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Treasure Sword RAW novel - Chapter 46
46
사마소는 다른 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맹주도 의식하지 않았다. 가장 선급하게 잡아야 할 자…… 해과월이다.
제10장 어울리지 않는 세계
1
스읏!
해과월은 비성검문 무인들이 은신해 있던 구덩이에 몸을 숨겼다. 그리고 그들처럼 나뭇가지로 몸을 덮었다. 주변에 있는 흙을 끌어와 몸 위에 덮었다.
그가 숨는다고 숨어질 수 있는 걸까?
모두들 코웃음 칠 게다.
그래도 그는 숨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자신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할 수밖에 없었고, 또 이것밖에 다른 길은 보이지 않았다.
흙을 알아야 한다. 토양(土養).
사부의 수련방법은 언제나 무식하다.
수교군이 따르지 않은 것도 이해가 된다. 자신이 생각해도 수련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데, 수교군인들 오죽했으랴.
토양 제일보는 땅에 묻히는 것이다.
삽을 가지고 흙은 파고, 그 속에 들어가 눕는다.
처음에는 그냥 눕기만 하고, 두 번째는 간신히 숨만 쉴 수 있도록 코 부위만 제외하고 흙을 덮고, 마지막에는 빨대 하나 입에 물리고 온 몸을 덮는다.
죽음의 공포가 스멀스멀 피어난다.
그렇다. 사부의 수련은 언제나 죽음과 밀접해 있다. 거의 죽기 직전의 상태까지 몰아넣는다. 어찌 보면 ‘이런 식으로도 죽을 수 있다. 이런 식의 죽음을 맛봐라. 느껴라. 이런 죽음은 어떤가’하고 말하는 듯하다.
단순히 죽음을 이해하고 경험해 보는 정도라면 얼마든지 따를 수 있다.
사부는 정말로 죽음 속으로 몰아넣는다.
숨이 막혀서 기절한다. 흙더미에 가슴이 짓눌려서 폐쇄 공포증을 일으킨 적도 있다. 당연히 길길이 날뛰다가 혼절했다. 정말 죽는구나 하는 생각으로 기억을 잃었다.
사부의 수련은 죽음이 늘 곁에 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사람들에게 죽음을 물어보면 아주 재미있는 대답을 들을 수 있다.
사람은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 맞다. 당신, 지금 당장 죽을 수도 있다. 맞다. 내일 아침에 눈을 뜨지 못할 수도 있다. 맞다.
죽음에 대해서 질문을 하면 모두 맞는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지금 당장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죽음은 아주 먼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들린다.
일을 하다가 때려치우면서 말한다. 내일 하지 뭐.
지금 당장 죽을 수 있는데 그런 말을 할 수 있는가. 내일 아침에 눈을 뜨지 못할 수도 있다는 질문에 ‘맞다’라고 대답했으면서 내일 한다는 건 모순이지 않나.
사람들은 죽을 수 있다는 것은 알지만 정작 본인이 느끼면서 살지는 않는다.
사부는 이 부분을 일깨워주었다.
죽음이 늘 곁에 있다. 항상 곁에 있다. 언제든 죽을 수 있다. 죽음을 알아라.
육양삼성을 수련하면서 늘 죽음을 봤다.
육체의 죽음, 물의 죽음, 불의 죽음, 흙의 죽음, 그리고 쇠의 죽음.
마지막으로 모든 것을 버리는 단계에서는 어떤 죽음을 보게 될지 흥미진진하지만…… 그 세계는 아직 경험해보지 않았으니 모르는 일이고.
육양을 연마한 사람은 물질에 연연하지 않는다.
금은보옥에 무관심하다. 혈황검 같은 보검을 봐도 탐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 죽을 수도 있는데, 그까짓 보검인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버리는 것을 기르는 것, 기양(棄養)은 아직도 수련 중이다.
그는 눈을 감았다.
흙 속의 죽음으로 들어간다.
몸의 감각을 닫고, 마음을 닫고, 가슴을 닫고…… 영원한 침묵 속으로 함몰되어 간다.
쒜엑! 쒜에엑!
검군 무인들이 독수리가 병아리를 덮치듯 쾌속하게 날아 내렸다.
“근방에 있다! 찾아라!”
“넷!”
검군 무인들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주변을 훑어가기 시작했다.
혈랑도객들이 위쪽을 가로막았다. 검군 다른 무인들이 아래쪽을 둘러썼다.
놈이 빠져나갈 곳은 없다.
숨을 곳도 마뜩치 않다.
기껏해야 나무 뒤, 바위 뒤, 움푹 들어간 곳.
탁좌량은 눈과 귀를 활짝 열었다. 놈은 최대한 숨으려고 발버둥 치겠지만…… 어림도 없다. 그런데,
“응?”
그들의 자신감은 일다경도 안 되어서 곤혹감으로 바뀌었다.
