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Follicle Exhibition RAW novel - Chapter 453
452화 쌓아둔 양곡이 썩어나가도 굶주린 백성들에게는 풀지 않는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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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상한 뼈만 남은 사내 하나가 몽둥이를 들고 나와 여포에게 소리쳤다.
“먹고 죽을래도 양식이 없으니 꺼져라!”
그러자 모여 있던 마을 사람들도 덩달아 소리쳤다.
“껴져라!”
“이 도적놈들아! 사람이라도 잡아먹을거냐?”
“관리들이 마을에 개와 닭까지 죄다 잡아갔다!”
흉흉한 분위기를 피하고 싶은 위월이 속삭이듯 말했다.
“대형, 그냥 갑시다. 배고파서 눈 뒤집힌 자들과 더 얘기해봤자 얻을 게 없소. 저들을 벨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그냥 우리 갈 길 가면 되는 거요.”
“양식이라도 좀 나눠주고 가야지. 저래 두면 다 죽는다.”
“답답하오. 우리가 가진 식량을 줘버리면 우리는 뭐를 먹는단 말이오? 손가락이라도 빨거요?”
“하루 이틀 굶는다고 안 죽는다. 하지만 저들을 봐라. 당장 오늘내일 하는 자들이 숱하다.”
홀아비 사정은 과부가 안다고 없이 살아본 사람만이 없는 사람의 심정을 알 수 있는 법이다.
여포는 수하들에게 명해 지니고 있는 식량을 모두 꺼내놓았다. 건량이 대부분이고 그나마도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흘에 피죽 한 그릇 먹지 못한 마을 사람들의 눈이 번들거리게 만들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자 노인 하나가 지팡이를 두 손으로 잡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걸어 나왔다.
“이놈들! 대체 무슨 짓을 꾸미는 것이냐? 설마 사람을 사고 파는 놈들이냐? 천리도 모르고, 인의도 모르는 철면피 같은 놈들아!”
여포는 노인이 고을의 삼로(三老)쯤 되는 사람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평생을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자라면 천리나 인의를 운운할 리 없기 때문이다. 들은풍월이 좀 있고, 연륜이 가져다 준 지혜 정도는 있는 자라는 얘기다.
“노인장, 사람을 사고 팔다니······ 내 그리 참담한 짓을 할 정도로 보였단 말이오?”
“그럼 이 양식들을 내놓는 까닭은 무엇이냐?”
“우리는 병주 사람들인데 지나는 길에 보아하니 다들 사정이 딱해 보여서 지니고 있는 양식이라도 내놓으려 하는 것 뿐이오.”
여포는 굳이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았다. 하내 백성들의 사정을 깊이 알기에는 신분을 숨기는 편이 좋았다. 관리와 백성 사이의 벽을 둔다면 백성들은 있는 그대로를 말하지 않을 테니까.
“병주 사람이 왜 하내 사람을 돕는단 말이냐? 그리고 병주 사람이 양식을 남에게 준다는 소리는 내 일찍이 들어본 적이 없다! 수작부리지 말고······.”
노인은 여포에게 연신 호통을 쳤지만 그 사이에 아이 하나가 쪼르르 달려와 여포 앞에 섰다. 아이는 여포와 여포 앞에 놓인 양식을 번갈아 보았다.
주저하고 있었다. 양식이 탐나기는 했지만 손을 댔다가는 치도곤을 당할지 모르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이다.
여포는 아이의 모습을 보자 옛 추억이 떠올랐다. 배가 고파 흙이라도 퍼먹고 싶은 충동을 느끼던 그 때 장양이 내민 호병 하나를 정말 꿀맛처럼 먹었던 그 기억이······.
여포는 아이를 들어 자신의 어깨에 앉혔다. 그러자 아이는 겁이 나서 소리 없이 눈물만 뚝뚝 흘렸다. 이에 여포는 품속에 넣어둔 호병 한 장을 꺼내 내밀며 말했다.
