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1578)
“이건 뭐…… 답이 안 보이네.”
사건에 대한 말이 아니다.
손민후 변호사가 주고 간, 사망한 아이의 핸드폰 기록을 보고 하는 말이다.
“아주 대놓고 죽으라고 했는데?”
-죽어, 개새끼야. 안 죽어? 내가 너희 엄마 돌림빵 할까?
-이 새끼는 언제 죽나.
-인제 가면 언제 오나, 낄낄낄.
-병신 새끼. 자살할 용기도 없는 새끼가 어디서 기어올라?
단순히 돈을 빼앗는 정도가 아니었다.
아주 체계적이고 집요하게, 자살로 몰아가기 위한 포석이 여기저기에 깔려 있었다.
“돈이 목적이 아닌 것 같은데.”
“돈이 목적일 리 없지. 중학생쯤 되면 금전 감각이 있을 테니까.”
영구 임대 아파트에 사는 애를 괴롭혀 봐야 나올 수 있는 돈은 없다.
돈이 목적이라면 좀 더 잘사는 애를 괴롭혀야 한다.
“이건 그냥 괴롭힘 자체가 목적이야. 자기들의 힘을 자랑하고 주변에 알리기 위한 목적. 아마 반성도 안 할걸. 어때?”
손채림은 어깨를 으쓱했다.
사건을 접수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것이 그들에 대한 조사였다.
일단 그들이 반성하고 있다면 잘 설득해서 합의를 이끌어 낼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변에 자기네가 사람 죽이는 데 성공했다고 낄낄거리면서 자랑하고 다닌다더라.”
같은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에게 적당히 용돈을 쥐여 주고 들은 소식에 따르면, 반성은커녕 그걸 자랑하면서 주변을 더 겁주고 있다고 했다.
자신들에게 저항하면 너희도 그 꼴이 될 거라면서.
“역시나.”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서, 일종의 본보기 삼아 한 명 괴롭히는 것은 아이들 세계에서는 흔하게 있는 일이다.
문제는 그걸 제대로 통제하지 않는다는 것.
“그런데 의외네.”
“뭐?”
“가해자들 말이야. 공부도 잘하면서 왜 그러는 거야?”
가해자는 총 네 명으로, 한 명은 전교 3등, 다른 한 명은 반에서 1등, 나머지 두 명 역시 전교 석차 30위 안에 들어가는 아이들이었다.
“무한 경쟁의 폐해지.”
“무한 경쟁의 폐해?”
“그래.”
과거에는 못사는 아이들이 가해자인 경우가 많았다.
가난하다고 무시받고 또 미래가 안 보이니까 엇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공부 잘하고 평범하거나 잘사는 애들이 점점 더 가해를 많이 해.”
“왜?”
“아이들의 머리가 발전하니까.”
“응?”
“과거의 아이들보다 지금의 아이들이 머리를 더 쓰는 건 알지?”
“그렇지.”
“반대로 말하면 현실도 더 잘 안다는 거야.”
과거에는 한번 엇나가면 그만이니까 자신이 억울해서, 그래서 사고를 치는 아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사고를 치고 싶어도 현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자신들이 친 사고를 수습할 방법이 없다는 걸 알면 그냥 체념해 버린다.
“하지만 돈 있고 공부 좀 하는 애들은 아니지.”
학교는 철저하게 승자 위주다.
사고를 쳐도 공부 잘하는 아이에게는 손대지 않는다.
도리어 공부 못하는 피해자들을 탓하면서 쫓아낸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돈이 있고 백이 있으면 철저하게 우호적이다.
그리고 피해자가 가난하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면서 도리어 피해자를 매도한다.
“그래서 요즘은 가난한 사람들 중에 피해자가 더 많아.”
“진짜 세상 씁쓸하구나. 애들까지 그러냐.”
“요즘 애들은 과거의 애들과 달라. 훨씬 영악하고, 법적인 지식도 이용하고, 어른을 등쳐 먹을 줄도 알아. 정작 발전하지 못하는 건 애들이 아니라 어른이야.”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과거의 잘못된 경험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공부 잘하거나 집이 부유하면 선한 줄 알고, 가난하거나 성적이 나쁘면 나쁜 아이인 줄 안다.
사회가 학교 성적만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그래서 공부 잘하는 놈이 사고 치면 이렇게 말하지, 그럴 아이가 아니라고. 하지만 ‘그럴’ 애가 따로 있나?”
결국 제대로 인성 교육이 안 되면 성적과 상관없이 개자식이 되는 게 사람이다.
“그러면 어쩌지?”
“글쎄, 일단은…… 합의해 봐야겠지.”
피해자가 안타깝기는 하지만 이 사건은 형사다.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게 한계가 있다.
그러니 최대한 그들과 합의해서 사과를 받아 내는 게 중요했다.
“쉽지는 않겠지.”
노형진은 어깨를 으쓱했다.
* * *
“지랄하네.”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긴 했다.
하지만 쉽지 않은 정도를 넘어서 이렇게 후안무치할 줄은 몰랐다.
“내가 왜 그 걸레 같은 집안에 사과를 해야 해?”
“뭐라?”
새파랗게 어린 놈이 의자에 삐딱하게 기댄 채 노형진에게 반말을 찍찍 하면서 피식피식 웃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다른 세 명도 피식거리면서 그놈을 바라보고 있었다.
“걸레 같은 집안?”
노형진은 자신이 반말을 들은 건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걸레 같은 집안이라니?
사람을 죽여 놓고 그게 할 말이란 말인가?
“그렇잖아. 안 그래? 내가 죽였어? 난 안 죽였어. 그 새끼가 두 발로 올라가서 뛰어내렸지.”
