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846)
“설구강 부장? 부장? 잠깐, 아까 과장이라고 하지 않았어? 그런데 왜 부장이야?”
분명히 피해자 남편인 한준식은 과장이라고 했다. 그런데 임원 목록에는 부장으로 표시가 되어 있다.
“사고 쳐서 강등당했나? 그래서 과장으로 알고 있던 건가?”
“그랬으면 한준식이 부장으로 알고 있지, 과장으로 알고 있지는 않지.”
“그럼?”
“승진한 거지.”
“이 상황에?”
“그래. 이해가 가지?”
이 정도 사건을 회사에서 모를 리 없다. 그런데 징계는커녕 도리어 부장으로 승진되었다.
“더군다나 나이가 고작 스물아홉 살이야. 이해가 가?”
고작 스물아홉 살에 직원 오백 명짜리 기업의 부장을 달고 있다, 그것도 사고를 친 상황에서.
“제대로 실드 치겠다 이거구나.”
“그래. 이쪽은 이미 민사 감안하고 준비하고 있는 거야.”
과장의 월급이 많다고 해 봐야 연봉 6천만 원 정도다. 그렇지만 부장급쯤 되면 1억 이상이 될 수도 있다.
아니, 1억 이상 줄 게 뻔했다.
“기업의 인원이 오백 명쯤 되면 작은 규모가 아니야. 그러니 감사가 있어서, 아무리 자기 회사라고 해도 돈을 퍼 줄 수는 없으니까.”
그러면 감사에 걸릴 수도 있다.
이 정도 규모가 되는 기업에 외부 투자가 없을 리 없으니, 그렇다는 건 그들이 항의하면 문제가 생긴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부장으로 올려서 돈을 주려는 속셈이야.”
“큭.”
너무나 뻔하게 보이는 속셈에 손채림은 어이가 없었다.
“투자자들이 안 잘라?”
“투자는 인성이 아니라 가치를 보고 판단해. 그리고 애석하게도 이 기업의 가치는 상당히 높거든. 공시 같은 걸 봐서는, 사장이 인성은 쓰레기인 것 같지만 유능한 모양이고.”
그렇다면 투자자들은 불만이 없다. 일단 자신들에게 돈을 줄 테니 말이다.
“아니, 다 가진 놈이 왜 그런 짓을 한 거야?”
손채림은 이해하지 못한다는 얼굴이 되었다.
* * *
“차 버렸거든요. 아니, 찬 것도 아니죠. 거절했다고 하는 게 맞겠네.”
“네?”
일단 일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왜 그렇게 심각한 폭행이 벌어졌느냐 하는 것에 대한 조사였다.
상식적으로 남의 집에 들이닥쳐서 폭행하고 유산시킨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짓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증언은 어렵지 않게 나왔다. 직원들이 많으니까.
“언니가 원래는 조립부에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난데없이 서무과로 발령이 나더라고요.”
“그래요?”
“네. 갈 이유가 없었는데 말이지요.”
애초에 입사를 조립 쪽으로 했기에 서무에 관해서는 아는 게 전혀 없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서무과로 발령된 것이다.
“시간이 지난 후에 알았지요, 설구강 그 개자식이 발령 냈다는 걸.”
“개자식?”
“우리는 그 새끼를 발정 난 개자식이라고 불러요. 반반한 얼굴만 보면 발정 나서 날뛰어서요.”
“그래요?”
“네. 언니한테는 특히 좀 심하게 집착하기는 했죠. 우연히 본 모양인데, 그 후부터 아주 미쳐서 날뛰었죠.”
피해자인 강성아가 발령을 받은 이후에도 설구강은 끊임없이 추파를 던지면서 귀찮게 했다고 한다.
“하지만 언니는 관심도 없었어요. 그랬더니 나중에는 회사 앞에다가 출장 레스토랑을 불러 놓고 다이아 반지까지 들고 나타났다니까요.”
“회사에요?”
손채림은 다시 한 번 물었다.
조용한 곳도 아니고, 수백 명이 일하고 있는 회사에서 그랬다고?
‘미친 거 아냐?’
여자들이 이벤트를 좋아하기는 한다. 그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상대방이 내 남자일 때, 그리고 부담이 되지 않을 때의 얘기다.
