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Follicle Exhibition RAW novel - Chapter 168
167화 곤마(困馬) (1)
————– 167/753 ————–
백마의종의 출현에 장연은 장백기에게 말했다.
“백기 형님, 드디어 백마의종이 나타났습니다. 우리도 기병을 전면에 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장백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급조한 기병으로 백마의종을 상대하겠다고? 무리다.”
“기병은 기병으로 상대하는 것이 병가의 정석이 아닙니까?”
“우리가 언제 병가의 법도대로 싸웠더냐? 우리는 흑산적이니 도적의 싸움을 하면 될 터.”
“어쩌시려고······.”
흑산적 기병 전력은 장백기가 지휘하고 있었다. 일전에 백마의종과 관련하여 장연과 장백기가 대화를 나누었을 때 장백기가 백마의종을 깰 비책이 있다했다. 하지만 장백기는 이제와 꼬리를 마는 듯한 말을 했다.
장연은 재촉하거나 탓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렇게 삼천의 백마의종을 마주대하고 보니 전군을 이끄는 자신마저도 이렇게 가슴이 답답한데 장백기라고 무슨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장백기는 장연의 속내를 들여다보기라도 한 것 마냥 말했다.
“우리 기병과 백마의종이 부딪히면 십 중 십, 아군이 궤멸 당할 것이다. 그럴 바에는 다른 전력으로 백마의종을 상대하고 우리의 기병은 우회해서 적의 보군을 치는 편이 낫다.”
“백마의종을 상대할 다른 전력이 있겠습니까? 우리 궁사들의 실력으로는 백마의종의 갑주를 꿰뚫기 어려울 겁니다.”
장연은 궁병 전력을 입에 담았다. 하지만 그들로도 백마의종을 막을 수 없을 거라는 느낌이 강하게 밀려왔다. 장백기 역시 그 점에는 장연과 같은 뜻이었다.
“백마의종의 갑주를 보아하니 철기가 삼천이 있는 것과 진배없다. 웬만한 실력으로는 생채기 하나 만들지 못할 거다.”
장백기의 시선은 공손찬군 전면에 나선 백마의종을 향해 있었다. 장연 역시 장백기와 같은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갑주가 두꺼우니 말을 노려야겠는데 다섯 기 중 하나는 마갑까지 채워놓고 있으니 그마저도 무립니다.”
장연의 말에 장백기는 그를 슬쩍 바라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비연, 걱정마라. 내 비장의 한 수를 준비해두었다하지 않았더냐?”
“그게 무엇입니까? 설마 중군에 둔 순병을 두고 하시는 말씀은 아니겠지요?”
“방패병으로 백마의종을 막는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비약이 심하다. 게다가 백마의종은 삼천인데 순병은 고작 수백에 불과하다.”
방패의 방호력이 높으려면 크기가 크고 두꺼워야 함은 당연한 얘기다. 그러려면 자연스레 방패의 무게도 비례해서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무게가 무거우면 자연히 기동력이 떨어지니 방패병은 거점을 지키는 방어용으로나 쓸 뿐 기병을 상대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그럼 대체 무엇으로 백마의종을 상대하겠다 하십니까?”
“지켜보면 알 일이니 기다려 보거라.”
“그럼 당장은 어찌 하라 하십니까?”
“그야 총사인 네가 알아서 할 일이 아니냐?”
장백기는 백마의종을 상대하는 일을 장연에게 떠넘겼다.
* * *
여포 일행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흑산적과 공손찬군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다.
“대형! 대형! 저기 좀 보슈. 백마의종이 달리기 시작했소!”
위월이 침을 튀겨가며 호들갑을 떨자 여포가 핀잔을 주었다.
“내가 앞 못 보는 소경이더냐? 나도 다 보고 있으니 호들갑 떨지 말거라.”
그러자 위월은 입술을 삐죽거리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하지만 확실히 위월이 이토록 호들갑을 떨 만큼 백마의종의 진격은 대단한 광경이었다.
수십만의 대군이 일촉즉발의 긴장감을 풍기는 이 순간. 고작 삼천에 불과한 숫자이건만 백마의종이 움직이자 집채만한 파도가 밀어닥치는 듯했다.
