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2379)
일본 우생 보호법.
우월한 유전자를 보호한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에서 시작된 법이다.
하지만 그들이 선택한 것은 우월한 유전자의 보호가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열악한 유전자로 보는 것이었다.
딱 일본의 전형적인 방식이 녹아든 법이었다.
약자를 적으로 만들고 집단으로 괴롭힘으로써 집단의 결집을 꾀한다.
쉽게 말해서 우생 보호법의 목적은 진짜 유전적으로 나쁜 사람들을 보호하는 게 아니었다.
그 대상이 되지 않은, 그래서 불임 수술이나 낙태 시술을 받지 않은 사람들에게 스스로 자신은 우월한 유전자라는 말도 안 되는 세뇌를 하는 게 핵심이었다.
그랬기에 대상에게는 최소한의 인권도 없었다.
“고작 아홉 살요?”
우생 보호법에 대한 소송을 진행하기로 결정하자, 그다음에 할 일은 해당 피해자들을 모으는 것이었다.
당연히 정부에서 해당 자료를 줄 리 없기에 새로운 인권 단체를 하나 만들고 그곳에서 광고를 내고 인터넷을 통해 피해자들을 모았다.
그리고 그곳에 속해서 일하게 된 안도 스미레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녀는 일본에 몇 안 되는 인권 운동가 중 한 명이었지만 이런 소리는 처음 들었으니까.
“제가 아홉 살 때였어요.”
아직은 한창때라고 할 만한 여자.
이제 슬슬 결혼을 해서 아이를 키우며 알콩달콩 행복을 느낄 나이의 여자.
“어느 날 제가 있던 고아원으로 경찰이 찾아왔어요.”
그리고 다짜고짜 아이들 중 몇몇을 불러냈다.
“그리고 강제로 산부인과로 끌고 갔어요.”
그렇게 아이들을 산부인과로 끌고 간 자들은 그녀를 차가운 침대에 올렸다.
“저는 그게 뭔지도 몰랐지요. 하지만…… 그때 같이 갔던 언니는 알았어요……. 그 사건 이후에 그 언니는 자살했어요.”
고작 아홉 살짜리. 그 아이를 경찰은 강제로 끌고 가서 불임 수술을 한 것이다.
“제일 어린 아이가 일곱 살이었어요.”
“미친…….”
안도 스미레는 욕이 저절로 나왔다.
고작 일곱 살짜리 아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불임 수술을 한단 말인가?
“이유가…… 우리가 공부를 못해서라고 하더군요.”
“공부를 못해서요?”
“네.”
고아원이라는 곳은 공부를 하기에는 열악한 환경이다.
더군다나 일곱 살, 아홉 살이라면 아직 공부에 대한 개념이 채 제대로 잡히지도 않을 때였다.
“우리가 지능이 낮아서 공부를 못한다고 했어요.”
그녀는 절망적인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고…… 그리고 우리를 그렇게 끌고 간 곳에는 수십 명의 남자와 여자가 있었고요.”
그렇게 간 곳에서 차근차근 끌려 나가 불임 수술을 당했다.
마치 사형장에 죽으러 들어가는 것처럼 말이다.
“그걸 그냥 당고만 있었어요?”
“그때는 몰랐으니까요.”
불임이 뭔지 알기는커녕 애가 왜 생기는지도 모르는, 고작 아홉 살짜리 꼬마였다.
지금 하는 수술이 뭔지조차도 몰랐다.
“다만 그곳에서 저항한 사람들이 있기는 했어요.”
어느 정도 나이가 차면 지금 하는 게 뭔지, 지금 하는 게 얼마나 자신의 인생을 망가트릴지 예상할 수 있었기에 거칠게 저항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어요.”
경찰은 그렇게 저항하는 사람들을 몽둥이로 강제로 두들겨 팼다.
그리고 병신이라고. 유전적 결함 인자라고 불렀다.
“너희 같은 인간들은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대일본 제국을 위해 좋은 일이라고 하더군요.”
그렇게 사람들은 수술실로 끌려갔다.
“내 바로 앞에 있던 언니는 너무 많이 맞아서 피를 흘렸어요.”
