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2685)
토끼섬의 비밀 (4)
지금처럼 전산화된 것도 아니고 제대로 된 신분증도 없는 시대인 만큼 한국인을 특정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그때 일본인들이 쓴 게 바로 발음을 이용한 검색입니다.”
“발음을 이용한 검색?”
“그렇습니다.”
그 당시 일본에서 한국인을 구분하기 위해 쓴 방법이 바로 십오 엔 오십 전이라는 말의 발음이었다.
한국어는 어떤 나라의 말이든 쉽게 따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따라 할 수 있다는 것과 발음 자체가 똑같은 건 전혀 다르다.
즉, 어떤 발음을 했을 때 원어민이 비슷해서 알아들을 수는 있지만 원어민과 완벽하게 발음까지 똑같기는 힘들다는 거다.
“그 당시 일본은 십오 엔 오십 전이라는 말로 사람들을 확인했습니다. 한국인, 아니 조선인과 일본인의 발음이 조금 달랐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수천 명을 죽인 게 일본이다.
심지어는 일본에도 그 발음이 정확하지 않은 지역이 있기 때문에, 그 지역 사람들도 한국인으로 의심받아서 학살당했다.
“우리도 그러면 됩니다. 물론 죽이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도대체 무슨 말로요?”
“일본 말에는 발음이 강한 게 없습니다. 가령 짬뽕, 짜장면, 맥도날드 같은 거 말이지요. 받침이라는 게 없으니까요.”
그렇다 보니 비슷하게 발음을 할 수도 있지만 들어 보면 전혀 다르다.
“대표적인 게 맥도날드죠. 일본에서는 마구도나르도라고 한다죠?”
“흠…….”
테러범들이 수년간 한국어를 교육받은 사람이 아니라면 그 발음을 고치기는 힘들다.
“그들을 학살하거나 무조건 체포하자는 게 아닙니다. 다만 그런 사람은 따로 검문하면 됩니다.”
“흠…….”
그건 딱히 문제가 될 것도 아니다.
인종차별이라기보다는, 국가별 언어 차이를 이용한 검색이니까.
“그 정도는 따로 교육할 필요도 없지요.”
검문하는 곳에 받침이 있는 글자를 쓴 스케치북을 두고 읽어 보라고 하면 된다.
길어 봐야 10초 정도.
“현재로써는 그 방법이 최선인 것 같군요.”
정치인들은 고개를 끄덕거릴 수밖에 없었다.
***
다음 날부터 모든 관광서나 다중 이용 시설에는 군 병력이 투입되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그다지 혼란은 많지 않았다.
일단 이용객 자체가 줄어든 데다가 사실 사람이 몰리는 시간은 정해져 있으니까.
“아, 개부럽.”
“뭐가 말입니까?”
“아니, 저 사람들은 사제 음식을 먹는데 우리는 짬밥이냐? 진짜 좀 봐주라, 이 중대장 자식아.”
병장 마크를 단 병사는 툴툴거리면서 바로 옆에 있는 햄버거 가게에서 시선을 돌렸다.
“사 달라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우리 돈 주고 사 먹는 것도 못 하게 하냐?”
“군의 기강 문제라고 하지 않습니까, 박 병장님?”
“기강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입구가 한두 개도 아니고 병력이 나뉘어서 모조리 지켜야 하는데 제대로 된 급식이 이루어질 리가 없다.
결국 그 급식이라는 게 짬밥을 반찬과 뭉쳐서 만든 주먹밥이다.
“닝기미, 우리가 이거 먹을 때마다 불쌍하다는 듯이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군 기강에 참 도움 많이 되겠다? 그치?”
소위 말하는 군용 주먹밥.
그나마 잘 어울리는 게 나오면 먹을 만한데 그마저도 아니라면 진짜 못 먹을 음식이 되는 물건.
“정말이지 말입니다.”
“야, 교대 얼마나 남았냐?”
“40분 남았지 말입니다.”
“시간 오질나게 안 가네.”
이리저리 시선을 돌리며 주변을 살피는 박 병장.