두두두두두!
삼천기의 백마의종이 일제히 달리자 말발굽이 지축을 뒤흔들었다.
햐! 햐아!
말을 재촉하는 특유의 기합성을 내지르며 삼천의 성난 백마의종이 달려오고 있었으나 흑산적의 병진에는 변함이 없었다. 백마의종이 일마장 이내로 접어들자 수천의 흑산기병들이 출전했다.
장연과 대화했던대로 장백기는 백마의종을 기병으로 상대하려 하지 않았다. 흑산기병들은 전장을 우회하여 백마의종과의 충돌을 피했다. 대신 그들의 말머리는 공손찬군의 보군들을 향하고 있었다.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여포가 곁에 있던 저수에게 넌지시 물었다.
“저 선생, 흑산적이 백마의종을 상대할 수 있겠소?”
여포가 묻자 저수는 확신이 없다는 듯 고개를 기울이면서도 말은 또 달랐다.
“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알 수 없으나 나름의 비책을 준비해두긴 했을 겁니다.”
“나름의 비책이라······. 저 선생이라면 이제 어찌 하시겠소?”
“장연과 공손찬 모두 적기를 상대하기 위해서 궁사들을 먼저 써먹을 겁니다.”
그러자 여포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포는 지금껏 병서 한 줄 읽은 적이 없으나 수많은 전투를 치르며 나름의 병법을 이룩해 나가고 있는 무장이었다.
음모와 책략 같은 것에는 젬병이나 진행의 도에는 도통했다고나 할까? 물론 여포라면 자신이 직접 기병들을 거느리고 중앙을 돌파하고 있겠지만······.
“적기의 예봉을 꺾는데 궁병만한 자들이 없지. 하지만 그것도 지금 뿐이오.”
“그렇습니다. 거리가 가까워지면 혼전이 벌어질 테니 아군이 쏜 화살에 아군이 당할 수 있겠지요. 궁병을 쓰려면 지금이 적기입니다.”
“하지만 보아하니 흑산적의 화살이 백마의종을 꿰뚫을 수는 없어보이오.”
“철기나 다름없으니 흑산적의 활공격은 큰 실익이 없을 것입니다. 대신 공손찬은 제법 짭짤한 이득을 보겠지요.”
백마의종이 철기에 가까운 중갑기병이라면 흑산기병은 경갑기병이라 할 수 있었다. 양측 궁사들의 실력이 같다고 가정할 때 경갑을 입은 흑산기병들이 활공격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음은 당연지사가 아닌가.
저수의 예상대로 양군 모두 적기를 상대하기 위해 궁병들을 앞세웠다.
“궁수 앞으로!”
장연은 칼을 높이 치켜들고 명을 내렸다. 그러자 흑산적 중군 선두로 궁병대가 모습을 보였다. 입은 옷도 제각각, 손에 든 활도 제각각이지만 제법 준비를 단단히 했는지 움직임이 군문의 궁사들에 비할 만 했다.
백마의종이 맹렬한 기세로 달려오고 있는 걸 전열에서 뻔히 보면서도 궁수들은 일제히 시위에 화살을 걸었다.
“쏴라!”
장연의 명이 떨어지자 부하 장수들이 신호기를 휘두르며 고함쳤다. 그러자 일순간 먹구름이 드리운 듯 화살이 높이 쏘아졌다.
궁수들이 쏜 화살이 포물선을 그리며 장대비처럼 쏟아졌다. 이에 백마의종은 마치 소나기를 때려 맞는 것처럼 화살비를 온몸으로 두들겨 맞았다.
하지만 백마의종을 향해 쏟아진 화살들은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 백마의종의 갑주는 철기와 맞먹을 정도로 두껍고, 단단했기 때문이다.
간간히 고꾸라지는 기마가 있기는 했으나 전체에 비하면 미미한 숫자였다.
그렇게 두 번째 화살비가 퍼부어질 때쯤이었다.
* * *
“궁사들의 실력은 공손찬 측이 한 수 높은 듯합니다.”
