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rd-rate journalist becomes a tycoon RAW novel - Chapter 45
45화
김정연 검사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반년쯤 전, 강재환과 엮이고 검사 생활이 꼬이기 시작했다.
잡무는 잡무대로 늘어나고, 다른 동료 검사들의 싸늘하고 무시 섞인 눈초리를 받아야 했다. 기자에게 쫀 멍청한 검사란 딱지가 붙은 탓이다. 그 딱지로 인해 믿고 있던 검사장 라인 역시 그를 기피했다.
천대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기에 차라리 검사를 그만둘까 고민하던 중에 걸려온 강재환의 전화가 고까울 리 없다. 마음 같아선 그를 당장 잡아넣고 싶었지만 재환이 전해온 말은 그 생각을 싹 지워버렸다.
“KG 일가가 저지른 일이 더 있다는 게 무슨 말이죠?”
“말 그대로인데, 병역비리, 뇌물 수수, 불법 로비 같은 것들이 있죠.”
“……허.”
하나만 나와도 KG 기업 이미지가 흔들리는데, 재환이 말한 건 사실상 트리플 크라운이다. 증거가 명확하다면 구 회장이라 하더라도 빠져나갈 수 없다.
검사는 턱을 슬슬 쓸었다. 재환이 가진 정보는 상당히 고급 정보다. 특히 재환의 언론사가 집중 보도하고 있는 시점에서 추가적인 조사 결과를 내놓는다? 지금까지 잃어버린 명성을 전부 되찾고도 남는다.
하지만.
‘상대는 그 강재환이지.’
절대 만만히 봐서는 안 되는 인물이다. 이런 고급 정보를 공짜로 줄 리가 없다.
“뭘 원합니까.”
“음…, 딱히 없습니다.”
“그걸 믿겠습니까? 당신인데?”
여러 의미가 내포된 말이다. 재환은 그저 웃으며 답했다.
“뭐, 한 가지 걸리는 게 있다면 그걸 다 조사하고 법정에 구 회장 일가를 세우더라도 큰 주목은 못 받을 거에요.”
“지금 세간의 주목을 받는 게 구 회장 일가의 이야기 아닙니까. 그런데 주목을 못 받는다뇨?”
“언론사들이 손을 떼게끔 압박을 넣었어요. 그 틈에 구 회장은 두 아들이 빠져나갈 빌미를 만들 생각이고요.”
재벌가에서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일이다. 실제로 그 역시 한성의 성폭행 사건을 덮어버렸으니까.
구 회장 역시 그런 방식으로 넘어가려 했지만, 재환은 그걸 가만 두고 볼 수 없었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 비록 그 벌이 가진 자에게는 솜방망이 처벌이라고 할지라도 처벌을 받아야 한다. 스리슬쩍 빠져나가면 한국을 좀 먹는 쓰레기들은 영원히 살아 숨 쉬게 된다.
“그러니까 제대로 처벌해 주세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강재환 대표가 말해주는 정보들의 근거가 되는 자료들을 수집하고 그걸 증거물로 제출하는 것뿐입니다.”
“필요한 정보는 다 드릴게요. 그리고 일이 잘 풀리면 제가 검사님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죠.”
김정연은 손가락으로 탁자를 톡톡 두드렸다.
‘지원, 지원이라….’
돈을 준다던가, 명예를 주겠다는 것보다 더 현실적이고 최대한의 호의를 담은 제안이다. 재환의 정보력만 있으면 만년 부장자리를 벗어날 수 있다. 더 나아가서 변호사로서의 새 삶을 사는 것도 가능할 거고.
“좋습니다. 그 정보들을 토대로 구 회장 일가를 전부 잡아넣으면 되는 거죠?”
“형량을 최대로 넣어 주시면 좋겠네요.”
이 대화를 들었으면 구 회장이 지팡이 들고 재환을 잡으러 쫓아 올 지도 모를 일이니까, 오랫동안 푹 쉬도록 형량을 최대로 받는 게 좋다.
“그건 제 권한이 아니지만 노력해 보죠.”
재환은 김정연 부장 검사와 전화를 끊고 세워놓고 있던 계획의 한 부분을 살폈다. 재벌들을 상대함에 있어서 법은 멀고도 멀다. 특히나 그들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진 법들의 틈새에 손을 집어넣어 거들의 멱살을 잡는 건 재환 혼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썩 괜찮은 사람은 아니지만, 실적은 믿을만 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김정연 부장은 법조인으로서 이전의 구 회장과 같은 포지션이다. 갑과 을이 아닌 비즈니스 파트너로서의 관계.
