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se Who Live Without the Law RAW novel - Chapter 196
196화 준비완료 (3)
노라와 시미드 사이의 이야기도 얼추 마무리되었다. 다시 기차를 타고 돌아온 카이루스는 곧바로 운영위원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비정기회의를 한번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내용은 간단했다. 제국의 반란이 머지않았으니, 한 번 모여서 이에 대해 베넷 시는 어떠한 입장을 취해야 하는지 한 번 생각을 모아보자.
거절하는 운영위원은 없었다. 이 사안은 제국과 공화국이 서로 얽혀있기에, 베넷 시의 치안대장과 경찰청장은 모임에서 제외되었다.
소집을 카이루스가 했으니, 이번에 회의를 주관하고 진행하는 건 카이루스가 담당한다.
“다들 모였군.”
회의실에 도착한 카이루스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곧바로 웨슨 바렌자가 한마디 한다.
“모이라고 한 새끼가 제일 늦으면 어쩌자는 거야.”
“일이 좀 있어서. 그래도 약속 시간에 늦은 건 아니잖아.”
카이루스는 대충 대답한 다음 자리에 앉아 자신을 제외한 다섯 명을 슥 훑었다.
“조만간 제국에서 난리가 날 거다. 이유는 다들 알고 있지.”
카이루스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을 모조리 이야기해주었다.
“기사단장 처리 전문이라. 씨팔, 혼자 재미있는 거 하잖아.”
루카스가 히죽거리며 카이루스에게 말했다. 기사단장 목 따고 다니는 일이라고 하면 루카스도 꽤나 흥미가 생기는 분야다.
“일은 조만간 벌어질 건데. 우리는 뭘 할 수 있지?”
이 건에 대해서는 이미 이전에 경고를 해두었다. 당연히, 다들 나름대로 방안을 생각해두었다.
우선 입을 연 것은 도노반이었다. 그는 테이블 위에 펼쳐져 있는 도시 전도를 손으로 툭 치며 말했다.
“물류 통제. 일이 벌어지면 베넷 시를 통해 공화국으로 수출입되는 물건을 통제할 거다.”
말이 베넷 시를 통하는 물류를 통제하는 거지, 사실상 안타리아 대운하를 막아버리겠다는 뜻이다.
아이란 공화국에서 생산하는 어떠한 물건도 안타리아 대운하를 통해 수출되지 않고, 다른 곳에서 들어오는 어떠한 물건도 안타리아 대운하를 통해 아이란 공화국으로 수입되지 않는다.
안타리아 대운하는 대체할 수 있는 종류의 시설이 아니다. 제국과 공화국 모두 수출입의 큰 부분을 안타리아 대운하에 의존하고 있다.
“다연 대왕국에서 가만히 있을까?”
이야기를 듣고 있던 루미스 바렌자가 질문했다.
공화국의 모든 수출입이 금지된다는 건, 안타리아 대운하의 반대편을 차지하고 있는 다연 대왕국에게도 피해가 가는 일이다.
도노반이 턱짓으로 루카스를 가리켰다.
“저 고아 녀석이 수고를 좀 해줘야겠지.”
“망할 새끼들. 난 거기 국적도 없어!”
하지만 인연은 있다. 그리고 다연 대왕국은 사실상 그 인연이라는 것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국가다.
발로른 제국의 가문과는 조금 다른 개념이다.
학연. 지연. 혈연. 우리는 한 가족이기에 절대로 남이 아니고, 같은 소속감을 공유한다면 서로가 서로를 돕는다.
아니, 도와야 한다. 권장이 아니라 의무의 영역이다.
소위 말하는 공동체 의식, 또는 정이라는 단어로 대표되는 무언가. 루카스가 다연 대왕국을 활용할 수 있는 근거다.
엽사들의 제사에 참여한 것부터, 이미 명예 왕국민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다만, 이런 식으로 인연을 활용하게 되면 다연 대왕국에서는 언젠가 루카스에게 큰 걸 요구할 거다.
“내가 일하는 동안 놀고 있으면 진짜 찾아가서 다 죽여버릴 거다.”
루카스는 눈을 부라리며 나머지 녀석들을 바라봤다.
“공익을 위한 일에 사적인 감정을 불어넣다니.”
“어이 늙탱이. 지금 농사지어?”
도노반의 말에 루카스가 인상을 팍 썼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도노반이 대답했다.
“운하를 통해 오가는 물류를 닫으면 그거 누가 관리할 것 같나?”
도노반이 해야 한다. 아름드리 전당포가 괜히 장물거래 전문이 아니다. 장물거래라고 하는 것은 결국 물류와 직간접적인 연관이 있다.