흑산기병을 향해 화살비를 쏘아대는 공손찬 측 궁병대를 보며 저수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공손찬의 궁사들은 사거리, 연사력 등 어느 것 하나 흠잡을 곳이 없기 때문이다.
여포는 저수의 얼굴을 슬쩍 흘겨보았다. 그의 눈에 비친 저수의 얼굴에는 그늘이 드리워졌다.
유주를 얻으려면 공손찬의 군세와 건곤일척의 대결을 피할 길이 없다. 백마의종을 제외하면 공손찬의 전력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생각지도 않았던 궁병마저도 실력이 상당했다.
“북방의 궁사라면 응당 저 정도는 해야겠지.”
여포가 저수의 속도 모르고 공손찬의 궁병을 칭찬했다. 그러자 저수는 긴 한 숨을 내쉬었다.
“후우! 장군, 마냥 칭찬을 하실 때가 아닙니다.”
“비록 공손찬과 언제고 자웅을 겨루어야 할 처지이기는 하나 잘하는 것이 있으면 잘한다 칭찬을 해야 마땅하지 않소?”
“지금은 저들의 화살이 흑산적을 향하고 있지만 언제고 장군의 군세가 저들의 화살비를 맞아야 할 때가 올 겁니다. 게다가 우리는 궁병대가 없지 않습니까?”
“일천의 강노수가 있지 않소?”
여포는 정원과의 결전에서 크게 한 몫 했던 왕광의 일천 강노수를 언급했다. 하지만 저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강노병이 대단하긴 하지만 이동이 쉽지 않으니 복병으로 쓸만할 뿐입니다. 강노를 뻔히 보면서 달려들 어리석은 자들이 어디 있겠습니까?”
여포는 고개를 끄덕여 저수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하긴 강노를 아는 자라면 죽고 싶어 안달난 것이 아니고서야 달려들 리가 없지. 저 선생, 우리도 이참에 궁병대를 만드는 건 어떻소?”
여포는 그 말을 하자마자 전장에 펼쳐진 광경 때문에 저수의 답을 기다릴 수 없었다.
백마의종과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흑산적들이 창대를 기울여 방책처럼 저지대를 만들었다. 그러자 백마의종이 순식간에 세 갈래로 병력을 나누는 것이 아닌가.
각기 일천 정도의 병력으로 이루어진 세 무리의 백마의종은 약속이나 한 듯 일사분란한 움직임을 보였다.
좌우군이 일제히 활을 꺼내들어 한 점을 향해 화살비를 쏘아댔다. 그러자 창대를 쥐고 있던 흑산적들이 벌집이 되어 쓰러지며 창병으로 이루어진 방책이 무너졌다. 그 틈을 비집고 백마의종의 중군이 그대로 돌파를 시작했다.
이 모습을 본 여포는 미간에 주름을 만들었고, 저수는 입을 떡 벌리고 다물 줄을 몰랐다.
흑산적 전열이 무너지며 백마의종이 파죽지세로 돌파를 시작했다.
삼천의 백마의종은 철기이면서도 동시에 궁기였다. 돌파할 때에는 두꺼운 갑주를 방패삼아 무시무시한 기세로 흑산적들을 쓸어버렸다. 적병이 조직적으로 대항하려 들면 번갈아가며 신기에 가까운 마상궁술로 반격의 의지를 꺾어버리니 흑산병들이 속절없이 쓰러져갔다.
‘마치 황하가 범람해 논밭과 집들을 쓸어버리는 듯하구나!’
백마의종의 싸움을 본 저수의 감상이었다. 황하의 범람이 인간의 힘으로 어찌 할 수 없는 하늘의 뜻인 것처럼 백마의종 앞에 흑산적들은 너무나도 무기력했다.
하지만 흑산적 대신 그곳에 여포군 보군이 있다고 해도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저수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했다.
“저 선생, 공손찬보다 더 대단한 군세를 지닌 자들이 몇이나 더 있는데 벌써부터 두려움을 가지면 안 되오.”
여포의 말에 저수의 흔들리던 눈빛이 다시금 빛나기 시작했다.
