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848)
“어떻게 된 건지 이야기해 보시죠.”
“그냥 내가 무능해서…….”
“검사의 무능은 이해합니다만, 판사까지 그렇게 동시에 무능해질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지요.”
“큭.”
“제가 누군지 모르지는 않으실 텐데요?”
노형진은 법조계에서 적지 않게 널리 알려진 사람이다. 그러니 황학규가 모를 수는 없다.
“씨발…… 나보고 어쩌라고.”
양쪽에서 압력을 가하자 그도 결국 손을 다 들 수밖에 없었다.
“그냥 상황만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솔직히 지금 상황, 저도 이해가 안 가거든요.”
남의 집에 들어가서 부녀자를 폭행하여 유산까지 하게 만든 것은 강력 범죄다.
그런데 주취 중 심신상실을 주장하면서 풀어 준다?
그럴 수도 있다. 돈이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는 대한민국이 아닌가?
더군다나 그들은 돈이 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검사의 사무실에 검사를 감시하는 직원을 둘 수는 없다.
물론 그의 회사가 크기는 하지만 사실 직원 오백 명 정도 되는 회사는 생각보다 많다. 그런데 그 정도 가지고 검사를 겁박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
그래서 노형진은 확실한 뭔가가 필요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행동을 봐서는 황학규는 감시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상태인 듯하다. 그런데 저항하지 못한다는 것은 다른 이유가 있다는 뜻.
“저희랑 친한 척해도 손해일 겁니다. 하지만 사실만 말씀해 주시면 저희도 모른 척해 드리지요.”
“염병…….”
황학규는 한참을 입을 다물고 고민하다가 결국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상황에서 벗어나는 길은 한 가지뿐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런 기회가 오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힘만으로는 벗어날 수가 없으니 누군가 자신을 대신해서 싸워 주기를 바란 것이다.
“그래, 감시받고 있다.”
“누군데요?”
“검찰총장.”
“뭐라고요?”
검찰총장이라는 말에 노형진의 눈썹 한쪽이 스윽 위로 올라갔다.
이건 자신이 생각하던 것 이상으로 큰 건수였기 때문이다.
‘아니, 왜?’
검찰총장은 황학규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높은 레벨이다.
물론 황학규가 나이가 적지 않은 사람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아주 높은 직급도, 정치적인 사건이나 사회적인 사건을 담당하는 사람도, 그 유명한 정치 검사도 아니다. 그런데 왜 그를 감시한단 말인가?
“멋모르고 항고한 것 때문에 그래.”
“항고요? 설구강 사건 말입니까?”
“그래.”
설구강 사건이 떨어졌을 때 황학규에게는 적당히 하고 풀어 주라는 비공식적 명령, 즉 오더가 떨어졌다.
한두 번 그런 일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처음에는 그러려고 했다.
“하지만 그 피해자가…….”
“너무 매달렸군요.”
“그래, 씨발…….”
거기에다 얼마 전에는 자신에게 아이까지 생겼다. 그래서 심적으로 동화되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별생각 없이 항고해 줬는데…….”
“그때 그 감시자가 붙어 버렸다?”
황학규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거리는 것으로 자신의 입장을 표명했다.
“왜 위에서는 설구강을 그렇게 보호하려고 하는 거죠?”
“나야 모르지.”
설구강의 큰아버지가 큰 기업을 운영하기는 하지만 검사에게 감시를 붙여 가면서 보호할 정도는 아니다.
더군다나 본인도 아니고 조카일 뿐인데.
‘그렇다고 설구강의 부모가 잘난 것도 아니고.’
설구강의 부모는 그저 그런 기업에 다니는 사람이다. 게다가 사장도 아니고 직장인이다.
그에 반해서 설구강의 큰아버지는 자수성가해서 일어난 사람이다. 그러니…….
‘이런 씨발.’
노형진은 순간 그림이 그려졌다.
정작 설구강에게 집중하다 보니 그 큰아버지라는 녀석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야.’
자수성가한 사람은 자긍심이 대단하다. 그 때문에 당연히 자존감도 높고 자존심도 높다.
