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rd-rate journalist becomes a tycoon RAW novel - Chapter 35
35화
개국식이 진행될 방송국 건물 앞에는 임시로 만들어진 단상과 그 밑으로는 의자가 쫙 깔렸다.
다른 신문사의 기자들이 대부분의 자리를 채웠고, 오늘의 신문사 소속인 배승열도 한 자리를 차지했다.
오늘의 신문사 대표가 만든 방송국의 개국식에 오늘의 신문사 기자가 안 나오면 그것도 우스운 꼴이니까.
맨 앞자리는 대부분 비어 있었는데, 느지막하게 김현태 서울시장과 그와 접점이 있는 국회의원 몇 몇이 차지했다.
국회에서 바쁠 그들이 굳이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는 한 가운데에 앉아서 위압감을 뽐내는 구 회장 때문이었다.
어떻게든 그에게 눈도장을 찍기 위해 이런 구실을 찾아서 찾아 온 거다.
스태프 룸에 있던 재환은 그 의원들을 보고 피식 웃었다.
“저 사람들 구린내가 장난아닌데.”
“면전에 대고 하지는 마라.”
한결이 재환의 옷 매무새를 다듬어주며 조심해라 일렀다.
이렇게 일러줘도 쌈닭이 가만있지 않겠다만, 주의는 줘야 했다.
“오늘은 싸우자고 만든 자리가 아냐. 어디까지나 우리 방송국 만들었으니까 많이 봐주십쇼. 하고 홍보하는 자리지.”
“홍보는 홍보팀에서 잘 하겠지.”
“아무리 밑에서 깨끗하게 한다해도 위에서 똥물 흐르면 말짱 꽝인 거 알지?”
“드럽게 비유를 꼭 그런 걸로 들어야겠냐.”
“네가 먼저 구린내 난다고 했거든?”
둘은 잠시 투닥대다가 짠 듯이 구 회장과 옆에 앉은 비서실장을 바라봤다.
묘하게 오늘 분위기가 다운됐는데, 어제 일 때문인가?
“저 회장님은 알까, 네가 목 따려고 칼을 갈고 있단 사실을.”
“때론 모르는 게 좋은 법도 있는 거야.”
개구리를 삶아 죽이는 것처럼 천천히 목을 조여갈 거다.
슬슬 사회자 역할을 맡은 아나운서가 단상에 올라설 때, 의외의 인물이 참석했다.
“……저거 한성 물산 사장 아니냐?”
이강철 사장이 들어오자 의원들은 벌떡 일어나 어떻게든 악수 한 번 해보려고 애를 썼다.
구 회장의 표정이 일그러졌는데, 이강철은 그걸 보고 살짝 비웃었다.
어른에 대한 예의 따위는 밥말아 먹은 태도다.
재환은 그 장면을 쭉 지켜보고 답했다.
“맞네.”
“저 사람은 왜 여기 온 거냐. 너 한성이랑 사이 안 좋은 거 아니었냐?”
전에 있었던 일을 전부 이야기 한 건 아니지만, 재환이 광고를 받을 때 한성 광고만 깐깐히 보고 계약을 했기에 어렴풋이 눈치 챘다.
이강철이 여기 온 이유.
재환은 대충 알 것 같았다.
이한철을 상대할 장기말로 날 쓰려고 하는데, 내가 자꾸 도망가니 이런 자리에 직접 나선 거겠지.
그런다고 내가 자기 장기 말이 되어 줄 것도 아닌데.
지금은 KG 치기도 바쁜데 한성이랑 푸닥거리 할 시간 없다.
둘이 공멸해 주는 게 베스트지만 저 위에 있는 인간들은 엘리트 중의 엘리트들이다.
굳이 어렵게 갈 이유 없지.
소란이 어느 정도 잦아들자 아나운서는 개국식을 시작하려 했다.
“그럼 지금부터 오늘의 방송국, TBS의 개국식을….”
“아, 죄송합니다. 많이 늦었군요.”
“흡.”
이강철의 참석도 의외였지만 이 사람의 참석은 더 의외였다.
재환조차도 그의 참석에 입을 꾹 다물었다.
“대통령이 여긴 왜 온 거야.”
“나한테 묻지 마라.”
재환은 아찔해지려는 머리를 부여잡고 딱 한 번 그를 직접 마주 봤을 때를 떠올려봤다.
그 때 분명 개국식에 불러주면 참석하겠다 했다.
당연히 농담으로 웃어 넘겼지만, 이렇게 찾아올 줄은 몰랐다.
“졸지에 스케일이 커졌네.”
처음 만들어졌던 K 방송사의 개국식이면 모를까, M 방송사나 S 방송사의 개국식에도 대통령은 참여를 안했다.
그런데 케이블 방송사의 개국식에 대통령이 참여했다?
기자들이 신나게 타자를 두드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그래도 화제 몰이는 제대로 했다.”
