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se Who Live Without the Law RAW novel - Chapter 96
96화 출구를 찾다 (3)
카이루스가 한창 허수아비와 레아 콤비를 상대하는 동안, 일레나는 더블린을 담당하게 되었다.
“여자들은 짐승 같은 남자를 좋아한다고 하던데. 아가씨는 어때, 내 짐승 같은 매력에 좀 끌리나?”
더블린이 사람의 팔을 대신한 곰의 앞다리를 보여주며 히죽거린다.
“난 사람이 좋아. 짐승 같은 남자도 별로고, 그냥 짐승새끼는 더 싫지.”
대답과 함께 이어진 일격이 곰발과 격돌한다.
“근데, 너는 배틀기어 없어?”
“도구에 의존하는 나약한 몸이 아니라서!”
색유리를 막아낸 더블린이 팔에 힘을 주며 일레나를 뒤로 밀어냈다.
일레나는 순순히 밀려주며 뒤로 쭉 빠지고, 녀석을 위아래로 쭉 훑었다.
“그래, 너 같은 녀석들도 있다고 듣기는 했어.”
드물긴 하지만, 없는 건 아니다. 배틀기어는 필요최소한의 재능이 있어야 다룰 수 있는 물건이다.
“온몸에 각종 불법 시술을 덕지덕지 발라서 자기 몸을 기워놓은 봉제인형처럼 만드는 놈들.”
페더윙이나 루나시커의 시술과는 다르다.
페더윙은 피시술자를 페더윙 직계로 한정하는 방식으로 시술의 성공확률과 시술 이후의 안정성을 대폭 높였다.
루나시커는 시술의 성공확률은 낮지만, 시술 이후의 안정성은 페더윙의 시술 못지않게 높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술은 그렇지 않다.
“너도 시간 지나면 막 젖꼭지나 귀가 떨어져 나가고 그래?”
주기적인 조치를 받지 않으면 온몸에 궤양이 생긴 다음 썩어들어가거나, 뼈가 유리처럼 약해져서 서있기만 해도 부러져버리거나.
신경이 서서히 맛이 가서 가만히 있어도 온몸을 달군 면도날로 난자하는 것 같은 고통을 느끼거나.
온갖 부작용을 감당해야 한다.
“차라리 문신을 새기지 그랬어.”
시술과 비슷하게, 배틀기어를 사용하지 못하지만 강해지고 싶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방법 중에는 문신이 있다.
“유지비는 씨발 하늘에서 떨어지나?”
하지만 문신은 주기적으로 그 힘이 약해지기에 덧칠이라고 하는 작업을 주기적으로 해줘야 한다.
당연히 문신사들은 덧칠을 해줄 때도 막대한 돈을 요구한다.
“몸이 망가지는 것보다는 돈이 많이 깨지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돈보다 건강이라. 씨부리는 말만 들어도 어디 고상하신 귀족 가문에서 잘 먹고 잘 자란 계집년 티가 나는군.”
더블린의 말에 일레나는 반박하지 못했다.
돈보다 건강이 우선이다, 라는 말은 보통 돈이 충분히 있는 사람들 입에서 나오는 소리니까.
“너 같은 년들이 공장에서 납땜하다가 뒈지는 노동자들을 보며 ‘건강이 우선이지. 미련한 것들.’ 같은 소리를 씨부리는 거야.”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일레나가 작게 혀를 찼다.
“불만 있으면 부자로 다시 태어나는 건 어때? 죽는 건 내가 도와줄 수 있어.”
“반대로, 날 위해 네가 걸레짝 같은 집구석에서 다시 태어나는 건 어때? 마찬가지로 죽는 건 도와주마.”
잠깐의 침묵과 한 번의 호흡.
다음 호흡이 이어지기 전까지 열 번이 넘는 공방이 오갔다.
서로의 격돌이 만들어낸 바람이 뒤늦게, 하지만 사납게 몰아친다.
“이 몸은! 배틀기어 같은 건 필요 없어! 난 오로지 내 육신으로 강해진다!”
“시술받은 것들로 채워넣은 몸이 왜 네 몸이야.”
배틀기어를 휘두르는 것과, 시술받은 온갖 것들을 휘두르는 것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다.
“오히려 너는 약을 먹지 않으면 몸이 서서히 부패할 텐데. 그런 점에서는 배틀기어보다 열등하잖아.”
“아가리… 닥쳐라 이 씨발년아! 주둥아리를 찢어서 귀에 걸어버리기 전에!”
“능력 있으면, 해봐!”
일레나 또한 이미 멜빈으로부터 이 미로가 심각하게 훼손되면 안 된다는 설명은 들었다.
‘상관없어.’
어차피 피해 가며 싸울 생각도 없었다. 일레나가 부리는 바람은 그녀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점점 더 거세진다.
“으아아아아아아!”
