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Treasure Sword RAW novel - Chapter 181
181
이것이 고수들이 느끼는 검기다.
해과월은 예기를 뿜어내지 않는 검, 검집에 들어있는 검에서 죽음의 기운을 감지했다. 살기를 드러내지 않는 사람에게서 죽음을 읽었다. 그것도 일이 장 정도 떨어진 곳에서 감지한 것이 아니라 백 장, 이백 장 거리에서 읽었다.
누구도 믿지 못할 말이다.
해과월이 귀사령주의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무림에 나서볼까 합니다.”
“후후후!”
“우선 적화자, 백운진인, 일여화상께서 도와주신다고 했습니다. 사문과는 관계없이 개인적인 자격으로.”
귀사령주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대신 눈빛이 번뜩였다.
다소 의외이기는 하지만 짐작은 간다. 이문장에서 그들에게 검을 만들어 주었으니 그만한 친분쯤은 있을 법도 하다.
해과월이 말을 이었다.
“무림에 나선다는 말이 다소 과했나요? 정정하죠. 청천맹에 볼 일이 있습니다. 청천맹주 마출성에게.”
“맹주에게 접근이나 할 수 있을 것 같으냐?”
“그런 건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에게 맡겨놓은 천살검을 거둘 생각입니다.”
“뭐? 하하하! 하하하하!”
귀사령주는 앙천광소를 터트렸다.
마출성은 천살검을 쥠으로써 맹주가 될 수 있었다. 천살검 덕분에 주한극을 밀어낼 수 있었다. 그런 검을 내주겠는가? 그것도 한낱 장인에게.
더욱 기가 막힌 것은 해과월의 태도다.
해과월은 마치 마출성에게 검을 맡긴 듯 말하고 있다. 자신이 거두고 싶으면 언제라도 거둘 수 있는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무림을 모르기에 이토록 광망할 수 있는 것인가?
해과월을 그렇다치고 세 장로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무림을 모르는 철부지의 장단에 춤이라도 추고 있는 것인가.
해과월이 웃는 귀사령주는 보면서 말했다.
“그러기 전에…… 머리가 너무 복잡하군요. 무림이란 곳이 굉장히 복잡합니다. 뭐가 이렇게 생각할 게 많은지…… 우선 무림에 대해서 알아야겠습니다. 백운진인, 적화자, 일여화상도 알지 못하는 것. 개방의 정보망에도 실체가 잡히지 않은 것.”
귀사령주의 눈빛에 차갑게 굳어졌다.
해과월이 그런 눈을 뚫어지게 응시하며 물었다.
“홍화문을 겁박하는 건 누굽니까?”
“……”
“령주께서는 누구를 두려워하시는 겁니까?”
“……”
“마출성도, 주한극도 두려워하지 않던 분이 죽음을 생각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오늘 제 안계를 넓혀주셔야겠습니다.”
“하하하! 하하하하!”
귀사령주가 앙천광소를 터트렸다.
제37장 피붙이
1
만물에는 겉과 속이 있다.
밝음과 어둠, 흑과 백, 양과 음……
겉과 속을 구분하는 말은 많지만, 그 실체를 정확하게 규명하는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겉과 속을 구분할 수 있는 선이 어디인가.
완전한 겉과 완전한 속은 구분할 수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가 겉이고, 어디까지가 속이냐고 물으면 대답할 말이 없어진다.
만물에는 중간 영역이 존재한다.
일명 정(正)도 아니고 사(邪)도 아닌 괴(怪)의 영역이다.
홍화문은 이 괴에 속한다.
그들은 결코 정이 아니다. 여색을 이용한다는 자체가 정도에서 어긋난다. 방법이 잘못되었고, 그렇게 해서 얻어낸 결과조차도 좋지 않은 데 이용된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사마 무리라는 말도 하지 못한다.
첫째, 홍화문도의 살수(殺手)에는 반드시 정당한 근거가 있다.
홍화문도를 건드리지 않는 한, 그녀들도 살수를 쓰지 않는다. 홍화문도가 죽으면 그에 합당한 값을 치르게 한다. 홍화문도를 핍박했으면, 딱 그만큼의 징치를 가한다.
당한 만큼 돌려준다.
여색을 이용해서 모종의 목적을 이뤄놓고, 그런 사실이 발각되어서 사단이 났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럴 경우에도 홍화문도의 목숨만은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홍화문도는 이런 율법을 지켜왔다.
둘째, 천륜에 어긋한 색도(色道)는 쓰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은 홍화문도를 욕한다. 홍화문도라고 하면 인륜도 없는 천한 것들 쯤으로 여긴다. 여자 하나가 들어가서 한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는 소문이 심심찮게 나돈다.
그런 일 없다.
홍화문도는 문도수가 수천 명이나 되는 문파에 잠입해도 목표로 한 딱 한 명만 치마폭에 가둔다. 그 외에 다른 어떤 사내에게도 눈길을 주지 않는다.
