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508)
“미안하군…….”
서승진은 진심으로 미안한 얼굴이 되었다. 자신이 부탁한 것이 이렇게 위험한 것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미안해하실 거 없습니다. 스타일의 문제니까요.”
서승진은 인권 변호사다. 하지만 학문적인 법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안 되는 경우가 제법 많지.’
변호사로서 노형진은 증거를 얻을 수 있다면 위험한 도전이라도 하는 타입이다.
“그러면 어떻게 대응할 건가요?”
김소라는 고개를 갸웃하면서 물었다.
“글쎄요……. 일단은…… 총기류는 대응하지 않아도 되겠지요. 전문 밀수꾼이나 범죄자도 아니고 밀수 총기를 구하는 건 힘드니까요.”
설사 구한다고 해도 대한민국에서 총기를 이용한 살인 사건은 무척이나 관심을 받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여자도 분명 머리를 쓸 거란 말이지?’
힘이 부족하다. 더군다나 전보다 나이를 더 먹었고 딸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다. 자신을 무력화하기 위한 다른 방법을 찾아내려고 할 것이다.
‘다만 그게 뭔지 알 수 없다는 게 문제지.’
노형진은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 * *
“만나자고요?”
“그래. 이런 이야기를 설마 전화상으로 할 거라 생각은 아니겠지?”
노형진이 전화하자 자연스럽게 만나자고 하는 안말숙. 뭐 열심히 조용한 장소를 찾아다녔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어디서 만날까요?”
“완다랜드에서”
“완다랜드?”
노형진은 그곳이 어딘지 모르기 때문에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인터넷을 찾아봤는데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왔다.
‘이건 뭐, 바보도 아니고.’
완다랜드는 개장도 못해 버린 놀이동산이었다. 모 지자체가 지방에 만들어 보겠다고 야심차게 시작했는데 애초에 인구가 많은 지역도 아니었고 주변 대도시에 이미 놀이동산이 있었기 때문에 수익성도 좋지 않았고 토지 수요 과정에서 분란이 일어나 망해서 결국 건설사의 배만 불려 준 흔해 빠진 국가 시책의 결과물이었다.
“여기는 모르는데요?”
노형진이 모르는 척 최대한 목소리를 깔고 대답하자 아니나 다를까, 상대방은 그럴 거라는 듯 자세한 설명까지 해 줬다.
“못 찿겠으면 인터넷에 찾아봐. 오는 방법은 거기 나와 있으니까.”
“뭐, 그렇죠.”
“그때 보도록 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전화기를 끊어 버리는 안말숙.
노형진은 피식 웃으면서 전화를 끊었다.
“완다랜드에서 보자고 하나?”
“네.”
“아주 대놓고 죽이겠다는 거군.”
“그러네요.”
버려진 유원지에 사람이 올 리 없다. 더군다나 그 넓은 곳에 누가 있겠는가? 대화하고자 한다면 자신의 사무실에서 하는 것이 제일 안전하다. 그런데 완다랜드로 오라는 것 자체가 무슨 목적이 있다는 뜻이다.
“자네를 만만하게 보는 건가?”
“일단 그쪽에서는 절 전과자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 의심할 거라 생각하지 않는 거죠.”
“전과자라는 게 멍청하다는 뜻은 아닌데?”
“그것도 고정관념이죠.”
똑똑한 사람이라면 범죄를 안 저지른다. 그렇게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래서 전과자들이 멍청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확실히 전과자들이 학력이 낮기는 하다. 하지만 그건 그들이 멍청해서라기보다는 상당수의 전과자들이 생계에 밀려서 범죄를 저지를 만큼 공부에 대한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똑똑한 녀석들 중에서도 범죄자는 많으면 또한 잡혀 오는 사람도 많다.
“그나저나 장소를 정했다는 건 자네를 제압할 방법이 있다는 것이겠지?”
“그렇겠지요.”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당당하게 만나자고 할 리 없다.
‘사람을 동원할까? 그건 무리야. 저런 타입은 자기 스스로 하는 타입이야. 절대 남에게 맡기지 않아. 그리고 뒤통수를 한번 맞아 봤으니 절대로 증인을 남기고 싶어 하지 않겠지.’
그때도 그랬다. 처음 하는 것인 만큼 부담스러워서 누군가를 쓰는 게 정상임에도 불구하고 안말숙은 직접 손을 썼다.
