦게 들어오고, 아침에 들어오는 건 비슷하지만 벌어지는 사건의 규모가 남다르다.
S방송사의 뉴스를 보며 예희가 물었다.
“저거 당신 작품이지?”
“뭐, 내 기사를 참조했나보지.”
“진짜 당신 뭐 하고 다니는 거야?”
“회사를 키우는 중이지. 아, 지금 기사 조회수 한번 볼래? 우리 신문사 사상 최대 조회수 기록했다.”
조회수가 늘어난다는 말은 곧 수입이 늘어난다는 말이다.
돈이 굴러들어온다는 데 안 기쁠 수가 있나.
“누누이 말하지만 무리는 하지 마.”
“그건 좀 고민해보고.”
무리하지 않아서 전생처럼 된다면 사양이다.
이미 거대한 흐름을 틀어버렸으니 전생처럼 되기는 힘들 거다.
“잘 먹었다. 그럼 출근할게.”
“또? 집에 들어와서 밥만 먹고 또 나가?”
“지금 기자들 전화기에 불붙었을걸. 내가 안 가면 상황 정리 안 될 거야.”
장미래 사건의 특종을 보도했을 때처럼 신문사가 크게 들썩이고 있을 게 분명하다.
어느 정도 가이드라인을 한결에게 전달해줬지만 중요 인사들과의 만남은 직접 해야 할 일이다.
필요하다면 기자 회견도 해야 할 것이고.
예희의 배웅을 받고 나와 차로 향하니 검은 옷을 입은 남자들이 서 있었다.
아주 세한 느낌이 등골을 스쳤다.
‘내가 놓친 게 있었나? 자갈치파 말고 다른 사냥개는 없을 건데?’
도망쳐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데 앞에 선 남자가 다가왔다.
“강재환 대표님 맞으시죠?”
“아닙니다. 사람 잘못 봤습니다.”
“VIP께서 찾으십니다.”
“VIP?”
VIP는 다양한 곳에서 사용되지만 이 상황에서 가리키는 이는 한 명밖에 없다.
대통령이 재환을 보자고 한다.
이 말에 재환의 머리는 빠르게 돌아갔다.
‘현 정권이 한성에 진 빚이 꽤 많지.’
여기까지 생각하면 그 빚을 갚기 위해 조치하려는 걸 수도 있다.
VIP의 경호원들 주에는 국가적 차원에서 행적을 지우는 이도 있으니, 그들을 이용하면 자갈치파를 이용하는 것보다 더 깔끔하게 재환을 날릴 수 있다.
하지만 재환은 그럴 가능성이 낮다고 봤다.
‘행동이 너무 빨라. 거기다 한성을 비롯한 카르텔을 적당히 견제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고.’
회귀 전에는 그게 눈 밖에 나서 재판장 앞으로 끌려나갔다.
여기까지 도달하면 VIP가 재환을 찾는 이유가 보인다.
좋게 해석하자면 자신과 손을 잡자고, 악의적으로 해석하면 카르텔을 상대할 칼이 되라는 거다.
부담스러운 만남이라 거부하고 싶으면서도 욕심이 났다.
‘VIP가 가진 권력이 참 탐스럽단 말이야.’
방송국의 설립과 채널의 개설에 필요한 법적 조치를 완화하도록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더불어 PD나 방송 관련 인재들을 영입하는 데 도와달라고 하면 근거 없는 법도 만들어 낼 수 있다.
리스크에 비해 리턴값이 상당한 이 만남을 거절할 이유가 없다.
“어디로 가면 되죠?”
“저희 차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임의로 차에 저희 경호원 한 명이 동승할 텐데 괜찮으시죠?”
질문의 형태를 띠고 있었지만 강요에 가까웠다.
어떻게 차문을 땄는지 모르지만 조수석에 이미 한 명이 올라타 있었으니까.
재환은 어깨를 으쓱하고 차에 올라탔다.
다행스럽게도 딴 길로 새지도 않고 청와대 관저까지 직진해왔다.
만에 하나, 남산타워 아래 어딘가로 끌려갈 것도 상상은 했는데 현실이 되지 않아 다행이다.
응접실로 안내를 받은 재환은 수첩을 꺼내 현 정권의 성향을 다시 확인했다.
그 사이 대통령이 응접실로 들어왔다.
“오래 기다리셨죠.”
“아닙니다. 공사가 다 망하신 분을 만나는데 이 정도 기다림이야 기다림이겠습니까.”
M자형 탈모를 보이는 VIP에게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재환의 앞에 마주 앉았다.
그의 뒤를 따르던 비서가 곧바로 서류 하나를 재환에게 내밀었다.
“대표님이 많이 바쁘실 텐데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 볼까요?”
재환은 서류의 내용을 속독으로 확인하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방송 채널 설립에 필요한 서류가 완벽하게 갖춰져 있었다.
딜을 해서 나와야 할 물건이 바로 튀어나왔다.
“방송국 운영하시려 한다는 얘길 듣고 힘 좀 썼습니다.”
“대통령님께서 직접 손 써주시기엔 너무 사소한 일 아닌가요?”
기쁘면서도 괜히 한 번 튕겨봤다.
이 바닥에서 이유 없는 호의는 없는 법이니까.
원하는 게 있으면 빨리 털어놔라.
재환의 은근한 압박에도 대통령은 그저 대선용 마스크를 쓰고 웃을 뿐이다.
