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Follicle Exhibition RAW novel - Chapter 394
393화 무관의 제왕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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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탁은 개혁정치의 흐름을 이어가기 위해 수많은 신예들을 기용해 조정에 출사시켰다. 하지만 그들은 미래가 기대되는 인재일 뿐 관료사회에서는 솜털도 빠지지 않은 애송이에 불과했다.
머리에 암만 든 것이 많아도 책에서 배운 것만으로 세상사 모두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능구렁이 같은 고관대작들은 능수능란하게 애송이들을 유린했다. 머릿속의 논리는 있으나 언쟁과 설전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이를 관철시킬 수가 없었다.
오히려 업무에서 밀려났을 뿐만 아니라 신진세력의 배후에 동탁이 없었다면 어떻게 죽는지조차 모르고 다들 비명에 갔을 터였다.
‘참으로 탐나는 인재로다. 배포도 언변도 지모도 모두 상상이상이로구나.’
동탁은 곽가를 넌지시 떠보았다.
“양책의 곽 씨는 조정에 출사를 하지 않는다던데 그대는 그럴 생각이 있는가?”
“영천 땅에서 오직 양책의 곽 씨 만이 오직 조정에 출사를 하지 않습니다. 곽 씨는 오직 천하를 얻을 자만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나를 따르는 건 어떻겠는가?”
“이미 천하를 얻으셨잖습니까?”
그러자 동탁은 아깝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곽가의 말은 그저 여포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한 불쏘시개에 불과했다.
곽가는 여포가 수수밥에 박채로 끼니를 때운다는 말로 명주 대신 화주를 즐기는 동탁이 동질감을 느끼게 했고, 개혁정치를 지지한다는 듯한 태도도 보였다.
그러자 동탁은 곽가에게 출사를 권하는 것으로 조정 안에서 자신의 개혁정치를 도울만한 인재가 없다는 것을 노출했다.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이제 남은 것은 현량방정을 입에 담는 것 뿐이었다.
곽가는 동탁에게 다시 읍했다.
“상국, 긴히 드릴 말씀이 있으니 좌우를 물려주십시오.”
그러자 동탁은 몇 번 손사래를 치는 것으로 수하들을 물렸고, 위월도 곽가와 몇 번 눈빛을 교환하더니 장내를 떠났다.
* * *
“그래, 내게 하고 싶은 말이 뭔가? 문우 선생의 말을 들어보니 황실에 바치는 재물이 상당하다 들었네. 그 정도면 공손 태수가 요동왕의 왕호를 얻는 일은 무리가 없을 걸세.”
물론 왕호라는 것은 재물이 있다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만금을 싸 짊어지고 오더라도 왕호를 함부로 내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외적의 침입을 막을 수만 있다면 왕호를 어찌 아끼랴. 그러나 안타깝게도 경성에서 보는 요동은 이역만리 먼 곳이었다. 동이가 쳐들어와도 경성까지 올 일이 없으니 위기감이 없었다.
동탁은 서량에서 서융과 싸워 한조의 서쪽 땅을 지켜온 자이기에 왕호를 내려서라도 외적의 침입을 막을 수 있다면 아깝지 않다 여겼으나 황실의 종친들은 공감대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때문에 공손도가 성의라는 명목으로 큰 재물을 바칠 때까지 왕호를 내리는 것을 지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곽가가 가져온 재물을 보니 그 양과 질에서 하 태후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공손 태수가 왕호를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청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일단 들어보겠네. 말해보게.”
“여 자사는 상국께서 현량방정을 열어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현량방정?”
동탁이 현량방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가 의아해하는 것은 왜 여포가 현량방정을 원하는 것인가에 관한 것이었다.
“여 자사의 청원이 이상하게 들릴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당연한 얘기지. 조정에 천거할 인재가 있다면 무재를 통하면 될 것이고, 두 사람이라면 지효를 하면 될 일이 아닌가?”
동탁은 여포가 누군가를 천거해 출사하게 하고 싶다면 굳이 현량방정과 같은 거창한 일을 통하지 않고도 할 수 있음을 꼬집어 말했다.
현량방정은 사실상 조정이나 지방관은 물론 천자까지 모두에게 번거로운 일일 뿐이었다.
지방관은 무재와 효렴으로 한 두 명 정도의 인재를 천거해 재물까지 취할 수 있는데 현량방정을 열게 되면 자신이 천거한 인재의 실력까지 만천하에 까발려 지는 것이다.
조정에서는 시험을 준비해야 했고, 하 태후도 나이 어린 천자를 대신해 시험을 주관해야 했다. 그러니 동탁이 현량방정을 여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길 수밖에······.
“현량방정을 여는 것은 여 자사에게도 좋은 일이지만 상국께도 좋은 일입니다.”
“어째서지? 여 장군이 여러 명을 동시에 출사시켜 조정 안에 그의 세력을 일구고자 함이 아니던가?”
역시 경사의 주인은 아무나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동탁은 현량방정이라는 말을 듣는 것만으로 여포의 의도를 정확하게 꿰뚫었다.
