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4069)
기회는 함정일 때도 있다 (1)
계약 후 노형진이 다음 계획을 짜고 있자 서세영이 물었다.
“그런데 그 이두억이라는 사람은 왜 이런 소송을 한 걸까? 돈이 썩어 문드러지나? 돈이 없어서 하는 소송 아니야?”
“뭐, 장기적으로 보는 것도 있지만 상대방 변호사가 제대로 말해 주지 않은 것도 있겠지.”
현재 상황을 보면 이두억이 아무리 노력해도 30만 원 이상의 부양료가 나올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일단 이채미는 결혼해서 아이를 둘이나 키우는 입장이고 한창 아이들에게 돈이 들어가는 시점이다.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맞벌이를 하고 있지만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돈은 적지 않다.
그 말은 여유 자금이 별로 없다는 것을 뜻한다.
법원에서도 기존 생활을 기준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카드 사용 내역이나 지출 내역 같은 걸 참고하는데, 이채미의 말대로라면 여유 자금이 별로 없기에 이두억이 가지고 갈 돈도 거의 없다.
더군다나 재판부 입장에서는 부양이 법적으로 하나의 의무로 규정되어 있다고 해도 이두억의 범죄 사실을 모를 수가 없다.
일단 노형진과 서세영이 그걸 재판부에 제출했으니까.
그리고 재판부는 그런 학대 기록이 있는 경우 의외로 지급 금액을 사정없이 깎는다.
“아마 30만 원은 절대 넘지 않을걸.”
이두억은 열 받겠지만 현실이 그렇다.
“그런데 지급 변호사비가 표준 550만 원이잖아.”
그러니까 한 달에 30만 원 받는다고 치면 그걸 다 갚기 위해서는 못해도 2년은 걸릴 거라는 거다.
아마도 그 돈이 이두억이 가진 전 재산일 가능성이 높다.
“뭐, 뻔한 거지. 의뢰받고 사건이 개판 나도 입을 싹 닦는 거지.”
실제로 그런 변호사들은 한두 명이 아니다.
못 이길 사건도 이길 수 있다면서 일단 의뢰를 받은 다음, 지면 어쩔 수 없었다는 식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아마 이두억이나 그 변호사나, 서로 속이고 있는 상황일 거야.”
이두억은 이채미에게 행한 학대는 쏙 빼고 이야기했을 테고, 그 변호사는 평균 승소 비용이 얼마인지 말해 주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이두억은 한 150만 원에서 200만 원 정도는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뻔뻔하기도 해라.”
“뻔뻔하지. 그러니까 그런 짓거리를 하고 다니지.”
노형진은 그가 딱히 불쌍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결국 자업자득인 셈이니까.
“그리고 그 사실을 모르는 게 그의 인생이 망가질 가장 큰 이유라는 거지, 후후후.”
* * *
노형진은 가장 먼저 그의 주소지에 있는 행정 복지 센터를 찾아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복지 담당 공무원을 만났다.
“노형진 변호사라고 합니다. 이쪽은 서세영 변호사고요.”
“네, 안녕하세요. 이귀자입니다.”
이귀자는 피곤한 얼굴이었다.
그런 이귀자를 보면서 노형진은 혀를 끌끌 찼다.
‘힘들 만하지. 복지가 뭐 애들 장난도 아니고.’
하급 공무원 업무 중에서 가장 힘든 일을 뽑으라 한다면 단연 복지다.
왜냐하면, 어떻게 보면 이건 생존권과 이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원인 대부분이 극단적이고 편집증적인 경우가 많다.
인심은 지갑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듯이 당장 내일 복지 지원이 끊어지면 생계가 불투명한 상황인데 과연 예의 바르게 행동할 여유가 있을까?
그렇다 보니 극단적으로 대응하는 사람들이 많아 복지 담당 공무원은 대부분 순식간에 말라 간다.
“사실은 부탁드릴 게 있어서 왔습니다.”
“부탁요? 죄송한데 청탁 같은 건 안 받아요.”
부탁이라는 말에 이귀자는 기겁했다.
말이 부탁이지, 이것저것 해 달라는 인간이 얼마나 많은지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아, 물론 불법적인 것은 아닙니다.”