테러가 벌어진다고는 하지만 아직 실감이 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실탄까지 줘 가면서 검색하라고 하는 걸 보니 장난이 아니기는 했다.
“닝기미, 말년에 더럽게 꼬이네.”
박 병장은 툴툴거리면서 입구를 확인했다.
지하철 입구는 많고 장교는 부족했기 때문에 각 소대의 분대장급이 커버해야 하는 곳이 꽤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유동 인구가 적은 이곳은 그가 커버해야 했다.
“빨리 끝내고 가서 좀 쉬고 싶다.”
병장 특유의 귀찮음으로 툴툴거리는 박 병장.
그런 박 병장에게 옆에 있던 다른 병사가 다가왔다.
“아저씨, 저 좀 잠깐.”
“네? 아, 네.”
같은 군인이기는 하지만 그 둘은 소속이 다르다.
한쪽은 공익이고 한쪽은 현역.
그렇다 보니 호칭이 애매해서 결국 아저씨라는, 국방부에서 싫어하는 단어가 나와 버렸다.
“왜요, 아저씨?”
“저기, 제가 왜 여기에 왔는지 아시죠?”
“알죠.”
공익인 그가 여기에 온 이유는 이 지역 출신이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반대를 위한 반대라고 하지만 다른 정치인들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기에 그 대응책으로 그 지역 출신의 군인과 공익을 세운 것이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서.
“그런데 왜요?”
“저기 저 교복요.”
“네?”
한쪽을 가리키는 공익의 말에 박 병장은 힐끔 시선을 돌렸다.
“저게 왜요?”
“이 지역 교복 아니에요. 처음 봤어요.”
“네? 확실해요?”
“저 남고 나왔습니다. 여고생 복장 하나 모를까요?”
“으음.”
박 병장은 신음을 냈다.
변태 같기는 하지만 남고 출신이라고 하면 여학생들에게 시선이 갈 수밖에 없고, 당연히 그 학교의 교복에 대해 기억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시간에 여고생이 여기를 다녀요? 그건 아니죠.”
“그건 좀 그러네요.”
고개를 끄덕거리는 박 병장.
지금 시간은 오후 4시다.
물론 자습하지 않고 나온다고 하면 맞을지도 모르지만 확실히 조금 이르기는 하다.
“그래도 학생인데…….”
“모르죠, 미친놈이 그런 걸 따질지.”
“음…….”
잠깐 고민하던 박 병장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 부분에 대해 경고받기도 했고 화장을 잘하면 어려 보이는 것도 사실이니까.
“잠깐만 한번 물어보죠, 뭐.”
외부에서 왔다고 해도 학생증만 확인하면 될 일이기에 박 병장은 그 여학생에게 다가갔다.
“실례합니다.”
박 병장은 말을 걸면서 속으로 왠지 헛웃음이 나왔다.
‘남중에 남고에 공대 테크를 타고 기껏 여자한테 말을 걸었는데, 용건이 고작 검문이냐?’
하지만 어쩌겠는가, 까라면 까야지.
“네?”
“저기, 학생증 좀 볼 수 있을까요?”
박 병장은 최대한 상냥하게 미소 지으면서 다가갔다. 그러나 여학생은 쭈뼛거리면서 뒤로 물러났다.
‘그래, 나 못생겼다. 아놔, 진짜.’
겁먹는 거라고 생각해서 박 병장은 다시 한번 물어봤다.
“저기, 학생증을 확인할 수 있을까요? 잠깐이면 되는데.”
“아…….”
그런데 반응이 이상했다.
이미 단속한다는 건 언론을 통해 보도된 상황이었기에 딱히 두려워할 이유까지야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 여학생은 사방을 둘러보면서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뭔가 이상한데?’
박 병장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는 고개를 돌려서 지하철역의 입구를 지키고 있던 후임들에게 손을 까딱거렸다.
그러자 그걸 본 후임들이 슬금슬금 다가와서 퇴로를 막았다.
“잠깐 학생증을 확인하고 싶은데요. 학교가 어디예요? 이 근처 교복이 아닌데.”
그런데 그마저도 대꾸하지 않던 여학생은 갑자기 몸을 확 돌리더니 반대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아직 포위가 완성되지 않은 상태였기에 박 병장은 미친 듯이 따라가야 했다.
