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Treasure Sword RAW novel - Chapter 150
150
이문장에서 해과월을 납치해 온 것이 그녀의 첫 작품이다.
물론 그것도 그녀가 생각한 바는 아니다. 그녀는 다른 것을 생각했지만, 해과월이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차선책을 택하게 되었다. 그를 납치해온 것도 그녀의 뜻이 아니었던 것이다.
주한극의 참모를 믿지 않는다. 약간의 조언을 들을 뿐이다. 그는 모든 결정을 자신의 판단에 따른다.
해과월을 납치한 것도 그녀의 조언에 따른 것이지만 결정적인 행동판단은 그가 내렸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는 말이 있다.
욕심이 없다가도 보물을 보면 탐욕이 생긴다는 뜻이다.
그 당시 이문 우시장에는 보물이 두 개가 있었다.
하나는 검 네 자루다. 그것은 완벽하게 창조되었다. 천살검, 혈황검에 못지않은 명검이 눈앞에 드러나 있다.
한 자루만 취해도 천하를 오시할 보검이 무려 네 자루!
욕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주한극의 가장 큰 상대는 당연히 마출성이다.
마출성은 언제나 주한극의 그늘에서 지낸 인물이었지만, 천살검을 지닌 순간부터 당당하게 맞상대로 등장했다.
그런 검이 네 자루나 더 등장했다.
이것은 대단한 사건이다.
설산일섬의 무공이 조금만 더 강했다면 그는 결코 마출성에게 당하지 않았을 게다. 뿐만 아니라 마출성이 그랬듯이 천하의 주인 자리를 놓고 자웅을 결할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된다.
물론 그때는 세력도 문제가 된다.
설산일섬이 몸담고 있는 점창파로는 아무래도 천하패권을 노릴 수 없다.
주한극이 그래서 망설이고 있다.
마출성이 어떤 세력을 취하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함부로 나설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천하제일검이 네 자루나 더 있다면 문제는 확연히 달라진다.
만약 그 검 네 자루 중에 한 자루를 비성검문 제일검에게 주었다고 가정해 보자. 그리고 주한극과 제일검이 마출성을 상대로 협공을 취한다고 해보자.
결과는 대번에 갈린다.
주한극 같은 인물이 협공을 취할 리 없다고? 그런 자존심 상하는 일을 어떻게 하냐고?
과거, 마출성이 그런 일을 했다.
천살검을 수중에 쥐었음에도 독을 써서 주한극을 중독시켰다. 그뿐만 아니다. 청천맹 무인들 대다수가 협공을 펼쳤다. 마출성이 나선 것은 그 다음이다.
천하제일권자를 너무 깨끗하게 보지 마라. 그들이야말로 패권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지 할 수 있는 자들이다. 허니 협공 같은 것은 말할 필요가 있는가.
보검 네 자루만 취하면 지금 당장이라도 마출성을 칠 수 있다. 그런데 주한극은 긴 싸움을 선택했다. 그만큼 마출성이 쥐고 있는 패가 심상치 않다는 것이다.
운벽슬은 그게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주한극이 그녀에게 전체적인 윤곽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알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이제 대청으로 부른다.
아주 간단한 전갈이지만, 이 전갈이 의미하는 바는 매우 크다.
대청은 주한극이 집무를 보는 곳이다.
그의 전 세력이 대청에 집결되어 있다. 취합되는 정보가 모두 대청으로 모인다. 대청에서 계획이 준비되고, 움직일 사람들이 선발된다.
대청은 주한극의 머리다.
그가 자신을 그곳으로 불렀다. 그의 머릿속으로 끌어들였다.
이 뜻은 이제부터 그녀를 본격적으로 쓰겠다는 말로 해석해도 무방하리라.
‘드디어 나를 쓰겠다 이거지. 그렇게 믿지 않더니…… 뭔가 변화가 생긴 게 분명해.’
운벽슬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처음부터 대청의 모든 것을 보여줄 리는 없다. 지금 그녀를 대청으로 부른 것은 변화를 일으킨 것, 그 무엇에 대한 해결을 명하는 것일 게다. 하지만 이것이 시초다. 이 일을 계기로 대청에 있는 모든 것이 그녀에게 보여진다.
대청을 향해서 걷는 발걸음이 무척 가벼웠다.
주한극은 검 두 자루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어서 와.”
주한극이 따뜻한 말로 반겼다.
운벽슬은 사뿐사뿐 걸어서 탁자 곁으로 다가섰다.
‘혈황검! 철…… 검!’
탁자 위에 올려져 있는 검 중 한 자루는 맹주의 애검인 반 토막 혈황검이다. 그리고 다른 한 자루는 대충 만든 듯 투박하기 이를 데 없는 철검이다.
철검은 평범해 보인다. 하지만 그녀는 철검이 탁자 위에 올려져 있는 까닭을 안다.
해과월이 벌써 검을 만들어냈다.
이문 우시장에서처럼 거침없이 만들어낸다.