‘여자가 남자를 제압한다. 그것도 건장한 남자를……. 접근하기에는 무리가 있고…….’
노형진은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를 생각하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뭐, 어떻게든 될 것 같네. 후후후.’
* * *
“여긴가.”
노형진은 주변에서 빌린 허름하다 못해서 굴러가는 게 신기할 정도의 차에서 내려서 안으로 들어갔다. 어디서 바라보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너무 좋은 차를 끌고 가면 의심하게 뻔했기 때문이다.
“을씨년스럽고 좋네.”
노형진은 선글라스를 쓰고는 주변을 둘러보면서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여기다.”
얼마 들어가지 않아서 회전목마 근처에서 조용히 나타나는 안말숙. 그녀는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혼자 왔나 보네?”
“뭐, 방금 출소한 범죄자랑 친하게 지낼 사람은 없거든.”
노형진은 히죽거리면서 웃었다. 얼핏 보면 네가 무슨 짓을 하든 그건 어렵지 않게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처럼 보였다.
‘그렇게 보여야지.’
사실 누구나 의심할 만한 상황이다. 그걸 자연스럽게 넘어가려면 이쪽이 과도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으면 된다.
“그리고 나중에 그 새끼가 떡고물을 달라고 엉겨붙으면 나도 귀찮고 말이야.”
“그렇단 말이지.”
“그나저나 마음은 결정한 거야? 잘한 거야. 내가 혼인신고하만 하면 최소한 정신병원비는 내줄 거 아냐. 그러면 딸은 길바닥에서 굶어 죽지는 않아도 되겠지.”
히죽거리면서 다가가는 노형진이었다.
‘자, 그럼 준비하신 카드를 꺼내 보시지.’
노형진이 다가오자 결심을 굳힌 듯 슬쩍 손을 뒤로 감추는 안말숙.
“뭐 이상한 짓 하려고? 그래 봤자야. 아무리 그래도 내가 당신 같은 노친네한테 당할 것 같아? 그냥 내 말대로 하는 게…… 끄아아악!”
그 순간 얼굴에 날아온 무언가. 그리고 그걸 뒤집어쓴 노형진은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면서 바닥을 나뒹굴었다.
“아악! 내 얼굴! 내 얼굴!”
노형진이 바닥을 나뒹굴고 있자 안말숙은 바로 옆에 있던 몽둥이를 들어서 노형진을 마구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커헉!”
“너 같은 새끼한테 주려고 내가 악착같이 돈 모은 줄 알아?”
“크헉!”
“죽어! 죽어, 이 새끼야!”
마구 내리치는 안말숙. 그러다가 그게 부족하다고 생각한 건지, 아니면 길게 끌 생각이 없었던 건지 그녀는 자신의 가방에서 제법 기다란 칼을 꺼내 들었다.
“죽어!”
다짜고짜 노형진을 찌르기 위해서 달려드는 안말숙. 하지만 다음 순간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분명 바닥을 나뒹굴고 있어야 하는 노형진이 벌떡 일어나서 양손으로 칼이 들어오는 것을 막았던 것이다.
“어떻게…….”
“으으으…….”
노형진의 손을 타고 들어오는 그녀의 기억.
“그랬나……. 네년이 조갑만 가족을 다 죽였구나……. 그때…….”
“그래……. 그 그 새끼는 죽어라 내 말을 안 들었어. 내 평생의 모은 돈은 푼돈이었지. 집 두어 채 사면 끝이었어. 그걸 몇십 배로 불릴 수 있는 기회였는데…… 그럴 수 있는 기회였는데! 그 녀석이 결사반대를 했어.”
그 당시 기억이 떠오르자 노형진은 흠칫했다. 죽어 가는 사람의 고통. 그리고 절망감이 그대로 느껴지는 시선. 그 시선을 마주하면서 웃고 있는 안말숙.
“그 녀석이 자초한 거야.”
“그러면 강찬술은 그냥 놔줘도 되잖아!”
“미쳤어? 내가 완전히 혐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인데? 그 멍청한 것이 그때 들어온 게 잘못이지. 덕분에 난 편하게 혐의에서 벗어났지.”
처음에는 누군가 다른 사람이 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도 죽일 생각을 하고 기습하려고 안방으로 숨었다. 그런데 그녀의 생각과 다르게 상대방은 사람을 살리려고 하다가 결국 도망갔다.