홍화문도는 색녀들의 집단이 아니다.
홍화문도는 난잡한 여인들의 집합체가 아니다.
홍화문도는 꼭 필요한 일에만 동원되며, 맡은 일은 반드시 수행해 낸다.
셋째, 홍화문도는 무림에 적(籍)을 두지 않는다.
홍화문도가 무엇을 하는지 아는 사람이 있는가? 홍화문도가 무림의 시시비비에 끼어들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홍화문도가 무공을 겨루다가 다치거나 죽었다는 말을 들어봤나? 혹은 누구를 죽였다는 말은 들어봤는가?
홍화문도는 일절 무림사에 개입하지 않는다.
홍화문은 독자적인 집합체이다. 무림과는 전혀 상관없이, 이 세상과도 상관없이, 외딴 곳에 뚝 떨어져서 그녀들만의 세상을 일구면서 살아간다.
헌데 이런 괴는 겉과 속, 양쪽의 표적이 된다.
무림은 홍화문을 이적(夷狄) 취급한다. 홍화문도라고 하면 창기들보다 더 추잡한 계집들이라고 여긴다. 마치 더러운 오물 보듯이 쏘아본다.
이런 취급은 사마쪽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홍화문을 수중에 쥘 수 있는 작은 문파 정도로 여긴다. 정도 무림을 요리할 수 있는 도구 정도로 말이다.
홍화문을 공격할 곳은 많다.
“음살문이다.”
홍화문주가 입을 열었다.
비비의 어머니…… 그렇게 생각해서일까? 키나 용모, 말하는 음성까지 비비와 닮았다. 비비가 홍화문주를 닮은 것이겠지만…… 비비를 보는 것 같다.
“음살문이라면 하오문에서 파생된……?”
적화자가 눈을 가늘게 뜨면서 말했다.
“맞아요.”
“음!”
일여화상과 백운진인이 거의 동시에 신음성을 터트렸다.
음살문이 어떤 문파인지 모르는 사람은 해과월 밖에 없다. 다른 사람들은 머릿속에 남을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한두 번쯤은 들어본 문파다.
대체로 파생문파는 본파를 넘어서지 못한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는 말도 있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에 한해서다. 본파를 뛰어넘어서 오히려 본파를 억누를 정도로 강성하게 피어날 수는 없다.
하오문은 그런 문파를 두 개나 탄생시켰다.
홍화문과 음살문.
홍화문도의 무공은 하오문을 능가한다. 현재의 하오문은 아직도 개천바닥을 뒤지고 있지만, 홍화문은 무림의 태산북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정도가 되었다.
음살문에 대한 평가는 보류상태다.
음살문의 실체를 아는 사람이 없기에 한 마디로 단정내릴 수가 없다. 하지만 음살문이 살검을 들면 어느 문파든 혈해(血海)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말이 거의 정설처럼 굳어져 있다.
홍화문주의 입에서 미지의 문파, 음살문이 거론되었다.
백운진인이 물었다.
“음살문이 어째서 홍화문을 노리는 것이오? 음살문과 홍화문은 같은 일맥인 것 같은데.”
“일맥이 아니에요. 이제는 완전히 다른 삼파(三派)에요. 저희나 음살문은 하오문에 간여하지 않아요. 하오문 기녀들과 아무런 연계도 맺고 있지 않죠.”
“그래도 뿌리는 같지 않나?”
“바로 그것 때문에 음살문이 저희를 노리는 거예요.”
홍화문주가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홍화문과 음살문은 하오문이라는 같은 뿌리를 두고 있다. 무공의 기본적인 바탕이 같다는 뜻이다.
홍화문의 무공과 음살문의 무공은 전혀 다르다. 하지만 근본을 들여다보면 같은 물줄기가 흐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음살문은 홍화문의 무공을 즉시 파악할 수 있다.
홍화문도 마찬가지다. 상흔(傷痕)만 보고도 어떤 무공인지, 무공을 사용한 자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낸다.
서로가 서로의 무공을 짐작한다.
이런 관계는 매우 불편하다. 특히, 음중음(陰中陰)의 길을 걷는 사람에게는 뒷일을 보고 밑을 안 닦은 사람처럼 께름칙하다. 항상 마음속에 답답한 먹구름이 드리워져 있다.
해결책은…… 멸(滅)!
그래서 친다. 완전히 멸절시켜 버린다. 그쪽이 마음에 편하다.
그럼 홍화문과 음살문이 맞겨룬다면 어떻게 될까? 말할 필요도 없다. 음살문이 백 배, 천 배 강하다. 홍화문은 검도 들어보지 못하고 멸절당한다.
그래서 기무영을 만들어냈다.
원래 기무영은 기녀들의 안위를 보살피고, 그들의 복수를 하기 위해 탄생한 존재들이지만…… 지금은 활동영역이 완전히 바뀌었다. 음살문을 감시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기무영이 음살문을 감시한다.