“그쪽도?”
“그럼 그쪽도?”
서로가 서로를 쳐다봤다.
뒤질 만한 곳은 모두 뒤졌는데, 사람 그림자도 없다.
사방을 뒤지면서 도끼 두 마리를 죽였다. 하늘로 날아오르는 참새를 십여 마리나 죽였다. 포위망 안에 갇힌 것들 중에서 움직이는 생물체는 아무 것도 없다.
그 중에 사람은 없다.
해과월이 뛰어드는 것을 분명히 봤는데, 찾을 수가 없다.
“무슨 일이야?”
한 발 늦게 계곡으로 내려온 사마소가 물었다.
“놓친 것 같다.”
“뭐?”
“사마소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위치를 바꾼다. 우리는 발견하지 못했으니 도주에게 맡겨.”
“그러지.”
사마소가 손을 머리 위로 들어서 크게 원을 그렸다.
산위를 포위하고 있던 혈랑도객 쪽에서 연락이 왔다.
무인 중에 한 명이 바위 위로 올라가 큰 원을 그리며 화답했다. 알았다는 뜻이다.
검군 무인들의 포위망을 형성한 채 뒷걸음질을 쳤다. 혈랑도객도 포위망을 형성하고 거리를 좁혀왔다. 한쪽은 물러서고, 한쪽은 다가온다.
그들은 서로를 비켜서 지나갔다.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 이런 일을 벌이는 이유는 검군이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검군의 눈이 사물에 익어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미 주변 지형지물에 익숙해져 있어서 유심히 보아야 할 부분을 무심히 지나쳤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리를 바꾼다.
새로운 눈으로 새로운 풍경을 본다. 그러면 검군이 찾아내지 못한 부분들을 찾아낼 수도 있다.
자리바꿈은 추적에서 흔히 일어난다.
이윽고 검군이 완전히 뒤로 빠지고ㅓ 혈랑도객이 수색에 직접적으로 뛰어들었다.
스으읏! 스스스윽!
그들은 매의 눈이 되어서 사방을 살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검군에 이어서 혈랑도객도 해과월을 찾지 못했다.
눈으로는 구석구석을 쓸어 담았다. 귀로는 개미 기어가는 소리까지 훔쳐들었다. 서로 어깨를 부딪칠 정도로 밀집대형을 이루고 산을 샅샅이 훑었다.
해과월은 보이지 않는다.
“가능하지 않은 일이야.”
탁좌량이 중얼거렸다.
“이 친구…… 뛰어난 재주가 있었군. 분명히 뛰는 모습을 봤는데 감쪽같이 사라졌어. 동영(東瀛)의 은신술(隱身術)을 배운 것도 아니고…… 무공을 모ㄹ는 자가 숨었는데, 무공을 아는 자들이 찾지 못하다. 재미있군. 하하하!”
“이게 웃을 일인가?”
“그렇다고 울 수도 없지 않아.”
“이놈 때문에 맹주도 빠져나간 것 같아. 포위망이 많이 헝클어졌어.”
“그쪽은 염려하지 않아도 돼. 혹시 몰라서 비망을 가동시켜놓은 상태거든.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 모를까, 누구라도 만난다면 당장 종적이 드러날 거야.”
“역시!”
탁좌량이 엄지손가락을 곧추세웠다.
“그러나 저라나 이놈을 어찌한다…… 이고 어딘가에 숨어있는 것은 확실한데.”
사마소가 미간을 찌푸렸다.
“못 찾겠네.”
혈랑도객 도주가 정식으로 포기 선언을 했다.
혈랑도객이 계곡을 이 잡듯 뒤졌다. 정말로 풀뿌리 하나, 돌멩이 하나까지 모두 들춰보았다.
그래도 해과월은 발견되지 않는다.
누군가 은신했던 것 같은 구덩이는 수십 개 찾아냈다.
그 중에는 정말로 얼마 전에 사람이 몸을 숨겼던 흔적도 발견되었다. 하지만 해과월은 아니다. 그는 어디에서 없었다.
검군이 이런 식으로 뒤졌고, 혈랑도객이 또 한 번 뒤졌다.
해과월은 없다.
아니, 해과월은 있다. 그건 확실하다. 놈이 숨는 모습을 보았는데, 없다고 하면 거짓이다.
놈은 있다. 다만 찾아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군.”
탁좌량이 중얼거렸다.
혈랑도객 도주도 말을 하지 않았지만 저억이 놀란 표정이다.
무공을 모르는 자가 달려 내려오기에 금방 잡을 줄 알았더니…… 시간을 질질 끄는 것은 고사하고, 몸을 숨겼다는 흔적조차 찾아내지 못했다.
완패다.
그리고 이런 경우는 하나뿐이다.