“잡아!”
백주 대낮에 벌어진 추격전.
다행히 여학생이 빠른 것은 아니었기에 거의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여학생이 손에 들고 있던 가방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건 다름 아닌 기다란 형태의 스프레이 통이었다.
어떻게 가스를 뿌렸는지 이미 알고 있던 박 병장은 마음이 급해졌다.
“이, 이봐!”
그는 옆을 스쳐 지나가던 남자의 손에서 번개같이 핸드폰을 잡아채 그대로 사력을 다해서 던졌다.
핸드폰은 막 손에 스프레이를 든 여학생의 얼굴에 그대로 충돌했다.
“긋아!”
이상한 비명을 지르면서 얼굴을 부여잡는 여학생.
그사이 박 병장은 몸을 내던졌다.
“막아! 잡아! 뺏어! 뺏어! 누르면 다 죽는 거야!”
가장 가까이에 있다 보니 스프레이를 뿌리면 가장 먼저 죽는 게 자신이기에 박 병장은 다급하게 그걸 막았고, 그사이에 후임들이 달려와서 그녀를 온몸으로 찍어 눌렀다.
“잡아!”
“포승줄…… 포승줄…….”
“어, 이거 써 본 적 없습니다.”
“씨발! 교육 누가 한 거야! 야! 일단 눌러!”
지하철역 앞에서는 난리가 났고, 그 주변으로 어마어마한 숫자의 경찰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
“독가스가 맞다고 하더군요.”
서울의 지하철역에서 벌어진 사태는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었다.
실제로 가스 테러가 벌어질 뻔한 상황이었으니까.
“가방에서 발견된 건 500밀리리터짜리 스프레이입니다. 이놈들 제대로 준비한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일본산 스프레이가 아니라 한국산입니다.”
“으음…….”
갑작스러운 상황이 전국에 생중계되면서 공포감은 더해졌다.
그러나 더 충격적인 것은 이번에 잡힌 범인의 정체였다.
“하지 사츠코. 나이가 열여섯 살입니다.”
“진짜 아이로군.”
“그렇습니다. 이 미친놈들이 아무래도 아이를 테러범으로 훈련시킨 것 같습니다.”
“미친놈들.”
보좌관의 보고를 송정한과 함께 옆에서 듣고 있던 노형진은 이를 빠드득 갈았다.
고작 열여섯 살짜리를 테러범으로 한국에 밀입국시킨 미친 종자들이라니.
“지금 범인은 입을 열지 않고 있습니다. 하는 말은 모노스가 한국에 임할 거라는 말뿐입니다.”
“하, 고문할 수도 없고, 진짜.”
송정한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어떻게 생각하나? 자네가 보기에도 이번 한 번으로 끝나지는 않겠지?”
“그럴 리가요.”
미친놈들이 한 번에 포기할 리가 없다.
어떻게든 하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CIA의 말로는 그들에게 가스를 사기 위해 접근하는 한국 세력도 있다고 하니 빠른 시일 내에 추적해야 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군. 이 상황에서 무슨 수로? 진짜로 범인을 고문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아무리 가스 테러범이라지만 고작 열여섯 살짜리다.
“더군다나 미국과 일본에서 범인을 내놓으라고 난리를 치는 모양이야.”
송정한이 우려하던 일이었다.
유일하게 잡은 범인이다.
일본에서는 다급하게 부모의 집을 털어 봤지만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즉, 부모 역시 모노스 교단에 빠져서 사라진 것.
“제가 한번 해 볼 수 있을까요?”
“음?”
노형진이 손을 쥐었다 폈다 하자 송정한은 살짝 그 손을 바라보다가 되물었다.
“가능하겠나?”
송정한은 노형진의 능력을 어렴풋하게 알고 있다.
“가능하겠지요. 최소한 지금보다는 나을 것 같습니다.”
“그래…… 그건 그렇겠지.”
송정한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내가 한번 자리를 마련해 보지. 일단 내 발언 덕분에 범인을 잡았으니 마냥 반대할 수는 없을 거야.”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