하지만 경찰은 가차 없었다.
잘못했다고, 한 번만 모른 척해 달라고 비는 그 언니를 경찰은 머리끄덩이를 잡고 수술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리고 강제로 차가운 침대에 눕혔다.
최후까지 저항하던 그 언니도 마취제가 들어가는 순간 축 늘어지면서 저항이 끝났다.
“그게…… 어떻게 그런 일이…….”
안도 스미레는 정신이 멍해졌다.
인권 관련 일을 하면서 말도 안 되는 소리는 많이 들어 봤다. 하지만 이런 일은 들어 본 적이 없었다.
‘96년이라고 했던가?’
96년. 이 법이 사라진 후 일본 정부는 모든 것을 은닉했다. 어떻게 생각해도 이건 말도 안 되는 개짓을 한 거니까.
물론 그에 대한 사과나 반성은 없었다.
원래 역사에서도 일본은 사과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 관련 배상 규정이 만들어진 후에도 국가의 책임이라는 말 대신에 우리의 책임이라는 식으로 애매하게 법을 만들면서 국가는 사과하지 않았다.
“이게 사실이에요?”
“아마 피해자는 더 많을 거예요. 제가 마지막이었으니까.”
씁쓸하게 말하는 여자.
그게 벌써 20년 전이다. 그녀는 아직 20대이고, 충분히 결혼이 가능한 나이다.
“하지만 할 수는 없겠지요. 아이를 가질 수 없으니까.”
실제로 그녀가 만난 사람이 여럿 있었다.
하지만 불임을 고백하는 순간 남자들은 떠나갔다.
“이제 남은 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요. 혼자서 이렇게 늙어 가겠지요.”
“그럴 수는 없어요!”
그 말을 들으며 안도 스미레는 소름이 돋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녀와 안도는 동갑이다.
그러니까 만일 안도가 고아원에 있었다면, 그녀 역시 그러한 불임 수술의 희생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소리니까.
‘타이치…….’
그녀는 집에 있는 아들을 생각했다.
만일 그랬다면 그 아이를 얻을 수 있었을까? 인생을 걸어서라도 지키고 싶은 그 아이를.
같은 여자이기에 안도 스미레의 가슴은 누구보다 아파 왔다.
“이건 제가 어떻게 해서든 보상받게 해 드릴게요!”
“어떻게요?”
“우리 단체에서 어떻게 해서든 해 드릴게요. 어떻게 해서든!”
안도 스미레는 입술을 짓깨물며 말했다.
“그게 우리가 할 일이에요.”
* * *
“으음…….”
요히토는 보고서를 보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이게 사실인가?”
신동하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입니다. 아직 피해자를 찾고 있습니다만, 현 상황을 볼 때 이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어쩌다…….”
요히토는 기가 막혔다.
민주주의국가라는 일본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으니까.
“이게 우리가 모든 것을 놓은 결과인가?”
“지금까지 일본은 브레이크가 없었으니까요.”
보고서는 비참했다.
심지어 어떤 남자는 집에 가다가 끌려가서 강제로 불임 수술을 당했다고 했다.
이유는 단 하나, 그가 선천적으로 다리를 전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건 사실 유전자와는 상관없는 일이었죠.”
유전자 문제가 아니라 그저 태아일 때 배 속에서 잘못 성장한 것뿐이었다.
“현재 피해자들은 어마어마합니다. 이미 죽은 사람들은 말할 수도 없고, 피해자 중 어린 사람은 아직 20~30대입니다.”
“믿을 수가 없네. 아무리 우리 일본 정치인들이…….”
“전하, 이건 현실입니다.”
요히토는 노트북을 탁 덮었다.
차마 두 눈으로 계속 볼 수가 없었다.
너무나 끔찍했다.
천황가에서 법에 간섭할 수 없다는 현실로 인해 이런 황당한 법이 만들어지고 피해자들이 양산되었을 줄은 몰랐다.
더 가슴 아픈 건 눈앞에 있는 USB들이었다.
하나로도 부족해서 수십 개의 USB들이 쌓여 있었다.
그만큼 피해자가 어마어마하다는 소리다.
요히토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외쳤다.
