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Follicle Exhibition RAW novel - Chapter 162
161화 오환사마(烏丸司馬) 고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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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 동맹은 맺되, 내가 아니라 고순이 철탈의 딸, 호희와 혼인하게 하는 거요. 어떻소? 내 좀 전에 확인했는데 그들 둘이 이미 그렇고 그런······.”
가후는 여포가 왜 이번 혼인 동맹을 거부하는지를 그제야 알 수 있었다.
“별로 좋은 방법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좋아 죽는 두 사람을 갈라놓을 수는 없지 않소? 고순이 이제 나이도 있고, 내 부하들 중에 장가 못 간 사람이 지천이오. 이참에 하나씩 치웁시다.”
가후는 말은 안 해도 참 딱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여포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여포는 자신의 말에 잘못이 있나 물었다.
“가 선생, 내가 틀린 소리 했소?”
“말은 좋습니다. 하지만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을 해보십시오.”
“쉽게 말씀해보시오.”
“철탈의 입장에서 한 번 생각해보시라 이 말씀입니다.”
가후는 철탈이 여포의 말을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철탈의 입장이라······. 설마 내가 아니라 고순이라서 싫어할 거라는 말이오?”
여포의 물음에 가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얘기가 아닙니까? 철탈이 노리는 것은 여 장군의 장인이 되는 것입니다. 난세에 혼인 동맹으로 안전을 보장받으면서 동시에 여 장군께는 웃어른이 되는 셈이니 그야말로 일석이조라 할 일이지요. 안 그렇습니까?”
“듣고 보니 그렇구려. 하지만 난 곧 죽어도 또 부인을 들이고 싶은 마음이 없소. 무슨 방법이 없겠소?”
“음······!”
가후는 침음성을 터뜨렸다. 그가 이 같은 반응을 보일 정도로 해법은 간단치가 않았다.
“힘들겠소? 고순과 호 소저가 그리 서로를 좋아하는데 내가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서 호 소저를 부인으로 삼으면 그게 얼마나 우스운 일이오? 사람들이 날 두고 부하의 여인이나 빼앗는 파렴치한으로 볼 거요.”
죽음의 순간에서 시간을 거슬러 돌아오기 전의 여포도 여인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강제로 여인을 취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물며 초선에게 일편단심인 지금은 어떠랴. 그가 호희에게 음심을 품을 일은 결단코 없을 것이다.
“장군, 이렇게 하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가후는 여포의 귀에 뭔가를 쉴 새 없이 속닥였다.
* * *
철탈이 궁려로 돌아온 호희를 보자마자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얘야, 어딜 싸돌아다니다가 이제 들어오는 것이냐?”
하지만 호희는 철탈의 눈치를 보면서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의 뒤를 이어 들어온 고순과 눈이 마주쳤다. 고순은 죄지은 사람마냥 철탈의 시선을 피하기에 급급했다.
궁려 안으로 여포가 들어서자 다행히 철탈의 시선이 여포에게로 향했다. 그는 자신의 옆 자리로 돌아와 앉는 여포를 반겼다.
“여 장군, 대업은 잘 이루셨소?”
“좋은 술에 좋은 음식을 먹으니 간만에 무사히 대업을 이루었소.”
“경하드리오. 자자! 남은 술이 많이 있으니 어서 다시 순배를 돌려 보십시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요.”
철탈은 기어이 호희를 불렀다.
“호희야, 이리 와서 여 장군께 술 한 잔 올리거라.”
그러자 발그레 호희가 못 이기는 척 여포의 곁으로 와 앉았다.
“여 장군, 술 한 잔 올리겠습니다.”
호희가 술이 든 가죽 부대를 들어보이자 여포는 못 이기는 척 빈 술잔을 내밀었다.
호희가 넘칠 듯 말 듯 술잔을 가득 채우자 여포는 단숨에 술잔을 비웠다. 다시 호희가 술잔을 채우는데 그 와중에도 호희의 눈은 고순을 향해 구원을 청하고 있었다.
철탈은 딸의 마음도 모르고 여포에게 혼인 동맹을 청했다.
