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Follicle Exhibition RAW novel - Chapter 502
501화 유표와 원술이 싸우다!(劉景升爭鬪袁公路) (2)
————– 501/753 ————–
육양 전투는 반 시진도 되지 않아 끝났다. 하지만 선봉장 문빙이 이끄는 형주의 삼천 군사는 제법 많은 일을 해냈다.
수만 대군을 상대로 형주군은 고작 삼천에 불과했기에 많은 적병을 사살하는 전공을 쌓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들이 시간을 벌어준 덕분에 많은 피난민들이 무사히 전함에 승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유표는 스스로 미끼가 되어 적병들에게 쫓겨 어디로 갔는지 소식을 알 수 없을 정도였다. 게다가 포구에는 전함에 자리가 없어 타지 못한 자들이 족히 기천은 되었다.
포구의 피난민들은 멀어지는 배들을 보며 안타까움에 몸부림쳤다. 누군가는 자기를 버렸다며 욕을 해대는 자도 있었고, 가족과 헤어진 자는 가족의 이름을 애타게 목 놓아 불러댔다.
자포자기한 얼굴로 주저앉아 멍하니 흐르는 강물만 바라보는 자가 있는가 하면, 처자식이라도 태워 보낼 수 있어 다행이라 여기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자도 있었다.
그들 모두 각양각색이었으나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원술의 만행이었다.
“뭣이라? 유표를 놓쳐? 이런 쓸데없는 놈들! 그까짓 늙은 놈 하나 잡지 못하고 놓치다니 그러고도 너희들이 말을 탈 자격이 있단 말이냐!”
원술은 유표를 놓쳤다는 보고를 받자 분통을 터뜨렸다.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부장들을 나무랐지만 그런다고 이미 놓친 유표를 어찌 할 텐가.
원술은 연신 씩씩거리다가 화풀이 할 대상을 찾았다. 그의 눈은 포구에 몰린 피난민들을 향하고 있었다.
“이게 다 저 무지렁이들 때문이다! 저놈들만 없었어도 전군을 보내 유표의 목을 가져오게 했을 터인데······ 다 저놈들 때문이다! 여봐라! 저 거추장스러운 놈들을 유표의 잔당들과 함께 모조리 베어버려라!”
원술은 피난민들을 모조리 죽이라 명했다. 그러자 염상이 펄쩍 뛰며 만류했다.
“주공, 다시 한 번 생각해주십시오. 백성들에게 어찌 창칼을 휘두르게 하십니까?”
“한 두 번도 아닌데 지금 여기서 또 이럴 건 뭐요?”
“수십 명을 죽이는 것과는 다른 일입니다. 뜻대로 하시면 필시 되돌릴 수 없는 실책으로 남을 겁니다.”
지금껏 수차례 피난민들을 참살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 중에 자객이 섞여 있었으니 자객을 제압하는 중에 벌어진 불상사 정도로 무마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처럼 넓은 개활지에서 수천이나 되는 백성들을 참살한다면 그 때는 정말 빼도 박도 못하는 것이다. 수십 수백 명이 본 것은 소문이 되지만 수천 명이 본 것을 소문에 불과하다 넘길 수는 없는 일이다.
더욱이 형주의 백성들이 아닌가. 원술이 생각대로 유표를 물리치고 형주를 취한다고 해도 민심은 결코 그를 따르지 않으리라.
“이번에 저들을 죄다 죽여버리면 앞으로는 내 앞길을 막는 어리석은 자들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오. 이번 일을 거울삼아 알아서 피하겠지.”
“그러시면 그냥 위협만 해서 쫓아내야지 어째서 죽이신단 말입니까? 사람의 목숨은 귀한 것입니다. 사람이 태어나 사람구실 할 때까지 무려 십 수 년이 걸리는데 한 순간에 주공의 기분에 따라 죽인다면 그 세월이 너무 아깝지 않습니까?”
“선생, 어찌 그리 어리석소? 지금 유표가 백성들을 방패삼은 것을 정녕 모른단 말이오?”
원술의 말에 염상은 순간 몸을 휘청거렸다. 사실 염상은 유표가 설마 백성을 방패로 삼는 수법을 쓸 거라고는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인정해야만 했다. 지금까지의 모든 상황은 그 수법이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백성들 사이에 자객을 섞어 넣고, 주공으로 하여금 백성들을 공격하게 만들었군요. 아아! 유표가 그런 귀계를 쓸 줄이야.”
