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105)
노형진은 바들바들 떨고 있는 김광준을 바라보았다. 일단 재판부에서 심각하게 의심하기 시작했으니 저들이 뭐라고 하던 변명으로 들릴 가능성이 높다.
“재판장님, 그럼 마지막 증인을 부르고자 합니다.”
“인정합니다.”
누군지 알고 있던 재판장은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잠시 후 파란 수형복을 입고 있는 남자가 수사관에게 끌려서 앞으로 천천히 나왔고 그걸 본 김광준은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증인으로 지난번 재판의 재판관인 곽무식을 부르는 바입니다.”
그것이 마지막 쐐기였다.
“결국 이렇게 되었네요.”
사기의 가능성이 높으며 변제의 책임이 없음. 이것이 윤채미의 재판의 판결문에 있는 내용이었다.
결국 곽무식은 자신의 범죄를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뇌물받은 걸 인정하는 것이 그나마 자신과 가족들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판사를 날려 버린 건가?”
“네.”
“끄응…….”
송정학은 자신도 모르게 신음성을 흘렸다. 투서를 날릴 때만 해도 그냥 재판에서 손을 떼도록 하기 위해서 만든 것인 줄 알았다.
“그런 게 그 녀석을 어떻게 잡은 거야?”
“그냥 운이죠.”
“그놈의 운은…… 왜 너한테만 가는 건지.”
물론 운이 아니다. 전 사건의 담당자로서 수사 대상인 그를 노형진은 찾아가서 면회했다. 그러면서 그의 기억을 읽었고 그의 비밀을 알 수 있었다.
그에게 남은 것은 두 가지였다. 모든 비밀을 까발려지고 몰락하느냐, 사실대로 자수하느냐.
물론 그가 판사로 그대로 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똑같이 기억으로 약점을 잡을 수 있었겠지만 그걸 이용하기 전에 반격당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럼 그 두 언니는요?”
윤채미는 자신을 위해서 증언해 준 두 언니가 걱정되는 모양이다.
“채무 부존재 소송이 시작되었습니다. 아마도 채무도 사라질 테고 빼앗겼던 돈도 다시 돌려받겠지요.”
“다행이네요.”
“다행은 아니죠……. 이미 인생이 망가졌으니까.”
그 말에 모두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변호사가 도와줘서 그나마 복구는 할 수 있겠지만 결코 과거로 돌아가지는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범죄는 용서해서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놈의 나라는 무조건 용서하라지.’
노형진이 봤을 때 대한민국은 용서라는 질병에 감염된 상태였다. 특히나 힘이 없고 약한 사람은 아무리 당해도 용서하라는 압박에 찍소리도 못 한다. 그에 반해서 가진 자들은 용서란 없다.
“용서는 본인이 우러나서 해야 하는 거지, 남이 시켜서 하는 게 아닙니다.”
“…….”
“김광준은 어떻게 될까요?”
“아마 한 3년쯤 살고 나오겠죠. 그러고는 또 똑같은 짓을 할 겁니다.”
“또요?”
“네.”
한번 당했지만 그 녀석이 개과천선해서 똑바로 살아간다? 그럴 리가 없다. 전과 1범은 실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2범 이상이 되는 이상 그건 실수가 아니다. 고의이고 그 자체가 인생이다.
“씁쓸하네요.”
“그나저나 어떻게 하기로 했습니까?”
“아, 저요? 전 정식으로 연습생이 되었어요.”
“축하드립니다.”
윤채미를 캐스팅했던 대형 연예 기획사는 사건이 해결되자 그녀를 받아 주기로 했다. 그녀의 재능이 워낙 아까웠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희대의 스타가 나올지도 모르지.’
그녀 역시 노형진의 기억에 없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아마도 원래는 이 재판에서 지고 인생이 완전히 망가져 사라졌을 운명이란 뜻이리라.
