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Follicle Exhibition RAW novel - Chapter 161
160화 결맹의 방법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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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희 소저를 말씀하시는 거요?”
“어떻소? 인물은 어디 가서 빠지지 않음을 봐서 아실 테고, 성격이 좀 드세······ 흠흠! 사내로 태어나지 않은 것이 안타깝기는 하나 능히 큰일을 할 아이요.”
철탈이 자신의 딸, 호희를 자랑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호희를 찾아 여포의 곁에 앉히려 했던 것인데 이미 호희는 군막을 떠났는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얘가 또 어딜 간 게야?’
좋은 기회를 놓친 철탈은 짜증이 치밀었으나 여포가 곁에 있으니 그의 입꼬리는 호를 그릴 수밖에 없었다.
여포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철탈이 그를 올려다 보며 물었다.
“여 장군, 아직 연회가 한창인데 어딜 가시오?”
그러자 여포는 손에 든 지푸라기 한 움큼을 흔들어 보였다.
“대업을 이루러 가오.”
“부디 대업을 이루시오.”
* * *
연회장에서 떨어진 으쓱한 곳. 연회장의 탄주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곳이었다. 철탈이 애타게 찾았던 호희는 지금 이곳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불빛 하나 없는 이곳에 멀리서 거구의 사내가 나타났다. 사내의 정체는 바로 고순이었다. 호희는 멀리 고순의 모습이 보이자 그를 향해 달려갔다.
가문이 반대하는 사내를 연인으로 둔 비련애사의 여주인공처럼 호희는 고순의 품을 파고들었다.
“왜 이렇게 늦으셨어요?”
호희는 그의 품에 안겨 앙탈을 부렸다. 호희가 오환의 여걸이긴 하나 이 순간은 그녀 역시 한 사람의 여인이었다.
원래 그녀는 여포의 싸움을 보고 그를 연모하는 마음을 품었으나 고순이 북변을 오고가며 얼굴을 자주 보다 보니 서로 연정을 키우기에 이르렀다.
고순은 여포군이 정원군을 크게 이기고, 포로로 사로잡은 선비병들을 잡혀간 한인들과 맞바꾸는 일로 대군 오환의 도움을 받았다.
선비는 오환과 마찬가지로 그 뿌리를 동호(東胡)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 간에는 간간히 교류를 해왔다. 이 교류를 이용해 고순은 선비병 포로들을 한인들과 맞바꾸는 일을 했던 것이다.
그 일을 하며 가까워진 두 사람은 서로의 연정을 확인했다. 하지만 그 일이 끝나고 한동안 떨어져 있다가 오늘에서야 간신히 둘 만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녀는 고순의 팔을 베개 삼아 누워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우린 언제 백년해로 할 수 있을까요?”
“모르겠소. 언제가 될지······.”
호인들은 강함을 숭상하는 족속들로 여인이 사내를 평가할 때 역시 일신에 지닌 무예와 용맹이 기준이 되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여포는 최고의 신랑감이었다. 하지만 사내다움이라면 고순도 만만치 않았다. 권박은 여포에 비해 한 수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여포를 제외하면 적수가 없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여포를 제외하면 서황과 함께 여포군 무력 일 순위를 다투는 것이 고순이기 때문에 호희가 그에게 매력을 느낀 것도 전혀 무리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호희는 고순과의 혼인을 원하고 있었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았다.
문제는 공손찬이었다. 아직 여포나 고순이 이 같은 사실을 알지 못하지만 대군 오환의 족인들은 공손찬 측에서 대군 오환부에 혼담을 넣은 것을 다들 알고 있었다.
“늦으면 다른 사람에게 시집가야할지 몰라요.”
“무슨······. 설마 주군께······?”
“아직 아버지가 말씀은 하지 않으셨지만 또 모르죠. 족인의 안전을 위해서 지금쯤 아버지가 여포 장군에게 혼담을 넣고 있을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얘기였고, 실제로 이들 두 사람이 밀회를 나누고 있을 때 철탈과 여포 사이에 오간 얘기이기도 했다.
“철 대인께서 혼담을 넣는다고 해도 주군께서는 받아들일 리 없소.”
고순은 철탈이 여포에게 혼담을 넣는다고 해도 이를 받아들일 리 없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호희는 그런 고순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너무 장담하는 거 아니에요?”
“걱정 안 해도 되오. 주군은 아직 신혼이니······. 게다가 얼마나 어렵게 만나서 혼인했는데······.”
“열 여자 마다하는 사내를 못 봤어요.”
“여기 있잖소.”
고순은 불안해 하는 호희를 꼭 끌어 안았다.
* * *
이들 곁으로 여포가 나타났다. 고순조차도 여포가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없었다. 여포가 마음먹고 기척을 숨기면 고순조차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그의 행신술이 극에 달해 있기도 했고, 고순이 연인을 곁에 두고 있어 긴장을 풀었던 것도 여포의 접근을 눈치채지 못했던 이유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고순, 언제 또 호 소저와 이런 사이가 되었더냐?”