“이제 선생도 별 볼 일 없게 되었구려. 나이가 들어서 그렇소? 총명하던 사람이 그런 수법도 간파하지 못하고······.”
원술은 또 적 한 사람을 늘렸다. 염상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서슴지 않고 해버린 것이다.
객관적인 사실만을 놓고 본다면 유표가 이런 위험천만한 귀계를 썼을 거라고 예상할 수 없었다.
이득이 크면 그만큼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법이다. 민심을 얻는 방법으로는 이만한 것이 없지만 실상이 알려지면 천하 십삼 주 어느 곳에도 발붙일 곳이 없게 된다.
백성들을 선동할 수 있다고 해도 이번 경우처럼 살신성인에 가까운 행동을 보여주어야만 완전한 성공을 기대할 수 있었다. 그 말은 곧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런 위험을 감수해가며 얻을 수 있는 이득을 누리기에는 유표의 나이가 너무 많았다.
유표의 나이 이미 오십을 넘겼다. 한조에선······ 아니 열국의 시절부터 오십이라는 나이는 장수의 기준점이었다.
상나라 시절에 팽조(彭祖 펑주)라는 사람이 팔백팔십 살을 살았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당시에는 일 년을 60일로 계산하는 계산법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일백하고도 사십여 년을 더 산 셈이니 대단한 장수라 할 것이다. 그러나 평범한 자에게는 오십 수를 채우는 것도 큰 복이다. 범인(凡人)들이 오십 수를 채우는 경우는 정말 흔치 않으니까.
수많은 문인묵객들이 인생을 오십 년이라고들 한다. 육십을 넘기면 지방관이 장수한 노인이 사는 마을에 잔치를 열어주고, 명아주 지팡이를 만들어 준다.
칠십을 넘기면 천자의 이름으로 옥괘(玉? 옥지팡이)를 주며, 팔십을 넘기면 비석까지 세워줄 정도였다.
그런 걸 보면 오십이라는 기준을 넘기면 그 다음부터는 덤이라는 느낌이랄까? 유표는 이미 덤으로 살고 있는 셈이었다. 그런 유표가 더 무슨 욕심이 있어서 이 같은 위험을 감수할까 싶었으리라.
“주공, 소신이 유표의 간계를 간파하지 못했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무슨 수로 유표의 간계를 밝혀낼 수 있단 말입니까?”
순간 원술의 입가에 비릿한 조소가 걸렸다. 지금껏 그를 위해 고심하고 간언한 염상에게 보내는 배신의 미소였다. 그럼에도 염상은 할 말을 계속했다.
“그리고 유표의 간계를 아시면서 어찌 백성들을 해친단 말입니까? 이제 주공께선 백성들을 도륙했다는 악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내 탓을 하는 게요? 탓을 하려면 무능한 자신을 탓해야지 않소?”
“소신의 잘못을 인정합니다.”
말이 통하지 않을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침묵이다. 염상이 입을 꾹 다물어버리자 원술은 혼자 떠드는 셈이 되었다.
“사람구실을 하는데 십 수 년이 걸리든 지금은 내 앞길을 가로막는 멍청한 고깃덩어리들일 뿐이오. 유표의 얄팍한 수법에 속아 넘어간 어리석은 자들을 더 죽이지 않으려면 지금 저들을 죽여 무지한 형주 백성들에게 경계로 삼게 해야 할 것이오.”
원술은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했다. 원술의 말을 듣고 난 염상은 조용히 물러났다. 더 말해봐야 통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침묵을 계속 이어갈 뿐이다. 하지만 속에서는 천불이 났다.
‘용주······ 용주······! 이자의 곁에 있다가는 나도 내 명대로 못 살겠구나.’
염상은 이제야말로 원술의 곁을 떠날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그간 함께 보낸 세월을 생각한다면 말을 하고 떠나야 할 것이다. 하지만 원술이 그냥 보내줄 위인이 아님을 알기에 몰래 모습을 감추기로 한 것이다.
‘어차피 올 때도 말 한 필, 갈 때도 말 한 필. 더 무엇을 욕심내랴.’
염상은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럴수록 포구에서 울려 퍼지는 백성들의 비명소리가 더욱 더 또렷하게 들려 그를 괴롭게 했다.
* * *
원술은 백성들을 도륙내는데 열중했지만 여포는 백성들을 구휼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만청을 수확하려면 시일이 남았고, 구휼미는 바닥을 보이고 있는 상태였다.
“장군, 이제 어쩌시겠습니까?”
“가 선생, 나라고 뾰족한 수가 있겠소? 사냥이라도 다녀올까?”
