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se Who Live Without the Law RAW novel - Chapter 166
166화 길라잡이 (2)
검에 대한 이해도는 타파스가 압도적이다. 아마, 순수하게 검술만으로 비교한다면 견줄 자가 없을 정도다.
이런 실력자가 왜 베넷 시에 있는지는 차치하고.
결국 그런 실력자도 카이루스에게 치명상을 입히지는 못한다는 뜻이다. 카이루스 입장에서는 오히려 자신감이 차오를 지경이다.
“긍정적인 짐승이구나.”
음속을 뚫고 날아간 카이루스가 타파스를 내려찍는다. 타파스의 검이 마중 나왔다.
카이루스는 알 수 없는 무수한 묘리를 담은 검. 타파스의 등 뒤로 원뿔형의 충격파가 폭발했다.
“도살장에 끌려가서도 살길을 찾는가?”
등 뒤의 땅이 절반으로 갈라지며, 흔적만 남아있던 타파스의 저택을 땅 아래로 매장한다. 하지만, 어떻게 충격을 흘려보낸 건지 타파스는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하다.
방금 전의 일격뿐이 아니다. 그 뒤로 쏟아지는 모든 공격들에 대항하는 타파스의 몸은 멀쩡하다. 대신, 그 주변이 완전히 초토화되는 중이다.
힘의 법칙이 통하지 않는 귀신과 싸우는 느낌.
‘불리하진 않아.’
카이루스도 상대에게 상처입히지 못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딱히 밀리고 있다고 평가하는 것도 이르다.
문제가 있다면 딱 하나.
시간제한.
다른 운영위원들이 오기 전에 이 싸움을 마무리 지어야만 한다.
“아래로.”
카이루스가 중얼거리는 순간, 반경 수백미터에 이르는 공간에 압도적인 기세의 하강풍이 불어닥친다.
“무식한….”
자세를 취한 채 공격할 틈을 노리고 있던 타파스의 자세가 휘청일 정도의 압력. 카이루스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가속했다.
카이루스가 돌진을 따라 빗물이 터져나가며 꼬리 같은 긴 궤적을 남긴다.
코앞에서 인사를 나눈다. 타파스의 속눈썹에 맺힌 빗방울이 보일 정도의 거리.
“안녕.”
“그래, 안녕.”
갑작스럽게 타파스가 카이루스에게 인사를 했고, 카이루스 또한 졸음 속에서 이에 반응해주었다.
인사가 끝나고.
무차별적인 공방이 시작되었다. 카이루스의 등 뒤에서 무지막지한 배기음이 터져나온다.
농조연운의 최대출력. 카이루스는 폭음과 함께 타파스의 등 뒤로 돌아갔다. 이어지는 참격.
타파스의 몸이 번개처럼 회전하며 카이루스의 공격을 막아낸다. 그 순간, 카이루스의 몸이 다시 급가속한다.
‘무리하지 않으면 승산이 없다.’
검으로 끝낼 생각을 하면 안 된다. 타파스의 검술이 카이루스보다 뛰어나니까.
소리의 몇 배에 달하는 속도로 급가속하고, 공격이 실패하면 순간 급정거 한 다음 방향을 바꿔 다시금 급가속한다.
“크흡….”
카이루스가 급가속과 급정거를 반복하자, 소리의 벽이 부서지며 발생하는 충격파가 타파스의 몸을 갉아먹는다.
타파스는 입가에 가느다란 핏줄기가 흘러내린다. 하지만, 그렇다고 검을 멈추지는 않는다.
“자랑할 만한 재주는 무기의 출력이 전부인가?”
슥, 빗자루에서 빠져나온 검이 허공의 한 부분을 점유했다. 카이루스는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대로 가속했으면 속력을 주체하지 못하는 카이루스의 목이 떨어졌을 거다.
“하찮다.”
가속이 멈췄으니, 타파스의 몸을 괴롭히던 충격파도 멎었다.
“무슨 소리. 나 재주 많아.”
카이루스의 대답에 타파스의 시선이 농조연운으로 향한다. 수박만 한 사이즈의 바람구슬 세 개가 암녹색 칼날 주위를 맴돌고 있다. 구슬 하나하나에 담긴 힘은 각각 용오름을 만들 수 있을 정도다.
“!”
구슬 안에 담긴 힘을 느낀 타파스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그녀가 뭔가 대처를 하기도 전에, 카이루스는 검을 앞으로 뻗어 타파스를 겨눈 다음 세 개의 구슬을 모조리 터뜨렸다.
카이루스의 검이 가리킨 방향으로 바람이 쏟아진다. 무너진 댐에서 격류가 쏟아져 나오는 것처럼, 매서운 폭풍이 불어닥친다.
“마음을 드높히.”
긴장한 표정으로 스스로에게 최면이라도 거는 것처럼 중얼거리며, 타파스는 검을 움직였다. 허공에 검광이 별무리처럼 반짝이며, 참격이 무수히 만들어지고 잦아든다.