“너희가 괴롭혔잖아.”
“그거야 애들 장난이었지. 안 그래요, 아빠?”
“그럼. 애들이 크면서 장난 좀 칠 수도 있는 거지, 뭘 그걸 가지고 경찰까지 부르고, 쯧쯧. 하여간 거지새끼들은 틈만 나면 돈 몇 푼이라도 뜯어내려고.”
피식거리면서 웃는 아버지라는 인간의 말에, 노형진은 슬며시 머리에서 핏줄이 올라왔다.
‘그렇지. 이런 거지.’
자식은 부모를 닮는다고 했다.
집안이 개판이니 사람을 죽이고도 당당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죽인 것도 아니고 지가 살기 싫다고 뛰어내린 걸 왜 나한테 뭐라고 그래?”
“맞아, 맞아.”
“귀찮게 굴지 좀 마, 어차피 적당히 풀려날 거.”
“야, 이 새끼야! 너!”
옆에서 그 꼴을 보던 손채림이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하지만 적반하장이라는 말이 뭔지 이들은 확실하게 보여 주었다.
“어디서 소리를 질러! 우리 애 기죽게!”
“뭐라고요?”
“어디 이딴 일이나 하는 여자가 우리 애한테 소리를 질러? 우쭈쭈, 우리 아들 안 놀랐어?”
애엄마로 보이는 여자는 자신의 아들만 챙겼다.
그들 가족의 눈빛에서는 미안함도, 반성도 보이지 않았다.
“허…….”
노형진은 고개를 흔들었다.
이래서야 합의를 시도한 것의 의미가 없다.
‘그래, 합의하지 않을 거라면…….’
저쪽에서 막나가면, 이쪽도 막나가면 그만이다.
“채림아.”
“응?”
“이 인간들, 어디 재벌이냐?”
“이 인간들?”
모여 있던 사람들의 눈썹이 꿈틀했다.
합의하자고 모이라고 하더니 ‘이 인간들’이라니.
‘멍청한 놈들.’
이쪽이 약하게 나간 이유는 합의를 도출해 내기 위해서이지 그들이 강하거나 무서워서가 아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그걸 보고 자신들이 갑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이봐요, 당신들이 얼마나 잘났는지 모르겠는데…….”
“이게 미쳤나?”
발끈해서 노형진에게 따지고 드는 사람들.
‘그래, 잘난 맛에 살 만하기는 하지.’
노형진도 그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를 안다.
일반인이라고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사실 그 아파트가 서민이 살 만한 곳은 아니다. 시가로 대략 6억 정도.
기업 분류를 보자면 대기업의 과장이나 부장급, 또는 어느 정도 경험이 되는 변호사나 의사 정도가 살 수 있는 곳이다.
“여기서 60평 이상 아파트에 사는 사람?”
노형진의 당혹스러운 질문에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질문의 목적이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형진은 그들의 궁금증을 풀어 주는 대신에 다른 질문을 다시 던졌다.
“그러면 여기 있는 분 중에서, 혹시 그 아파트 대출 끼지 않고 산 사람은?”
“뭐?”
세상에 6억 정도 되는 집을 대출도 끼지 않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노형진은 그런 그들의 표정을 보면서 피식 웃고는 손채림을 돌아보았다.
“채림아.”
“야, 이거 거지새끼들이라 합의금 받을 것도 없겠다.”
“거지새끼들?”
순간 눈깔이 확 돌아가는 사람들.
하지만 노형진은 그 정도에서 멈출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합의는 글러 먹은 거, 제대로 속을 긁어 줄 생각이었다.
“너 지난번에 건물 산다더니 어떻게 샀냐?”
“네가 소개시켜 준 덕분에 하나 샀지. 한 40억 줬나?”
손채림도 노형진이 뭘 노리는지 알고 속으로 피식거리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일시불?”
“거지새끼도 아닌데 무슨 그런 걸로 대출을 받아?”
“그렇지?”
“그러니까. 너도 지난번에 빌딩 산 거, 카드값 나갔어?”
“빌딩? 아아, 그거? 그게 체크카드였잖아.”
“그랬나?”
“그래. 고작 20층짜리 빌딩 하나 사는데 뭘 할부를 긁어? 용돈으로 해결하면 되는 거지.”
노형진과 손채림의 대화에, 합의하러 온 사람들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지금 두 사람이 무슨 목적으로 이런 대화를 하는지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여간 별거 없는 거지새끼들이 돈독만 올라서 돈 좀 아끼려고. 뻔뻔하다니까.”
아까 전 남자가 한 말을 그대로 돌려주는 노형진.
“이익! 합의 없어! 합의 못 해!”
벌떡 일어나는 남자.
“갑시다!”
“어머, 이렇게 예의 없고 교양도 없는 사람들이랑 무슨 합의를 해요?”
언성을 높이면서 나가는 사람들.
그러거나 말거나 내버려 두고 있던 노형진은 전부 나가자 입맛을 다셨다.
“예의? 교양? 지랄하고 자빠졌네.”
“그러게. 아오, 40억이 아니라 80억이라고 뻥칠 걸 그랬나?”
“그럴 걸 그랬나 봐.”
맞은편으로 자리를 옮긴 손채림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그나저나 합의는 물 건너간 것 같은데, 어쩔 거야? 진짜 법대로 할 거야?”
“일단 검사를 만나 봐야지.”
공소는 오로지 검사의 권한이다.
그런 만큼 노형진이 아무리 노력해도 죄목을 살인으로 바꿀 수는 없다.
“만일에 안된다고 하면……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지.”
노형진은 씁쓸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