“이 호병으로 말하자면 천하에서 제일로 맛있는 호병이다. 아저씨가 밤에 자기 전에 먹으려고 숨겨놓았던 건데 안 울면 네게 주마.”
여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이는 호병에 눈이 뒤집혔다. 게걸스럽게 호병을 씹어대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백성들은 군침을 삼켰다.
위월이 그들을 향해 손짓을 했다. 와서 요기를 하라는 것이다. 그러자 마을 주민들은 마지막 남은 이성의 끈을 놓아버렸다.
“위월아, 호병 마저 굽자.”
“또 내가 굽소?”
“좋은 일 한번 해라. 우리가 천날 만날 사람 목숨이나 끊어대기만 해서야 되겠느냐? 가끔은 이렇게 사람 목숨을 살려도 봐야지.”
여포가 부드러운 말로 번거로운 일을 맡겼다. 그러자 위월은 고개를 기울였다.
“그거랑 호병 굽는 거랑 무슨 상관이란 말이오? 대형은 가만히 보면 나를 등신 취급하는 것 같소.”
“뭐 그리 잔말이 많으냐? 루화와 혼인 안하고 싶냐?”
“사인들이랑 어울리더니 못된 것만 배워서는······.”
“뭐라고?”
“아니오. 내가 호병 얼마든지 굽겠다고 했소.”
* * *
고순이 어렵사리 토끼 두 마리까지 잡아와 마을 주민들은 건더기는 없어도 고깃국도 맛보았다. 정신없이 먹어대는 자들을 보며 여포는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원술의 군량고가 지척인데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다니······. 내가 군량고를 봉쇄해서 그런가?”
“대형, 그게 어디 대형 탓이오? 원래 고관대작이라는 것들 하는 짓이 그렇소. 곳간에 쌓인 곡식들을 썩혀 버리는 한이 있어도 백성들한테는 안 푼단 말이지.”
“원술에게 기회가 있었어도 백성들을 구휼하지 않았을 거란 말이냐?”
“당연한 얘기를 입 아프게 왜 하오? 대형처럼 밑바닥에서부터 올라간 사람이면 몰라도 잘난 집 후손들은 백성들이 어찌 사는지 모른단 말이오.”
여포는 위월의 말을 들으며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요새 같은 군량고를 향해 시선을 멈추고 있었다.
‘어차피 유화가 오면 원술은 보내줘야한다. 하지만 군량고에 쌓인 양곡은 두고 가게 하고 싶다. 그것만 있으면 최소한 하내 백성들이 춘궁기는 버틸 수 있을 터.’
여포는 원술의 군량고를 칠 작정을 했다. 병주와 유주의 군량 사정도 좋지 않았다. 공손찬이 남긴 군량이 없었다면 여포군은 어쩌면 각지를 돌며 약탈을 해대는 도적의 무리가 되어 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제후군의 군량고는 먹음직스러운 사냥감이었다.
* * *
병주 최남단 요새. 천정관.
가후는 곽가와 바둑을 두고 있었다. 이따금 돌을 놓는 소리만이 들릴 뿐 두 사람은 일언반구 말이 없었다. 숨 막히는 침묵을 깬 쪽은 가후였다.
“조조의 책사에게 서신은 보냈소?”
“조만간 좋은 소식이 올 겁니다.”
“기주의 진 선생에게서는 별다른 소식이 없소?”
가후는 진의록에 관한 일을 물었다. 곽가의 일은 모든 정보와 문서를 관장하는 것이다. 순채와의 일이 잘 마무리 되어 전보다 더 열정적으로 일에 매진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연락을 취하기가 어려운 듯합니다. 이럴 때는 그저 기다리는 것이 상책이지요.”
“예정대로라면 원소의 아들들이 자중지란을 일으켜야 했을 터. 그런데 아직 감감 무소식인 걸 보면 뭔가 일이 잘 안 풀리는 모양이오.”