“여 장군, 내 딸 호희를 받아주시오. 대군 오환부가 장군께 귀부하였으니 응당 통혼으로 금석보다 더 굳건한 관계를 만들어야하지 않겠소? 하니 내가 아끼는 귀한 꽃을 드리리다.”
철탈이 말하는 꽃은 호희를 말하는 것이니 이는 곧 여포에게 혼담을 넣은 것이다.
“아버지!”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철탈이 여포에게 혼인 동맹을 제의하자 호희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 참담한 기분이 들었다.
고순을 연인으로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도 그녀 역시 귀한 핏줄을 이어받은 여인으로서의 입장이라는 것이 있었다.
청혼을 받는 입장이 되어야지 이렇게 아비가 밀어붙이듯 혼담을 넣는 것은 그녀로서도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아이를 가져버렸다고 거짓말을 해버릴까?’
호희는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고순과는 단 한 번도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았다. 오환의 여인치고는 유가의 법도를 제법 잘 지켰다 할 것이다.
‘여포는 인물도 좋고, 지위도 높고, 무예와 용맹은 천하에 따를 자가 없다. 하지만 얼굴이 반반한 미장부들은 꼭 얼굴값을 하게 되어 있어. 차라리 나만 바라보는 사내를 택하는 게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일 거야.’
원래 호희는 여포에게 호감을 가졌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의 연인은 고순이었다. 외모와 조건을 놓고 봤을 때는 여포의 압승이나 호희는 고순을 택했다.
그녀는 공손찬이 황음을 즐기며 여러 여인을 탐하는 호색한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수많은 여인을 처첩으로 두고 있으면서도 자식이 몇 되지 않는 것이 그 증거라 할 것이다.
그럼에도 공손찬이 그 많은 여인들을 곁에 두는 것은 그가 원해서가 아니라 그가 천하를 노리는 군웅 중 한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호희 역시 오환대인의 딸이기에 그런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여포가 아닌 고순을 택한 것이었다.
지금은 비록 한 여인만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여포가 천하에 뜻을 두고 있는 이상 앞으로도 혼인 동맹을 청해오거나 청해야 할 경우가 숱하게 생길 테니까.
호희는 여인들의 틈바구니에 끼여 암투를 벌이며 살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여 장군, 어떻소이까? 내 사위 하시겠소?”
철탈 역시 족인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여포의 무위에 기대야만 했기 때문에 어떻게든 여포와의 연결고리로 만들고 싶었으리라. 그래서 딸마저도 이용해야 하니 그의 속도 편치만은 않을 것이다.
순간 여포는 머리가 복잡해졌다.
‘차라리 싸우는 게 낫지. 거절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구나!’
여포의 마음도 모르고 철탈은 딸 자랑을 늘어놓았다.
“고민할 게 무어요? 내 딸이라서가 아니라 이만한 미인은 천하 십삼 주 전역을 탈탈 털어도 그리 많지 않을게요.”
철탈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아들 철능은 자기를 닮아서 차기 대인 자리를 물려받지 않으면 어떤 여인이 쳐다나 봐줄까 고민이지만 호희는 달랐다.
객관적으로 봐도 철탈이 자신할 만큼 호희의 미색은 대단했기 때문이다.
여포는 시간을 거슬러 돌아오기 전에 숱한 미인들을 봐왔었다. 미색을 평하는 눈이 있다는 얘기였다. 그런 여포가 봐도 호희는 보기 드문 미인임에 틀림이 없었다.
호희는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철탈은 할 말이 많았다.
“부끄러워하기는······.”
철탈은 호희의 마음도 모르고 그녀가 여포 앞이라 부끄러워한다고만 여겼다. 그는 여포가 들으라는 듯 호희에게 말했다.
“우리 부를 제외한 오환의 다섯 부 모두가 혼담을 넣어왔고, 호오환교위 형거 놈은 첩으로 달라는 말을 잘못 지껄였다가 한동안 오환의 사내들이 겁이나 집밖을 나가지 못했다.”
“천하 십삼주에 모래알만큼 많은 사람들이 살 텐데 저보다 잘난 여인들은 또 얼마나 많겠어요?”