음살문이 어떻게 활동하는지, 언제 어떤 형태로 무림에 나서는지 끊임없이 지켜본다.
그들이 나서면 홍화문의 미래가 암울해지기 때문에 눈에 불을 켜고 살펴본다. 한시도 시선을 떼지 않고 주의 깊게 살핀다. 목숨이 위험해져도 시선만은 떼지 않는다.
기무영이 어둡고 쓸쓸한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다.
살피고 살펴야 할 것, 그 중에 하나가 혼천음양마공이다.
수교빈이 수련하고 있고, 거의 완성직전에 이르렀다. 일명, 인검…… 살인검이다.
홍화문은 수교빈이 인검을 완성하면 음살문도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수교빈을 보냈다.
인검이 완성되기 전에 음살문에 대한 어떤 꼬리라도 잡고 싶어서 기무영을 파견했다.
‘비비…… 수교빈……’
해과월의 표정이 더욱 암울해졌다.
만날 필요가 없는 두 여자가 그렇게 해서 만났다.
홍화문주가 해과월을 쳐다보며 말했다.
“혼천음양마공은 청천맹주에게서 나왔네. 음살문의 무공이 청천맹주 손에서 나왔으니, 마출성 또한 음살문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하네.”
“그건 너무 억측 아닌가. 음살문은 여인만으로 구성되었다고 들었네만.”
적화가가 신중해진 얼굴로 물었다.
그는 이 엄청난 사실 앞에서 장난기 섞인 표장을 짓지 못했다. 농담도 하지 못했다.
“비비가 죽인 음살문도는 남자들이었어요. 음살문이 여자만으로 구성된다는 관례를 깬 것 같아요.”
“음! 그럼 그들이 곧……”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저들은 수교빈이 무공을 완성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 같아요. 그때가 되면…… 제일 먼저 저희가 공격당할 거예요.”
“방금 전에 같은 일맥이라서 서로 간에 무공을 짐작한다고 했는데, 그럼 혼천음양마공도 알고 있나?”
“몰라요.”
“그런데 왜?”
“음살문은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겠죠. 다른 무공들은 거의 알고 있으니까.”
“혼천음양마공은 언제 완성될 것 같나?”
“언제인지는 모르겠는데, 거의 다 됐어요. 곧? 하루나 이틀? 길어도 한 달은 걸리지 않을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뭔가?”
“정혈이 고갈되어서 죽은 시신이 두 구로 늘었어요. 하루에 두 명씩 양기를 빨리고 있어요. 극성으로 치닫는다는 증거죠. 시신이 세 구로 늘어나면…… 완성이에요.”
“비비가 얻어낸 것은 뭡니까?”
해과월이 방금 전보다는 한결 차분해진 신색으로 물었다.
기무영의 옷을 입으면 두 번 다시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다. 죽을 때까지 기무영으로 살다가 죽어야 한다.
비비가 그런 길을 택했다.
자신을 영원히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검을 들었을 게다.
그녀의 마음을 짐작하기에 가슴이 쓰려온다. 아파온다. 그리움을 삼키면서 검을 들었을 그녀를 생각하니, 애잔함이 폭설이 되어서 쓸고 내려온다.
이제 그녀의 역할은 끝났다.
수교빈에게 사로잡혀서 온갖 고역을 치르고 있다. 기무영으로써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한다. 수교빈 곁에 머물고 있을 음살문의 흔적도 찾아내지 못한다.
그녀가 알아낸 일이라고는 음살문에 사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고작이다.
단지 그 정도를 알기 위해서 그녀가 희생되어야 했었나? 다른 길은 없었나?
홍화문주가 해과월을 뚫어지게 응시하면서 말했다.
“비비는 혼천음양마공을 이겨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지. 그래서 파견했다. 비비는 지금도 소식을 전해오고 있다. 수교빈 곁에 다섯 명의 괴인이 나타났는데, 우린 그들을 오귀(五鬼)라고 보고 있다. 음살문은 십처(十處)라고 부르는 동무(動武), 열 손가락이 있는데, 그 중 한 손가락이지.”
해과월은 깜짝 놀랐다.
수교빈 곁에 강한 고수가 나타났다고 해서 놀란 게 아니다.
비비…… 그녀가 아직도 소식을 보내오고 있다고? 아직도 기무영 역할을 하고 있다. 수교빈에게 그토록 고통을 받으면서도…… 미련한 여자.
해과월은 비로소 홍화문도가 어떤 식으로 사는지, 비비가 왜 홍화문을 벗어나지 못하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혼천음양마공은 단순한 색공이 아니다. 일반 무공처럼 상승경지에 이르면 오감이 초인처럼 발달한다.
비비가 아무리 영특하다고 해도 수교빈에게 발각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암살기법 몇 가지 배워가지고 상승고수와 맞상대한다는 발상 자체가 있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