여포가 나타나자 고순과 호희는 깜짝 놀라 떨어졌다.
“주군, 언제 오셨습니까?”
“좋은 시간 방해해서 미안하긴 한데······ 사람이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했다. 철 대인이 내게 혼담을 넣었으니 두 사람이 가까운 사이임이 알려진다면 철 대인의 면이 서지 않을 것이다.”
그러자 호희가 여포에게 물었다.
“여 장군, 그 혼담······. 받아들이실 겁니까?”
“글쎄? 어찌 할 것 같소? 받아들일까?”
“정말 그러실 겁니까?”
호희가 불안해하며 묻자 여포는 턱을 괴고 호희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이토록 미색이 출중한 처자를 마다할 사람이 있겠소?”
여포의 말에 고순과 호희가 안절부절 못했다.
“농담이오.”
여포가 빙그레 미소 지으며 말하자 그제야 두 사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여포는 고순의 목을 팔로 휘감으며 장난스레 물었다.
“만리장성은 쌓았더냐?”
고순에게 물었는데 호희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제가 아무리 호인 계집이라 해도 정절을 아는 사람입니다. 어찌 혼인도 하지 않았는데 잠자리를 함께 하겠습니까?”
호희가 정색하며 말하자 여포는 난처한 듯 어깨를 으쓱댔다.
“딱히 나쁜 뜻으로 말한 것이 아니오. 남녀가 마음이 맞으면 그걸로 된 거지. 그게 뭐 나쁜 일이라고······. 우선 두 사람, 여기 앉아 보오.”
세 사람이 품(品) 자를 그리듯 서로를 보며 앉았다. 여포는 고순을 보며 말문을 열었다.
“철 대인이 내게 혼담을 넣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그 혼담을 받아들이지 않을 생각이다. 내가 혼담을 거절하면 대군 오환부와의 관계가 틀어질까 걱정이었으나 다행히 고순과 호 소저가 그렇고 그런······.”
여포는 갑작스레 날아든 호희의 날카로운 시선에 얼른 말을 돌렸다.
“서로 연인이고,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고순은 내 휘하의 무장들 중에서 으뜸이니 두 사람이 혼인을 하여 결맹하면 될 일이다.”
그제야 호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여포의 말에 동조했다.
“여 장군, 소녀의 말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나 혼인을 서둘러 주셨으면 합니다.”
“혼인은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인데 어찌 서두르려 하시오? 격식과 예법에 맞게 성대하게 치를 것이오.”
“아닙니다. 실은 공손찬이 아버지께 혼담을 넣어왔습니다.”
호희는 여포와 고순의 앞에서 공손찬이 혼담을 넣어왔다는 얘기를 꺼냈다. 그녀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여포와 고순은 철탈의 말을 들었기 때문에 유주에서 공손찬의 위상이 어떤지를 익히 알고 있었다.
문제는 유주를 암중에서 지배해온 공손찬이 왜 대군 오환에 혼담을 넣었냐는 것이었다.
“그자가 아직 혼자였단 말이오?”
여포의 물음에 기다렸다는 듯 호희가 답했다.
“그럴 리가요? 처첩이 너무 많아 셀 수 조차 없다 합니다.”
여포는 공손찬이 총각일 거라는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 않았지만 그의 처첩이 그리 많을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거 좋은 거 아닌데······.”
여포 역시 시간을 거슬러 돌아오기 전의 생에서는 여인을 품을 만큼 품어 봤고, 처첩에 연인까지 숱한 여인들로 인해 이래저래 굴곡이 많았다. 그러니 이 같은 반응이 나올 수밖에······.
“공손찬이 공손 가문의 얼자라는 건 알고 계십니까?”
“그야 당연하오. 가문의 지원을 받지 않고 맨손으로 하북 최대 군벌의 주인이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라 들었소.”
“그가 하북 최대 군벌을 이룬 것은 혼인 동맹의 결과물입니다. 그의 처첩들은 대부분 유주 호족이나 군벌들의 여식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오환, 선비, 흉노에 이르기까지 군세를 이루고 있는 집단이라면 혼담을 넣어 결맹합니다.”
연수를 이루는데 있어 가장 확실한 방법은 혼인 동맹임을 부정할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약속을 종이에 적는다한들 난세에 종잇조각이 무슨 힘이 있겠는가. 구두로 맺은 맹약은 말할 것도 없으리라.
하지만 혼인을 통해 맺어진 동맹은 얘기가 달랐다. 물론 최후의 수단으로는 남편과 부인이 서로를 죽이려 드는 경우도 있지만 문서나 구두로 맺은 맹약에 비하면 훨씬 더 단단한 동맹을 이룰 수 있을 터였다.
“처첩들의 암투가 황궁 저리가라겠군.”
“당연한 말씀입니다.”
고순이 말을 거들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으니 이것이 공손찬의 약점이 될 지도 모릅니다.”
공손찬이 이룬 군벌은 그 규모로만 봤을 때 분명 하북 최대 군벌이라 할 만했다. 그 군벌은 규모와 성격이 다른 여러 집단이 혼인 동맹으로 인해 공손찬을 중심으로 뭉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그 말인 즉슨, 공손찬의 후계나 유주에서의 입지 등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집단들이 언제든 불협화음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얘기였다.