“아니, 어째서? 도대체 왜? 우성학이라면서? 그런데 왜 장애인도 아닌 멀쩡한 사람을 불임을 만든단 말인가!”
“한국 변호사인 노형진의 말에 따르면 관리 문제라고 하더군요.”
“관리?”
“네.”
고아들은 외로운 아이들이 많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정을 갈구한다.
그렇다 보니 쉽게 마음을 주고 몸을 허락한다.
실제로 그런 아이들을 노리는 나쁜 놈들도 존재한다.
“그 시대에 그런 아이들이 임신하면 그걸 관리해야 하는 것은 고아원이었습니다.”
그게 귀찮으니까 고아원은 그냥 불임을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어차피 인생 쓰레기가 될 거라 생각했으니까.
“이게 현실이란 말인가.”
요히토의 얼굴은 무척이나 딱딱해졌다.
한번 개혁을 해야 한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걸 보면서 그런 마음이 더더욱 강해졌다.
이건 도무지 답이 없을 정도로 썩어 있었다.
없애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그에 대한 보상이 전혀 없었다.
“더군다나 이 문제에 대해 아직 다른 사람들은 시작도 안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
“법에 따르면 중절 수술 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신동하의 말에 요히토는 말문이 막혔다. 뭐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이게 얼마나 잔인한 법인지 아시겠습니까?”
강제로 끌고 가서 아이를 지운다.
그것만 해도 사실상 사법 살인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서 우생학적으로 건전하지 않은 유전자라는 이유로 불임을 시켜 버린다.
“아이도 죽이고,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으로까지 만들었지요.”
“이 죄를 어찌 씻어야 한단 말인가…….”
요히토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어지간한 일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그였다. 하지만 그런 그라 해도 울 수밖에 없었다.
“그 피해자가 최소한 몇십만 이상으로 추정됩니다.”
관련 기록은 일본 정부에서 모조리 삭제했다. 그리고 모른 척하고 있다.
“지금까지 누구도 이 문제를 이야기하지 않았고 누구도 배상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보복이 두려우니까요. 하지만 요히토 황태자님, 아니 천황가라면 두려울 게 없지요.”
아무리 일본 사람들이 현 정부를 지지한다고 해도 이건 요히토의 편을 들어 줄 수밖에 없는 일이다.
“가슴이 아프군.”
요히토가 눈을 내리깔고 말하자, 신동하가 조심스레 물었다.
“이런 일이 벌어져서, 인가요?”
“아니…… 이런 걸 내가 정치적으로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 가슴이 아파. 이런 비극적인 법이 있는지도 몰랐다는 게 너무나도 비참하네.”
요히토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우리에게는 이런 것에 대해 말해 주는 사람이 없었지. 법에 대해 자세하게 알려고 하기만 해도 정치적 중립을 요구했으니까.”
“하지만 이건 정치적 문제가 아닙니다.”
“알고 있어. 하지만 우리는 저항할 수가 없었네.”
지지 세력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지지 세력이 생겼다. 아직은 미약하지만 말이다.
“그러면 이 문제에 대해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가 사과를 해야 하나?”
“아니요. 그건 안 됩니다. 이건 천황가의 잘못이 아닙니다.”
신동하는 단호하게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사과를 하는 순간 그건 천황가의 잘못이 됩니다.”
안 그래도 천황가에 대해 안 좋게 생각하는 일본 정치인들이다.
이 문제에 대해 사과하는 순간, 모든 잘못을 뒤집어씌우고 천황가를 물어뜯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어쩌란 말인가?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게 없는데.”
“전에 말씀드린 대로입니다. 천황가에서 소송을 지원해 주시면 됩니다.”
이번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변호사를 지원해 주는 것만으로도 그는 할 일은 다 하는 것이다.
천황가가 도와준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국민들에게 천황가를 전면에 내세울 수 있다.
“그리고 우리 지지 세력은 그걸 가지고 더더욱 홍보할 수 있겠지요. 천황 폐하가 우리를 보살피고 있다고 말입니다.”
“그건 좋은 생각인데…….”
말을 하던 요히토는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좋은 방법이다. 그렇게 된다면 말이다.
