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rd-rate journalist becomes a tycoon RAW novel - Chapter 44
44화
재환은 유서진을 내려다주고 방송국으로 향했다.
“그럼 오늘은 못 들어와?”
“그렇게 될 거 같아.”
“어떻게, 저녁이라도 좀 싸갈까?”
“아냐, 방송국에는 잠깐 들어갔다가 또 나가볼 거야.”
“그래. 밥 잘 챙겨먹고.”
예희의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재환은 웃으며 꼬박꼬박 답했다.
전화를 끊기 전 소율이가 예희의 휴대폰을 뺏었다.
“아빠, 이번 주말에 놀이공원 가는 거지?”
“그럼, 소율이하고 한 약속인데 가야지.”
“약속이야!”
올라가는 입꼬리를 만지며 재환은 전화를 끊었다.
KG를 먹어치우는 일만큼이나 가족과의 하루를 보내는 것 역시 중요한 일이다.
방송국에 도착한 재환은 곧바로 자신이 없을 때 나온 뉴스들을 전부 체크했다.
혹여나 잘못된 정보가 전달되지는 않는가, 정보를 취득하는 과정에서 잡음이 발생하지는 않았는가 하나하나 꼼꼼히 체크했다.
신문사 쪽은 한결에게 일임했기에 신경쓰지 않지만 아직 보도 쪽은 100퍼센트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빨리 믿을 만한 사람을 넣어둬야 하는데.’
“이 부분은 말 나올 수 있으니까 조심해서 보도 지시하고, 여긴 아예 정보를 잘못 전달했어요. 정정보도해요.”
“알겠습니다.”
보도국장은 재환의 지시를 전부 받아적고 되물었다.
“KG 건은 계속 대표님이 보도하실 건가요?”
“구 회장이 재판장 들어갈 때 한 번 더 할 거에요. 그 전까진 가만히 있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매일 한 꼭지 이상은 KG 일가 건을 보도해주세요. 화제성이 사라지지 않게끔요.”
“이어서 뭘 터트리시려고요?”
“있어요. 그런 거.”
재환은 정보를 공개하지 않자 보도국장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더 캐묻지는 않았다.
TBS의 대표인 강재환이 정보를 얻는 과정이 비밀스럽다는 건 모두가 아는 바니까.
또 어디서 큰 건을 물어왔겠거니 하고 받아들이는 게 편하다. 강재환이 미쳤다고 말도 안 되는 찌라시를 써올 것도 아니니까.
“반응은 어때요?”
“난리 났죠. 지금 대표님 팬클럽도 만들어졌는데 아세요?”
“……농담이죠?”
“농담같죠?”
보도국장이 인터넷을 검색하려는 걸 재환은 말렸다. 옹호해주는 것 자체가 자신의 힘이지만 직접 보긴 아직 부끄럽다. 괜히 헛기침을 한 번 하고, 다음 논제를 꺼냈다.
“혹시 한성이나 다른 기업들이 움직이진 않았나요?”
“별 반응은 없는데요. 기자들에게 조사해보라 할까요?”
“아니에요. 입소문 타기 시작하면 알려주세요.”
재환은 거기까지 말하고 보도국장의 사무실을 나왔다. 목을 주무르며 대표 사무실로 올라가니 난처한 표정의 비서가 보였다.
“저, 대표님.”
“말씀하세요.”
“구 회장님이 계속 연락 하셨습니다…. 언제든 좋으니 오시면 연락 달라고….”
검찰에 송치된 사람이 바깥과 이렇게 연락을 자유롭게 할 수 있던가? 비서는 난처한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한 말이었지만 그게 되레 자신을 더 괴롭게 하리란 걸 알지 못했다.
재환은 비서를 싸늘하게 보고 손을 까딱했다. 직통으로 연결된 휴대폰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한 행동이었는데, 정확했다.
“다른 신문사는 연락 없었어요? 방송사는요.”
“K사와 M사에서 한 번 만나뵜으면 한다고 하고, 조선과 중앙 신문사에서도 연락 왔었습니다.”
검찰 조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면 될 텐데 그걸 못 기다리는 모양이다. 재환은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구 회장과 연결된 휴대폰을 받았다. 투박한 대포폰이 지금 구 회장의 실정을 잘 보여주는 듯 했다.
신호음이 몇 번 가지 않아 금방 전화가 연결됐다.
“구 회장님.”
“머저리 같은 놈. 등신같은 새끼!”
“지금 저한테 욕하셔도 되나 모르겠네요.”