땅속에 뚫린 미로를 통해서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런데 그 미로조차도 발견하지 못했다. 어지간한 구덩이는 모두 찾아냈다. 늑대가 숨어있던 굴까지도 찾아냈다. 하지만 지하 땅굴 같은 것은 두 눈을 부릅뜨고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두 분께 부탁이 있습니다.”
사마소가 정중하게 말했다.
그는 검군 군장과 친구사이다. 말을 편하게 주고받는다. 하지만 혈랑도객 도주가 있기에 말을 높인다. 또 친구사이라도 공식적인 명령을 하달하는 순간이니 주의해서 들으라는 의미도 깃들어있다.
“포위망을 물립니다. 모두 빠질 겁니다. 이 산을 멀리서 포위하고 있지요. 두 분은…… 제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아실 겁니다.”
“알았네.”
혈랑도객 도주가 말했다.
“기필코 잡아. 체면 문제다.”
사마소가 탁좌량의 어깨를 쳤다.
“최선을 다하지. 난 이놈…… 보면 볼수록 질려. 이놈에게 이런 재주까지 있을 줄은. 후후!”
“놈을 잡아와. 내 술 한 잔 받아놓고 기다리지.”
사마소가 검군과 도객들을 데리고 산을 내려갔다.
“난 저쪽에 있겠다.”
도주가 계곡 위쪽을 가리켰다.
“저 이곳에 있겠습니다.”
탁좌량은 계곡을 굽어볼 수 있는 큰 바위를 가리켰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운기를 한다.
천시지청술(天視地聽術)이 가동된다.
모든 신경을 두 귀에 모은다. 둔 눈이 화등잔 만하게 불거진다. 그리고 나무에 달라붙은 매미까지 꿰뚫어본다.
주위는 적막에 휘감겼다.
사람이 움직이는 소리? 들리지 않는다. 정적을 유지하기 위해서 모두 물러났다. 가끔 풀숲이 흔들린다. 무엇인가가 팔짝팔짝 뛴다. 다람쥐가 움직인다.
사람이 움직이는 소리와 짐승이 움직이는 소리는 다르다. 두 사람에게 그 정도의 차이를 묻는 것은 대단한 실례다.
길고 지루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원래 이런 싸움은 한 사람만으로도 충분하다. 검군 군장이나 혈랑도객 도주…… 둘 중에 한 사람만 남아있어도 충분하다.
사마소는 두 사람을 모한 자리에 놓았다.
이것 여기 두 사람에게는 자신을 무시하는 처사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명령이이기에 따른다. 군말 없이 쫓는다. 천문성은 맹주의 위임을 받았다. 그의 말은 맹주의 말과 다름없다.
아니, 그래서 명을 따른 게 아니다.
그들은 천문성의 판단을 믿는다. 그가 판단해서 어긋난 적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 이긴다면 이기고 진다면 졌다. 그래서 그의 말은… 법이다.
지금 그가 두 사람을 필요로 한다.
해과월에게 그만한 능력이 있다고 믿지 않는다. 두 사람을 속일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 하지만 무공을 모르는 자가 검군과 혈랑도객을 속여 넘겼다. 그렇다면 두 사람이 아니라 세 사람의 수장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혈랑도객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찾을 것이다.
탁좌량은 천시지청술을 극으로 끌어올렸다.
츠으으으으읏!
스쳐가는 바람소리가 천둥소리처럼 크게 들린다.
투투투툭!
나뭇잎에 무엇인가가 떨어진다. 송충이일 수도 있고, 솔방울일 수도 있다.
잡다한 소리들은 모드 흘려보낸다.
한 놈…… 놈의 숨소리를 찾아야 한다.
죽음을 경험한 자는 시간과 공간에 대해서 믿지 않는다.
그런 건 없다.
모든 것을 보지 못하게 된다.
텅 빈 의식 속에서 어딘지도 모를 곳을 부유하고 있다. 둥실둥실 떠다니는 자신을 본다.
몸은 죽었으니 의식은 살아있다.
진짜 죽음은 몸도 죽고 의식도 죽지만, 그는 의식만은 남아있다.
이 차이는 매우 크다.
의식이 있으니 명쾌한 사라판단을 할 수 있다. 생각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생각할 수 있다. 머리로 하는 생각이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생각이다. 느낌으로 하는 생각이다.
논리적으로 하나하나 캐나가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그런 생각은 몸이 살아있을 때만 할 수 있다.
논리는 몸을 떠나서는 존재하지 못한다.
그는 자신의 느낌을 쫓았다.
스으으으으……!
바람이 분다.
주위에 아무도 없다.
츠츠츠츳!
바람에 날카로운 기운이 실려 온다.
여전히 사람이 있다. 누군지 모르지만 매우 강한 자들이 있다. 한 명이 아니다. 적어도 두 명 이상이ㅇ다.
‘아직…… 일어설 때가 아냐.’
2
쏴아아아!
여름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