“뭐 어때서? 인생 쓰레기 같은 도둑놈 하나 사형당하는 것뿐인데. 네놈도 그 녀석과 같은 도둑놈이잖아?”
“이익…….”
“죽어……. 그러니까 죽어. 너 같은 도둑놈이 죽어야 세상이 깨끗해져.”
“지금이라도 자수해.”
“미쳤어? 호호호. 너만 죽이면 내가 조갑만 그 새끼를 죽인 걸 누구도 모르는데 내가 왜? 호호호. 그러니까 죽어. 어차피 살아 있어 봐야 누군가 도둑질하면서 살 거잖아. 그러니까 죽어!”
어떻게 막기는 했지만 가스총을 뒤집어써서 그런지 점점 힘에서 밀려서 안으로 파고들어 오는 칼날.
칼날이 드디어 노형진의 배에 닿는 듯하자 안말숙은 희열을 느끼면서 고함을 질렀다.
“죽어! 죽으라고…… 어?”
그런데 느낌이 이상했다. 과거와는 달랐다. 과거에 조갑만의 가족을 죽을 때의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쑥 들어가는 게 아니라 옆으로 비껴가는 듯한 느낌. 그리고 둔탁한 저항.
“어?”
그제야 안말숙은 노형진의 입에 미소가 걸려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내가 바보로 보여요?”
“뭐?”
“내가 봐서는 당신이 바보네요.”
“그게 무슨…… 꺄아악!”
갑자기 노형진이 박치기를 하자 자신도 모르게 칼을 놓치고 바닥을 나뒹구는 안말숙.
“자백 감사합니다.”
노형진은 미소를 지으면서 칼을 발로 차서 저 멀리 떨어트렸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숨어 있던 사람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어…… 어떻게……?”
“너무 뻔하잖아요?”
자신을 죽이려고 여기에 불러온 것이다. 그렇다면 일단은 자신을 제압해야 한다. 문제는 힘으로는 안 된다는 것.
“결국은 남은 건 가스총이죠.”
스턴건은 근접해서 작동해야 하기 때문에 도리어 당할 수도 있다. 더군다나 크기가 커서 티도 많이 난다.
“그래서 미리 준비를 좀 했지요.”
피부에 잘 보이지 않게 코팅제를 발라서 피부를 보호하고 보호할 수 없는 눈은 선글라스를 썼다. 물론 고통이 있기는 했지만 못 참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당신이 마지막에 칼을 쓸 거라는 것은 알고 있었으니까.”
전 살인에서도 칼을 썼다. 사람은 살인을 할 때 선호하는 흉기가 있기 마련이다. 그게 전문 살인범이든 아니든 말이다.
“그래서 방검복을 두둑하게 입고 왔지요.”
방검복으로는 불안해서 아예 안쪽으로 제법 두꺼운 책도 하나 넣어 왔다.
“아까 그럼 힘에서 밀린 건…….”
“힘에서 밀린 게 아니라 밀리는 척하면서 책이 있는 곳을 칼날의 방향을 잡은 겁니다.”
노형진은 얼굴을 물수건으로 문지르면서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안말숙은 혼이 나간 듯 멍하니 서 있었다.
“이럴 수가…….”
물수건으로 문지르자 나오는 노형진의 모습. 노쇠한 나이 먹은 범죄자가 아니라 젊은 청년의 모습이 나오자 그제야 안말숙은 자신이 함정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덕분에 의뢰인을 풀어 줄 수 있겠네요. 후후후.”
그 말에 안말숙은 멍하니 노형진을 바라보다가 찢어지게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끼아아아아아!”
그렇게 텅 빈 놀이동산에 비명이 울려 퍼졌다.
* * *
“조용하네요.”
“섭섭합니까?”
“아니요…….”
강찬술은 교도소에서 나오면서 주변을 보고 중얼거렸다.
“도리어 너무…… 좋아요…….”
그가 들어갈 때는 온갖 곳에서 와서 취재를 했다.
저지르지도 않은 죄를 뒤집어쓰고 고문당하고 그 후에 사형까지 언도받아서 교도소에 들어간 지 15년.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로 교도소 바깥으로 나온 그는 세상이 바뀐 느낌이었다. 아니, 바뀌었다.
“실감이 안 납니다.”
“아마도 며칠 지나면 실감이 날 걸세. 스마트폰이라고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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