하지만 차마 말할 수가 없는 문제가 있었다.
“이걸 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네.”
“알고 있습니다. 변호사들이 돈도 안 받고 일할 리 없지요.”
“그게 문제야.”
요히토는 말을 아꼈다. 차마 말할 수 없는 현실 때문이다.
그는 잠깐 말을 아끼다가 길게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어찌 되었건 자신을 도와주는 사람이다. 현실을 알아야 신동하가 자신을 도울 수 있다.
“우리 천황가는 돈이 없네.”
천황가는 돈이 없다.
천황가가 먹고 마시는 모든 돈은 예산에서 부여된다.
당연히 그 돈은 천황가의 돈이 아니라 국가의 돈이다.
“우리가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어.”
똑같은 입헌군주제 국가이지만 다른 나라의 왕실과 다르게 천황가는 모든 일에 정부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단순히 법에 대한 제한뿐이 아니다.
그들은 금전적으로 숨통을 틀어막는다.
실제적으로 일본 천황가는 일본 정부에서 최소한의 품위 유지비만을 받을 뿐이다.
모든 것은 예산으로 되어 있다.
“우리가 받는 게…….”
“한 5천만 엔쯤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5천만 엔.
그러니까 그들에게 지급되는 돈은 대략 5억밖에 안 되는 것이다.
그것도 요히토에게만 주는 게 아니라 천황가 전체에 주는 돈이 그렇다.
한 나라의 왕의 재산치고는 터무니없이 작은 금액이다.
“압니다. 이미 다 알아봤습니다. 사실대로 말씀드리면, 그 돈이면 이런 사건에서는 변호사 하나 사기 힘듭니다. 워낙 사건이 크니까요. 거기에다 국가를 대상으로 싸워야 하니 아마 쉽게 받아들여 주지 않을 겁니다.”
“끄응…….”
요히토는 자신의 처지가 비참했다.
어쩌다 천황가가 이렇게 되었는지, 너무나 답답했다.
요히토는 지푸라기라도 부여잡듯 신동하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어떻게 돈을 지원해 준단 말인가?”
“돈을 빌리시면 됩니다.”
“뭐? 뭘 담보로?”
“신용이지요.”
“신용?”
“그렇습니다. 신용.”
요히토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신용 담보라는 게 도대체 뭔지 들어 본 적도 없으니까.
하긴 요히토가 은행 일을 해 볼 일이 없었으니까.
“가장 좋은 건 재산을 담보로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천황가는 재산을 가지고 있지 못하지요.”
정확하게 말하면 작은 물건들은 소소하게 가지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 즉 돈이 되는 것, 그리고 담보가 될 정도로 비싼 것은 모조리 국가 소속이다.
당연하게도 그런 걸 사기에는 정부에서 주는 품위 유지비는 터무니없이 적다.
“하지만 천황이라는 신분, 그리고 그 신분에서 나오는 신용을 담보로 돈을 빌릴 수 있습니다.”
“그건 좀…….”
그러니까 천황가의 이름을 팔라는 거다.
정확하게 말하면 천황가의 자손인 요히토의 이름을 팔라는 뜻이다.
“그 돈을 갚을 수 있는 방법이 없지 않나?”
그 돈을 갚을 수 있다면 당연히 빌릴 것이다.
하지만 돈을 갚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게 현실이다.
“그건 국민들이 갚아 줄 겁니다.”
“뭐?”
요히토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국민들이 왜 갚아 준단 말인가?
“이것도 일종의 심리적 함정입니다. 한국에 있는 노형진이라는 변호사가 알려 준 거지요.”
요히토와 천황가가 돈을 빌려서라도 자국의 국민들을 도와주려 한다고 소문이 난다면?
당연히 국민들은 천황가를 새롭게 보고 그들을 따르게 된다.
“그리고 그때 우리가 만든 조직이 활동하게 됩니다.”
천황가에 충성을 바치는 조직들, 정치인들. 그들이 나서서 천황을 찬양하며 그가 국민들을 위해 진 빚을 갚아 주자는 운동을 하는 것이다.
