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se Who Live Without the Law RAW novel - Chapter 121
121화. 말소
일단, 카이루스로서는 의문에 빠진 상태로 계속 세실리아와의 대담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일단 페더윙 가문은 직계와 방계를 막론하고 모두 죽었어요. 조사 과정에서 사인까지 파악을 끝냈죠. 칼슨 노동교화소에 들어간 페더윙은 없어요.”
카이루스는 잔을 채운 포도주를 한 모금 하며 생각에 빠졌다.
‘그냥 떠보는 게 아니야.’
세실리아가 그럴 이유가 없다. 하지만, 직계와 방계를 막론하고 카이루스의 이름이 없다는 건 도대체 무슨 소리지.
“저런, 페더윙 가문 족보에 제 이름이 없었습니까? 안타까워라.”
카이루스의 말에 세실리아가 대답했다.
“그러게 말이에요 나도 혹시나 하고 기대했는데 말이죠.”
장미정원이 조사한 결과, 족보에도 카이루스의 이름이 없었다.
‘누군가 지운 거야. 누가?’
족보만 날려버린 게 아닐 거다. 말 그대로 확실하고 철저하게 기록말소를 시켜버린 거다. 그로 인해 카이루스는 페더윙이었던 적이 없게 되었다.
그 기록말소가 얼마나 철저했냐 하면.
“나름 전력을 다한 조사였거든요. 난 그래도 페더윙과 관련된 뭔가를 좀 기대했었는데, 너무 성과가 없지 뭐예요.”
장미정원도 아무것도 건져내지 못할 정도로 철저했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해봤자.
카이루스의 머리에는 황제 말고는 떠오르지 않았다.
‘어렵지는 않았을 거야.’
노동교화소로 가기 전 어린 카이루스는 몇 년간 해외에서 생활했으니까. 다른 사람들과 여기저기 교류하며 시간을 보내던 페더윙 가문의 다른 직계와는 달리, 다른 귀족 가문과의 접점이 거의 없다.
그나마 카이루스를 기억하고 있을 다른 페더윙은 모두 죽었으니, 기록을 날려버리는 것만으로도 카이루스에 대한 정보 대다수가 사라져버리는 거다.
“제가 장미정원이 관심을 가질 정도로 대단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정리하며, 카이루스가 신중하게 말했다.
“자신의 가격표는 타인이 정해주는 거예요. 오늘, 이 자리에서 나누는 대화처럼.”
거기까지 들은 다음, 카이루스는 비로소 제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은 게 그저 우연의 일치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었지.’
장미정원에서 조사해도 찾아내지 못할 정도로 카이루스에 대한 정보가 철저하게 통제되었을 줄이야.
그 사실을 알게 된 걸로 일단 충분하다. 앞으로는 카이루스가 페더윙 직계라는 사실을 들키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황제가 왜 그렇게까지 카이루스에 대한 기록을 말살했는지는 아직까지 의문이지만….
지금은 이 자리에 집중해야 한다. 다른 생각을 하며 대응할 수 있을 정도로 세실리아는 만만한 사람이 아니니까.
“제가 어떤 대답을 해야 대표님에게 예쁨을 받을 수 있을까요.”
“그걸 알려주면 재미없지 않겠어요?”
세실리아는 말을 마치고는 올리브와 햄을 올린 카나페를 한 개 집어먹었다.
“베넷 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카이루스는 저 질문을 듣자마자, 이 자리가 술을 곁들인 면접자리라는 점을 확신하게 되었다.
“아, 그래도 오해는 하지 마세요. 당신이 당신의 대답으로 인해 비참한 일을 당하지는 않아요. 그러기에는 너무… 커졌다는 표현이 적절하려나. 하여튼 그래요.”
순수한 질문이라는 뜻이다. 어차피 여기에서 실망스러운 대답을 했다고 목을 따기에는 카이루스의 몸값이 굉장히 커졌으니까.
“특수한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운하운영위원회가 정부를 대신하고 있는 상황이지요.”
간단한 대답이었고, 틀린 대답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세실리아가 그 대답에 대한 평가를 하기 전에, 카이루스가 재빨리 한마디를 더했다.
“제가 감히 대표님에게 질문을 하나 올리겠습니다. 운하운영위원회는 제국이나 공화국의 속이거나, 그들의 비밀을 알아낼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역량을 가지고 있습니까?”
뭔가 말을 하려던 세실리아였지만, 카이루스의 질문을 듣고는 하려던 말을 하는 대신 그의 질문에 대답했다.
“글쎄요. 진짜 노력해서 숨긴 건 알아차리는게 늦겠죠.”
세실리아의 대답을 듣자마자 카이루스가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베넷 시는 상당히 위태로운 상황입니다.”