하지만 설구강은 내 남자는커녕 피하고 싶은 인간이다.
그런데 수백 명이 보는 앞에서 출장 레스토랑까지 부른다?
‘완전 개념 엿 바꿔 먹었네.’
척 봐도 돈만 있으면 어떤 여자든 취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게 느껴지는 행동이었다.
“그래서요?”
“언니는 당연히 가뿐하게 씹었지요.”
그 당시 이미 한준식과 사귀는 사이였고 더군다나 결혼까지 약속한 입장에서 발정 난 개새끼라는 설구강을 만나려고 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결혼을 하자마자 그만둔 건가요?”
“네.”
그런 미친놈이 있는 회사라면 당연히 그만두려고 할 것이다.
하물며 애까지 생긴 상황에서는 그 미친놈의 존재 자체가 스트레스이니 아이한테 좋을 리 없다.
“그 후에는 뭐 바뀐 건 없어요?”
“성격이 더 지랄 같아진 거? 자기를 배신했다고 게거품을 물면서, 복수하겠다고 길길이 날뛰었다네요.”
“복수하겠고? 배신?”
“웃기네. 웬 배신?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그러니까요. 말이 돼요?”
배신이라는 것도 서로 어떤 사이가 되어야 성립되는 거지, 아무 사이도 아닌데 배신이라니.
“전형적인 스토커인데?”
“응?”
“그런 거 있잖아,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그러면서 그게 진실이라고 믿는……. 이걸 무슨 병이라고 하던데.”
“리플리 증후군?”
“뭐, 비슷할 거야. 하여간 자기 머릿속에서는 이미 자기들이 결혼하기로 한 걸로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그런 상황에서 난데없이 다른 남자와 결혼했으니 분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여간 몇 달간 좀 조용하다 싶었지요.”
“몇 달간 조용했다고요?”
“네.”
결혼하고 난 후에 처음 한 달간은 난리도 아니었다고 한다.
“형부는 모를 거예요.”
“모르다니요?”
“차단해도 자꾸 다른 번호로 거니까 핸드폰도 바꾸고, 신혼집도 비밀로 하고…….”
“아!”
“그러니까 나중에는 제풀에 지쳤는지 포기하더라고요.”
‘포기한다?’
그럴 리 없다.
노형진이 알기로는 그런 정신병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세계를 배신한 이를 용서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아니,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수십 년 동안 그 원한을 품고 있다가 복수하는 것이 그들이다.
“아니, 고작 치정 문제야?”
“치정 문제도 아니지. 짝사랑이 깨진 것뿐이지.”
그런데 사람을 반병신으로 만들고 애까지 죽인 것이다.
“그 후에 설구강은 어떤 상태인가요?”
“멀쩡해요.”
“멀쩡하다?”
“네.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모양이던데요? 어차피 승진해서 우리가 자주 볼 수는 없지만.”
승진하면서 사무실을 옮긴 덕분에 일선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를 볼 일이 없어졌다. 그래서 다들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노형진은 진술해 준 여직원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물론 그에 상응하는 대가도 지불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한참을 고민에 빠졌다.
“왜?”
“이건 아무리 봐도 심신상실이 아니야.”
“내가 봐서는 심신상실이 맞는 것 같은데?”
“응? 뭐라고?”
아까만 해도 화를 내던 손채림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말.
그러나 그건 그저 말장난일 뿐이었다.
“봐 봐. 누가 봐도 미친 새끼잖아. 발정 난 개새끼라……. 누가 지었는지 참 별명 잘 만들었네.”
“발정 난 개새끼라고 해도 심신상실은 아니지.”
“그렇기는 하지. 그런데 뭐가 이상한 거야?”
“집으로 왔잖아?”
“그렇지.”
“어떻게 집을 찾았지?”
“응?”
“아까 여직원 말 못 들었어? 여직원이 그랬잖아, 그 스토커 짓 때문에 신혼집도 비밀로 했다고.”
분명히 그랬다. 그래서 혹시나 알게 될까 두려워 그 흔한 집들이조차도 자신들과, 아주 친한 일부만 불러서 했다고 했다.