KG에도 따로 로펌이 존재하지만 완전히 삼키기 전까진 그들이 언제든 딴 마음을 품을 수 있으니 2안은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재환은 사무실에서 할 일을 마치고 짐을 챙겼다. 이제 또 다른 딜을 하러 갈 때다.
저물어가는 해를 보며 재환은 눈가를 문질렀다. 하루가 유난히 길다.
예약해둔 룸식 카페에 들어가니 정장을 차려입은 남정네들이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주요 언론 3사의 대표는 인상을 쓰고 한 자리에 모였다. 더불어 지상파 3사의 이사들도 어떻게 정보를 구했는지 같이 앉아 있었다.
재환을 가장 먼저 알아본 건 매일 조선의 대표였다.
“아이구, 우리 강재환 대표 오셨네.”
매일 조선의 대표가 능글맞게 웃으며 말하니 모든 시선이 재환에게 집중됐다. 그들을 면면히 살핀 재환은 피식 웃었다.
“일단 앉으시죠. 얘기 나눌 사안이 한두 가지가 아닐 텐데요.”
“그러도록 하지.”
자연스럽게 재환은 상석에 앉았다. 어차피 지금부터 할 얘기의 주도권은 재환에게 있으니 누구도 그 부분에 토를 달지 않았다.
“이렇게 한 자리에 모신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이번 KG 일가가 벌인 성매매, 성폭력 사건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도 TBS랑 오늘의 신문 입장을 고려해서 전부 공개하라는 부당한 요구는 하지 않겠네. 하지만 우리도 언론사로서 최소한의 정보는 보도해야 할 의무가 있어.”
“의무라….”
그 의무를 지금까지 태만히 해왔지 않느냐.
이 말이 혀끝에서 맴돌았지만 함부로 뱉지 않았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들 역시 알고있는 부분이니까.
“좋습니다. 정보 대부분은 공개 하도록 하겠습니다. 대신 공짜는 안됩니다.”
공짜는 안 된다는 말에 그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대가를 지불하는 게 당연한 것임에도, 가능하다면 꽁으로 정보를 낼름 먹고싶어 했던 것이다.
“뭘 원하나.”
“KG 그룹의 비리와 관련된 정보 일체 입니다.”
다들 모른 척 해도 하나씩 조커 패 하나는 쥐고 있다. 재환은 그걸 까보라고 하는 거다.
세 방송사의 이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자신들이 쥐고 있는 정보는 재환도 알고 있을 거란 판단 하에 내린 행동이었다. 더불어 재환에게 뜯긴 것도 많으니 잘못 보여서 좋을 게 없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반면 신문사들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합당한 대가로 그런 정보를 공유하기엔 조금 그렇고, 현물이 낫지 않을까 싶은데? 우리가 정보원에게 제공하는 정도의 간단한 식사면 어떤가.”
“그 말에 나도 동의하네.”
재환은 팔짱을 끼고 그들의 언행을 가만 지켜봤다. 저렇게 아니꼽게 나오는 이유는 하나다. 재환의 성장세가 마음에 안 드는데 그들로서는 딱히 막을 방법이 없으니 갑인 척을 해보는 거다.
누가 진짜 갑인지도 모르고.
“그럼 말죠 뭐. 세 방송사와만 정보를 교류하겠습니다.”
“어허, 잠깐. 그건 아니지.”
“뭐가 아닙니까. 딱 맞는 거 같은데요.”
“이건 차별이지. 공평정대 모르나?”
“그건 법정에 가서 찾으시고요. 저희가 같은 선상에 있는 것도 아닌데요.”
재환의 말에 신문사들은 더 할 말이 없었다. 말 그대로 그들이 정보의 질적인 면이나 양적인 면이나 뒤처지고 있는 건 사실이니까.
그럼에도 그들이 가지고 있는 최대 신문사라는 자부심이 그들의 목을 빳빳하게 만들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오늘의 신문이 큰 데에는 우리의 공도 좀 있지 않나?”
“……네?”
살다 살다 별 말을 다 듣는다. 재환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중앙 신문의 대표를 바라봤다.
그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고 거만하게 말을 이었다.
“그렇지 않나? 우리라고 배우 장미래씨 사건을 모르고 있었겠나? 다 알면서도 적당한 타이밍을 보고 있었는데, 오늘의 신문에서 먼저 터트린 거지. 우리가 뒤 이어서 기사낸 거 보면 모르나?”
“제 기사를 짜깁기한 기사를 말하는 건가요? 그 기사들 죄다 저작권 침해 걸 수 있는 거 아세요?”
“기사에 저작권이 어딨어!”
“법을 이렇게 모르시는데 어떻게 그 자리까지 올라가셨을까.”