“예림이가 진짜로 믿을 만하다고 하더니, 정말 대단하세요.”
“하하하하.”
다른 변호사들이 생각하지 못하던 창법에 관한 지식까지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그녀도 생각하지 못했다.
“손해배상 청구는 안 하실 겁니까?”
“솔직히…… 하고 싶지 않아요. 시간이 아깝기는 하지만.”
“그 녀석을 더 보고 싶지 않다는 뜻이군요.”
“네.”
소송을 하게 되면 다시 이런저런 이유로 김광준을 봐야 한다. 윤채미는 그게 싫었다. 비록 손해를 보기는 했지만…….
“걱정 마세요. 우리가 대신할 테니까요.”
“네? 그런 것도 되나요?”
“그럼요.”
윤채미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보기 싫어서 피했을 뿐이지, 그 녀석을 용서한 건 아니었다. 만일 보지 않을 수 있다면 그냥 넘기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잘 부탁드려요.”
“잘해 드려야지요 단골이신데.”
“단골? 푸헷!”
단골이라는 어색한 말에 그녀는 피식 웃었지만 사실 웃을 일은 아니었다. 새론에서 한번 사건을 맡겼던 사람들은 또 새론으로 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걱정 마세요, 확실하게 정의의 처단을 해 드릴 테니.”
“호호호! 기대할게요.”
김광준의 앞에는 그렇게 암울한 미래가 펼쳐지고 있었다.
길을 찾아서 (1)
“내가 갈 수 있다니까!”
“무서운 소리 좀 하지 마라.”
손채림의 당당한 말에 노형진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왜? 내가 못 갈 것 같아?”
“당연히 못 오지! 경기도 문화예술회관을 네가 무슨 수로 찾아와!”
“전철은 폼이냐!”
“그래서 어느 역에서 내리는데!”
“어…… 수원역?”
거기까지는 맞다. 아니, 맞을 수밖에 없다. 아직은 1호선 마지막 역이 수원역이니까. 문제는 그 후다. 그냥 택시를 타면 되는 것을 버스를 타겠다고 우기는 것이다.
“너 방금 어? 라고 했지? 어떻게 그걸 모르냐?”
“일단 맞았잖아?”
“그래도 안 돼. 그냥 거기에 있어.”
“쳇.”
손채림에게 선을 딱 그은 노형진은 고개를 흔들면서 전화를 끊었다.
“아니 도대체 무슨 깡이야?”
자기가 길치인 걸 안다. 길치도 수준이 있다면 손채림은 상상 그 이상의 길치다. 그런 그녀가 경기도 문화예술회관까지 찾아올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러면서 깡은 왜 그렇게 센 건지.”
길치인 걸 알면 그냥 조심하면 좋은데 자존심 때문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자기가 길을 찾겠다고 우기는 통에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고 있었다.
“아…… 진짜.”
그녀가 음악을 접은 것 때문에 노형진은 이런 국내 콘서트나 그런 게 있으면 꼭 데려가는 편이었다. 미안한 것도 있고 혹시나 그런 걸 보고 다시 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서였다.
“끼익.”
결국 한참을 달려서 도착한 그녀의 집 근처 가게. 노형진은 그곳에서 입을 삐쭉 내밀고 있는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치사하다.”
“내가 뭘?”
“그까짓 길, 얼마나 한다고.”
“전적을 생각하고 말해라. 그리고 공연 시간에 늦으면 어쩔 건데?”
“내가 진짜 공연 시간만 아니면 찾아가는데. 한번 봐줬다.”
그 말에 어이가 없는 노형진.
‘봐주기는 뭘 봐줘.’
티격태격하면서 출발하는 두 사람.
노형진이 차를 몰고 있자 손채림은 멍하니 바깥을 바라보았다.
“차 좋다.”
“응?”
“차 좋다고.”
“아아, 이번에 새로 뽑았어.”
“아버지가 뭐라고 안 하셨어?”