“조정 안에 우호세력이 있으면 좋겠지요. 하지만 현량방정이 열린다고 해서 그게 반드시 가능하겠습니까? 시험을 내는 것은 결국 상국께서 하실 일이니까요.”
“현량방정을 여는 것부터가 볼썽사나운 짓이지. 현량방정을 연다고 하면 조정 안에서 나와 대립하는 명문회가 나를 얼마나 물어뜯겠는가?”
지금 동탁이 자신의 입으로 현량방정을 시행하자 한다면 그야말로 자신의 얼굴에 스스로 먹칠을 하는 것과 같았다. 이것이 무슨 의미인고 하니 현량방정을 하자는 것은 동탁이 뽑은 신진 관료들이 제 할 일을 제대로 못한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과 같았다.
“상국께선 자신의 이름이 만대에 전해지길 바라십니까? 아니면 한조가 만대를 이어가길 바라십니까?”
“어느 쪽도 만대를 이어갈 순 없을 듯하구먼. 당대도 장담할 수 없지.”
동탁은 씁쓸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듯 말하고선 곽가에게 턱짓을 했다.
“자네의 말은 지금 내가 체면 때문에 한조를 망친단 말인가?”
“소생 곽가. 영천의 양책 출신입니다. 영천이야말로 한 집 걸러 한 집에 인재가 나는 곳입니다. 하지만 상국께서 뽑은 신진 관료들 중에 영천 출신인 자는 몇이나 됩니까?”
“가문과 혈통이 실력의 척도가 될 순 없네.”
“상국과 뜻을 함께 하는 자들 중에 이름난 명사가 없기 때문에 정국을 주도할 수 없다는 생각은 안 하십니까?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경성의 정치는 하루아침에 바뀔 수 없다는 것이 곽가의 지론이었다.
이해관계에 따라 도당을 이루고 파벌을 이루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사람은 남을 믿지 못하는 존재이니 어떤 끈으로 묶여 무리가 되기를 원했다.
끈이라는 것이 바로 혈연이고 학연이고 또 지연이라는 것이다. 서로를 쉽게 믿지 않지만 그런 것들이 있으면 얘기가 달라진다.
하지만 동탁이 선발한 신예들은 특정한 끈으로 묶이는 것이 없었다. 오히려 그런 것들이 개혁에 방해가 된다고 믿었기 때문에 파벌을 이루지 않는 젊은 사인들을 기용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정국을 이끌어나가는데 오히려 방해가 되고 있었다.
“상국, 아직 명성을 얻지 못한 소생의 말이나 정치란 결국 무리 대 무리의 싸움입니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무리와 무리의 경계가 정확하지 않다는 점이지. 알고 있는가? 지금 왕도파와 명문회는 겉으로 보기에 서로 척을 지고 있는 듯하나 퇴궁할 때는 손을 잡고, 퇴궁한 후에는 함께 술을 마시네.”
조정에서는 정책을 두고 서로 죽일 듯이 으르렁거리지만 그 자리에서일 뿐 사석에서는 형님동생하는 자들이 경성의 정치를 주도하는 자들이다.
그러니 동탁의 개혁안은 이리저리 칼질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패도를 좇는다면 동탁은 만사를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을 테지만 그 때부터 한조는 회생이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지고 말 터였다.
“상국의 개혁이 완벽하게 성공한다고 할지라도 그런 일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어째서지?”
“정치는 사내의 몫이지만 정치가는 여인과 같습니다.”
동탁은 곽가의 말이 썩 마음에 들었던 모양인지 흡족한 미소를 머금었다.
“상국께서 경사의 주인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그 근본은 뼛속까지 무인이십니다. 한 가지 목표를 향해 일로정진하는 무인들과 달리 정치인들은 항상 상대적인 가치들을 위해 합치고 나누길 반복합니다.”
“그렇지. 우리 무인들과 달리 사인들이란 절대적인 목표가 없어. 황실부흥을 떠들어대지만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되고······ 다들 안 된다는 소리만 되풀이 할 뿐일세.”
“서로를 너무 모르지요. 서로와 싸워 상대방에게서 원하는 것을 취하는 방법조차도 모릅니다.”
“자네는 안 단 말인가?”
동탁은 자신이 물었으면서도 금세 스스로 답을 찾아냈다. 그는 눈을 크게 부릅뜨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양책의 곽 씨······. 무관의 제왕······. 흐흐흐! 그랬지.”
동탁은 인재들을 기용하기 위해 유수의 명문가들을 살폈다. 그 많은 가문들 중에서도 양책의 곽 씨 가문은 인재의 보고(寶庫)와도 같은 곳이었다.
양책의 곽 씨는 영천의 그 많은 가문들 가운데 유일하게 문무를 겸비한 인재를 내는 곳이다. 학문으로는 영음인이라 불리는 순 씨와 쌍벽. 가문의 비전 검예를 익힌 곽 씨 인재들은 가끔 강호행을 하여 명성을 날릴 정도의 활약을 할 만큼 대단한 무예자를 냈다.
양책의 곽 씨 인재들이라면 문관과 무관 중 어느 자리를 맡긴다고 해도 부족함이 없으니 동탁이 탐을 냈던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조정에 출사를 하지 않는 자들이니 휘하에 둘 수 없었다.