세실리아의 대답에 따라, 카이루스의 입에서 나올 말은 변할 예정이었다.
만약 방금 전 카이루스의 질문에서 세실리아가 ‘네.’ 라고 말했다면.
‘베넷 시는 끝장이지.’
카이루스는 곧장 운하운영위원회를 칭찬하는 말을 하면서, 이 도시를 떠날 생각을 했을 거다.
왜냐하면 실제로, 세실리아의 말이 정답이었으니까.
이 도시의 조직들은 대단하지만, 제국과 공화국을 지배 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진 것은 아니다.
‘황제가 내 정보를 말살했고, 장미정원은 찾아내는 데 실패했어.’
폰투스 쟁탈전으로 이어지는 재무청장 건과, 황제의 비밀은 급수가 다르다.
이게 바로 카이루스의 판단을 뒷받침하는 근거다. 황제가 진짜 마음먹고 숨기니, 베넷 시에서는 카이루스의 정체를 밝혀내지 못했다.
“이 도시는 두 국가의 움직임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굉장히 위태롭고, 의외의 변수로 인해 붕괴할 수도 있습니다.”
카이루스의 말에 세실리아가 웃었다.
“도시는 붕괴하지 않아요. 붕괴하는 건 나를 위시로 한 운영위원들이랍니다.”
“네. 그 말씀대로입니다.”
도시는 제국에 편입되건, 공화국에 편입되건 계속해서 살아남을 거다. 다만, 주인이 바뀔 뿐이다.
“대답이 마음에 들어요. 미주가효를 준비한 자리에서는, 저도 진솔한 대화를 원하는 법이거든요.”
원하는 대답을 듣고 싶어서 술과 안주를 마련하지는 않는 법이다.
“좋은 의견을 들었네요. 도시가 위태롭다고 말씀하셨지만, 그건 우리의 입지가 위험하다는 말이었겠죠. 해법은 뭐가 있을까요.”
“제국은 대가리를 누르면 되고, 공화국은 꼬리를 어르고 달래면 됩니다.”
제국은 황제의 권위와 소수의 교육받은 귀족에 의해 통치된다. 머리가 큰 야수다.
그 소수에게 목줄을 채우는 데 성공하면, 제국 전체에 목줄을 채운 것과 같다.
공화국은 대중의 여론에 따라 국가의 방향성이 정해진다. 아주 긴 꼬리를 가진 야수라고 할 수 있다.
대중을 달래는 데 성공하면 공화국 전체를 손에 넣는다.
“흥미로운 이야기네요. 생각보다 칼이 컸네.”
세실리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머릿속으로 빠르게 견적을 내고 있다. 그녀가 살면서 사람의 머리에 가격표를 붙인 건 한두 번이 아니다.
잠깐의 대화로도, 알아내고자 마음먹는다면 알아낼 수 있는 것들이 있는 법이다.
‘제국에 대한 분명한 적개심. 저건 가격이 깎이는 요소지.’
사실, 제국의 머리를 누를 필요는 없다. 공화국과 마찬가지로 어르고 달래는 선택지도 있다.
하지만 카이루스는 굳이 제국의 대가리를 누르라고 했다. 마치 그 방법 말고는 없는 것처럼.
“살리아 어시장이라는 곳이 있어요.”
“네?”
갑자기 어시장 이야기가 왜 나오는 걸까.
“나름대로 좋은 곳이에요. 물고기 파는 걸로 수입을 올리는 곳은 아니지요.”
여전히, 카이루스는 세실리아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정기자격심사 일정이 마무리되면, 살리아 수산시장 상인회에 찾아가서 말하세요. 앞으로 거래수수료는 당신에게 지불하면 된다고.”
간단하게 말하면, 주기적으로 돈을 거둬들일 수 있는 지갑 하나를 주겠다는 거다.
“…제가 그런 걸 받아도 괜찮을지 걱정입니다.”
“그건 내 평가에 대한 도전인데.”
세실리아의 말에 카이루스가 곧바로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아이 좋아라.”
세실리아는 지독할 정도로 무심한 목소리로, 어지간한 사람들은 입에 담을 생각조차 하지 않을 문장을 말했다.
오히려, 저런 말을 저토록 무심하게 말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머리에 팍 하고 박히는 느낌이 있었다.
“문제 있는 구역은 아니에요. 실제로 구역을 관리하는 건 어시장 상인회니까.”
주기적으로 찾아가서 돈을 거둬가고, 상인회가 처리하지 못할 정도로 큰 사건만 처리해주면 될 것이다.
“그나저나, 제 아래에서 일할 생각은?”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안은 정말로 감사합니다. 저 또한 반드시 해내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카이루스는 세실리아의 말에 정중히 거절 의사를 표했다.
“아쉬워라. 강요할 수는 없겠죠.”