그런 사람이 무능하고 쓰레기 같은 자기 조카에게, 조카라는 이유만으로 부장 자리를 줄 리 없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더군다나 3천만 원 정도만 내면 끝나는 사건이라면, 부장 자리는 너무 오버하는 셈이다.
“그래서 그런 거군요.”
자신들의 존재 자체가 부담된다.
황학규는 자신이 감시받고 있는 상황에서 노형진이라는 존재는 여러모로 부담되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냥 나가라고 했지만 노형진이 끝까지 나가지 않아 나중에는 온갖 공격적인 말을 다 한 것이다.
“도대체 왜 그 녀석을 보호하려고 하는 겁니까?”
“나야 모르지. 나 같은 일반 검사가 뭘 어쩌라고?”
짜증을 내는 황학규.
아무리 봐도 사실을 말해 줄 것 같지는 않았다.
‘어쩔 수 없지.’
노형진은 그의 몸에 손을 대고는 다시 한 번 물었다. 그의 기억을 읽어 내기 위해서였다.
“확실히 말하세요. 이번 사건에 대해서 아는 게 뭡니까?”
“난 아무것도 모른다고, 씨발. 누구는 이렇게 황당한 소리 하고 싶어서 하는 줄 알아? 그러니까 나 좀 그만 괴롭히라고.”
반쯤은 애원하는 목소리로 말하는 황학규.
그때 흘러들어 오는 기억을 읽은 노형진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모른다?’
진짜로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도대체 왜 그 단순한 일로 자신에게 감시가 붙을 정도인지 이해도 하지 못하고 있었고, 설구강이나 다른 사건에 대해서도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뭐지?’
노형진은 그가 뭔가를 알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는 게 확실했다.
‘그런데 사람을 붙여서 감시까지 한다? 이건 말이 안 되는데.’
검찰총장쯤 되는 존재가 사람을 감시하라고 할 정도면 이만저만 큰일이 아니다.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어.’
노형진은 왠지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이었다.
>6장. 나비효과>
“아무것도 모른다고?”
“그래. 내가 봐서는 아무것도 몰라.”
“그런데 왜 설구강을 봐주라고 한 거야?”
“그러니까 의문인 거야.”
설구강은 그냥 병신이다. 증언을 봐도 그렇고 말이다.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사람은 설구강 하나뿐이잖아? 그 녀석이 돈이 넘쳐서 그런다고? 그건 말도 안 되는데?”
“법적으로는 그런데……. 내가 봐서는 그 큰아버지라는 인간이 관련이 있을 것 같아.”
“큰아버지?”
“그래. 설구강의 큰아버지인 설득현 말이야.”
기업을 운영하는 그는 설구강을 고용하고 이번에 부장으로 승진시켰다.
“그게 왜? 친척을 고용하는 기업은 많잖아?”
“그건 그렇지. 그런데 정작 자신의 형제는 고용하지 않았잖아.”
“응?”
“네 말마따나 성공하면 형제자매를 챙기는 것이 본능이야. 한국 사람들은 그걸 자연스럽게 생각하지. 그런데 정작 자신의 형제는 고용을 안 하고 조카를 고용한다? 더군다나 개차반이라고 소문이 난 녀석을?”
“그러고 보니 이상하네.”
정상적인 사업가라면, 설사 불쌍해서 고용은 해 준다 해도 중요한 자리는 주지 않는다.
도와주는 것은 할 수 있지만 부장급이 되면 그 파워는 상상 이상이 되기 때문이다.
“전에는 배상금 때문에 승진시킨 거라면서?”
“그랬지. 그런데 생각해 봐. 연봉 1억이야. 배상금은 3천에서 5천이고. 지금도 5천은 주고 있을 텐데 승진시키면 매년 5천을 계속 더 준다는 소리가 돼. 그건 말도 안 되지. 불쌍해서 줄 수는 있지만, 사업가적 마인드로는 그건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 되어 버려.”
예전에는 그저 단순하게 생각했지만 조금만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확실히 이상한 점투성이다.
