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Treasure Sword RAW novel - Chapter 130
130
그들이 침범한다.
싸움이 바로 벌어진다.
명검이 열 자루만 만들어져도 문제가 일어난다.
그 검을 든 사람들이 해과월의 곁에 선다면 그것은 굉장한 세력이 된다.
그런 거대 조직이 탄생하는 걸 지켜볼 사람들이 아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해과월이 이런 점을 예측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싸움이 일어난다고 공공연히 소문을 내고 있다. 마치 즐거운 마음으로 싸움을 기다린다는 듯이.
도대체 무슨 꿍꿍이인가.
“저런 속도라면 내일이나 모레쯤이면 검을 만들기 시작하겠군.”
백운진인이 침통한 안색으로 중얼거렸다.
대장장이가 사람들을 부려가면서 만들기 시작한 대장간이 어느새 형태를 잡아가고 있었다.
5
뚜닥! 뚜닥! 뚜닥!
대장간에 지붕을 얹는 소리가 저물어가는 황혼과 어울려서 마음을 평온하게 감싸준다.
“날이 저무는군.”
설산일섬이 중얼거렸다.
집 짓는 모습을 하루 종일 바라보고 있었지만 질리지 않는다.
사람들이 움직인다. 이리저리 부지런히 오고 간다. 그리고 그들이 움직일 때마다 초원 위 텅 빈 공간에 그럴 듯한 집 한 채가 완성되어 간다.
우마차가 덜그럭거리면서 온다.
마차 우위에는 각종 쇠붙이들이 묵직하게 실렸다.
화로나 쇠마루, 철탁자 등등 제련에 필요한 물품들이 차례로 실려와 제자리에 놓인다.
자잘한 마무리까지 하려면 앞으로도 보름 이상은 걸려야겠지만, 대장장이 말마따나 대충대충 짓는 것이라면 당장 내일이라도 손을 뗄 수 있다.
“우리 심심한데 내기가 합시다.”
설산일섬이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는 콧수염과 턱수염을 가지런하게 길렀다. 그래서 중년 문사의 내음이 물씬 풍긴다. 유삼만 입으면 무인이 아니라 문인이라고 해도 믿을 게다.
그만큼 얼굴도 점잔하다. 또한 살짝 눈꼬리를 쓸어 올리면서 흘리는 눈웃음이 매력적이다.
문인으로써는 편안한 얼굴이지만 무인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한 주먹감도 안 돼 보인다.
그런 사람이 점창파의 초고수다.
“내기? 어떤 내기 말이오?”
적화자가 누워서 빈둥거리다가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천성은 어쩌지 못하는가. 개방에 몸을 담으면서부터 노름과 술…… 조금 나쁘게 말하면 놀고먹는 일에는 이골이 낫다. 그래서 내기라는 말만 들어도 눈이 번쩍 뜨인다.
“내기랄 것이 뭐 있겠소. 해과월 저놈이 대장간에 언제 들어가는지, 언제부터 일을 시작할 건지 날짜를 맞춰보자는 겁니다. 내기는 간단하게 술 한 판. 어떻소?”
“캬! 좋지. 우선 먹고 시작합시다. 외상 쭉 그었다가 나중에 독박쓰는 사람이 셈하는 걸로. 키키키!”
적화자가 신이 나서 말했다.
“빈승은 안 되겠소.”
일여화상이 손을 저었다.
“에이, 빼지 말고 합시다. 왜? 돈이 없소? 어차피 여기 돈 있는 사람도 없어보이는데 뭘. 간단히 먹을 거니까 겁먹지 말고 합시다.”
적화자가 살살 달랬다.
“허허허! 그게 아니라…… 그런 술자리치고 빈승이 먹을만한 안주거리가 있겠소이까? 모두 풀만 먹지는 않을 테고…… 하하! 빈승은 빠질랍니다.”
일여화상이 손사래를 쳤다.
“허허! 빈도도 빠져야겠소.”
“으잉? 진인은 왜?”
“허허! 나도 육식을 끊은 지 삼십 년이 넘어간다오.”
“그럼 술은?”
“맛보기로 한잔? 반잔?”
“쯧! 그래서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사나. 쯧!”
적화자가 혀를 찼다.
내기는 무산되었다. 네 사람 중에 두 사람이 빠지니 시작도 하기 전에 맥부터 빠진다.
목수들이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날이 어두워져서 더 이상 공사를 진행할 수 없다.
“가면서 화주 한 잔 어때?”
“좋지. 일도 다 끝났겠다…… 오늘은 진하게 한 잔 때리자고.”
목수들이 왁자지껄 떠들어댔다.
보아하니 허름한 채로 공사를 마치는 것 같다.
아직 대장간에 문도 달지 않았다. 청문도 구멍만 뻥 뚫려있다.
아무리 허술하게 짓는다고 하지만 이건 누가 봐도 짓다가 만 집이다. 장담하건데 이대로 한 달만 방치하면 영락없이 흉가로 변해 있을 게다.
목수들은 떠나갔다.
그들 네 사람은 떠나지 못했다.
저벅! 저벅! 저벅……!
