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rd-rate journalist becomes a tycoon RAW novel - Chapter 86
86화
재환은 어두운 회장실에 남아 한결이 남긴 말을 곰곰이 생각해봤다.
“서진씨가 자신의 상황을 말해주는 게 베스트지만 그게 힘든 상황이란 거 아냐. 아니면 너에게 말하기 싫다거나. 속사정을 모르니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순 없지만 확실한 건 이대로 서진씨에게 맡기고 있으면 넌 끽이지. 너 대부분의 일을 서진씨 통해서 처리하잖아.”
그 말대로다. 재환은 서진을 신뢰하기에 대부분의 일을 서진을 통해 처리했다. 제법 은밀한 일까지 서진에게 맡기기도 했다.
“근데 그 정보들이 모조리 카르텔에게 흘러들어가는 꼴이 됐지. 이건 꽤 위험한 상황이야. 근데 역으로 보면 상당히 좋은 상황 아니냐?”
“뭘 어떻게 봐야 그런 결론이 나와.”
“너가 원하는 정보를 흘릴 수가 있잖아.”
한결의 말에 재환은 눈이 트였다.
“일부러 잘못된 정보를 흘려라?”
“감이 오냐?”
“고마워, 선배.”
“말만 선배라 하지 말고 그만한 존경을 보여라, 좀.”
한결이 타박하자 재환은 쓰게 웃었다.
‘어떤 미끼를 던지느냐.’
이왕 던질 거 탐스러운 미끼를 던져야 했다. 저들이 신나서 날 물어뜯을 수 있는 미끼를.
재환은 대략적인 판의 설계를 마쳤지만 마지막 한 가지 문제가 남았다.
“유서진을 어떻게 하지.”
한 번 배신한 사람이 두 번 배신 못하리란 보장은 없다. 협박당해서라 하지만 그는 완벽하게 자신을 속이고 있었으니까.
이 점에 대해서는 그냥 넘어갈 수 없다.
‘문제는 서진씨를 대체할 인력이 없단 거지.’
이게 참 골때리는 문제다.
사방이 적으로 가득한 와중에 새로운 인력을 뽑으면 그들이 적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비서실장이란 직책없이 일하는 건 내 수명을 갉아 먹는 일이 될게 뻔하다.
실력없는 사람을 뽑으면 오히려 일을 망칠 수도 있다.
이러든 저러든 서진을 대체할 만한 인력이 마땅히 없는 셈이다.
“골치 아프네.”
그냥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안 쓸 수도 없다.
계륵이란 게 딱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이 아닐까 싶다.
고민하다가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싫은 방법이긴 하지만 어쩔 수 없겠지.”
다음 날 재환은 서진에게 한 가지 지시를 내렸다.
“내일 중에 TBS에서 봉사단체의 진실이란 타이틀로 기사가 나갈 거에요. 알고 계시겠지만 그 타이밍에 맞춰서 신문사들에 보도자료 뿌려주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최연호 사장 좀 불러주시겠어요? 따로 시킬 일이 있거든요.”
서진은 그 말에서 묘한 느낌을 받았지만 알겠다고 답한 뒤 물러났다.
호출을 받고 온 최연호는 재환의 표정에서 묘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대성 기업을 박살내기 위해 자신을 불렀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절 부르신 이유가 뭔지 알 수 있겠습니까?”
재환은 잠시 뜸을 들이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일을 하나 맡기려는데, 내일 TBS에서 기사가 하나 나갈 겁니다.”
기사란 말에 최연호의 의문은 더 깊어졌다. 그런 일은 자신이 아닌 서진이나 한결에게 시키곤 했으니까.
“그 기사가 나가면 아마 반박기사와 자료가 모든 신문사에서 나갈 겁니다. 저희가 돌린 자료는 안 나갈 거고요.”
“네? 어째서….”
“자료가 안 뿌려질 거니까요.”
그 말에 최연호는 이 묘한 느낌이 단순히 자신의 착각이 아니었음을 확신했다.
그리고 자신이 해야 할 것 같은 일을 말했다.
“제가 자료를 뿌리면 되겠습니까?”
“아뇨, 소용없을 겁니다. 어차피 다 한통속이거든요. 자료를 뿌려도 모르쇠로 일관할 게 뻔합니다.”
“그럼….”
“저희 법무팀 준비해서 허위사실 유포와 명예훼손으로 고소 준비해주세요.”
재환은 고소를 최대한 자중해왔다.