더블린의 눈이 시뻘겋게 충혈되고, 피부 위로 핏줄이 불거져나와 꿈틀거린다.
서로를 향해, 조금의 속임수도 없는 정직하고 무식한 공격이 이어진다. 못을 때려박는 목수의 망치처럼.
상대의 숨통을 노리고 멈추지 않고 이어지는 전심전력의 공세.
결국 둘 중 하나는 무너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다.
“안 도울 겁니까?”
그 무지막지한 격돌을 지켜보던 멜빈이 카이루스를 향해 말했다.
“내가 왜. 잘 싸우고 있는데.”
카이루스는 타냐의 도움을 받아 왼팔에 부목을 댄 다음 일레나의 전투를 바라보고 있다.
‘완전 지 단장을 닮아가네. 하긴, 목표가 나는 아니었으니까.’
일레나의 목표는 카이루스가 아니다. 카이루스로부터 제풍을 배우고 있지만, 일레나가 닮고 싶어하는 사람이었던 적은 없다.
그녀는 다나 왓슨이 목표다. 당연히, 제풍을 배웠다 해도 사용법에는 카이루스와 차이가 발생한다.
하지만 괜찮다.
‘전투방식이 변한다고 약해지는 가벼운 검술이 아니니까.’
모든 지향점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 좋은 검술이다.
다양성이 없는 검술은 비록 성취가 빨라도 어딘가 결핍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미로가 무너질 것 같지는 않으니까. 지켜보자고.”
카이루스는 물과 함께 진통제를 삼켰다. 실전은 훈련이 아니다.
절대로 훈련이 될 수 없다. 실전에서 배우는 것은 훈련 따위와는 격과 질과 결이 다르다.
일레나는 좋은 기회를 잡았고, 가르치는 사람이 배우는 사람의 기회를 박탈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치료 준비를 해야겠네요.”
타냐가 필요한 약품이나 도구를 이것저것 꺼내둔다. 미로가 통째로 울리는 것 같은 와중에도 그 손놀림은 전혀 흔들리지 않고 있다.
“그나저나 대단하네요. 배틀기어가 아니라 시술로 사람이 저렇게까지 강해질 수 있다니.”
멜빈의 말에 타냐가 대답했다.
“대부분의 시술은 본래 의료 목적으로 연구되었어요.”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 실제로는 저런 식으로 쓰이고 있는데.”
투툭, 하고 보라색으로 썩어들어간 살덩이가 더블린의 몸에서 떨어져나간다. 살점이 떨어져나간 자리에 피 대신 갈색의 점액질이 흘러내린다.
“한계가 오는 모양이네요.”
“대부분의 시술이 저렇지 뭐.”
아주 소수의 성공적인 시술법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시술을 통해 이식한 뭔가를 과도하게 사용하면 저런 일이 일어난다.
“저게… 보통입니까?”
멜빈의 질문에 타냐가 대답했다.
“이식된 기관을 활성화시키고 너무 오래 유지해서 생기는 일이에요.”
이식된 것을 활성화하지 않아도 주기적으로 약을 복용해 부작용을 억눌러야 한다.
“약을 먹으면서 싸우면?”
“안정제 또한 원래 그런 목적으로 제작된 약이 아니에요.”
타인의 일부를 이식받은 사람이 겪는 부작용을 억눌러주기 위한 목적으로 개발된 약이다.
동물의 일부나 인공적으로 만든 기관은 비활성화 상태일 때만 안정제의 효과가 있다.
“사람도 아닌, 다른 생물의 일부를 덕지덕지 이식하고 날뛰면 오래 못 간다는 뜻이지.”
승부는 정해졌다. 애초에 일레나가 더블린이 저 꼴이 될 때까지 버틸 수 있느냐의 싸움이었다.
그리고 일레나는 버티는 데 성공했다. 더블린은 무너져내리고 있다.
비유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살점과 뼈가 무너져내리는 중이다.
“어우, 갈 때는 곱게 가라.”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고 힘겹게 숨을 몰아쉬며 고통 속에 버둥거리는 더블린을 바라보던 일레나는 검을 휘둘러 녀석의 머리를 부쉈다.
그냥 둬도 죽겠지만, 어차피 죽을 놈이 저렇게까지 고통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고생했다. 식인 연쇄살인범을 상대로도 승리하다니. 자랑스럽군.”
카이루스의 말에 일레나가 눈을 크게 뜨고 시체가 된 더블린을 바라봤다.
“저 새끼 말하는 거야? 식인을 했다고?”
일레나의 말에 카이루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몸의 대부분을 육식동물로 교체했잖아. 뭐라고 해야 하냐. 이런 비유가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입맛이 좀 바뀐 모양이더군.”
더블린은 도합 257명을 잡아먹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죽은 허수아비는 경찰청 수감소에서, 더블린은 치안대 수감소에서 꺼낸 놈이다.