“여인의 적은 여인입니다.”
“사인의 적은 사인이고, 명문의 적은 명문이란 말인가? 참으로 현답이로다.”
“현량방정은 모두에게 기회를 줄 겁니다. 관료들이 공석에서 원수처럼 싸우고 사석에서 호형호제를 하든 절친한 벗으로 지내든 결국 그들도 각자의 계산이 다 다릅니다.”
“무슨 말인지 잘 알겠다. 하지만 현량방정이 치러진다면 조정 안에서 명문회의 힘이 강해질 테지. 내 개혁은 조금 더 멀어질 테고······. 내게는 득보다 실이 많다.”
동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제부터 설득과 거래는 다시 곽가의 몫이 되었다.
* * *
“천자를 대신해 상국께서 현량방정을 주관하신다면 그 시험은 분명 공정할 것이고, 설사 명문회의 입김이 닿은 자라고 할지라도 그 능력이 합당하다면 출사를 막지 않으시겠지요.”
“그 말대대로네. 부정한 짓을 하지 않는다면 명문회와 연줄이 있다고 해서 출사를 막을 생각은 없네.”
“결국 현량방정으로 가장 큰 이득을 취할 자들은 명문회라는 얘기겠지요?”
“그런대도 현량방정을 꼭 열어야겠는가?”
동탁은 조정 안에 여포의 세력이 생기는 것을 원칙적으로 막을 생각이 없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여포의 곁에 있는 자들은 무장이면 무장, 사인이면 사인. 누구하나 허술한 자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동탁은 여포와 연수를 맺고 있는 입장이니 결국 자신의 편이 늘어나는 것이 된다.
하지만 조정 안에 여포에게 우호적인 관료 몇몇을 만들기 위해 명문회의 세가 크게 불어나는 것은 사양하고 싶었다.
“현량방정으로 명문회의 몸집이 불어나겠지만 상국께선 그들을 굴복시킬 힘을 얻게 되실 겁니다.”
“자세히 말해보라.”
“이미 팔관도읍은 이십만의 서량병이 있으니 그 안에서 반정을 일으킬 자는 없을 터. 하지만 팔관 밖에는 경성을 노리는 수많은 군웅들이 있습니다.”
“팔관과 경성의 치안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서량병 이십만은 부족하지. 팔관 밖의 역도들을 향해 휘두를 칼이 없네.”
이에 곽가의 눈빛이 번뜩였다.
“있잖습니까? 팔관 밖에서 휘두를 수 있는 천하제일의 보도가······!”
“자네······ 설마 여 장군을 얘기하는 겐가? 음······!”
동탁은 침음성을 흘리며 머릿속에서 복잡한 계산으로 이해득실을 따졌다.
“좋다! 여 장군도 나를 위해 팔관 밖의 역도들을 정리해주어야겠네. 그리만 해준다면 현량방정을 열어주지. 아주 성대하게······.”
“여 자사께서 나선다면 하내의 원술이라 할지라도 어려운 상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천하제후들로 구성된 그들의 군대를 명분 없이 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 명분······. 만들어주지. 황실에선 역적 원술이 유대를 내세워 감히 또 하나의 한조를 개국하려하는 것을 무척이나 우려하고 있네.”
천자의 이름으로 여포에게 역적 토벌의 명분이 주어진다면 여포의 거병을 누구도 사사로운 이익을 위한 것으로 매도하지 못할 터였다.
“하내 평정을 원하시는 건 누구보다도 상국께서 더 원하시는 게 아닙니까?”
“이런 이런······. 그대 앞에서는 숨길 수가 없구먼. 원 가 놈들이 돌아가며 속을 썩이니 마음이 편치 않았네. 하내를 평정해준다면 여 자사의 하내 지배도 인정하겠네. 생각 같아선 병량도 대고 싶으나 형편이 허락하질 않는 군.”
“상국께서 친히 문무백관들 앞에서 천자께 주청을 드려주시면 됩니다. 여 자사에게 하내 정벌을 명해달라고······. 그거면 됩니다.”
“내가 여 장군에게 부탁을 하라는 얘기나 마찬가지로구먼? 왜지? 대체 뭣 때문에 그런 연기까지 하라는 건지 모르겠구먼.”
동탁은 번거로운 일을 부탁해오는 까닭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는 곽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의 지모가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애당초 이 얘기 자체가 그의 머리에서 나온 게 아니니까.
“소생 역시 그 까닭을 알지 못합니다. 다만 여 자사께서 이를 원하십니다. 상국, 여 자사를 한 번 믿어보시지 않겠습니까?”
곽가는 이런 식으로 애매한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뇌리를 스쳐지나가는 것들이 몇 가지 있긴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디까지나 가정일 뿐이다. 곽가의 지모로도 가후의 심계만큼은 정확히 예상할 수 없었다.
‘군사께서 내게 이런 명을 했을 때에는 그만한 까닭이 있을 터. 더욱이 군사의 계책은 주로 귀계였으니 이번 일 역시 다른 의도가 깔려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