“원소 휘하에 현사들이 즐비하잖습니까. 삼십육 가의 병법자들이 포진하고 있으니 진 선생도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일 겁니다.”
“우리 군의 군량상황을 생각하면 어쩌면 잘된 일인지도 모르오.”
군량 얘기가 나오자 곽가도 표정도 굳어졌다.
“군량 사정은 빠듯합니다. 하내 공략에 대군을 움직이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병사들을 굶길 뻔 했습니다.”
“하내 공략도 곧 마무리 될 거요. 유화가 원술의 보호자를 자처하고 올 테니 때를 잘 잡아서 그들에게 길을 열어주면 될 일.”
“여 장군의 기분은 좋지 않을 겁니다.”
“어찌 되었건 여 장군은 실리를 취하게 되었소. 이번 일로 유화의 명망까지 주저앉을 테고······. 휘하에서 최강이라는 미돈을 잃었으니 그야말로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된 거요.”
가후는 그리 말하며 바둑돌을 손가락 사이에 끼워 습관처럼 바둑판의 모서리를 두드렸다.
“선우 형제를 써먹어야 하는데 놀리고 있으니 아깝소.”
“미돈을 잃었다고 하니 유화의 신변은 선우 형제가 맡게 된 거 아니겠습니까? 이참에 미돈을 따르는 자들을 정리해버리라 하십시오. 그 다음에는 뻔하지요.”
“여 장군의 손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오. 조조의 책사를 처리하는 것처럼 차도살인이 상책이오.”
가후의 말에 곽가는 대답 대신 바둑돌을 착수하여 공세를 펼쳤다. 제법 묵직한 한방이었던지 가후의 입에서는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이렇게 밀어붙이면 도망을 가야겠는데······. 어디보자, 어디보자. 갈 곳은 이곳 뿐인데 함정을 파두었구려?”
“들켰군요. 그곳에 착수하셨더라면 소생은 대마를 잡을 수 있었을 터인데······.”
그저 바둑판의 형세에 관한 얘기가 아니었다. 가후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흡족한 미소를 머금었다.
“큰 집이 두 개가 있으니 하나는 유표일 테고, 다른 하나는 손견이겠구려.”
“한 하늘에 태양이 둘 일 순 없고, 한 산에 두 마리 범이 살 수 없는 법이 아닙니까? 한데 원술이 형주로 돌아간다면 형주야 말로 해가 셋 씩이나 뜨고, 범이 세 마리가 마주친 형국이 됩니다.”
“범이랄 것까지야 있겠소? 손견은 기껏해야 원술의 수족을 자처할 뿐인 자인데······. 범의 권세를 빌려 날뛰는 여우에 불과하오. 그가 사슴을 좇는 자이기는 하나 용맹만 대단할 뿐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요.”
손견에 대한 가후의 평은 그 정도였다. 하기야 가후는 손견과 아무런 접점이 없고, 북방과 남방은 어울릴 일이 없으니 기껏해야 소문으로밖에 접하지 못했을 터. 그러니 손견은 이 정도 평가 밖에 얻지 못했다.
하지만 곽가는 달랐다. 예주와 형주는 이웃한 땅이다. 게다가 곽가가 두 해 동안이나 강호행을 했을 때 그 대부분의 시간은 남쪽에 있었다.
“선생, 손견의 실력이 부족하다는 얘기는 이제 사실이 아닐 겁니다.”
“이제 사실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 때는 맞고 지금은 다르다는 얘긴데······. 그를 너무 높이 평가하는 것은 아니오?”
“동 상국의 장수 서영에게 격파당한 일을 두고 하시는 말씀입니까?”
“그렇소. 그의 용맹은 항우에 비할 바라고 들었으나 병법으로 따지자면 손자의 후예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소.”
이에 곽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손견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서영이 대단한 것입니다. 소생이 강남을 주유할 때 손 씨 가문의 영향력을 몸으로 느꼈습니다.”