“결국은 그 녀석을 한번 만나 봐야 한다는 거네.”
“그거 말고는 답이 없을 것 같은데?”
“하지만 만나려고 하지도 않던데?”
“그래?”
“무태식 변호사님이 몇 번 시도했어. 하지만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어. 딱 한 번 통화가 되기는 했는데, 관심도 안보이고 반성도 안 하고.”
“관심도 안 보이고 반성도 안 한다라. 복수는 끝났다 이건가?”
“복수?”
“그래.”
진짜로 사고였다면, 술에 취해서 그랬다면, 반성의 기미가 보여야 한다.
“그런데 관심이 없다는 건 복수하고 싶었다는 거지. 결국 우리 예상이 맞은 거야. 애초에 작전을 짜서 접근했다는 거지.”
“아니, 도대체 왜?”
“그러니까. 이번 사건은 너무 복잡한 것이 많아.”
기본적인 예상과는 너무나도 다른 반응을 보이는 두 집단, 검찰과 법원.
거기에다 마치 처벌받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안다는 듯이 떵떵거리면서 다니는 가해자인 설구강.
‘처벌받지 않을 것을 안다?’
노형진은 그 순간 뭔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어쩌면 그게 사실일지도 모르겠군.’
그런 정신병을 가진 놈이라면 당연히 복수를 외칠 것이다.
자기 혼자 망상하면서 상대방에게 자신의 고통을 뒤집어씌우는 녀석이니까. 그리고 그 죄에 대해서, 뒤집어쓴 사람에게 복수하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 복수는 성공했지.’
문제는 그 복수를 누군가가 도와줬다는 것. 그리고 지금도 도와주고 있다는 것.
‘그 녀석의 기억을 읽을 수 있다면 좋겠는데.’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자신들을 만나려고 하지도 않고 그의 물건은 나오지도 않는다.
직원들의 말에 따르면 회사에 나오는 날보다 안 나오는 날이 더 많다고 했다.
“그 녀석에 대해서 알 만한 사람은 없을까?”
“없겠지. 회사에서도 거의 왕따였다는데. 아니, 왕따 맞더라. 사람들이 그 인간이랑 이야기도 하지 않으려고 했고, 특히나 여자들은 더더욱 그랬대,”
조금만 이야기를 나눠도 자기에게 관심이 있는 거라고 생각하면서 추근거렸기 때문이다.
“뭐 기껏해야 사장 정도?”
“사장?”
“그래. 큰아버지라고 하니까 사장은 알겠지.”
“오호라!”
그 순간 노형진의 머릿속에 번개같이 좋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넌 천재야.”
“응?”
졸지에 천재 취급을 받은 손채림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 * *
“안녕하세요. 카우보이 자산관리의 한국 지부를 담당하고 있는 유소미라고 합니다.”
유소미는 새론의 정보부에 속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연기 지망생이었고 연기를 잘했기 때문에 이번 작전에 동원되었는데, 난데없이 투자 관리사의 직원으로 나타났다.
‘도대체 어딜 봐서 20대라는 건지. 거참…… 역시 여자들의 화장이란. 아니, 이 정도면 분장이라고 해야 하나?’
노형진은 유소미를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실제로 그녀는 20대 중반의 창창한 나이다. 그런데 지금 그녀의 모습은 아무리 봐도 30대를 넘어선, 40대 아슬아슬한 노처녀 같았기 때문이다.
일에 중독되어서 혼기를 노친 노처녀 말이다.
“이쪽은 노형진 변호사님입니다. 이번 투자 건에서 법률 자문을 담당해 주실 분입니다.”
“노형진입니다.”
노형진은 자연스럽게 악수를 청했고 상대방은 별 의심 없이 손을 잡았다.
‘사장이군. 역시나 내 예상이 맞았어.’
“안녕하십니까? 안창실업의 설득현이라고 합니다.”
설득현은 잔뜩 기대하는 얼굴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자신에게 투자하고 싶다는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투자계에서 유명한 미다스라 불리는 존재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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