호희는 유주 일대의 산과 들을 쏘다니며 한인들과도 어울려 견문을 넓혔다. 직접 보지는 못했어도 천하가 얼마나 넓은지,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는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건 네가 몰라서 하는 말이다.”
“에이, 아버지도 한조의 땅이라고는 유주 땅을 벗어나본 적이 없으시잖아요.”
“그걸 꼭 가봐야만 아느냐?”
“삼보와 낙읍의 미인들이 이곳에 올 리가 없으니 그들을 보려면 그곳에 가보는 수밖에요.”
“내가 삼보(장안 일대)와 낙읍(낙양)에는 가본 적이 없어 한조의 미인들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알지 못하나 네가 그들만 못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지.”
“어떻게요?”
“솔중왕들에게 보내지는 사여화(賜與花)를 숱하게 보았으나 그들의 미모가 너만 못했다.”
솔중왕(率衆王)이란 한조가 오환의 대인들 중 공이 있거나 그 배하의 군락이 큰 자에게 내리는 직위였다.
변방 오랑캐에게 왕호를 내리는 것은 일종의 책봉외교로 포장은 거창하나 실상은 한조의 변경을 침입하지 말아달라는 의미였다. 한조는 변방을 침탈할 이적 무리의 수괴에게 왕호를 내리고 비단 등의 하사품을 내렸던 것이다.
뿐만아니라 한 황실의 공주를 하사하여 부인으로 삼게 하였는데 오환에서는 이를 ‘사여화(賜與花)’라 부르며 조롱했다.
그 시작은 한 고조 유방이 백등산에서 흉노에게 치욕을 당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 고조 유방은 흉노의 묵돌 선우에게 막대한 조공과 함께 한 황실의 공주를 주어 처로 삼게 하겠다 약속하고서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후일, 유방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딸을 보내려 했으나 여 황후가 눈물로 막는 바람에 종친의 딸을 보내니 그녀가 바로 장공주다.
그녀는 한조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최초의 사여화로 그 후로도 한조는 수많은 미녀들을 공주로 책봉하여 변방 오랑캐의 처로 보낸다.
흉노로 시집간 궁녀 ‘왕소군’이나, 오손왕의 처가 된 ‘유세군’처럼 정략에 희생된 여인들의 이름은 오래도록 회자되고 있다.
후대에도 이 외교술은 이어져 ‘화번공주(和蕃公主)’라 불렸다.
“사여화로 보내지는 여인들은 한조의 공주라 하던데 제가 어찌 그들과 견줄 수 있단 말입니까?”
“걱정도 팔자다. 사여화로 오는 여인이 진짜 한조의 공주더냐? 솔중왕들도 한조에서 진짜로 공주를 사여화로 보내오면 군사를 일으켜 한조의 땅을 질타할 게다.”
들리는 소문에는 한조의 공주들이 하나 같이 박색인데다가 성질 또한 안하무인이라 그런 여인들을 사여화로 보내면 솔중왕이 군사를 일으켜 한조를 칠 거란 얘기였다.
“공주를 처로 맞이하면 한 황실의 종친이 되는 것이 아닙니까?”
“종친이 여러 수만 명은 될 텐데 그 중에 하나가 되어 무엇하겠느냐?”
중원의 유(劉) 씨는 모두 한조의 종친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종친의 수가 많았다.
한조는 왕망에 의해 나라가 한번 망했었다. 광무제 유수가 다시 나라를 세웠을 때 황실의 위엄을 세우려 족보를 만들게 하였는데 황실의 종친이라고 주장하는 자가 수만에 달해 족보를 완성할 수 없었다는 야사가 전해질 정도였다.
여포는 이들 부녀 간의 대화를 들으며 변방의 정세와 그간의 역사에 관해 제법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 직면한 문제는 고순과 호희를 혼인시키는 것이었다.
* * *
여포는 부녀 간의 대화가 잠시 끊기자 용건을 꺼내 놓았다.
“대인, 대업을 이루다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데 한 번 들어보시겠소?”
“지푸라기 비비다가 도를 얻는다더니 여 장군이 딱 그 짝이구려. 한 번 들어보십시다.”