“그들 중 누가 알려 준 거 아냐?”
“그럴 수도 있지만…… 과연 알려 줄까? 너 같으면 알려 주겠어?”
“미쳤어? 무슨 꼴을 보라고.”
“거봐.”
가장 친한 사람들만 불러서 집들이를 했다는 것은, 설구강이 알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은 안 불렀다는 뜻이다.
그리고 설구강이 무슨 짓거리를 해 왔는지 온 회사 사람들이 다 아는데, 그에게 잘 보이겠다고 강성아를 배신하고 그 주소를 알려 줄 사람은 없을 듯했다.
“그런데 알아내서 찾아갔단 말이지.”
“그러고 보니 이상하네.”
사건을 접수할 때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경찰은 왜 그걸 몰랐지?”
“전에 다니던 직장의 상사라잖아. 그러니까 주소를 자세하게 알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이러한 스토커 행위자에게 자신의 주소를 알려 주려고 하는 사람은 없다.
“거기에다가 남편이 화를 낼까 봐 비밀로 한 모양이야.”
그렇다면 경찰이 몰랐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본인은 현재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 만큼 심각한 상황이니까.
“아무래도 이거, 미리 준비한 것 같은데?”
“미리 준비한 것 같다고?”
“그래. 너 음주로 인한 심신상실 범죄가 얼마나 될 것 같아?”
“우리나라에서는 높지 않아?”
“판결 말고 실제로 말이야.”
“음?”
한국에서 음주로 인한 심신상실을 감경의 사유로 잡고 있기는 하지만, 문제는 범죄자들도 그걸 알고 있다는 것이다.
“설마…….”
“그래. 왜 해외에서 음주로 인한 심신상실을 인정하지 않는지 알아? 그건 그게 핑계가 되기 때문이야.”
상식적으로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서는 소위 말하는 ‘꽐라’ 상태가 되어야 한다.
그러면 ‘블랙아웃’이라는 단기 기억상실 현상이 벌어지는데, 그때 벌어지는 일을 기억하지 못하면 그제야 심신상실이 인정된다.
“그런데 그걸 알고 범죄자들이 그걸 주장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거지.”
그래서 많은 범죄자들이 심신상실인 척 범죄를 저지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대부분 걸리잖아?”
“그래. 그런데 그게 더 문제야.”
“응?”
“범죄를 저지르고 난 후에 심신상실을 주장하는 거야 반박할 게 많지.”
손채림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지만 애초에 심신상실을 노리고 범죄를 설계했다면?”
손채림은 자신도 모르게 부르르 떨었다.
“설마…….”
“설마가 아니야. 청계의 악몽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법무 법인 청계.
노형진에게 와해되기는 했지만 그들은 범죄 설계가 전문이었고, 그렇게 해서 세력을 쌓아 올렸다.
“주요 핵심 멤버들은 처벌받았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은 처벌받지 않았어. 그리고 설계자들 중 일부는 이미 나왔을 가능성이 높고.”
“아!”
변호사 자격이 박탈되려면 변호사회가 자격 박탈을 결정해야 한다.
문제는 끼리끼리 모인다고, 대한민국에서는 변호사 자격 박탈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왠지 설계한 것치고는 좀 어설픈 것 같은데? 나도 그 기록을 봤지만, 청계 녀석들이라면 이렇게 어설프게 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그건 그런데…….”
확실히 어설픈 방법이기는 하다.
주취로 인한 심신상실은 확실히 법에서 인정하는 방식이기는 하지만 그걸 인정하는 비율은 사람들의 생각과 다르게 그렇게 높지 않다.
‘청계라면 다른 방식을 썼을 텐데.’
어찌 되었건 기록이 남는 이런 방식은 청계가 선호하는 방식은 아니다. 그러니 청계가 아닐 가능성도 높은 것이다.
“일단은 여러 방향으로 알아봐야겠어. 살아남은 청계 녀석들이 끼었을 수도 있고, 다른 녀석들이 모방했을 수도 있으니까.”
“그럼 뭐부터 할 건데?”
“글쎄. 일단은…… 검사부터 찔러봐야겠지?”
이 사건에서 카드를 쥐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검사다. 그러니 그를 만나 보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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