곽가는 옛 기억을 더듬어 손 씨 가문에 대해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가후에게 전했다. 맨손으로 시작해 자신의 깃발을 세운 손견은 여러모로 여포와 비슷한 면모를 보였다.
여포가 동탁의 도움을 알게 모르게 받았다면 손견은 원술의 도움을 대놓고 받았다. 손견은 원술의 수하를 자처했고, 그 대신에 원술의 재물과 군량을 지원받았다.
손견군의 무서운 성장속도를 생각한다면 이제는 그의 실력을 운운할 때가 아닌 것이다.
“호오! 흥미로운 얘기요. 그럼 원술이 개를 길렀는지 범을 길렀는지 한 번 볼 필요가 있겠소.”
가후의 말에 곽가는 검지를 펴 보였다.
“유표를 잊으시면 안 되지요.”
“형주자사 유표도 있었지. 곽 선생, 선생의 계책은 좋으나 선생은 원술을 너무 가벼이 보는 경향이 있소. 하기야 여 장군의 휘하에 있으니 다른 자들이 너무 하찮게 보이는 것도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지만······.”
그러자 곽가는 두 손을 모아 들었다.
“군사 선생, 소생은 유표와 손견이 연수를 맺게 할 생각입니다.”
“유표와 손견이 힘을 합해 원술을 치게 하겠다? 힘의 비율로만 본다면야 합당한 책략이나 문제는 유표와 손견 사이도 견원지간이 아니오?”
“선생의 말씀대로입니다. 손견은 형주를 취해 중원으로 진출할 길을 확보하려 합니다. 유표는 형주 자사이니 손견에게 형주의 인장을 넘겨주고 싶지 않겠지요.”
“그걸 알면서 어찌 그런 책략을 낸단 말이오? 혹 내가 모르는 것이 또 있소?”
가후는 이제 자신의 지모를 맹신하지 않았다. 수차례 여포에게 허를 찔려보았기 때문이다.
책략이란 기본적으로 상대의 의도를 예측하는 것을 시작으로 한다. 하지만 사람마다 얼굴이 다르듯 생각도 다르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사건이 일어나는지를 예상하고 있어야만 이를 기반으로 책략을 만들 수가 있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 날아들지 모르는 화살을 막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곽가와 같은 현사가 있다면 마땅히 머리를 맞대야 할 터였다.
“선생이 북방의 일에 훤하듯 소생은 남방의 일에 밝습니다. 형주의 유표는 자사 노릇을 제대로 못하고 있습니다. 원술이 손견을 움직여 전 자사 왕예를 베었지요.”
“유표에게 원술은 눈엣가시로군.”
“손견에게도 원술은 걸림돌입니다. 이제 실력을 갖추었으니 독립을 원할 터. 하지만 상장 기령을 위시로 수많은 무장들을 하내에서 잃었습니다.”
“손견 같은 맹장을 쉽사리 놓아줄 수가 없는 상황인 가보오. 그렇다면 유표와 손견은 서로 대척점에 있기도 하지만 또 동시에 같은 적을 두고 있는 셈이겠구려?”
곽가는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원술이 하내에서 가봐야 어디로 가겠습니까? 결국 남양입니다. 그가 형주로 오는 것을 유표도, 손견도 반기지 않을 것입니다.”
“불씨를 당겨주어야겠는데······. 유화 때문에 병마를 줄일 수 없게 되었소. 황실의 종친들이라는 자들은 하나같이 믿을 수가 없소. 여 장군께서 그리 은혜를 베푸셨건만······.”
“병마를 줄일 수 없다면 군량이라도 줄여야겠지요.”
가후는 곽가의 말에 말을 더 보태려 했으나 입을 다물고 말았다. 문 밖에서 고하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군사어른, 대형이 돌아왔습니다!”
미봉이 여포의 귀환을 알리자 가후와 곽가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여 장군의 의중을 한번 들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