“천황가가 이런 소송을 도와줬다고 소문을 내는 건 여러모로 정치적 부담이 있지요.”
하지만 이런 일로 인해 빚을 지고 그걸 국민, 아니 신민 된 입장에서 갚아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면?
평생을 천황가를 정신적 지주로 삼은 국민들 중 상당수가 조금씩이나마 그 돈을 갚는 걸 도와주기 위해 돈을 내기 시작할 것이다.
“그 상황이 의미하는 건 하나죠.”
그들은 천황이라는 존재가 자신들을 도와주는 사람이라는 의식을 하게 된다.
일단 천황이 빚을 졌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갚아 주려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것저것 사정을 알아보고 왜 빚이 생겼는지를 알아낸 후, 그 후에 움직여도 움직이려고 할 것이다.
“변호사를 사는 데에는 1억 엔 정도 들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얼마나 모일까요?”
일본 전 국민이 나서서 갚기 시작하면? 1억 엔? 그건 일도 아니다.
아마 단시간 내에 10억 엔 이상의 돈이 모일 것이다.
“그리고 그 빚을 갚은 후에 남은 돈은 천황가에 증여하는 조건을 붙이면 됩니다.”
“헉!”
요히토는 아연실색했다.
그게 성공한다면 천황가는 당장 최소 수억 엔의 실질 자산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허락받아서 써야 하는 돈이 아니라 자기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이 말이다.
“그리고 중국과 한국에서도 기부를 받아야지요.”
“뭐? 자네 그게 무슨 소리야? 한국과 일본에서 왜 돈을 받아?”
그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아무리 현 일본 정치인들과 싸운다고 하지만 외국에 구걸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 요히토의 마음이었다.
거기에는 자존심뿐만 아니라 일본의 국격 문제도 걸려 있기 때문이다.
“압니다. 하지만 그걸 해결할 방법이 있습니다.”
“어떻게?”
“이 우생 보호법에 의해 강제로 낙태당하고 불임이 된 사람들은 일본인뿐만이 아닙니다.”
“뭐?”
“그 당시 일본에 있던 재일 한국인들과 재일 중국인들 역시 그러한 법의 희생양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 사람들이 더 많은 희생을 당했다.
그 당시만 해도 재일 한국인들이나 재일 중국인들의 신분은 그냥 노예 취급이었으니까.
“그것도 그냥 넘어갈 일은 아니지요.”
“그건…… 국제적 문제가 될 것 같은데?”
“애석하게도 그렇지 않습니다.”
재일 한국인, 재일 중국인의 공식적인 국적은 일본이다.
당연하게도 그러한 공식적인 국적이 우선이다.
물론 외부에 드러나면 두 나라에서 불편해하기는 하겠지만, 최소 20년 전 사건을 가지고 무리하게 관계를 경직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왜?”
“지원은 많을수록 좋으니까요. 노형진 변호사는 이참에 천황가의 이미지를 바꾸려고 하고 있습니다.”
일본 좋으라고, 아니 천황가 좋으라고 하는 게 아니다.
도리어 일본에서 날뛰고 있는 극우 세력을 멈추기 위해서다.
“한국과 중국에서 천황가의 이미지는 극도로 안 좋습니다.”
현재 일본 극우가 날뛰고 있고 그 이미지는 그대로 천황가에 뒤집어씌워지고 있다.
“하지만 이번 계획을 통해 일본 극우와 천황가의 이미지를 완벽하게 갈라 버리는 게 목적이라고 하더군요.”
두 나라에 있어 천황가는 과거 일본 제국의 수장이자 침략의 장본인이다.
그러니 천황가가 좋을 수가 없다.
“하지만 반대로 하는 거지요.”
도리어 천황가가 잘못된 것을 고침으로써 타국의 지지를 천황가에 쏠리게 하는 것이다.
“아무리 타국이라지만 국제적 여론이 천황가를 지지하는데 일본 정부에서 마음대로 할 수 있을까요?”
“미치겠군.”
요히토는 소름이 돋았다.
그러니까 이번 소송을 하면서 중국인과 한국인을 포함시키라는 거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 그쪽 나라에서도 지원금이 모일 겁니다.”
