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rd-rate journalist becomes a tycoon RAW novel - Chapter 83
83화
아마 정치인들만큼 선행에 생색을 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선행은 민심을 자신의 것으로 유도하고 그건 곧 표로 이어지니까.
“아유, 어머니. 오늘도 일 많으시네요. 제가 좀 도와드릴게요.”
재환은 예희와 시장의 장을 보다가 멀끔하게 차려 입은 한 무리를 볼 수 있었다. 그들은 팔을 걷어 부치며 쌀을 옮기는 아주머니 옆에 딱 붙었다. 얼핏 보면 맘씨 좋은 청년들이 일을 도와주려는 것 같지만 실상은 조금 달랐다.
“한국당 사람들이네.”
아이스크림을 쭉 빨면서 지켜보고 있으니 예희가 슬쩍 물었다.
“저 사람들 요즘 이 근처에서 자주 보이더라.”
“요즘 한국당 이미지가 많이 무너지긴 했지.”
재환이 일전에 보도했던 기사에서 은근히 한국당이 연관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을 자주 했었기에 일어난 현상이다. 그래도 워낙 지지층이 튼튼해서 다음 대선에서도 한국당이 여당이 되리란 의견이 다수였다.
그들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으니 시선을 느낀 몇 명이 재환을 알아챈 몇 명이 흠칫했다.
도둑이 제 발 저리는 모습이라 재환은 코웃음을 쳤다.
“아빠! 나 아이스크림 하나 더 사먹을래요!”
“엄마 허락 받으면.”
“엄마가 아빠 허락 받으랬는데.”
“그래?”
슬쩍 소율이를 보니 절대 안 된다는 말이 눈으로 날아왔다. 가정의 평화와 아이의 애정을 저울질한 재환은 소율이에게 웃어보였다.
“아쉽지만 다음에 먹자. 좀 있으면 저녁 먹어야 되니까.”
결코 예희가 긁을 바가지가 두려워 그런 것이 아니다. 이게 전부 가정의 평화를 위해….
“혹시 KG 그룹의 회장님 아니십니까?”
단란한 한 때를 보내고 있는데 불청객이 다가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멀끔한 인상의 청년이 서 있었다. 많아 봐야 30으로 보이는 그는 착용하고 있던 장갑을 벗고 재환에게 악수를 청했다.
“반갑습니다. 한국당에 소속된 당원인 박민혁이라고 합니다. 대기업 회장님을 뵙는 건 처음이라 긴장되네요.”
재환은 박민혁의 얼굴과 손을 번갈아 보다가 마주 손을 잡았다. 사람 좋은 미소를 짓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당원이시면 한참 열심히 하실 때네요.”
“그래야 하는데 일을 하면 할수록 제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알아 가고 있습니다.”
“많이 아셔야죠.”
재환의 혀에 찔린 박민혁의 눈가가 꿈틀했다. 다양한 방향으로 해석 가능한 말이지만 재환이 한 뜻이 뭔지 대충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다시 좋은 사람 미소를 만들어낸 박민혁은 재환에게 말했다.
“그럼요. 아직 국내에는 소외받는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밑에서 그분들의 뜻을 이해하고 같이 하는 게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국민의 뜻을 대변하는 국회의원은 더더욱 그렇죠.”
둘 사이의 묘한 신경전이 이어지자 장을 보던 예희가 재환의 팔을 잡아끌었다.
“소율이 보니까 적당히 해요.”
“내가 뭐. 난 덕담만 나눴을 뿐이야.”
“알았으니까 이만 가요. 그럼 수고하세요.”
예희는 재환과 함께 자리를 피했다. 뒤통수로 따가운 눈총이 날아들었기에 똑같이 노려봐주려 했지만 예희가 말렸다.
“사람 보는 눈 많아. 괜히 구설수에 오르는 것보다 그냥 가는 게 나아.”
“내가 도망치는 것처럼 보이니까 그렇지.”
“아무도 그렇게 생각 안 해. 근데 왜 당신 다짜고짜 싸움을 건거야?”
예희의 질문에 재환은 어떻게 답을 해야 할까 고민했다. 저 놈이 도저히 상종 못할 쓰레기라서 그랬다고 말해줘야 할까.
“내가 한국당 별로 안 좋아하는 거 알잖아. 나라 이름 가져다 만든 정당이면서 일은 더럽게 못해요. 그게 다인 것도 아니지. 내놓는 정책도 다 구닥다리에다가 지들한테 안 좋은 건 쏙 빼잖아. 정이 안 가.”