고순은 이것이 공손찬의 약점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거 봐라. 처첩이 많은 게 절대 좋은 게 아니라니까. 나는 초선이 하나면 족하다. 더 탐하지도 않을 것이고, 혼인 동맹을 맺어야 한다면 부하들을 장가보내야지. 장가 못 간 총각들이 영내에 즐비하니까.”
“여 장군께서 무예와 지모를 겸비한 일대 영웅이라 하더니 정녕 총명하십니다.”
호희가 칭찬을 하자 여포는 어깨를 으쓱하며 고순에게 잘난 척을 해보였다.
“봐라. 내가 이런 사람이니라.”
여포는 이들과 함께 철탈의 궁려로 돌아가며 생각했다.
‘철탈이 서둘렀던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군. 어쩌면 상곡 오환의 난민들이 문제가 아니라 딸의 장래를 걱정했던 것인지도 모르지.’
* * *
철탈의 궁려 근처까지 돌아왔을 때 여포는 마침 궁려에서 나서는 가후를 볼 수 있었다.
“가 선생, 마침 잘 됐소.”
“무슨 일로······.”
“가 선생, 약주 많이 하셨소?”
“그럴 리가요. 걱정 마십시오. 입술만 담궜을 뿐 군사라는 자가 출병하고 어찌 취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역시 가 선생답소.”
여포는 가후의 철두철미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며 용건을 꺼냈다.
“가 선생, 철탈이 내게 혼담을 넣어왔소.”
“잘 됐습니다. 대군 오환과 혼인 동맹을 결맹할 수만 있다면 평성 일대는 물론 유주 대군을 병탄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대군의 한인들은 몇 개 현부에 모여 살고 있었다. 한인들과 달리 대군 오환의 족인들은 대군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었다.
궁려의 수는 많지 않으나 대군의 실질적인 주민이자 주인이라 할 수 있는 자들이 바로 대군 오환의 족인들이라 할 것이다.
여포가 가진 지도가 아무리 자세하다 한들 대군의 산과 들을 그들보다 더 잘 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걸 모르지는 않으나 나는 또 부인을 얻지는 않을 것이오.”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장군, 난세에 혼인 동맹보다 더 단단한 결맹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도 나는 이미 혼인했고, 초선 만을 사랑하오. 또 다시 혼인을 한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소.”
“장군께서 부인과 금술이 좋은 것은 반길 일이나 영걸의 사랑은 필부의 사랑과는 달라야 함이 마땅합니다.”
가후는 초선이 사랑받아 마땅할 여인임을 잘 알고 있었다. 여인들 중에선 드물게 학문이 깊고, 가문 또한 울료의 후예이니 누구와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을 터였다.
초선은 현명하고, 지혜롭고, 아름답기까지 하니 그녀를 얻은 여포는 행운아라 할 것이다.
그럼에도 가후는 여포의 사랑이 필부의 사랑이라는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사내들은 미인들로 여럿의 처첩을 거느리길 원한다. 천하에 이름을 날리고 부귀와 공명을 향해 질주하는 까닭은 어찌 보면 미인에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여포는 초선 말고는 그 어떤 여인도 원치 않았다. 그저 필부처럼 한 여인과 백년가약을 지키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하지만 어쩌랴. 천하의 영걸인 여포가 평범한 삶을 살 수는 없으리라.
“어찌 되었건 혼인 동맹 같은 건 안 할 것이오. 내 여태껏 선생의 말을 따르지 않은 것이 없으나 이번만큼은 내 뜻대로 해야겠소.”
“서하의 군벌, 엄상과도 혼인 동맹을 맺지 않으셨습니다. 이번에도 싫다 하시나 앞으로 또 이런 일이 없겠습니까? 패업을 이루려면 혼인 동맹은 반드시 필요한 수단입니다.”
“가 선생의 말뜻을 모르지 않으나 아무튼 내가 철탈의 딸과 혼인하는 일은 결단코 없을 거요.”
“그럼 지금이라도 궁려 안으로 가셔서 철탈의 목을 치십시오.”
가후는 여포가 혼인 동맹을 극구 거부하자 차선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그 역시 여포에게는 달갑지 않은 얘기였다.
“그건 안 되오.”
“군주에게는 혼인도 정복의 수단일 뿐입니다. 혼인 동맹이 싫으시면 응당 철탈의 목을 치고 오늘 밤, 대군 오환의 모든 사내를 죽이십시오.”
“그럴 수는 없소. 대군 오환부는 장양 형님의 위기를 알려준 고마운 상대요. 어찌 은혜를 원수로 갚을 수 있겠소?”
“이래도 싫다, 저래도 싫다. 대체 어쩌시려고 이러십니까?”
가후는 답답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여포의 이 같은 반응이 다행스럽고 고맙기까지 했다. 의를 모르는 자가 천하를 얻는 것은 천하 대란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천하 대란의 시작일 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