일본의 잔학한 악법에 희생된 자신들의 민족을 돕기 위해 돈을 모으는 사람들이 있을 테고, 그건 당연히 천황가로 넘어온다. 대표해서 도와주고 있으니까.
“이미지도 바꾸고 돈도 더 버는 거죠. 사실 천황가 입장에서는 돈을 쓰는 게 아니라 돈을 버는 행위입니다.”
요히토는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자네가 말한 그 노형진이라는 변호사 말일세.”
“네, 하명하십시오.”
“정치인은 아니지?”
“정치는 전혀 관심 없어 합니다. 이번 일도 제가 의뢰를 해서 그렇지, 정치 쪽은 평소에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다행이군.”
“왜 그러십니까?”
“아니, 그 사람이 정치를 하면 일본에는 큰 부담이겠다 싶어서.”
신동하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이미 부담일 겁니다.’
그저 그들이 서로 모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면 어찌하시겠습니까?”
“당연히 해야지.”
자신들의 힘을 키우고 이 망할 브레이크 없는 일본 정치판을 바꾸기 위해서라면 말이다.
“그래서 얼마나 빌려줄 생각이라고 하던가?”
전쟁의 희생자는 국민이다
“공식적으로는 20억으로 하지요. 너무 작아도 문제니까.”
물론 비공식적으로는 딱 변호사비만 빌려준다.
그것도 사실 변호사는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남은 건 해당 사항을 인터넷에 공지하고 피해자들을 모으는 것이었다.
“그런데 한국 피해자들이 많습니까?”
“없지는 않을 겁니다.”
노형진은 씁쓸하게 말했다.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피해자들도 최소 수만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으음.”
신동하는 긴 한숨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다.
“하긴 자국민에게도 그런 짓거리를 했는데 타국민에게 뭔 짓을 했을지 예상하는 게 어렵지는 않네요.”
그는 한국인과 혼혈이라는 이유로 온갖 고생을 다 했다.
심지어 그가 대동의 핏줄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물론 그가 대동에서 내쳐진 것에 대해서는 알고 있으니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어찌 되었건 일본의 인종차별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가장 잘 느낀 사람이었다.
“뭐, 그 당시에는 가장 효과적인 통치법으로 보였을 테니까요.”
“그 당시?”
“일본 패망 이후 말입니다. 이번에 조사를 하다 보니 재미있는 의견이 있더군요.”
“무슨 의견 말입니까?”
“우성 보호법이 열성 인자 배제에 관한 법이라기보다는 인구 조절 목적으로 만들어진 걸로 보인다는 겁니다.”
“인구 조절이라니요?”
“말 그대로입니다. 일본은 인구가 많은 나라 중 하나였지요.”
일본은 인구가 무척이나 많은 나라였다.
전쟁 중에 많은 사람들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니, 그래서 더 문제였다.
당장 일본의 모든 산업과 농업이 전쟁 이후에 작살이 났다.
일할 곳이 없었고 먹을 건 더 없었다.
그 와중에 가난한 사람들은 골칫덩어리였을 것이다.
미국에서 원조를 받아서 그들을 먹여 살리는 것도 한계가 있고, 그들을 먹여 살리느라고 돈이 식량으로 다 가니 재건도 힘들었을 것이다.
현재 아프리카 국가들이 겪는 문제 중 하나다.
“그래서 인구를 줄이기 위해 그런 미친 짓을 했다고요?”
“아마 일본 정부 입장에서는 그 입이라도 줄여 보려고 했겠지요.”
만일 한국에서 6.25전쟁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일본의 재건은 실패했을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이었다.
그 당시 미국은 언제 함락될지 모르는 한국 영토에 보급기지를 설치하는 것을 꺼렸기 때문에, 설사 함락된다고 해도 충분히 지킬 수 있는 일본에 보급기지를 세우기로 했다.
막 2차대전이 끝난 시점이었기 때문에 농담이 아니라 미국의 해군력은 세계 제일이었고 중국의 해군력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으니까.
그 당시 중국군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인해전술이었다.
소련 같은 경우는 그 당시에 아직 핵기술이 없었다.