“하실 리가 있겠어?”
“그런가?”
“그래.”
벤츠. 이 시대에는 무척이나 비싼 축에 속하는 차다. 미래에도 많이 내렸다고 하지만 상대적으로 비싼 건 사실이다.
“웬일이야? 넌 이런 거 무척이나 싫어했잖아?”
“사치를 싫어하는 거지. 쓸 때는 써.”
“차이가 뭔데?”
“돈이 없는데 벤츠를 사면 사치겠지만 돈이 있는데 소형차를 사는 것도 멍청한 짓이야.”
“왜?”
“돈은 써야 세상이 발전하니까.”
돈을 많이 벌고 그걸 꽉 쥐고 있는다고 세상이 발전하는 건 아니다. 그 돈을 그대로 돌려줘야 그 돈이 다시 돌아오는 법이다.
그래서 노형진은 부자가 되었다고 사치를 부리는 건 아니지만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서슴없이 사는 편이었다.
“그래도 벤츠라니 의외네.”
“일찍 죽고 싶지 않아서.”
“하하하.”
아직은 외제 차 수입이 활성화되지 않은 시대이다 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국 자동차들을 타고 다닌다. 문제는 현재의 자동차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외제 차에 비해서 안전도가 낮다는 것이다.
‘하긴 미래도 바뀐 건 없지만서도.’
미래에도 한국 차에 대한 말은 많다. 에어백이 안 터진다거나 충돌 각도를 맞춰야 한다거나 같은 것 말이다.
“에헤헹.”
“왜, 좋냐?”
“좋지? 내가 벤츠를 언제 타 보겠어?”
“아버지는?”
“울 아빠? 손도 못 대게 하는걸.”
“그래?”
손예림의 아버지는 잘나가는 변호사다. 솔직히 그도 벤츠 정도는 부담스럽지 않게 끌을 정도의 능력은 된다.
‘그나저나 왜 그러는 걸까?’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물어봤지만 손예림의 부모가 자신을 미워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딱히 싸우거나 원수를 진 적도 없는데 그들은 자신을 별로 안 좋아했다.
“그나저나 요즘 여유있나 봐?”
“왜?”
“요즘 공연 보자고 자주 불러내길래.”
“너니까 불러내는 거다.”
“나라서? 흐흐응.”
“그나저나 뭔가 느낌 같은 거 없어?”
“뭔 느낌?”
“한번 해 보고 싶다거나 그런 거.”
그녀의 음악적 재능은 상상 이상이다. 자신 때문에 미래가 바뀌었다고 하지만 그녀가 다시 그 길로 가기를 원하는 게 솔직히 노형진의 마음이었다.
“글쎄…… 내가 해도 저것보단 잘하겠다는 느낌?”
“그럼 한번 해 보는 건 어때?”
“별로 딱히 해 보고 싶지는 않은데.”
“그래?”
‘역시 안 되나.’
자신 때문에 미래가 바뀌어서 그런 걸까? 그녀는 음악에 대해서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나저나 나 차 좀 빌려줘.”
“차?”
“나도 벤츠 좀 몰아 보자.”
“빌려주는 거야 어렵지 않은데 어디로 가느냐가 관건이 아닐까?”
“그건 내가 알아서 정할게.”
“정하다니? 같이 가자고?”
“응.”
“그러시던가요.”
보통 자신이 부르는 대로 나오는 게 손채림이다. 하지만 그녀도 그녀가 가고 싶은 곳이 있을 것이다.
‘뭐 설마 내비가 있는데.’
아무리 길치라지만 내비게이션이 있는데 별일이 있겠느냐 라는 생각에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좋았어!”
손채림의 미소에 그는 살짝 마음이 떨렸지만 모른 척 운전을 계속했다.
“빨리 가자. 늦겠다.”
그는 애써 얼굴을 돌리면서 말했다.
시간이란 흐른다고 했던가?