나중에 가면 이런 일에 고소로 대응하는 건 당연한 일이 되지만, 지금 고소하게 되면 정없다는 소리 듣기 딱 좋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관련 언론사에 KG 전자의 광고 전부 빼버리시고요. 밑의 업체들에게도 그 쪽 언론사에 광고 넣지 말라고 말해 두세요. 광고 안 넣으면 단가 좀 더 높게 잡아주겠다는 조건으로요.”
“그리 지시하겠습니다.”
재환은 모든 언론사를 상대로 칼을 빼들었다.
자신의 목에 칼을 겨눴으니 그들도 목에 칼이 들어올 각오는 해야 했다.
* * * * *
최현철 의원은 멀리 날아가는 골프공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옆에 있는 같은 한국당의 의원들이 박수를 치면서 다가왔다.
“역시 최현철 의원님이십니다. 어린 저보다 더 정정하신데요.”
“아부는 됐네.”
최현철은 캐디에게 골프채를 넘긴 뒤 필드를 천천히 걸었다.
“강재환 그 놈 내일 기사를 낸다는데, 준비는 됐나?”
“네, 허위 사실 유포라고 모든 언론사에서 움직일 겁니다. 이미 관련 자료는 다 뿌려놨고, KG 그룹에서 받는 정보는 전부 무시하라고 했습니다.”
“어차피 KG 그룹에서 자료도 안 뿌릴 거 아닙니까.”
서진이 재환을 배신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최현철 의원은 옆에 있는 캐디를 슬쩍 보고 헛기침을 했다.
“그래도 말은 조심하는 게 좋겠지.”
“아유, 제가 입이 좀 방정맞았네요.”
“그보다 이번에 낸 한성에서 요청한 법안은 통과시킬 수 있지?”
“네, 이미 국민당의 의원들 몇을 포섭해 놨습니다. 무소속도 몇 마디 던져주니 금방 물더군요.”
“잘했어. 한성 놈들 하는 거 보면 도와주기 싫지만, 거래는 철저히 해야지.”
한성과 YK는 그들에게 돈을 대고, 그들은 원하는 법안을 만들어준다. 국민이 원하는 법을 만드는 게 국회의원이니 그들이 하는 일은 잘못된 게 아니라 스스로를 다독이는 그들의 모습은 꽤나 역겨웠다.
“경찰 쪽은 어때? 그 쪽도 강재환이 들쑤셨다며.”
“깡패들 잡으라고 하는데, 거기서도 적당히 처리하고 있답니다.”
나라의 치안을 담당하는 이들이 치안을 위협하는 존재를 고의적으로 무시한다. 이게 당연시되는 상황을 이상하게 여길 사람이 여기엔 없다.
모든 게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지만 의원 한 명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만약 이번에도 강재환이 무사히 넘어가면 어쩌죠?”
“거 분위기 초치는 소리를.”
“아냐, 충분히 할 수 있는 걱정이지.”
최현철 의원은 자애롭게 그 말을 받아 넘기고, 말했다.
“이번에도 넘기면 그 땐 다른 방법을 쓰면 되지. VIP의 힘도 좀 빌려야 할 거고.”
“지금 VIP는 강재환을 도왔지 않습니까.”
“어디까지나 비즈니스 파트너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VIP는 그저 돈이 될 것 같은 쪽에 붙겠다는 군요.”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최현철 의원은 슬쩍 캐디의 엉덩이를 만졌다. 캐디는 수치스러움을 느끼면서도 아무 말 하지 못했다.
“자, 더 초 치는 소리는 그만 두고 골프나 치시죠.”
여러 사람들의 그려놓은 그림은 내일 재환이 찍을 하나의 점에서 시작된다.
그 날 저녁 재환은 퇴근하지 않고 홀로 남아 술잔을 기울였다. 아무리 자신이라도 가까이 지내던 사람 하나를 끊어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비싼 술을 홀짝이면서 회장실에 설치된 티비를 멍하게 봤다. TBS로 맞춰진 채널에서는 재환이 지시했던 기사가 흘러나오고 있다.
“보시다시피 집 안에는 혈흔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경찰은 이 집에서 폭행이 이뤄지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도 묵인했습니다.”
경찰이 미적지근하게 움직이기에 자신이 등을 밀었다. 이러고도 공권력이 배째라로 나올 수 있을까.
가능은 하겠지만, 그건 경찰의 위신 차원에서도 긍정적이진 못할 거다.
“후우….”
“회장님, 퇴근 안 하십니까.”