정치판이 끌려 들어오면 피곤해지지만, 이렇게 된 이상 받아들이고 이용하자.
재환은 그리 결정했다.
지금 와서 돌아가라 한다고 해도 돌아갈 이도 아니니까.
대통령도 자리에 앉고 나니, 처음보다 긴장한 아나운서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오늘의 방송국, TBS 개국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참여한 인사진이 화려했지만 개국식은 간단하게 진행됐다.
재환이 먼저 나서서 인사말을 하고, 그 뒤엔 이사 직함을 단 한결이 올라가 방송 일정과 향후 계획에 대해 대략적으로 보고했다.
일련의 과정이 끝난 뒤 미리 설치된 스크린에 타이머가 띄워졌다.
5.
5초의 타이머가 0이 되면 TBS의 첫 방송, 첫 뉴스가 시작된다.
타이머가 흐르는 걸 재환은 묘한 뿌듯함과 함께 지켜봤다.
0.
타이머가 0이 되자 사방에서 박수가 터져나왔다.
동시에 뉴스의 짧은 인트로가 시작됐다.
더할 나위 없이 깔끔한 스타트다.
“안녕하십니까, 시청자 여러분. TBS 뉴스의 앵커를 맡게 된….”
뉴스의 아나운서의 소개와 함께 첫 뉴스를 듣고 개국식은 마무리 되었다.
길지 않았던 개국식이었지만, 그 후가 문제였다.
“직접 찾아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전에 온다고 했지 않습니까.”
대통령은 그저 사람 좋게 웃으며 악수를 건넸다.
야당 소속 의원들이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고 있으니 상당히 부담스러웠지만 대수롭지 않게 악수를 받았다.
“나중에 조촐한 선물을 보내겠습니다.”
“이상한 소리 나올 수 없으니 괜찮습니다. 오신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허허. 다음에는 좀 더 편한 장소에서 밥도 먹으면서 얘기를 하죠.”
공사가 다망한 이답게 짧은 인사를 나눈 뒤 자리를 떴다.
야당의 의원들은 재환에게 아는 척도 안하고 뒤따라 나갔다.
이강철도 그렇게 떠났으면 좋았으련만 재환을 향해 똑바로 다가왔다.
“대표님 얼굴 한 번 보기 어렵네요.”
“요즘 많이 바빴거든요.”
“그래도 삼시 세끼는 챙겨가면서 일하셔야죠. 오늘 개국 기념으로 제가 코스 요리 쏘겠습니다.”
“아, 죄송하지만 선약이 있어서요.”
재환은 이강철의 뒤에 선 구 회장을 바라봤다.
이강철은 뒤늦게 구 회장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사방의 눈 때문에 한 억지 인사에 구 회장이 쓴 소리를 했다.
“나이를 먹더니 고개도 빳빳해진 모양이구나.”
“요즘 KG 그룹이 성장하는 걸 올려다보고 있다보니 목이 뻣뻣해지더라고요. 많이 배워야겠다, 느끼는 요즘입니다.”
“꼴값은.”
이강철은 구 회장의 등쌀에 밀려 옆으로 물러났다.
그러면서도 재환을 보며 한 마디를 더 했다.
“연락 주시죠. 맛있는 밥 준비해 놓고 있겠습니다.”
의례상 고개를 한 번 끄덕여주고 속으로 이강철을 씹었다.
‘자기가 셰프냐. 왜 자꾸 밥 먹재.’
예희와 소율이랑 같이 밥 먹은 지도 오래됐는데, 왜 저 놈하고 밥을 먹어야 한단 말인가.
시선을 구 회장에게 돌리니 여전히 심기가 불편한 모양이었다.
그 뚱한 표정을 보고 있으니 괜히 장난치고 싶어졌다.
“삐졌어요?”
“뭐라 했냐?”
“어제 일 제대로 안 도와준 것 때문에 삐졌냐고요. 보아하니 맞는 거 같긴 한데.”
“늙은이한테 맞으면 좀 덜 아프냐?”
구 회장이 지팡이를 휘두르는 걸 슬쩍 피하면서 물었다.
“저 거머리 떨어트려 준 건 고마운데 어제 일은 못 도와줍니다.”
“됐다. 니놈한테 도와달라 한 내가 머저리지.”
“대신 KG 계열사 광고는 단가 잘 쳐줬잖아요. 시간도 좋은 시간 배정해줬고요. 그니까 밥이나 드시러 가죠. 요 근처에 소머리 국밥 잘 하는 집 압니다. 속 안 좋은 사람한테는 소머리국밥 만한 게 없답니다.”
“기자란 놈이 낭설을 믿고 다니냐?”
투덜거리면서도 구 회장은 재환을 따라 국밥집으로 이동했다.
재벌 회장에게 국밥은 안 어울렸지만, 의외로 구 회장은 가리는 것 없이 좋아했다.