“사소한 곳에서 큰일이 생기는 법 아니겠습니까. 대표가 되시기 전에 쓰셨던 특종부터 예의주시하고 있었거든요.”
“하하, 대통령님이 직접 지켜보셨다니까 어깨가 무겁군요. 기자로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요.”
“그 해야만 하는 일에 사람들이 열광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저도 대통령으로서, 국민을 위해 필요하다 싶은 일을 하는 겁니다. 국민의 알 권리를 먼저 생각하는 대표님 같은 분이 방송국을 세우면 더 많은 사람들이 질 좋은 정보를 얻지 않겠습니까.”
미사여구를 잔뜩 붙여 돌려 말했지만 쉽게 말해 자신의 마이크가 되어라 이거다.
그건 재환으로서 별로 달갑지 않았다.
다른 이를 자신의 발판으로 쓴다면 모를까, 자신이 남의 발판이 되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다.
재환이 떨떠름해 하니 대통령은 부드럽게 말을 덧붙였다.
“부담스러우시면 이렇게 하시죠. 그건 이번 일을 보도해 주신 것에 대한 보답입니다.”
“그건 더 이해가 안 되는데요. 한성이 조직폭력배와 연관이 있다는 게 대통령님과 무슨 상관이시죠?”
“그 폭력배들이 꽤 골치 아팠거든요. 한성에서 뒤를 봐주고 있으니 저희로서도 국가적 차원에서도 할 수 있는 게 마땅치 않았고요.”
재환은 웃음이 나려는 걸 참았다.
한성은 카르텔을 적대하는 이들을 위한 무기로 자갈치파를 준비했다.
그리고 그 자갈치파를 이용해 카르텔에 대해 아는 이들을 은근히 압박했다.
대통령 역시 그 위협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저희 비서실과 경호팀에도 한성의 사람이 있습니다. 한성과의 거래 때문에 그들을 둔 건데, 위험한 일이더군요.”
“그럴 만하죠.”
자신을 지키기 위한 이들이 실은 자신의 움직임을 감시하기 위한 벽이란 걸 알면 누구나 공포를 느끼는 법이다.
특히나 대통령 임기가 반을 넘어가는 시점이니 더더욱 공포스러우리라.
“그런 의미에서 이번 사건을 보도해서 숨통을 틔워주신 강재환 대표님께 감사드리고, 이건 그 감사의 의미로 드리는 겁니다.”
재환은 약간 찜찜했지만 길게 생각하지 않고 서류를 챙겼다.
먹고 탈나지 않는다면 이렇게 맛난 걸 안 먹을 이유가 없다.
“그럼 방송국 설립되면 한 번 찾아뵙겠습니다. 그편이 좋겠죠?”
“대통령님께서 와주신다면 저희 방송국에 큰 명예일 겁니다.”
당연히 의례적인 말이라 생각하고 재환은 청와대 관저를 벗어났다.
저 말이 진심이었다는 걸 알게 된 건 몇 개월 뒤, 방송국 설립 날이었다.
청와대 관저를 나온 재환은 차를 끌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예상대로 사무실의 전화기는 불타오르고 있었다.
“대표님! S방송사에서 연락 좀 해달랍니다!”
“K 방송사에서도 관련 자료 요청하고 있어요!”
“중앙 신문의 편집국장님이 인터뷰 요청하셨어요!”
기자들의 비명과 같은 외침을 들으며 재환은 그저 허허 웃었다.
저 웃음이 악마의 웃음처럼 느껴지는 건 착각이 아닐 거다.
“야! 밤사이에 대체 뭔 짓거릴 한 거야!”
“미리 말 못 해서 미안. 근데 좀 급했어.”
상황을 유리하게 이끌 자신은 있었지만 알릴 시간적 여유는 없었다.
늦은 밤에 내일 박터질 테니 각오하라고 전화해주는 것도 이상하잖은가.
“선배는 기자 회견 좀 잡아줘. 대표 사무실에 모아둔 자료 대방출한다고 일러두면 사람 많이 모일걸.”
“하이고, 비서 좀 고용해라!”
“생각 좀 해본다니까. 아, 배승열 기자?”
재환은 일부러 배승열을 불렀다.
퇴직할 거라고 노래, 노래를 부르던 녀석인데 아직까지 붙어 있다.
하긴 주마다 특종 하나씩 터지는 신문사를 그만두겠다는 기자는 없을 거다.
“네, 대표님.”
배승열은 다소 굴욕적이면서도 웃는 낯을 했다.
“아유, 웃으니 보기 좋네. 다름이 아니고 대표 사무실에 있는 자료 좀 복사해 줘. 하나당 30부씩 하면 되겠다.”
“하, 하하. 알겠습니다.”
억지웃음을 짓고 대표 사무실로 올라가는 배승열의 뒤를 재환은 비릿하게 웃었다.
한결이 그런 재환의 뒤통수를 때렸다.
“얘 좀 괴롭히지 마라.”
“선배, 쟤가 나 괴롭힌 건 싹 잊어먹고 너무한 거 아냐?”
“안 너무해. 네가 나한테 하는 짓이 더 너무하지.”
한결과 투닥거리며 기자 회견을 준비하고, 성공적으로 기자 회견을 마쳤다.
이로써 재환의 이름값이 좀 더 높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