“사실상 사람이 주식이었던 셈이지.”
일레나가 발을 한 번 구르고는 더블린의 시체를 응시했다.
“그냥 산 채로 썩어가며 죽게 둘 걸 그랬어.”
“다음은 아버지께서 판단하실 거예요.”
일레나는 타냐의 말에 애매한 표정을 지은 채 뭐라고 말할지 고민하다가,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상처부터 치료하죠.”
아름드리 전당포와 루카스의 아이들은 이제 탈락했다.
이제 남은 건 카이루스를 포함해 세 팀이다. 최소한 카이루스는 그렇게 알고 있었다.
‘이 녀석들이 장미정원의 팀.’
그리고, 방금 전 싸움을 노라 갈라테아는 계속 지켜보는 중이었다. 원래는 추격에 시간이 더 걸려야 했지만, 더블린이 질주하는 걸 확인하고 그녀 또한 더블린의 뒤를 쫓았다.
‘멜빈 이스토반.’
노라 갈라테아는 멜빈 이스토반을 확인한 다음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우리는 방향을 잡았으니까. 이제 꾸준히 나아가면 분명히 도착할 수 있을 거다.”
카이루스의 말을 엿들은 노라가 살짝 눈썹을 꿈틀하고는 미소 지었다.
이들을 미행하면 폰투스로 진입하는 입구에 도착할 수 있다.
‘그때 가서 최대한 설득해봐야지.’
피를 보고 싶지 않다. 방금 전의 싸움은 노라 갈라테아도 봤다.
한동안 싸움을 지켜본 결과 그녀는 결론 내릴 수 있었다.
그녀가 더 강하다. 그러니, 저들이 양보하지 않는다면 쓰고 싶지 않은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어쨌든, 성공시킬 방법이 있는 임무는 반드시 완수되어야만 하니까.
당장은 싸울 일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노라는 야타간을 다시 집어넣었다.
“….”
카이루스는 여전히 루나시커 요원을 신경 쓰는 중이었다.
하지만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카이루스의 감각으로도 노라 갈라테아를 찾아내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저 묘하게 불쾌한 느낌과 함께 다소의 불안감 정도만이 카이루스 주변을 허깨비처럼 맴돌 뿐이다.
“왜 그래. 볼일 마려우면 저기 구석에 가서 해결해도 되는데.”
일레나의 말에 카이루스가 대놓고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임마, 똥 쌀 때 이렇게 두리번거리는 거 봤냐.”
“그러게.”
일레나가 신기하다는 얼굴로 카이루스를 바라봤다.
“그럼 뭐가 문제야.”
카이루스는 잠깐 머리를 긁다가 급작스럽게 빛을 발하는 애드온에 여분의 출력을 공급했다.
확, 하고 주변이 밝아졌다. 그 순간 카이루스는 주변을 살폈지만,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냥 좀 피곤한 건가.”
“네가? 먹은 진통제의 부작용일 수도 있지 않아?”
일레나의 말에 타냐가 대답했다.
“소화불량이나 오심이라면 몰라도, 불안감은 카이루스 씨가 먹은 약의 부작용이 아니에요.”
“그렇다고 하네.”
일레나가 다시 카이루스를 바라보자 잠시 더 고민하던 카이루스는 어깨를 으쓱했다.
“내 몸 걱정도 좋은데, 서두르자.”
얼마나 더 가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 전투까지 벌였다.
시간과 기력이 대량으로 소진되었으니, 더 이상의 낭비를 해서는 안 된다.
“그나저나, 궁금한 게 하나 있습니다.”
몇 시간이나 이동했을까, 멜빈이 카이루스에게 다시금 질문했다.
“듣고 있어.”
카이루스 또한 길고 지루한 탐색이 이어지고 있으니, 질문이라도 듣는 편이 덜 심심할 것 같았다.
“제아무리 서로 합의했다지만… 정말로 두 분이 패퇴시킨 조직들은 손을 떼는 겁니까?”
카이루스가 멜빈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좋은 질문이라고 해야 하나… 일단 대답부터 하자면, 그럴 리가 있나?”
천장을 검지로 가리키며 카이루스가 히죽 웃었다.
“저 위에서도 아마 엄청 바쁠 거다.”
카이루스의 말은 사실이었다.
운영위원회에 소속된 조직은 고용한 팀이 패배할 경우 이 일에서 손을 떼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합의된 내용을 지킬 생각이 없었다.
장미정원의 보증은 세력이 비슷한 운영위원회에게까지 구속력을 발휘하지는 못한다.
속이려는 자와 속지 않는 자의 갈등. 이 도시의 오랜 관습이지만, 지금 카이루스가 신경 쓸 일은 아니다. 아마 폰투스의 주인이 결정된 이후에도 분쟁은 계속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