‘병주는 여 장군의 근거지이니 유주를 얻는 것은 사주평정지계의 첫 걸음에 지나지 않는다. 사주평정지계 또한 천하를 얻기 위한 하나의 포석에 불과한데 어찌 벌써부터 약한 마음을 먹는단 말인가. 이럴 때 일수록 내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
저수는 결심을 굳힌 모양인지 품에서 목탄과 양피지를 꺼내 뭔가를 쉴 새 없이 휘갈겼다.
여포 역시 이 싸움을 보며 공손찬을 상대할 방법을 고심했다. 병법은 몰라도 혼자든 여럿이든 싸움에 있어서 만큼은 비상한 머리를 가진 그가 아니던가.
여포 뿐만 아니라 함께 온 무장들 역시 나름대로 공손찬을 상대할 비책을 궁리하느라 전장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 * *
흑산적과 공손찬군은 한 차례씩 공수를 주고받으며 초전을 마무리 지었다. 흑산기병은 공손찬의 궁병들에 막혀 많은 수의 사상자가 나고 말았지만 한 차례 돌파에 성공해 체면을 세웠다. 하지만 공손찬군의 피해는 미미한 수준이었다.
반대로 흑산적의 중군은 백마의종에 의해 유린당하며 그 시체가 산처럼 쌓이고 말았다. 워낙에 흑산적의 군세가 대단하니 수천 수만이 죽어나간 들 크게 티가 나지 않을 뿐이었다.
“대형, 공손찬의 군영에서 연기가 올라오고 있소. 저 놈들, 진짜······.”
위월은 공손찬의 군영에서 올라오는 연기를 보고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자 저수의 시선이 공손찬의 군영으로 향했다.
“장군, 공손찬의 배포가 참으로 대단합니다. 초전이 끝났을 뿐인데 밥 짓는 연기가 올라오다니······.”
싸움이 이제 시작인데 전장에서 밥을 짓는다니 보통 배포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전투를 숱하게 겪어 장졸들에게 싸움에 관한 긴장감이 없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여포 일행은 둘러 앉아 초전에 대한 감상을 주고받았다. 대부분의 내용들이 백마의종의 대단한 돌파력과 변화무쌍한 병진의 변화에 초점을 두고 있었고, 간간히 궁병대에 관한 얘기들이 섞였다.
하지만 조운은 뭔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을 뿐 말이 없었다. 그러자 위월이 조운에게 턱짓을 했다. 뭐라도 말해보라는 의미임을 알고 조운은 아껴두고 있던 말을 꺼냈다.
“우적 형님이 하는 말이 싸움은 뒤치기가 최고라 했소. 그런데 양쪽 다 눈에 보이는 움직임만 하고 있으니 병가의 도를 모르는 자들이 총사를 맡고 있는 듯하오.”
그런데 그 때 조운이 무심결에 던진 한 마디가 저수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백마의종을 상대할 방도를 준비했을 텐데도 장연은 비장의 한 수를 보이지 않았다. 공손찬도 백마의종만을 보였을 뿐 이파 삼파가 없었어.’
저수는 장연과 공손찬의 의도를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백마의종의 위명이야 하북에서 모르는 자가 없을 정도이니 장연 역시 대책 없이 이 싸움에 나서지는 않았을 터였다.
그런데도 그 비책을 끝까지 보이지 않았다. 백마의종에 의해 수많은 장졸들이 목숨을 잃고 사기가 바닥에 떨어지는 그 상황에서도 숨길 만큼의 비책. 아마도 때를 기다리는 것이리라.
공손찬도 수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백마의종의 활약으로 승기를 잡았는데도 후속병력을 보내지 않고 오히려 백마의종을 퇴각시켰다.
싸움에 있어 승패가 갈리는 것은 대나무가 쪼개는 것과 같아서 한번 기세가 기울어지면 단번에 승패가 결정되는 법인데 손 쉽게 승리를 뜨ㅏ낼 수 있음에도 그러지 않았다.
‘어쩌면 백마의종은 그저 상대의 눈을 현혹시킬 미끼에 지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생각이 거기까지 이른 저수는 여포를 향해 두 손을 모아 들었다.
“장군, 장군께 청이 하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