재환은 사무실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비서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을 걸어잠그고, 소리가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문틈에 종이를 쑤셔넣었다.
“지금 구 회장님의 두 아들, 위험하지 않나요?”
몇 개월 전 있었던 장미래의 사건으로 사회에서는 성매매, 성폭력에 관해서 더욱 날을 세우고 있다. 특히 경찰청장과 검찰청장이 직접 관련 건이 터질 경우 엄중히 처벌하겠다고 선언한 상황. 카르텔에 속하지도 않는 KG가 단두대의 칼날을 피해갈 수 있을리 만무하다.
“……니가 이러고도 그 자리에 계속 있을 수 있을 거 같아? 누구 덕으로 그 자리까지 올라갔는데!”
“그게 문제에요, 구 회장님. 제가 왜 이런 짓을 했을까 궁금하지 않으세요?”
재환은 사무실을 돌아다니며 녹음기와 몰래카메라가 설치된 곳을 뒤졌다. 은밀히 설치된 기기들을 하나 둘 끄집어내니 제법 쌓였다.
“구 회장님, 저흰 분명 사업 파트너였죠. 제가 정보를 드리고 회장님은 그에 합당한 대가를 주는 파트너요.”
“하, 파트너?”
“아니었나요? 제가 드린 정보들은 충분한 가치를 담고 있었는데요. KG가 망할 뻔한 거 몇 번을 살려드렸습니까, 제가. 스마트폰으로 나아갈 길도 닦아드렸고요. 근데 어느 순간부터 절 KG 사원처럼 대하시더라고요. 그건 아니죠.”
재환은 모아둔 카메라를 쓸어서 쓰레기통에 전부 집어넣었다. 이걸 경찰에 넘겨서 구 회장을 한 번 더 흔들까 싶지만, 이 정도는 밑에 몇 명 잘리는 선에서 끝난다.
구 회장이 나가리되고 KG를 차지하면 그들도 내 사람인데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 차라리 여기서 아량을 보이는 게 그들의 인심을 얻는데 도움이 된다.
“그래서 절 잡아드시려고 하시길래, 제가 먼저 쳤어요. 당하기 전에 친다. 이게 사업의 기본이죠?”
“하….”
“사업가의 기질이 없다 하셨는데 제가 또 제법 잘 배우거든요.”
재환의 능글맞은 목소리에 구 회장은 화병이 도질 것 같았다. 끓는 속을 냉수로 달래고 목소리를 착 깔았다.
“그래서 날 치겠다고? 니까짓게?”
“왜, 못할 거 같으세요? 당장 이 전화 내용만 밖으로 새어나가도 검찰 쪽에서 곤란해 할 사람이 많을 텐데요.”
구 회장과 엮여서 옷 벗고 싶냐는 경고를 받으면 그들도 어쩔 수 없이 철저히 구 회장을 파내야 한다. 살아남지 못한다.
뒷목을 잡고 쓰러지기 직전까지 간 구 회장은 휴대폰을 꽉 쥐었다. 이 휴대폰이 마치 재환의 멱살이라도 되는 것처럼.
“좋아, 이렇게 해. 두 아들의 혐의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을 돌려. 그러면 내가 합당한 대가를 주지.”
“합당한 대가라… 구 회장님이 저에게 뭘 줄 수 있죠?”
의자에 드러눕듯 삐딱하게 앉은 재환이 코웃음쳤다.
“회장님, 그거 아세요? 오늘 임원진 회의가 있었어요. 대형사건이 터졌으니 당연한 건데, 거기서 꽤 재미난 결론이 났거든요?”
구 회장은 내용을 안 듣고도 알아차렸다.
자신의 실각, 더불어 두 아들의 해임.
구 회장은 자신의 실책을 인정해야 했다. 강재환을 처음 봤을 때부터 목줄을 제대로 채워야 했다. 아니면 일어서지 못하도록 다리를 박살내놓던가.
“그래서 구 회장님, 제가 다시 물을게요. 구 회장님이 저에게 뭘 해주실 수 있죠?”
“하….”
침묵만이 이어지는 가운데 재환은 서류 파일 하나를 꺼내 쭉 늘어놨다. KG가 검경에 먹인 돈의 흐름이 쭉 그려진 파일을 꺼내서 사무실에 있는 화이트보드에 붙였다.
사무실을 감시하는 눈도 없으니 이제 좀 맘 편히 작업을 할 수 있다.
“내가 가진 KG의 지분을 주지.”