그래서인지 기업 이미지를 위해서도 한 번씩 시장에 나와서 이런 음식을 먹기도 했다.
국밥집으로 향하면서 구 회장과 그 뒤를 따르는 유서진의 얼굴을 번갈아 살폈다.
처음에 느꼈던 묘한 분위기가 여전히 그들에게 내려 앉아 있었다.
“이모, 여기 국밥 3개요.”
허름한 국밥집 안으로 들어가 구석자리를 차지했다.
시끄러운 시장 통이라 얘기가 잘 안 들리긴 할 텐데,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밥 먹으면서 간단히 앞으로 사업 얘기나 해볼까요?”
“늙은이 먹다 체해 뒤지라는 거냐?”
“더 고통스럽지 않게 해드리려는 제 깊은 뜻을 아시겠습니까?”
“썩을 놈.”
구 회장은 국밥을 한 숟가락 뜨고 크으으 하는 소리를 냈다.
이 늙은이가 먹방 찍었으면 꽤 많은 사람이 보지 않았을까.
“네놈 IT 사업 확장 준비 중이지?”
“네. 글로벌 서비스 준비 중입니다.”
“팔아라. 값은 잘 쳐주마.”
“절대 안 되죠.”
무기에 비유하자면 까톡은 개발이 거의 다 된 핵폭탄이다. 이걸 순순히 남에게 넘겨주는 미친 놈이 세상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럼 까톡의 저작권이라도 팔아.”
“제 밥그릇 넘보지 마세요. 곡창도 가득 채우신 분이 대체 왜 제 밥그릇을 탐냅니까.”
“방송도 제대로 될 지 안 될지 모르는데 딴 짓거리 하는 게 꼴 보기 싫어서 그런다.”
구 회장의 말에 숟가락을 딱 놨다.
‘이 늙은이가 왜 이리 말을 빙빙 돌리나 했네.’
구 회장은 벌써부터 재환이 성장해서 KG 그룹을 위협이 될 것을 걱정했다.
이른 걱정이라 할 수도 있지만, 재환의 행동력을 보자면 결코 빠르지 않다 판단했다.
도리어 조금 늦은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구 회장님, 언제는 저보고 사업가 못 한다고 하시지 않았어요?”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네 놈이 걷다가 넘어질 가능성이 높은 게 그냥 내버려 둬야 된다는 건 아니지 않느냐. 넘어지기 쉬운 놈이라면 앞에 장애물을 깔면 그만이지.”
장애물.
대놓고 재환의 발을 걸겠다 선언했다.
구 회장의 으름장이라면 무서울 만 하지만 재환은 콧방귀를 뀌고 넘겼다.
“다음 세대에는 기본 메시지 어플 깔아서 도입하시려고요?”
“못 할 거 같냐?”
“헛돈 쓰실 걸요.”
다음 세대 스마트폰이 나오려면 못 해도 1년을 기다려야 한다.
그 사이 국내 스마트폰 사용자 뿐 아니라 해외 스마트폰 사용자들도 까톡을 이용하게 될 거다.
새로운 메시지 어플이 등장해도 혁신적 개발을 거친 까톡을 두고 그 쪽으로 넘어갈 사람은 적다.
“스마트폰 소프트웨어 쪽은 탐내지 마세요. 제 껍니다.”
획기적인 아이디어들이 있고, 그걸 구현해 낼 수 있는 팀원들이 있다.
이 부분은 굳이 KG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충분하다.
“기고만장하게 굴다가 넘어지는 거야.”
“그건 구 회장님 얘기죠?”
“물에 빠져도 입만 둥둥 뜰 놈.”
구 회장은 남은 국밥을 시원하게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경고했다. 차라리 돈이 필요하면 나한테 말해. 아이디어 비싸게 사줄 테니.”
절뚝거리며 나가는 구 회장을 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내 계획 들으면 저 영감 고혈압으로 쓰러지겠네.
“강재환 대표님.”
“네?”
아직 나가지 않고 있던 유서진이 재환을 내려다봤다.
그의 눈이 묘하게 어두웠다.
“저녁에 시간 괜찮으십니까? 잠깐 이야기를 나눴으면….”
“좋죠.”
유서진이 말을 다하기 전에 재환은 답했다.
어떤 이유건 지금 시기에 유서진과 가까워지는 건 이익이다.
KG의 정보를 빼기 위해서건, 거짓 정보를 흘려 내부를 흔들기 위해서건.
고개를 꾸벅 숙이고 나가는 유서진을 보고 재환은 묘한 확신이 들었다.
‘생각보다 빨리 일이 터지겠구나.’
재환은 고민하다가 메일함을 열었다.
그 중 저 뒤에 꼬라박혀 있는 이강철의 메일주소를 보고 휴대폰을 껐다.
“이 놈을 써먹긴 좀 그렇지.”
조금 더 판을 다듬자.
남은 국밥을 들이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또 일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