아이란 공화국으로 흘러드는 물자를 막기 위해서는 도노반의 아름드리 전당포가 어마어마한 인력과 시간, 자원을 갈아넣어야만 한다.
쉬운 문제가 아니다. 한 나라로 통하는 물류를 전부 통제하고, 그 과정에서 빼돌리는 녀석들까지 모조리 찾아내야 한다.
이거야말로 아름드리 전당포의 물류 장악력을 시험하는 시금석이라 할 수 있다.
“좋아. 장물아비는 합격. 나머지 새끼들은?”
루카스 또한 그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었기에 도노반의 반론을 수용했다.
“공화국에, 우리가 멈춰 놓을 수 있는 녀석들은 전부 멈출 거예요.”
세실리아가 대답했다. 베넷 시와의 거래 과정에서 오간 무수한 보증들이 장미정원의 무기다. 수천 장에 달하는 온갖 종류의 보증서류에는 온갖 내용이 다 들어있다.
힘과 권력이 있어도 저질렀다가는 눈총을 받을 수밖에 없는 모든 일들을, 이 베넷 시의 구더기들이 보수를 받고 대신해주었다는 증거들이다.
원래는 협박에 이용하지 않아야 하는 서류들이다.
오가는 모든 보증서류를 비공개로 해주겠다는 약속 없이는 공화국의 권세 있는 자들이 장미정원의 보증을 받을 리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카드를 쓰겠다는 거다. 그것만으로도 장미정원의 대외 신뢰도가 확 깎인다.
보증이란 원래 신뢰를 먹고 꽃피우는 장미다. 세실리아는 이번 일을 위해서 자신이 키워온 장미정원에 제초제를 뿌리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그럴 만한 일이니까.’
키워온 장미가 아무리 예쁘게 꽃망을 틔웠어도 의미 없다. 잘하면 정원의 크기를 키울 수 있고, 실수하면 정원 자체가 사라지는 도박을 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 있는 장미나 잘 보살피자고 몸을 움츠리는 건 사업가이자 리더인 세실리아에게는 없는 선택지다.
“너희 둘은?”
다음 타자는 바렌자 오누이였다. 루카스의 아이들, 아름드리 전당포, 그리고 장미정원은 큰 출혈을 각오하고 아이란 공화국을 흔들어 놓을 생각이다.
루미스가 입을 열었다.
“우리가 잘 하는 게 뭐가 있겠어? 납치.”
바렌자 오누이의 주력산업은 인신매매다. 당연히, 조달하는 방법이 납치일 수밖에 없다.
‘당신의 모든 권리를 박탈하고 노예로 만들려고 하는데, 여기에 서명해 주시겠어요?’라고 말하며 팔아넘길 사람을 모을 수는 없으니까.
“납치라. 구체적으로?”
“복합적으로 할 거야. 공화국 주요인사 및 그 관계자들을 납치하고, 거기에 더해 선박이나 기차를 탄 시민들까지.”
이야기를 듣고 있던 카이루스가 속으로 쓴웃음을 삼켰다.
‘물류 통제로 경제에 큰 문제가 생기고. 공화국의 주요인사들은 베넷 시와의 계약들로 인해 협박당하고. 사람들이 납치당한다.’
사회 혼란이 안 생기면 그게 더 이상할 지경이다.
“마지막으로, 카이루스 당신은 뭘 하실 거죠?”
세실리아의 지적에 카이루스가 대답했다.
“대표, 나는 발로른 제국에서 일을 벌입니다. 근데 공화국에서까지 지랄을 하라는 겁니까?”
왜, 그냥 아주 이 기회에 다연 대왕국 왕궁도 날려서 삼국 공적으로 만들지.
카이루스는 나머지 운영위원들을 슥 훑고 말했다.
“지금 가장 큰 리스크를 짊어진 건 나야. 댁들은 최소한 뒈질 일은 없잖아.”
카이루스의 말에 모두가 수긍했다. 살아있으면 뭐라도 하면서 삶을 연명할 수 있다. 하지만 카이루스는 실패하면 죽을 수도 있다.
“어쨌든, 다들 열정이 있어 보여서 좋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카이루스의 말에 루카스가 양다리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채 대답했다.
“시미드 캘로그의 반역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확인하고 해야 할 일이지.”
지금 나눈 논의는 최악의 경우 시도해야 하는 일들이다. 이전까지 자신들이 쌓아온 모든 과거를 미래를 위해 불태워야 하는 행위니까.
“시미드 캘로르가 실패하거나, 또는 성공했는데 의외로 빠르게 수습된다면….”