세실리아는 손뼉을 한 번 친 다음, 자신과 카이루스의 술잔을 다시 한번 채웠다.
“다음 주제로 넘어갈게요. 섭운 해례본의 위치.”
카이루스는 침을 한 번 삼켰다. 이전에 보수로 약속받았지만, 시미드 캘로그를 돕기 위해 포기했던 보수다.
이미 한 번 보수로 제시한 적이 있으니, 또다시 같은 제안이 들어오더라도 신기할 것이 없다.
“제가 어떤 일을 하면 되겠습니까.”
카이루스의 말에 세실리아가 유리잔을 흔들며 대답했다.
“그냥 알려드릴 거예요.”
공짜로 알려준다는 소리다. 물론 카이루스로서는 세실리아의 말을 순순히 믿지 않았다.
‘위치를 알려주는 거니까.’
가지고 있는 걸 공짜로 주겠다는 게 아니라, 물건이 있는 위치를 알려주는 거다.
카이루스가 섭운 해례본을 손에 넣기 위해서는 당연히 세실리아가 알려준 곳으로 향해야 한다. 그리고 섭운 해례본을 얻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세실리아도 그녀가 원하는 것을 손에 넣게 될 확률이 높다.
하지만 카이루스가 기분 나빠할 이유는 없다. 어쨌든 섭운 해례본을 손에 넣게 되니까.
“골디바 시의 승천교 교구장, 갈리아 메토스 주교가 가지고 있어요.”
갈리아 메토스 주교. 일이 어디까지 꼬이나 싶었던 카이루스는 작게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골디바 시는 제국 남부에 위치한 항구도시다. 물류의 중심지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럭저럭 중요한 도시라고 할 수 있다.
“뭐, 교황이 교서라도 내린 겁니까?”
카이루스의 말에 세실리아가 웃었다.
“그럴 리가요. 갈리아 메토스 주교 개인의 취미라고 생각해요.”
대충 성호를 긋는 시늉을 하며 카이루스가 대답했다.
“주교가 세속의 물건에 관심을 두는 건 또 뭐라고 해야 하나. 심경이 복잡해지는 일이네요.”
“이어지는 이야기를 들으면 더 심경이 복잡해질 텐데.”
세실리아가 괜시리 접시 위에 놓인 카나페를 겹쳐 쌓아올리며 말을 이었다.
“최근 제국 남부에서 발생하는 불법 배틀기어 유통에 한 자리 차지하고 있는 것 같거든요.”
이번에는 카이루스가 의문을 가지게 될 차례였다.
“대표님이 관심을 가지시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이 도시는 불법에 꽤나 관대한 걸로 압니다.”
세실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베넷 시가 연루된 상태로, 수익을 창출하는 종류의 불법은 괜찮죠. 하지만 이 도시가 연루되지 않았거나,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는 불법에는 가차 없어요.”
갈리아 메토스 주교가 연루된 불법배틀기어 유통은 이윤은 창출하지만, 이 도시의 조직들은 연루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그게 세실리아의 마음에 굉장히 들지 않는 모양이다.
“품질은 어떻습니까?”
“조악해요. 저렴한 가격에 유통되는 물건이다 보니, 아차 하는 순간 사람 신경을 튀겨버리죠.”
상관없다. 어차피 이 도시에 유통되는 싸구려 배틀기어라는 것들은 대부분 그런 물건들이니까.
“어쨌든, 갈리아 메토스 주교는 서책수집광이거든요.”
“뭐, 그 취미 자체는 승천교에서도 문제 삼지 않을 것 같습니다.”
서책 수집 및 양조는 승천교에서도 권장하는 취미다. 정해진 종교 절차에 따라 양조하는 다양한 술은 각지 수도원의 긴요한 수입원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수집하는 과정에서 섭운 해례본을 손에 넣은 것으로 추정해요. 물론, 일개 주교 따위가 지불할 수 없는 수준의 금액을 내고 사들였죠.”
섭운 해례본을 사들이는 데 필요한 자금은 불법배틀기어 유통을 통해 거둬들였을 것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카이루스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섭운 해례본의 행방은 공짜로 알려주신다고 하셨던 것 같은데.”
“공짜로 알려드렸잖아요? 가서 찾으시면 될 일이죠.”
카이루스가 작게 불만을 표시하자, 세실리아가 달래는 것 같은 어조로 말한다.
“갈리아 메토스 주교가 담당하는 업무는 유통에 들어가기 전의 불량배틀기어를 보관할 장소 제공으로 알고 있어요.”
쉽게 말해 창고라는 거다. 승천교 주교가 하기에 딱 알맞은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교구 내의 교회도 가능하고, 수도원도 가능하고.”
숨길 수 있는 장소도 많은데, 심지어 제국 치안대가 멋대로 들어가서 뒤져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