“불법적인 건 아니라고요?”
“네. 지극히 합법적인 겁니다.”
“그런데 그걸 왜 저한테…….”
“합법적이지만 현시점에서는 아무래도 힘든 일이니까요.”
그 말에 이귀자는 눈을 찌푸렸다.
그녀도 공무원이기에 지금 상황이 어떤지 누구보다 잘 안다.
“어디로 찾아가서 확인해 달라고 부탁하려는 거죠?”
“네.”
“하아~.”
복지직 공무원은 아주 부족하다.
매년 뽑고 또 뽑아도 부족하다.
매년 복지는 늘어나는데 인원은 부족할 수밖에 없는 게, 많은 사람들이 지랄 같은 진상에 질려서 그만두고 다른 직렬로 다시 시험 보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다섯 명이 해야 하는 걸 세 명도 안 되는 사람들이 하는 경우는 흔하고, 두 명이서 꾸역꾸역 하는 경우도 많다.
“이 주소지에 사는 노인분이 복지 대상인지에 대해 심사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건…….”
찾아가는 서비스 차원에서라면 가능하기는 하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못해도 반나절, 길게는 하루를 빼야 하는데, 인원이 부족해서 매일같이 허덕거리는 복지직 공무원에게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매일같이 위에서는 복지 사각지대니 뭐니 하면서 그런 사람을 보호하라고 불호령을 내리지만 인원도, 충분한 예산도 안 주면서 불호령만 내려 봐야 바뀌는 건 없다.
“시간이 나면…… 갈게요.”
“가능하면 빨리 부탁드립니다만.”
“저희도 너무 바빠서…….”
“아, 물론 공짜는 아닙니다.”
그 말에 이귀자는 찔끔했다.
“아니,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청탁은 안 돼요!”
높으신 분들이야 청탁받고 수십억 받아먹어도 멀쩡하고 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야 청탁이 일상이라지만, 복지직 공무원은 대표적인 힘없는 자리다.
청탁은커녕 음료수 한 박스 받는 것만으로도 위험해지는 그런 자리.
“압니다. 돈 같은 건 못 드리죠. 대신에 자원봉사를 하고 싶습니다.”
“자원봉사요?”
“네. 이 복지 분야가 은근히 자원봉사자를 많이 필요로 하지 않습니까?”
필요하다. 많이 필요하다.
원래 복지 분야에서는 힘쓸 수 있는 사람이 많이 필요하다. 정부에서 쌀이나 물품을 많이 지원해 주니까.
문제는 공무원 업계의 여초 현상이 심해져서 그런 무거운 짐을 옮길 사람이 부족하다는 거다. 특히 복지 분야는 그런 현상이 더더욱 심한 편이다.
어떻게 남자가 들어와도 질이 나쁜 선배들 탓에 그런 일을 거의 혼자 하면서 민원인들의 온갖 지랄까지 감당하다 보면 결국 그들도 성질이 나서 사표를 던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원하시는 시점에 열 명 정도 자원봉사를 하러 오겠습니다.”
“원하는 시점에 열 명의 자원봉사자라니…….”
어차피 받지도 못하는 돈보다는 그게 훨씬 더 군침이 당기는 이귀자였다.
“두 번 정도요.”
그리고 두 번이라는 말에 이귀자는 마음이 확 기울었다.
‘그렇잖아도 조그마한 행사가 있는데.’
남자 직원이 없어서 그때는 또 어떻게 넘기나 하는 생각에 정신이 아득해지던 차였다.
전에는 공익 근무 요원을 부려 먹었지만 노형진이 공익 근무 요원 고발 시스템을 만들어 두는 바람에 요즘은 그 짓도 못 한다.
“진짜로요? 하지만 심사나 신청은 제가 받을 수 있지만 허가는 제 소관이 아니거든요.”
“압니다.”
공무원에게 와서 지랄하면 통과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런 공무원에게는 결정 권한이 없다. 그저 심사 신청을 받은 걸 위로 올리는 것뿐이다.
“가셔서 심사 신청만 해 주시면 됩니다.”
“심사 신청만 해 주면 된다 이거죠?”
“네. 그걸 보통 선진 공무라고 한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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