한 사내가 어둠을 밟으면서 걸어온다. 목수들이 떠난 자리로 해과월이 걸어온다.
그들은 어두워지기 시작한 초원에서 몸이 잔뜩 경직한 채로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흠! 괜찮군.”
해과월이 엉성한 대장간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그는 구경삼아서 대장간을 빙 둘러봤다. 안에도 들어가서 이것저것 공구들을 만져봤다. 그리고는 밖으로 나왔다. 아니, 네 사람이 앉아있는 곳으로 곧장 걸어왔다.
“우리…… 말할 게 남아있죠?”
백운진인에게 한 말이다.
“흠! 시연은 잘 봤네. 솔직히 그게 백만 냥 가치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고……”
“말씀은 그렇게 하시지만, 그 판단은 이미 내리셨을 겁니다. 그러니 지금 이 자리에 계신 거겠죠. 어떻습니까? 검을 사실 마음이 있으십니까? 물론 검가는 백만 냥입니다.”
해과월이 태연하게, 아주 당당하게 말했다.
“허허! 빈도에게 그만한 돈이 있을 리 있겠나. 솔직히 그만한 돈이 없네. 자네 검이 탐나기는 하지만 땡전 한 푼 없는 빈도에게는 아무래도 신외지물(身外之物)인 듯 싶네.”
“그렇군요. 하하! 검 한 자루 팔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아쉽습니다.”
“허허!”
백운진인은 쓰게 웃었다.
“개방은 어떻습니까? 천하제일검에 관심 있습니까?”
그가 적화자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험! 우리 개방은 검을 쓰지 않네. 타구봉(打狗棒) 한 자루면 되지. 흐흐! 그런 면에서 상당히 경제적이라고 할까. 아무데서나 버려진 몽둥이만 줏어 들면 되지. 키키키!”
절대 그렇지 않다. 개방도는 타구봉이 손에 익을 때까지 타구봉법을 수련한다. 이 말은 다시 말해서 제각각 선호하는 티구봉의 무게가 정해져 있다는 뜻이다.
“음! 개방 같은 대방파라면 한 자루 사주실 줄 알았는데 기대가 너무 컸군요.”
“크크크! 거지에게 빈대 붙으려고 하면 쓰나. 자네도 참 어지간하군. 주머니를 탈탈 털어봐야 구린내밖에 안 난다네. 흐흐흐!”
적화자가 해과월을 쳐다보면서 웃었다.
아니다. 웃지 않았다. 입으로는 웃음을 흘리고 있지만 두 눈은 차디차게 번뜩였다.
모두들 마찬가지다. 해과월을 향해서 웃는다. 그러나 두 눈은 얼음처럼 차갑다.
해과월이 무엇 때문에 자신들에게 말을 거는가.
그들은 해과월이 하려는 일을 안다. 해과월도 자신들이 무엇 때문에 이 자리에 앉아있는지 안다.
서로 말을 섞을 일이 없다.
해과월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 그만이고, 자신들은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나중에는 어떤 관계가 될 지 모르지만, 지금은 적당한 거리를 두는 편이 좋다.
해과월과 깊은 교분을 맺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좋지는 않다. 어떤 때는 그런 깊은 교분이 족쇄로 작용할 수도 있다. 싸움이 예상되는 시점에서는 특히 그렇다.
“타구봉 좀 봐도 되겠습니까?”
해과월이 손을 내밀었다.
적화자자에게, 개방 장로에게 그가 사용하는 병기를 내달라고 요구한다.
다른 사람이 이런 말을 했으면 대뜸 미친놈이라도 쏘아붙였을 게다. 하지만 상대는 장인이다. 병기를 만드는 도공이다. 무인이기도 하지만 지금은 도공으로써 하는 말이다.
적화자는 타구봉을 내밀었다.
해과월은 타구봉을 받아들고 허공에 휘휘 내저었다.
휘익! 휙!
바람 소리가 어둠을 가른다.
그는 타구봉을 휘둘러보다가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무게를 저울질했다.
“무게가…… 열네 냥. 맞죠?”
“허! 맞네.”
“흠! 겨우 열네 냥인데 굉장히 단단하군요.”
그가 타구봉을 건네주면서 말했다.
“흐흐흐! 이거 영광이라고 해야 하나? 천하 제일의 장인이 칭찬을 해주니 말이지. 키키!”
“내기할까요?”
“내, 내기? 뭔 내기?”
“내일 검을 만들겠습니다. 그 검으로 이 타구봉을 양단하죠. 일검에. 단 한 번에. 어떻습니까? 내기는 술 한 판 진하게 사는 것으로. 하면 적당할 듯하고.”
네 사람이 주고받는 농담을 들은 듯 모양이다.
“크크크!”
적화자는 웃기만 했다.
내기를 할 수가 없다.
그까짓 술 한판 진하게 사는 것이야 얼마든지 살 수 있다. 하지만 해과월의 말이 맞을 것 같다. 그가 검을 만들고, 그 검으로 타구봉을 내리친다면 이까짓 타구봉 쯤은 단번에 양단될 것 같다.
내기 성립이 안 된다.
“검을 보여주시겠습니까?”