일본이 패망한 후에 원자폭탄의 존재를 알고 다급하게 연구에 돌입했지만, 이미 실전 배치된 미국과는 격차가 어마어마했기 때문에 그들은 대놓고 북한을 지원하지는 못했다.
“6.25는 일본 정치인들도 예상하지 못한 사건입니다.”
6.25의 발발은 1950년, 그리고 우생 보호법의 도입은 1948년이다.
그러니까 인구라도 줄여서 먹고살아 보자고 만든 게 그 법이라는 거다.
“좀 참혹하군요.”
“물론 전 그러한 생각보다는 좀 다른 생각을 하지만요.”
“다른 생각?”
신동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그다음 말에 자신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생각보다 훨씬 비참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원폭이 투하된 게 1945년이지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미국의 원자폭탄.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한 어마어마한 피해.
그 원폭 하나로 1억 총옥쇄를 주장하며 버티던 일본도 항복을 했다.
국민 1억 명이 죽는 건 상관없지만 원폭은 지배자들을 죽이는 무기였으니까.
“서…… 설마?”
“설마치고는 공교롭지요.”
방사능이 기형아를 낳도록 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은 일본을 방사능으로 오염시켰다.
“처음에는 몰랐겠지요.”
하지만 다음 해에 어마어마한 숫자의 기형아들이 태어나기 시작하면서 일본 정부는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조사를 시작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방사능과 기형에 관한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어쩌면 알고 있었지만 대응할 수 없었을 수도 있다.
“그 이후에 매년 어마어마하게 늘어나는 기형아의 숫자는 안 그래도 부담스러운 상황에 처한 일본 정부에 어마어마한 압박으로 다가왔을 겁니다. 그렇다면 그걸 막을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요?”
태어난 아이를 죽인다?
그건 무리다. 부모들이 인정하지 못할 것이다.
태어나자마자 죽기를 바란다?
그게 가장 깔끔하지만, 그렇게 죽는 아이들이 얼마나 될지 모른다.
지금처럼 양수 검사를 통해 태아의 이상 유무를 확인할 수 있는 시절도 아니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뭘까요?”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으면 무조건 낙태시키고 무조건 불임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 법이 만들어진 후에 어디서 어떻게 운영되었는지 누구도 모르지요. 하지만 핵폭탄이 떨어진 곳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주변에서 수십만, 아니 백만 이상의 사람들이 살아남았다.
폭발 반경에서는 다 죽었지만 방사능은 더 멀리, 더 많이 퍼져 나갔다.
“기형아를 낳게 될 가능성이 높은 부모들…….”
방사능에 노출된 부모들. 그리고 그들의 아이들.
“이럴 수가.”
노형진의 예상이 맞는다면 피해자가 100만 이상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더 큰 문제는 그걸 없애지 않은 거지요.”
방사능 제거 작업이 끝나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가 새롭게 재건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법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저 다른 희생양을 찾아서 계속 이어져 왔다.
1996년까지 말이다.
“일본에 짐이 되는 자는 필요 없다 이건가요?”
“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언제는 안 그랬나요?”
일본의 보편적인 정서.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마라.
반대로 말하면 폐를 끼치는 존재는 짐이라는 소리가 된다.
“더군다나 일본이 언제 문제를 해결한 적이 있던가요?”
“끄응…… 없지요.”
일단은 그런 일이 없다고 부정하고, 부정할 수 없으면 합리화하고, 합리화조차도 안 된다면 책임이 없다고 모른 척한다.
“그러니까 피해자들을 그쪽으로 찾아보면 예상보다 많은 숫자가 나올 겁니다.”
“그럴 것 같네요. 그러면 노 변호사님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이제 돈 벌어야지요.”
“돈요?”
“네. 설마 일왕가가 도와 달라고 한다고 사람들이 도와주겠습니까?”
도와줄 리 없다. 일왕가는 한국인들에게는 원수 같은 존재다.
“그러니까 한국과 중국에 해당 사실을 알리고 피해자들을 찾음과 동시에 홍보를 해야지요.”
아마 그걸 지켜보는 일본 정부는 상당히 곤혹스럽겠지만 말이다.
“그게 목적인데요, 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