이렇게까지 일을 벌여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면 베넷 시의 범죄 거두들도 막대한 리스크를 짊어지고 그런 일을 벌일 필요가 없게 된다.
“난 차라리 실패든 성공이든 큰일이 벌어졌으면 좋겠어요.”
세실리아의 말에 루카스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큰 리스크는 성공할 시 큰 이득을 가져온다.
제국과 공화국이 덩달아 흔들리면 베넷 시의 범죄조직들은 크게 세력을 불릴 수 있을 테니까.
“장담하지.”
카이루스는 이미 시미드 캘로그의 계획을 알고 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말이다.
“성공과 실패 여부를 막론하고, 제국은 크게 흔들린다. 그러니, 공화국을 그만큼 흔들 각오를 해.”
시미드 캘로그가 성공하면 제국의 봄은 바야흐로 행정마비의 계절이 된다.
실패하면, 재무청장의 가문은 물론이고 그와 연관되어 있는 모든 것들이 박살 난다.
어떤 것이건 제국은 크게 흔들린다. 공화국에 비슷한 정도의 혼란이 야기되지 않으면 결국 무너진 두 국가의 균형이 베넷 시를 덮치는 종말의 홍수가 된다.
“애초에 그 재무청장 또라이 새끼가 이 지랄만 안 했어도.”
웨슨 바렌자의 말에 카이루스가 코웃음을 쳤다.
“이 자리에 있는 우리가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냐?”
시미드 캘로그의 반란 준비는 이들이 뭘 어쩔 수가 없는 사건이었다. 사람이 하겠다는데 뭘 어쩌겠어.
베넷 시는 이를 보조해 아이란 공화국을 흔들 거나, 아니면 시미드 캘로그를 방해해서 계획을 좌초시켜야 했다.
이들은 아이란 공화국을 흔들기로 결정했으니, 이제 최선을 다해 실행에 옮기면 될 뿐이다.
“현재 회의는 여기까지 하면 될 것 같은데.”
전력을 다하면 이 자리에 모인 인간들이 무슨 짓까지 벌일 수 있나.
그걸 확인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노라가 알게 되면 굉장히 슬퍼하겠군.’
이번 회의의 주제는 베넷 시가 어떤 식으로 공화국을 물먹일지에 대한 논의였다. 아이란 공화국의 첩보조직 요원 출신으로는 참 기분 더러울 주제였다.
당연히, 노라에게는 자세한 이야기를 공유할 생각이 전혀 없다.
사무실로 돌아온 카이루스는 곧바로 노라를 호출해 공터로 향했다.
“일레나 실력은 알아.”
하지만 노라의 실력은 잘 모른다. 카이루스의 말에 노라가 히죽거리며 카이루스가 들고 있는 명멸을 가리켰다.
“그거 말고!”
“저런, 후회할 것 같은데.”
카이루스의 말에 노라가 오드아이가 되어버린 눈을 빛내며 대답했다.
“그 지랄맞은 시간들이, 오빠한테 얼마나 통하나 한번 확인해보려고.”
“글쎄다. 난 좀 걱정된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만, 솔직히 철없는 소리다. 노력도 배반하고, 공부도 배반한다. 부모형제자매, 심지어 자기 자신도 스스로를 배반한다.
세상에 배반하지 않는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좋아. 그럼 명멸로 한 번 상대해봐. 못하겠다 싶으면 잠깐 멈추고 다시 검을 뽑아.”
거기에는 카이루스도 동의했다. 곧바로, 노라도 563번을 뽑아서 휘리릭 돌린 다음 자세를 잡았다.
“자세가 좀 변했네.”
노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전반적으로 몸에 받은 시술을 조정했다고 하더니, 그에 맞춰서 움직임 또한 변한 모양이다.
힘이 꽉 들어간 근육이 수축한다. 스프링이라도 달린 것처럼 노라가 카이루스를 향해 쇄도한다.
쐐기가 쏘아져나가는 것 같은 모습. 카이루스가 검을 들어 이에 응했다.
굉음.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나가는 흙먼지와 함께 카이루스는 몇 걸음 뒤로 밀려났다. 바닥에는 카이루스가 밀려난 거리만큼 두 개의 선이 그어졌다.
방어에 성공한 카이루스의 등 뒤로 충격파가 원뿔을 그리며 퍼져나간다. 공격은 세 번 이어졌다.
한 번 검을 맞댄 카이루스는 결론을 내렸다.
“바꿀게.”
“아싸!”
곧바로 노라는 뒤로 물러나 카이루스가 농조연운을 꺼내들기를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