재환은 한껏 비아냥대다가 일어났다. 좋게 좋게 가려고 했는데, 상대가 이렇게 나오면 자신도 좋게 나갈 수 없다. 지금 허리 굽혀야 할 건 자신이 아니니까.
“독점 기사 나가는 거 보고 손가락이나 빨고 계세요.”
“자, 잠깐 강재환 대표! 우리하고는 정보 교환하세!”
“나중에 따로 연락드리죠.”
판을 바로 엎어버린 재환은 바로 카페를 나왔다. 잡을 새도 없이 떠나버린 재환을 보고 세 신문사 대표는 말문이 막혔다. 반면 이사진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떠나긴 했지만 따로 연락을 준다는 건 정보를 준다는 거 아닌가.
대표들은 눈치를 보다가 태세를 바꿔 슬슬 방송국 이사들에게 붙었다.
“좋은 소식은 같이 나눠야 하는 법 아니겠습니까? 강재환 대표처럼 정보를 독식해서야 쓰겠습니까.”
“다음번에 특종 잡아오면 나눠 드리겠습니다. 이번 꺼 같이 쓰시죠.”
이사들은 그들의 태도를 보고 혀를 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 오브 갑이 없어진 지금, 갑은 자신들이다.
재환은 그 길로 가까운 곳의 바로 향했다. 안으로 들어가니 최연호 전무가 홀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능청스레 그 옆에 앉아서 최연호가 시킨 것과 같은 걸로 주문했다.
눈이 살짝 풀린 최연호는 재환을 보고 피식 웃었다.
“이야, 이거 강재환 대표님 아니십니까.”
“최연호 이사님, 오랜만이죠?”
보드카를 스트레이트로 입에 털어넣은 재환은 쓰게 웃으며 물었다.
“생각, 아직 안 끝나셨습니까?”
“……참 가만 보면 강재환 대표님 대단하세요.”
“뭐가요?”
“혼자서 KG 그룹을 무너트렸잖아요. 혼자서.”
“혼자 힘은 아닙니다. 다른 분들이 많이 도와주셨죠.”
유서진의 도움이 컸다. 그가 적극적으로 돕겠다는 의사를 안 보였다면 일이 많이 꼬이고 피곤하게 흘러갔을 거다.
물론 최연호에게는 유서진을 끌어들인 것 마저 재환의 능력으로 보일 뿐이다.
“전 연을 끊었다지만 아버지 기업을 팔아먹고도 고작 이사입니다. 힘도 없어요. 그냥…… 찌꺼기죠.”
“허허, 최연호씨가 찌꺼기면 세상 천지에 숨도 쉬지 말아야 할 먼지만도 못한 사람이 흘러 넘칠걸요?”
먼지가 차라리 좋아 보일 정도다. 숨 쉬는 것만으로도 독을 흩뿌리는 사람들이 흘러 넘치는 세상이니까.
재환은 자존심이 바닥을 기는 최연호를 보며 술잔을 다시 채웠다.
“그래서, 그만둘 겁니까?”
“……모르겠습니다. 그럴 자신도 없는 머저리죠.”
“차라리 저랑 같이 가시죠. 제가 유통 라인은 전부 최연호 이사님, 아니 사장님께 맡기겠습니다.”
재환의 말에 최연호의 흐리멍덩한 눈에 생기가 돌아왔다.
아직 술에 취해있지만 머리는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어째서… 접니까?”
“구준열 사장이랑 구준표 사장 잡혀 가고 나면 그 자리 비지 않습니까. 공란으로 둘 수도 없는 노릇인데, 이왕이면 믿을만한 사람에게 맡기는 게 가장 좋잖아요.”
“……그래서 저입니까?”
“네.”
재환은 이걸로 시험해 볼 생각이다. 과연 최연호가 자신을 도와 카르텔을 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가, 아닌가.
“싫으시다면 다른 분을 알아보겠습니다.”
“……하아. 제가 욕심이 없다고 해도 탐나는 제안이네요.”
“그렇죠?”
사장 자리를 준다는 데 마다하면 바보가 아닐까. 물론 조건을 알아보지도 않고 하겠다고 하면 그건 바보가 맞다.
“제가 뭘 해드리면 되겠습니까?”
그리고 최연호는 그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
재환은 부드럽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나중에 제 힘이 되어 주시면 됩니다. 큰 일을 벌일 때가 되면요.”
“이 일보다 큰 일 입니까?”
“그럼요. 어쩌면 한국의 역사를 새로 쓰게 될 텐데요.”
재환의 허풍과 같은 말에 최연호는 헛웃음을 지었지만, 지난번이나 지금이나 재환이라면 진짜로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남은 술잔을 비우고 재환의 손을 맞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