회장실에 홀로 남아 있으니 서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서진을 본 재환은 눈을 문지르고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할 말은 많았지만 어떤 말을 하면 좋을 지 알 수가 없었다.
서진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다가 문을 닫고 재환의 옆에 왔다. 무거운 침묵이 흐르는 중 서진이 품에서 종이봉투를 꺼내 내려놨다.
봉투의 내용이 뭔지는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능했다. 알면서도 물었다.
“이게 뭡니까?”
“이미 다 알고 계시죠.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재환은 그 사직서를 보면서 술잔을 기울였다. 이미 서진의 처우는 머릿속으로 정해놓은 상태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말이 쉽게 나오지는 않았다.
침묵이 이어지다가 재환이 숨겨둔 술잔 하나를 더 꺼냈다.
천천히 술을 따른 뒤 서진에게 건넸다.
“드시죠.”
“회장님.”
“아내분. 아니, 아직이지. 연인분의 안전은 보장받으셨습니까?”
서진은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저었다. 하긴 카르텔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놈들도 아니고, 아직 일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인질을 풀어줄 리 없다.
서진을 술잔을 비우고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하단 말밖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죄송하다라…. 그럼 그런 일들을 하면 안 됐죠.”
못 마땅했다.
“제가 못 도와드릴 거 같았습니까? 그렇게 못 미덥습니까?”
“회장님….”
“깡패새끼들이 사람 잡아가서 협박하는 거를 못 막아낼 정도로 제가 허접해 보였습니까?”
불평과 불만을 섞어 서진을 지탄하다가 술을 기울였다. 말하면서도 재환은 이게 어느 정도 자신의 책임이 있음을 통감했다. 처음부터 이런 상황을 대비했어야 했다. 이런 일이 일어날 걸 알면서도 더 급한 일들이 있다고 미뤄온 건 다름 아닌 자신이었으니까.
재환은 술을 마시고 한 마디 더했다.
“연인 분이 납치 되서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카르텔은 여러 곳의 안전 가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노숙자의 명의로, 혹은 이미 사망한 사람의 명의로 집을 구해놓죠. 여차하면 그곳에서 숨어 지내기 위함입니다.”
재환은 그 안전 가옥의 목록을 꺼내 서진에게 건넸다. 그 수가 제법 됐지만 이 안에서 사람이 납치 되어있을 공간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인적이 드문 곳에 차를 주차 할 수 있는 곳을 감안하면 다섯 곳 남짓입니다. 각 지역의 경찰에게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고 신고를 넣었지만 제대로 움직여서 수사한 곳은 세 곳입니다. 그럼 남은 곳은 두 곳 중 하나죠.”
사실 경찰이 들린 세 곳은 차 순위에 놓였을 뿐, 거기도 가능성은 있다. 사람 목숨이 달린 일이라 최우선 순위부터 확인해 나가기로 정한 거다.
마지막으로 재환은 준비한 돈을 꺼내 서진에게 건넸다.
“이 뒤는 비서실장님이 마무리 하시죠.”
“……이 돈은 받을 수 없습니다. 제가 회장님께 한 일이 있는데 어떻게 염치없이….”
“알긴 아시네요.”
그 싸늘한 말에 서진은 가슴이 쓰렸지만, 이 모든 게 자신의 업보라 여겼다. 재환은 그 모습을 보다가 말을 꺼냈다.
“저하고 거래 하나 트시죠. 당연히 제가 갑이고, 서진씨가 을입니다.”
“거래… 말입니까?”
“네.”
재환이 생각한 방법은 이거였다.
서진의 능력은 필요로 하지만 한 번 배신한 사람을 신의로 옆에 둘 수는 없다. 그러니 마땅한 목줄을 채워야 했다.
“서진씨는 깡패들의 모든 범법 행위에 대한 자료를 모아오세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가능하다면 하지 않으려 한 방법이었다. 이런 방법을 쓰면 자신과 카르텔이 같은 부류의 인간이 되는 거라 여겼으니까.
하지만 목줄을 채우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
“동행인을 붙일 겁니다. 그 과정을 기록으로 전부 남길 겁니다. 그리고 같은 상황이 생길 시 그 기록을 바로 경찰에 넘길 겁니다. 카르텔의 비호를 받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안하는 게 좋겠죠.”
“……이럴 때 보면 무서우신 분이군요.”
“카르텔에 요청해서 그들의 정보를 거짓으로 꾸며내는 건 의미 없을 겁니다.”
재환은 빈 잔을 거세게 내려놓고 서진을 노려봤다.
“어쩌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