“대인, 오해하지 말고 들으시오. 본인은 이미 혼인을 했고, 다른 처첩을 두지 않을 생각이오. 대인 역시 귀하게 키운 여식을 측실로 들이는 것을 원치 않을 거라 생각하오.”
여포의 말에 철탈의 눈빛이 매섭게 번뜩였다.
“혼인 동맹을 거절하시는 거요?”
“아니오. 대군 오환과의 혼인 동맹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오. 공손찬이 혼담을 넣어왔다면 응당 대군 오환에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겠지. 안 그렇소?”
철탈은 가슴을 펴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대군 오환은 비록 그 궁려 수는 적으나 오환의 본산이라 할 수 있는 정통성을 지니고 있소. 대군 오환과 결맹한다면 그야말로 오환의 정통을 얻는 것이라 할 수 있소.”
대군 오환부를 얻지 못한다면 오환을 얻은 것이 아니라는 말과 같았다. 대군 오환부는 지금에 이르러 수백의 궁려에 불과한 규모이나 대대로 오환의 왕이 철탈의 가문에서 났으니 틀린 말이 아니었다.
“나, 여포는 대군 오환부와 결맹하기 위해 내 휘하의 제일 용장인 고순을 대인의 사윗감으로 내세우는 바이오.”
여포의 말에 철탈의 미간에 주름이 접혔다.
“여 장군, 고순이라는 장수가 장군의 수하들 중 제일가는 용장이라 하나 천하의 누가 그 이름을 알겠소? 이름 없는 무장이 내 딸의 짝이 될만한 자격이 있다 생각하시오?”
철탈은 고순이 아직 무명의 장수임을 꼬집어 말했다. 그러자 여포의 곁에 있던 고순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이에 여포는 그의 등짝을 팡팡 두들기며 기합을 불어넣어주었다.
“기죽지마라. 고순, 너는 내가 아끼는 용장 중의 용장이다.”
그리 말한 후 여포는 철탈과 시선을 마주했다.
“대인이 걱정하는 바를 무르는 게 아니오. 하지만 이러면 어떻소? 내 당장 고순을 오환사마(烏丸司馬)에 임명할 것이오. 그런 연후에 유주의 일이 마무리 되는대로 내 관직 중 하나인 호오환교위직을 물려줄 것이오.”
철탈은 그래도 못 마땅한 듯한 표정이었다.
“여 장군, 내 딸, 호희는 미색도 자랑할 만하지만 계집으로 태어난 것이 안타가울 만큼의 여 장부요. 싸움이 나면 기사에 능하니 능히 한 사람 몫을 하고, 대군 오환부의 살림을 맡고도 한 번의 잘못이 없었소.”
팔불출 아비, 철탈이 자식 자랑에 열을 올리며 여포의 혼인 동맹 제안이 대군오환부에 얼마나 기우는 혼사인지를 거듭 표명했다.
“그렇게 따지자면 내 용장, 고순 역시 생긴 걸로 따지자면······ 음······! 사내답게 생겼고, 그에게 싸움을 맡기면 패배를 걱정하지 않소. 대군 오환부가 아니라 유주 전체를 통틀어도 이만한 사내가 어디 또 있겠소? 게다가 이미 두 사람은 서로를 연모하고 있소.”
여포의 말에 철탈은 호희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며 다그쳤다.
“지금 여 장군의 말이 사실이더냐?”
그러자 호희는 대답은 못하고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이······ 이런!!!”
주도권이 자신에게로 넘어왔음을 직감한 여포가 맹공을 퍼부었다.
“나라고 어찌 저토록 뛰어난 미색을 지닌 여인을 마다하고 싶겠소? 하지만 부하의 정인을 가로채는 불의한 자가 되고 싶지 않소. 게다가 정녕 딸의 행복을 바란다면 정략혼보다는 딸의 선택을 존중해주셔야 한다고 생각하오.”
“음······!”
철탈이 침음성을 흘릴 뿐 말을 하지 않자 여포는 그의 귀가 솔깃할 제안을 했다.
“대인이 고순을 사위로 받아준다면 나는 대인께 솔중왕(率衆王)의 왕호를 드리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