이제 해과월에게는 보검 만드는 일이 어린아이 장난감 만드는 것처럼 손쉬운 일이 되어버린 듯하다. 어느 장인들이 검 한 자루 뚝딱 만들어 내듯이 그저 불길 좀 일으키고 망치 몇 번 툭툭 두들기면 이런 검이 튀어나온다.
보검이 아주 흔해 빠진 세상이 되는 것인가.
“검을 만들기 시작했군요.”
“중단시켰다.”
“네?”
그녀는 봉목을 부릅떴다.
해과월이 검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중단시켜? 왜?
“이 따위 검은…… 수백 자루라도 필요 없어.”
주한극이 철검을 들어보며 말했다.
“뭐가 잘못됐나요?”
주한극은 대답 대신 검을 내밀었다. 직접 보라는 듯이.
운벽슬은 검을 받아들었다.
철렁!
검의 묵직한 무게가 손 위에 얹힌다.
무게감이 좋다. 겉보기에는 투박한 철검인데, 막상 손에 들어보니 나뭇가지를 듯 것처럼 가볍다.
해과월이 만든 검은 거의 이렇다.
그의 검은 겉모습으로 판단해서는 곤란하다. 겉치장보다는 속 알맹이를 중시하는 습성 탓인 것 같다. 기왕이면 겉모습까지 보검 형태를 갖추면 좋으련만.
‘좋은 검!’
보검의 진가를 단박에 느낄 수 있다.
검기(劍氣)는 어떤가? 아주 좋다. 검을 쥐자마자 검무를 추어보고 싶은 생각이 샘물 솟듯 일어난다.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검초를 이 검으로 펼쳐보고 싶다는 욕구가 치민다.
해과월이 또 좋은 검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검을 쥐었는데, 명검을 들었는데…… 욕심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 검을 내가 꼭 가져야겠다는 탐심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게 뭐지?’
그녀는 곤혹스러웠다.
사실 그녀는 그가 만든 검을 처음 쥐어보는 게 아니다. 주한극은 처음일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이게 벌써 세 번째다.
귀사령 무인들 전원에게 만들어 준 묵검을 쥐어봤다.
아주 좋다. 강렬한 느낌이 들었다. 그 검만 가지고 있으면 누구와도 싸울 수 있을 것이라는 느낌이 소록소록 치밀었다. 그리고 묵검은 그런 생각에 호응해 주었다.
두 번째 검은 유리검이다.
그 검은 아직도 은밀한 곳에 소장되어 있다.
묵검과 강도가 같으면서도 예리함에서는 한 발 앞선다. 여인처럼 부드럽지만 강력함으로는 어느 검에도 뒤지지 않는다. 또한 해과월이 만든 검치고는 유일하게 보검다운 광채를 뿌려낸다. 유리처럼 맑은 광채를 말이다.
누구에게 주고 싶지 않은 명검이다.
그 검이 자신의 손에 들어왔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사촌이 땅을 샀을 때처럼 배가 아팠을 게다.
그가 만든 검은 모두 욕심이 난다.
그런데 이 철검은 욕심이 나지 않는다. 분명히 명검이기는 한데, 아무런 탐심도 일어나지 않는다. 내가 갖고 싶다는 느낌이 일어나지 않는다.
주한극이 그녀의 얼굴 표정을 보면서 물었다.
“느꼈나?”
“네.”
“어떤가?”
“……”
운벽슬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주한극은 혈황검을 내밀었다.
“제가 만져도……”
“괜찮아. 만져봐.”
운벽슬은 철검을 내려놓고 혈황검을 쥐었다.
천고의 명검, 혈황검을 처음으로 쥐어보는 순간이다.
주한극은 자신의 애검을 남에게 내놓지 않았다. 세검도 자신이 직접 했다. 절대로 남의 손이 닿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혈황검이 반 토막 나지 않았다면 해과월에게 맡기는 일도 없었을 게다.
스읏!
검을 쥐었다.
‘천하제일의 검!’
아니, 이제 혈황검은 천하제일검이 아니다. 천살검에게 반 토막으로 부러지고 말았으니 제이검이라고 해야 한다. 하지만 아직도 천하제일검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천하제일검의 위치를 그만큼 오랜 세월동안 지켜왔기 때문이리라.
“으음!”
운벽슬은 검을 쥐자마자 파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혈기가 끓어오른다. 투지가 일어난다. 싸움이 두렵지 않다. 아니, 싸움을 원한다. 조그만 트집거리라도 잡아서 지금 당장 싸움을 벌이고 싶다.
진기가 증폭한다.
자신의 진기가 십(十)이었다면 검을 쥐자마자 이십(二十)으로 확장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게 혈황검!’
그녀는 눈을 부릅뜨면서 혈황검을 내려다봤다.
“어떤가? 좋지 않나?”
“아주 좋군요.”
운벽슬은 대답을 하면서 급히 검을 내려놨다.
“혈황검은 무인의 마음을 알아. 무인에게 힘을 보태줘. 그래서 이놈이 반 토막으로 잘린 후에도 난 이놈을 놓지 못하고 있는 거야. 후후후! 어떻게 이놈을 버릴 수 있나.”