해과월은 설산일섬을 쳐다보며 말했다.
“흠!”
설산일섬은 검집째 풀어서 내줬다.
이번애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면 치도곤을 치르고도 남는다. 어디서 감히 존장의 검을 보여달라고 하는가. 하지만 상대는 장인이다.
그렇다. 그들은 해과월을 무인으로 보지 않고 장인으로 봤기 때문에 병기를 내밀었다.
해과월 검을 받아들고 천천히 검을 뽑았다.
스르르릉!
하얀 광채가 어둠을 가른다. 이제 막 뜨기 시작한 달빛을 받아서 요사스럽게 번뜩인다.
어둑해지는 저녁 초원에 살기가 감돈다.
시퍼런 청감장검에서 뿜어져 나온 예기가 풀을 자르고, 바람을 가른다.
“좋군요.”
“명검이네. 한 번도 패배를……”
설산일섬을 말을 하다말고 입을 다물었다.
한 번도 패배를 모른 검!
이것이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이다. 하지만 해과월 앞에서는 그런 말을 할 수가 없다. 천살검을 만든 사람에게 명검 자랑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 검은 어떻습니까? 내기기 될까요?”
“그렇게 자신 있나?”
설산일섬의 눈가에 기광이 번뜩였다.
순하고 점잖던 사람이 노기를 띄웠다.
해과월이 담담하게 말했다.
“자신있습니다.”
“좋네. 하지.”
설산일섬이 내기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어서 말했다.
“그럼 이것도 확실히 해야겠군. 내일 검을 만들어서 이 검을 양단한다는 뜻이 뭔가? 무공으로 내 검을 자르겠다는 건가, 아니면 지금처럼 검을 빌려달라는 건가?”
이 순간, 설산일섬의 눈가에 살광이 번뜩였다.
검만 겨루는 것이라면 상관이 없지만, 무공까지 겨루는 것이라면 점창파의 명예를 걸어야 한다. 이문장 대장간에서 봤던 바로 그 검초를 직접 상대해야 한다.
그럴 생각이다. 그럴 생각으로 말했다.
해과월이 씩 웃었다.
“그 선택을 내일 해주십시오.”
“뭐라고? 나더러 정하라는 말이냐!”
“그렇습니다.”
“방자하구나!”
설산일섬이 모욕감을 느끼고 버럭 고함을 질렀다.
“그 역정도…… 내일 내십시오. 검을 다 만들고 난 후에.”
네 사람은 초원에서 자리를 뜨지 못했다.
해과월의 말뜻이 무엇인가. 검의 강함만 겨뤄도 좋고 설산일섬과 무공으로 겨뤄도 좋다는 뜻이다. 어떤 겨룸을 하던지 간에 검을 만들고 난 다음에 설산일섬이 선택하란다.
이건 무조건 싸움이다.
어떤 것으로 겨뤄도 좋다고 말했다. 당신 정도는 두렵지 않다는 뜻이다. 그런 말을 들은 마당에 검의 강함만 겨루자고 말할 수는 없다. 그것은 패배를 자인하고 들어가는 길이다.
점창파, 설산일섬의 명예을 걸고 싸울 수밖에 없다.
해과월…… 그가 싸움을 걸어왔다.
‘그렇게 자신있는가? 우리 정도는 안중에도 없는가? 그 무공…… 정녕 그 무공을 펼칠 수 있는 겐가?’
그들의 속마음이다. 하지만 이 말도 입 밖에 내지 못했다.
그들은 무거운 마음으로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쉬이익! 쉬익!쉬이이익1
화로에 불이 지펴졌다.
아직 동도 트지 않은 이른 새벽, 해과월은 대장간에 나왔다.
그는 뜬 눈으로 밤을 밟힌 네 명은 쳐다보지도 않고 대장간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묵묵히 화로에 불을 피웠다.
불길이 화르륵 살아난다.
드륵! 드륵! 드드륵!
그는 풍로를 돌렸다.
화로 속의 불길이 더욱 거세게 피어난다.
그들 네 명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대장간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해과월이 그들을 초대했다.
안으로 들어오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검을 만들고 난 다음에 싸움 방식을 말하라고 했다. 그러니 그게 바로 초대다. 그 말 자체가 검 만드는 것을 구경해도 좋다는 뜻이다.
그들이 이런 기회를 놓칠 리 없다.
검 만드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가 정말로 최극고수인지 알고 싶었다. 그런 점들을 알기 위해서 일부러 남지 않았나. 하물며 보고 싶은 것을 직접 볼 수 있는데, 어찌 보지 않겠나.
“쇠 좀 주시겠습니까?
해과월이 불길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이거 말인가?”
일여화상이 목단 위에 쌓여있는 한철(寒鐵)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세 덩이만 올려주십시오.”
일여화상은 쇳덩이 세 개를 집어서 화로 곁으로 다가섰다.
“어디다가……?”
“저 위에 올려주세요.”
해과월이 눈빛으로 화로 한 가운데서 새빨갛게 달아오른 작은 통을 가리켰다.
쇳덩이를 올려놓기 딱 좋은 통이다. 아니, 그러라고 만든 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