“그래도 너무 싸우려들지 마. 정치인들하고 엮여서 좋을 거 없다고 당신이 그랬잖아.”
언제적인가 재환이 했던 말이다. 자신이 한 말에 당하니 기분이 묘했지만 이 얘기를 더 길게 하고 싶지 않았기에 입을 다물었다.
“근데 좀 알아봐야겠네.”
“뭘?”
“왜 이 근방에 눈도장 찍고 다니는지 말야.”
저 놈들은 사람을 진짜 사람으로 보질 않는다. 투표 종이 정도로만 보지. 그러니 여기에 온 건 표를 얻을 모종의 이유가 있기 때문이란 얘기가 된다.
그 모종의 이유가 뭔가.
재환은 묘하게 구린 냄새가 나는 걸 느꼈다.
다음 날 재환은 정보 분석팀으로부터 현재 있는 봉사단체의 실태에 관한 자료를 받아볼 수 있었다.
절반은 구색만 갖춘 봉사단체였고, 나머지 절반은 속까지 썩어 빠진 봉사단체였다. 진짜 의미로 봉사를 행하는 단체는 고작 수십 개에 불과했다. 그리고 거기에 포함된 국회의원이나 당원은 없다시피 했다.
“나라 꼴 잘 돌아가는구만.”
“네가 대기업 회장이란 시점에서 이미 그랬지.”
구태여 회장실까지 찾아온 한결이 재환을 비아냥대니 재환이 그를 노려봐줬다. 한결은 일부러 앞에 놓인 서류를 들춰보며 물었다.
“이거 기사화 할 거지?”
“해야지. 근데 지금은 말고. 조금 있다가 하자. 빠져나갈 구멍을 완전히 닫아두고 하는 게 좋겠어.”
“재환아, 그런 건 없다. 그 놈들이 괜히 정치인인줄 아냐. 여론 몰이 하나는 타고난 인간들인데 무슨 수로 완벽하게 잡아넣을 건데.”
“그 사람들의 봉사 현장을 덮치면 어떨까?”
한결은 실현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하면서도 재환의 말을 차분히 들었다. 반박할 부분은 반박하면서 조사의 방향성을 결정해 나갔다.
한결과 잡담같은 회의를 진행하는 중 서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 서진씨. 오랜만.”
“오랜만입니다. 지부장님, 다치신 데는 괜찮으십니까?”
“언제적 얘길 하는 거야. 이미 다 나았지.”
호쾌하게 웃는 한결을 보고 서진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인 뒤 재환에게 다가왔다.
“한성 전자에서 특허권을 낸 이유는 회장님 예상대로였습니다. 곧바로 해외팀에 연락해서 소송 준비에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큰 피해를 볼 뻔 했습니다.”
“고글의 브란에게도 연락해놨으니 소송은 저희가 무조건 이길 겁니다.”
한성이 우리에게 엿을 먹이려고 짠 계획의 전말은 다음과 같았다.
자기네 스마트폰 특허를 제출한 뒤 의도적으로 파인애플 사와의 특허 소송에서 패소한다. 패소하게 되면 상당한 금액의 보상금을 뱉어내야겠지만 그러더라도 파인애플 사가 스마트폰 소송에서 이겼다는 판례가 남게 된다.
고글이고 KG고 제대로 엿을 먹고, 파인애플 사의 독주가 시작되는 것이다.
‘미리 알아챈 덕에 위기를 기회로 바꿨다.’
이번 소송에서 승소할 가능성은 100퍼센트. 승소한 재판은 이후 파인애플 사와의 특허권 분쟁에서 강력한 무기가 될게 분명했다.
“그 소송 끝나면 파인애플 사와의 소송 준비 하세요.”
“너무 빠른 거 아닙니까? 사실 전 파인애플 사와 싸워야 할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서진의 걱정은 당연했다.
특허 소송은 되도록이면 일어나지 않는 편이 좋다. 누가 먼저고, 누가 베꼈냐는 문제는 민감한 사항이고, 소송에서 한 번이라도 패소할 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게 된다.
그리고 기업의 규모로만 봤을 때, 파인애플사의 규모가 더 크다. 해외의 인지도도 말할 것 없으니 패소할 확률도 컸다. 아무리 재환이라도 이번 소송에서 이길 확률은 적은 것이다.
‘하지만 특허권 분쟁은 언젠가 발생할 일이야.’