드디어 약속했던 날이 다가왔다. 노형진은 손채림의 부탁대로 차를 끌고 약속 장소로 나갔다.
“어딜 가고 싶은데?”
“제부도.”
“뭐, 거기도 좋지.”
가깝고 바다도 있는 데다가 음식이나 회도 맛있는 곳이 제부도다. 당일치기로 놀기에는 딱 좋은 곳.
“키 줘! 키키키!”
“네, 네.”
신나게 키를 받아서 운전석에 앉는 손채림. 그리고 문득 드는 불안감.
“혹시 말이다, 너 무면허는 아니지?”
그 말에 손채림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에 뭔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떠올릴 뿐이었다.
“아니야.”
“그래, 다행이네.”
“면허 딴 지 무려 2주나 지났거든.”
“웁스…….”
“경로를 재탐색합니다.”
내비게이션의 친절한 목소리와는 다르게 노형진은 점점 두려움이 커지고 있었다.
“야, 지나갔거든?”
“그래?”
“‘그래.’ 라니…….”
누군가 그랬다. 길치에게는 내비게이션도 의미가 없다고. 노형진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들어가라고 할 때 들어가고 나오라고 할 때 나오는 게 뭐가 어렵다고 의미가 없다는 소리까지 할까 했는데 농담이 아니었다.
“아…… 옆 차가 안 비켜 줘.”
“비켜 주겠냐!”
고속도로에서 정속 80킬로미터로 주행 중이다 보니 본의 아니게 손채림은 자신이 교통 체증의 원인이 되고 있었다.
“아, 진짜…….”
“그럴 수도 있지, 뭘.”
“‘그럴 수도 있지, 뭘.’이 아니라고!”
분명 목적지는 제부도였다. 그러나 내려야 하는 톨게이트는 지나가고 들어가야 하는 길에서는 못 들어가고 하염없이 직진 중. 그런데 그녀는 아무런 걱정도 없었다.
“가다 보면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 몰라?”
“일단 우리가 가는 길이 로마로 가는 게 아니라는 점은 둘째 치고 우리의 목적은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냐?”
제부도에 가서 바다를 보면서 회를 먹고 오는 것. 그게 목적이었다. 그러나 점점 멀어지는 내비게이션의 거리를 보면서 노형진은 아예 초탈해지는 기분이었다.
아까는 분명 거리가 두 자리였는데 이제는 세 자리까지 늘어났다.
‘될 대로 되라.’
초보의 모습을 보여 주면서 오로지 직진만을 하던 손채림의 모습에 노형진은 왠지 탈진한 듯한 얼굴이 되었다.
“내비 말 좀 들으면 안 되냐?”
“아니야. 여기로 가면 빨라, 아마도.”
“‘빨라.’ 뒤에 ‘아마도.’가 붙으면 안 되는 거야.”
하염없이 흘러가는 자동차들. 그리고 직진만을 하는 두 사람. 그리고 그들이 도착한 곳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이었다.
“설마 여기가 목적지였다는 말은 하지는 않겠지?”
“에헤헤헤.”
“그래, 부산까지 안 간 게 어디냐?”
다른 곳도 아니고 대관령이라는 사실에 노형진은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녀가 하자는 대로 하자고 했으니 그저 따라갈 뿐.
“그래도 좋네, 가슴도 탁 트이고.”
넓은 산 위에서 아래를 바라보면서 심호흡하는 손채림. 노형진은 그걸 보면서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무슨 일 있냐?”
“응? 왜?”
“아니, 평소 너 같지 않아서.”
자기가 길치인 걸 알기 때문에 자신 있게 길을 갈지언정 스스로 어디론가 가자는 소리는 잘 하지 않는 그녀다. 그런데 오늘은 그것도 아니고 좀 이상했다.
“그냥 갑갑해서 그래.”
“갑갑?”
“부모님이 너무 옥죈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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