주한극이 혈황검을 꽉 움켜잡으면서 말했다.
‘으……’
운벽슬은 신음했다.
그녀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혈황검을 손에 쥐는 순간, 검에 대한 인식이 확 바뀌었다.
이것이 진정한 검인가? 이것이 천하제일검의 위용인가? 천하제일검의 맛인가?
해과월이 만든 검은 이런 느낌을 주지 않는다. 강한 검, 부러지지 않는 검인 것만은 확실하다. 혈황검에 필적할 만큼, 맞수가 될 만큼 강력한 검이라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혈황검에는 절대로 미치지 못한다.
묵검? 유리검? 그 어떤 검도 혈황검과 견주지 못한다. 혈황검처럼 강력한 힘을 주지 않는다. 단지 느낌이 아니다. 실제적으로 투지를 일으켜준다.
검이 사람에게 힘을 준다.
해과월이 만든 검은 전혀 그렇지 않다. 어떤 검도 실질적으로 힘을 보태주지는 않는다.
‘쓰레기를 가지고 좋아했다니……’
운벽슬은 격동하는 내심을 가라앉히려고 무진 애를 썼다.
“상당히 놀랐나 보군.”
주한극의 그녀를 힐끔 쳐다보면서 말했다.
“많이 놀랐어요. 혈황검을 오래 보아왔지만 진가를 알기는 처음이에요.”
그녀는 감탄을 숨기지 않았다.
주한극이 혈황검을 내려놓고 철검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검신을 세심하게 살펴보며 말했다.
“이 검도 좋아. 혈황검에 못지않게 좋아. 혈황검과 부딪치면 한 치도 밀리지 않을 거야. 하지만……”
운벽슬이 끝나지 않은 말의 뜻을 알아들었다.
‘뭔가가 부족해.’
주한극이 말했다.
“처음 놈이 검을 만든 것은 이러지 않았어. 천살검을 봤나?”
“보기만 했어요.”
“얼핏 봤겠지?”
“네.”
“나도 얼핏 봤어. 싸울 때. 후후! 이 자리에는 그 검을 얼핏 본 사람만 모여 있군. 그 검을 자세히 본 자들은 청천맹에 있고 말이야. 하하하!”
“……”
“천살검과 부딪칠 때, 난 천살검의 생명력을 알아봤어. 독기를 품은 용이…… 아냐, 아냐. 독기를 품은 독사가 달려드는 느낌이었지. 독사! 그래, 용보다는 독사가 맞아.”
주한극이 철검을 내려놨다.
“천살검의 살기는 혈황검을 능가했다. 그래서 혈황검이 잘린 거야. 그렇지 않았다면…… 후후! 어림도 없지. 알겠나? 혈황검은 쇠붙이의 강도에서 밀린 것이 아니라 살기에서 밀린 거야. 천살검의 살기에 잘린 거지.”
운벽슬은 대답하지 못했다.
숨이 막혀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천살검의 예기가 목 밑에 드리워지는 느낌이다.
혈황검과 천살검이 흉흉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혈황검을 손에 쥐어보기 전에는 흉흉함이 진실로 피부에 와닿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혈기를 자극할 줄은 몰랐다.
천살검은 혈황검보다 살기가 더 강하다? 그럼 천살검을 손에 쥐면 어떤 느낌이 들까? 사람을 죽이지 못해서 안달하는 살인귀가 되지 않을까?
숨이 막힌다.
한 자루 장검이 그런 느낌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주한극이 말했다.
“이런 검은 필요 없어. 혈황검이나 천살검 같은 검…… 그런 검을 만들라고 해. 그렇지 않으면 비비를 죽여. 아니, 사지를 하나씩 잘라내. 반드시 이런 검을 만들게 해.”
운벽슬은 머리끝이 쭈빗 곤두섰다.
‘비비까지 알고 있었나……’
주한극의 말은 단순하지 않다. 그는 비비가 어디에 숨어있는지 알고 있다. 그러니 서슴없이 비비를 거론하는 것이다. 막연하게 짐작하는 것이 아니라 확실하게 알고 있다.
그녀는 비비를 숨겨 놨다. 아주 은밀한 곳에. 비망이 절대 찾을 수 없는 곳에. 유림 속에.
그런데 주한극이 유림을 알고 있다. 그녀가 숨겨져 있는 곳을 알고 있다.
그럼 자신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절대…… 충성을 요구하고 있다!’
운벽슬은 주한극의 뜻을 눈치 챘다.
그가 자신을 대청으로 부른 것은 해과월이 만든 검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제부터는 그녀의 모든 것을 내놓고 절대적으로 충성하라는 의미가 강하다.
말을 듣던가, 죽던가. 선택하라.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다. 이제 확실히 결정해라. 그래야 같이 일할 수 있지 않겠나.
운벽슬은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주한극은 무릎 꿇는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의 눈길은 혈황검에 꽂혀서 떨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