“미친…년.”
극도의 피로로 흐려진 카이루스의 눈에 잡힌 것은, 바람의 격류가 서서히 잦아드는 풍경이었다.
피로로 인해 정신이 어지럽지만 않았어도, 저런 바람 구슬을 다섯 개는 만들 수 있었다.
“…끝인가? 잔재주.”
휙, 하고 검을 털듯 휘두르고는 다시 빗자루로 집어넣는 타파스를 보던 카이루스가 힘없이 웃은 다음, 삽시간에 거리를 좁히며 검을 휘두르며 대답했다.
타파스의 모습이 순간 흐려지며 카이루스의 공격을 피했다.
그녀는 피하는 데 성공했지만, 그녀가 서 있던 땅은 공격을 피할 수 있는 객체가 아니었다. 땅이 갈라지며 끝을 알 수 없는 길고 깊은 고랑이 파였다.
회피에 성공한 타파스가 카이루스를 노리고 검격을 쏟아낸다. 카이루스는 그 공세에 맞서며 히죽 웃었다.
“야, 너 떨고 있는데.”
잠에 빠져들기 직전인데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타파스의 떨림은 선명했다.
쉽게 막아낸 게 아니라는 뜻이다.
살짝 뒤로 물러나 자신의 손을 바라보던 타파스가 힘을 꽉 주자, 떨림이 다소 잦아든다.
“쓰러져도 네 목이 떨어진 다음이다. 걱정해줘서 고맙다. 그리고….”
타파스가 갑작스레 자신의 목에 주사를 꽂아넣었다. 총기를 되찾았던 타파스의 눈이 다시 급속도로 흐려진다.
진통성 마약인가. 아니면 그냥 마약인가. 중요한 건, 타파스가 자신의 몸에 약을 주사한 데에는 이유가 있을 거라는 추측이다.
그녀의 어깨 위에, 숨겨져 있던 문신 몇 개가 떠오른다. 문신은 살아있는 것처럼 주기적으로 꿈틀거리는데, 그 꼴이 마치 심장이 뛰는 것 같은 꼴이다.
“끝. 다가오는.”
몽롱한 얼굴이 된 타파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다시금 짧아졌다. 약물의 힘으로 몸에 가해진 부상과 통증을 모조리 무시하는 대가다.
하지만 효과는 확실해서, 타파스의 몸놀림은 다시금 최초의 그것과 같아졌다.
‘저걸 막으려면….’
머리를 날리는 것 말고는 없다. 딱 봐도 강한 마약이다. 통증은 무시하고 몸에 활력을 불어넣는 어마어마한 효능이 있지만 결과적으로 사람을 망가뜨리는 마약.
다만.
“저년이 망가지기 전에 내가 망가지겠는데?!”
카가가가가가각 하는 소리와 함께 카이루스는 비처럼 쏟아지는 칼날을 막아내는 중이다.
카이루스는 피곤해 죽겠는데, 타파스는 내일이 없는 것처럼 활기가 넘친다.
이미 카이루스는 한계다.
‘눈앞이….’
제대로 보이는 게 없다. 방금 전까지는 카페인과 긴장으로 어떻게든 버티고 있었지만, 밀려드는 졸음은 한계에 달했다. 바로 앞에 낭떠러지가 있어도 졸다가 추락사할 것 같은 게 지금 카이루스의 상태다.
제발.
카이루스의 의지에 따라, 하늘의 먹구름 중 일부가 뚝 떨어져 나오더니 지상으로 추락한다. 무지막지한 양의 물을 품고 있는 구름의 폭격.
직격이어도 상관없고, 직격이 아니어도 사람을 통째로 짓뭉갤 수 있는 힘을 품고 있다.
“반복. 한심.”
쫘악! 하는 소리와 함께 지팡이의 발도와 함께 검이 휘둘러지고, 추락하는 구름이 반으로 갈라졌다.
수박을 도끼로 쪼개는 것 같은 호쾌함이 담겨있는 한 방.
‘이럴 것 같아서….’
쓰지 않았던 거다. 카이루스는 고개를 순간 푹 하고 숙이며 잠에 빠져들 뻔했다가 억지로 정신을 차리고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이젠 자신이 싸우고 있는 건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지도 헷갈린다.
그냥.
자고 싶다. 너무 졸려서 입에서 침이 질질 흐르고, 눈깔은 모래를 쏟아넣은 것처럼 뻑뻑하다. 뒷목이 욱신거리고 헛구역질이 올라온다. 뇌 속이 말린 다음 바싹 구운 먹태처럼 버적거린다.
“휴….”
카이루스의 입에서 순간 휴전이라는 말이 나올 뻔했다. 목젖으로 휙하니 날아드는 검을 쳐낸 다음, 카이루스는 전력을 다해 자신의 싸대기를 때렸다.