그 말을 들은 재환의 손이 딱 멈췄다. 구 회장의 말은 파격적이었다. 어차피 가만있어도 잃는 게 KG 그룹이다. 그럴 바에야 이걸 이용해서 조그마한 이득이라도 더 얻어내는 게 옳았다.
“어차피 네놈이 KG를 먹으려고 해도 다른 놈들 회유하고 지분 뺏고 해야 할 텐데 외부에서 가만 있겠어? 그러니까 내가 지분을 전부 넘기면 그 시간을 확 줄일 수 있지.”
“흐음….”
상당히 매력적인 미끼다. 다른 건 몰라도 법적인 부분에서 시간 소모가 클 거고 그 과정에서 피로도 상당히 쌓인다. 더불어 카르텔에서 움직인다면 법적 공방은 재환에게 불리하게 굴러갈 여지가 크다.
그에 대한 대비책을 여럿 준비해뒀지만, 원래 가장 좋은 건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얻는 승리라 했다.
“구 회장님, 제가 법의 판결을 바꿀 수는 없어요. 아시죠?”
“안다. 고작 기자 놈이 그런 것까지 할 수는 없지. 하지만 사람들의 이목을 멀리 떨어뜨리는 건 가능할 거 아니냐.”
“그건 가능하죠.”
더 자극적인 것들로 사람들의 눈을 가리면 된다. 재환의 수첩에는 수많은 폭탄이 잠들어 있으니까.
구 회장은 그 사이에 돈을 풀어서 두 아들의 판결을 유리하게 이끌 셈이다. 가진 재산을 꽤 많이 써야겠지만 가능은 하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일치했지만 재환은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않았다.
“그거 제가 리스크가 좀 클 거 같은데요.”
“무슨 리스크!”
“전에도 말했지만 알면서도 보도하지 않는 것도 저한테는 치명적이에요. 일부러 눈감아 드리는 것조차 저한테는 꽤 부담스런 일이라는 거죠.”
재환의 말에 구 회장은 마른세수를 했다. 건강을 위해서 끊었던 담배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당장 녀석의 머리통을 깨버리고 싶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지금 자신은 을, 재환은 갑이다.
“뭘 더 원한다는 거야.”
“이 일로 복수할 생각하지 마세요. 제 다리 붙잡고 늘어지지 말라는 거죠.”
앞서 건 조건에 비하면 별거 아닌 조건이긴 하다. 하지만 굴욕적이었다. 이 분노를 돌려주지 못하고 그저 억누른 채 살아야 한다는 말이니.
“아시겠으면 이대로 계획 진행하고요. 어쩌시겠어요?”
“……좋아.”
“그럼 지분 넘기는 건 이번 주 내로 처리해 주세요. 받는 순간부터 TBS와 오늘의 신문은 KG 가문과 관련된 기사를 일절 내보내지 않겠습니다. 그럼 끊습니다.”
재환은 할 말을 다 하고 상대에게 여지를 주지 않기 위해 곧바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휴대폰을 꺾어서 분질러버린 뒤 몰래 카메라와 녹음기를 버린 쓰레기통에 쑤셔 넣었다.
사무실을 나서니 비서가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재환의 손에 들린 쓰레기통을 보고 뻣뻣하게 굳었다. 부러진 휴대폰보다 쓰레기통에 가득 쌓인 카메라와 녹음기가 그의 시선을 잡아챘다. 재환은 쓰레기통을 내려놓고 무심히 말했다.
“이거 가져다버려요. 아, 휴대폰 부순 건 미안하니까 공금으로 처리해 드릴게요. 퇴직금에 포함해 드리면 되겠죠?”
해고 통보는 불합리했지만 그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당장 재환이 산업 스파이로 신고하면 그는 변호할 여지도 없이 깜빵 행이다. 조용히 잘라준다는 것에 감사해야 할 형편이다.
“다른 신문사들 연락처 주고 퇴근해요.”
“알……겠습니다.”
비서의 우울함은 무시하고 재환은 사무실에 들어갔다.
다른 신문사의 편집장, 이사진들과 만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재환은 연락처를 쭉 뒤져서 하나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네, 검사님 요즘 바쁘시죠?”
“……강재환 대표?”
“맞습니다. 잠시 얘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KG 일가에 관한 정보는 못 드립니다.”
“그건 필요 없어요. 오히려 제가 정보를 드릴 수 있을 거니까요. 다른 게 아니라.”
재환은 창밖을 보며 차분히 말했다.
“KG 일가가 저지른 일은 지금 그게 다가 아니거든요.”
재환은 보도를 하지 않겠다고 했지 KG 일가를 그냥 두겠다는 약속은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