파인애플사의 CEO인 스티븐스는 완벽주의자니 KG 그룹의 스마트폰 사업이 커지는 걸 원치 않을 것이다. 그러니 분쟁을 피해갈 수는 없다. 그리고 일어날 일이라면 먼저 움직이는 게 이득이다.
“파인애플사보다 먼저 움직여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서진이 다시 지시 사항을 전달하러 나가는 걸 본 한결이 고개를 내저었다.
“넌 비서실장님 좀 적당히 굴려야 되는 거 아니냐? 가끔 보면 저 분 쉬시긴 하는지 모르겠어.”
“그래도 쉬는 시간이랑 연휴는 꼬박꼬박 챙겨줘. 야근도 많이 줄이고 있는데. 일이 워낙 많아서 그렇지.”
재환이 전자나 건설, 화학으로 직접 지시를 내리기도 하지만 보통 서진을 거쳐서 지시를 내린다. 지금은 큰 그림을 그리기도 바쁘고, 실무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는 것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어중간하게 아는 재환이 나서는 것보다, 뒤에서 전생의 지식을 기반으로 적당히 방향을 잡아주는 게 더 자신에게 맞았다. 아마 모든 면을 컨트롤 하려 했으면 KG 그룹은 금방 삐걱댔을 것이다.
“회장도 그냥 하는 거 아니네.”
“내 말이. 좀 놀고먹고 할 수 있을 줄 알았더니.”
확실히 먹는 것이나 입는 것의 때깔이 좋아지긴 했다. 근데 하는 일은 옛날하고 변한 것 같지가 않다.
“대기업 회장님이면 다른 회장님들하고 만찬도 가지고, 정부 인사들이랑 은밀히 만나서 밀담 나누고 하지 않냐?”
“그러기엔….”
전생에서 워낙 많이 당했다. 믿을 만한 정보라고 해서 받았더니 팩트 체크도 안 된 찌라시인 경우가 있었고, 커버 쳐준다고 기사 쓰라 했으면서 막상 기사가 나가니 입 싹 닫았던 사람들이 많았다.
인간 불신에 안 걸린 게 용했다.
이 이유 말고도 우리나라가 많이 썩어서 손잡을 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도 이유다.
깨끗하고 정말로 시민들을 생각해서 정책을 내는 분들도 있다. 그 분들까지 일반화해서 까내릴 마음은 없지만 절대 다수가 썩어 빠졌다. 그놈들과 같이 가까이 가면 코가 썩어 삐뚤어질 게 분명하다.
재환의 묘한 표정을 읽은 한결이 피식 웃었다.
“아님 믿을만한 의원 몇 명하고 라도 친해지면 안 되냐? 넌 내가 보기엔 적을 너무 많이 만들어. 전에도 했던 말이지만 친구로 만들지 않을 지언정 적을 만들진 마라. 적이 늘어나면 세상 너무 피곤해져.”
하지만 한결의 의견은 나름 일 리가 있었다.
‘믿을 만한 의원이라….’
한 명 정도 있긴 한데 그 사람은 아직 의원이 아니다. 도움을 받기는커녕 재환이 도움을 줘야 할 처지인 셈이다. 거기에 생각이 닿으니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먼저 발견해서 내 사람으로 만들면 되잖아?’
지금까지 있는 사람을 재끼거나 내 편으로 만들면 된다고 여겼다. 밑에서 올라가는 입장이었기에 생각이 그 틀 안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생각을 뒤집으니 활로가 열렸다.
재환은 서진에게 연락해서 곧바로 사람을 찾아달라 일렀다.
“이춘식이란 사람입니다. 시민단체에서 활동하고 있을 건데 어떻게 지내는 지 한 번 알아봐주세요.”
“아는 분입니까?”
“네.”
재환의 말에 서진은 알아보겠다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앞에 앉아있던 한결은 그런 재환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비서실장님 적당히 부려먹으라고 말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부려먹냐.”
“아, 잔소리 할 거면 가! 오늘 왜 갑자기 쳐들어와서 난리야.”
자연스럽게 회장실에 들어와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한결은 온 의도를 아직까지 말하지 않았다. 분명 오늘의 신문 일도 많을 텐데 이건 직무 유기로 봐야 하지 않을까.
재환이 아픈 곳을 찌르자 한결이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답했다.
“신문사 꼬라지가 말이 아니라서.”
“그게 뭔 소리야.”
“최근에 우리 신문 기사 보긴 했냐?”
재환은 고개를 저었다. 그야 오늘의 신문 일은 한결에게 전부 넘겨놨으니 알 턱이 없다.
“자세히 말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