팡! 하는 소리와 함께 뺨 주변의 물방울이 비산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싸대기였다.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면 머리통이 우주까지 날아갈 정도의 힘이 담겨있었다.
하지만 정신을 차릴 수 있었던 건 약 3초 정도가 고작이었다. 잠깐 밀어냈던 졸음은 마치 파도처럼 다시 밀려든다.
아까보다 더 강렬하게. 심지어 카이루스는 손에 쥔 농조연운을 놓칠 뻔했다.
수면욕이라는 건 이토록 무서운 거다. 한계에 달한 졸음은 눈꺼풀 위에서 악마가 춤추게 한다. 카이루스는 경련하는 눈꺼풀의 이상한 감각을 무시한 채 상대를 향해 검을 겨누었다.
“웃음. 바보.”
하지만, 검은 물에 젖은 해초처럼 흔들리고 있다. 그 꼴을 바라보는 타파스가 비웃음을 날린다.
“….”
모르겠다. 카이루스는 그냥 다 포기하고 싶어졌다. 여기에서 죽으면 이 졸음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복수라는 목표. 황제에 대한 분노. 해내고야 말겠다는 의지와 열망. 여기에서 죽을 수 없다는 결심.
그 모든 것들이 쉬지 않고 밀려오는 파도에 의해 무너지는 방파제처럼. 물에 던져진 솜사탕처럼 녹아내린다.
자고 싶다. 그냥 눈을 감고 지금에 순응하고 싶다.
“끝.”
상태를 살피던 타파스가 납도한 상태로 발을 내딛으며 발도했다. 칼은 카이루스의 목을 가져갈 것이다.
죽음과도 같은 잠이. 잠이 죽음을 데리고.
카이루스에게 다가간다.
“?”
하지만 검은 움직였다. 비몽사몽 와중에, 카이루스는 손에 쥔 농조연운을 움직여 타파스의 일격을 막아냈다.
충혈되고 초점 잃은 눈동자가, 타파스를 응시한다. 사실 보이는 건 없다. 잠에 취한 감각은 세상으로부터 멀어진다.
억지로 잠귀신에 저항하던 카이루스의 정신이 스스로에게 침잠한다.
“황홀경…?”
자신의 공격을 막아낸 카이루스를 바라보던 타파스가 인상을 쓴다.
정확히 말하면 트랜스. 가수면이라고 불리는 상태. 소포르가 선사하는 죽음과도 같은 잠을 버티고 버티던 카이루스가 뭔가 다른 상태로 접어들었다.
“나아… 는….”
입에서 침을 질질 흘리며 중얼거리는 카이루스의 몰골은 영락없이 미친놈이다. 타파스는 저 상태를 잘 알고 있다.
마약을 활용하면 쉽게 접어드는 상태다.
카이루스에게는 이제 제풍이고 섭운이고 제대로 쓸 정신머리가 남아있지 않다.
눈앞의 적을 죽인다. 극도의 졸음에 시달리던 카이루스의 두뇌는 딱 한 가지 생각을 제외하고 모든 생각을 중단해버렸다.
카이루스의 움직임이 변했다. 타파스는 더 늦기 전에 제거할 생각으로 다시 달려들었다.
“이건.”
검을 쳐내고, 되받아 반격했다. 칼날이 타파스의 팔뚝을 핥고 지나갔다.
힘줄이 잘린 타파스의 왼팔이 축 처진다.
“….”
카이루스의 관절에서 희미하면서도 기괴한 소리가 났다. 방어에서 반격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관절에 무리가 간 거다.
페더윙의 시술로 강화되었을 텐데도 과부하가 걸릴 정도로 무리한 반격.
“아아… 아.”
그걸로 끝이 아니다. 완전히 황홀경에 빠져든 카이루스는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타파스에게 달려든다.
온몸의 관절과 힘줄과 근육이 삐걱거리며 ‘이런 식으로 움직이지 마!’라고 비명을 내지른다.
정작 카이루스에게 느껴지는 그 모든 고통과 괴로움은 너무나도 멀고 멀게 느껴져서.
계속 행동한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맹공. 정신을 잃고 날뛰는 주인의 움직임에 폭풍과 먹구름도 덩달아 미쳐버렸다.
“크… 하아아악?!”
“끄, 어으….”
주인과 적을 구분하지 않고 바람이 모든 것을 갈아버리고, 벼락을 집어던진다.
바람에 짓눌리는 사람은 두 명이다.
추락하는 벼락줄기에 강타당하는 것도 두 명이다. 제아무리 타파스가 노력해도, 벼락을 같이 맞고 달려들며 검을 휘두르는 적을 상대로 제대로 된 대응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깊은 밤, 약에 취한 여자와 잠에 취한 남자가 함께 엉켜 비 내리는 야외에서 미친 듯 날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