“사슴 수십 마리를 잡아도 몇이나 되는 백성들이 고깃국물 한 모금을 마실 수 있겠습니까?”
여포는 곳곳에서 전해져 오는 구휼미 요청에 정신이 아득해질 지경이었다. 상황이 어찌나 안 좋은지 곳곳에서 아직 다 자라지도 않은 만청을 뽑아먹으려는 자들로 넘쳐난다는 소식까지 들을 수 있었다.
‘차라리 화극을 들고 나가 적과 싸우는 게 백번 낫지. 당최 못해먹을 짓이로다.’
여포는 전장에서 포위당해도 지금처럼 궁지에 몰렸다는 느낌이 없었을 것이다.
정말이지 굶주림은 아는 사람만 공감할 수 있는 고통이다. 창칼에 맞아 죽는 것이야 한 순간이지만 아사(餓死)는 정말 긴 시간동안 천천히 죽어가는 무서운 죽음이었다.
여포 역시 이를 잘 알기에 어떻게든 해보려 했지만 지금으로선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의 고심이 깊어지던 그 때였다. 상개가 뛰어들어왔다.
“대형, 유주에서 서 군리가 왔답니다.”
“서 공명이가 왔다고?”
여포는 살짝 관심을 보이는가 싶더니 이내 심드렁해졌다. 서황이 오거나 말거나 당장에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어진 상개의 말은 여포로 하여금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나게 만들었다.
“군량을 잔뜩 가지고 온답니다.”
“대추? 얼마나? 아니다. 내 직접 가서 봐야겠다!”
여포는 단숨에 천정관 밖에까지 뛰어나갔다. 그러자 그곳에는 줄잡아 수십여 대에 이르는 수레와 함께 서황의 모습이 보였다.
멀리 여포가 보이자 서황은 그를 향해 대부를 쥐고는 두 손을 모아 들었다.
여포는 서황을 보자 두 가지 상반된 감정이 교차하는 심정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여포도 사람인지라 책망하는 마음이 앞섰다.
‘빨리 오랬더니만!’
사실 어디서건 백성들을 구휼할 식량이 오기를 누구보다도 간절히 바랐던 그였다. 하지만 하동 공략을 위해 서황이 하루라도 빨리 오기를 바란 것 역시 그였다.
“장군, 직접 마중까지 나오시고······.”
서황은 여포와 가까워지자 감개가 무량했다. 그는 수레를 끄는 장정들을 향해 돌아보며 가슴을 쫙 폈다.
“자, 보았느냐? 우리 여 장군께서 나를 이리 아끼신다. 힘깨나 쓴다는 무장은 많지만 군리는 오직 나 하나 뿐이니까. 아하하하!”
역시 서황은 용맹도 용맹이지만 지모를 갖춘 자였다. 서황 정도의 용맹이라면 여포 휘하에 맹장은 많지만 아직도 군리직을 받은 사람은 서황이 유일했다.
서황은 여러 사람 중에 일등 보다는 혼자 뿐일 때 더 큰 가치가 있음을 알기에 아직까지 군리직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여포는 생각 같아선 한 소리 하고 싶었다. 하지만 먼 길을 달려오는 수고를 해준 서황을 보자마자 나무랄 수는 없었다. 수하들도 사람인데 수고로움은 생각하지 않고 호통만 치는 주군을 곱게 보지는 않을 테니까.
하기야 여포는 죽음의 순간에서 시간을 거슬러 돌아왔으니 예전의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있었다. 그러니 나쁜 말을 하고 싶을 때에는 이미 속에서 한 번 걸렀다.
“먼 길 오느라 수고가 많았다. 그런데 이 수레들은 다 무어란 말이냐?”
“대춥니다, 대추! 초 부인이 자초 대인께 도움을 청해 우북평의 대추를 보냈었지요. 대추가 먼저 출발했고, 저는 나중에 장군의 명을 받고 달려오는데 마침 근처에서 만났지 뭡니까.”
초선 얘기가 나오자 여포는 자기도 모르게 움찔했다. 하기야 지은 죄가 있으니 찔리기도 할 터. 하지만 이내 고마운 마음이 더 커졌다.
“아아! 궁할 때 초선이가 한 번 크게 도와주는구나.”
“장군, 한데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소장의 용맹이 필요하십니까? 아니면 지모를 내어드리리까?”
“하동을 정벌할 생각이다. 하동 출신인 서 공명이, 네가 크게 도와줘야겠다.”
“하동이야 손바닥 보듯 훤히 꿰뚫고 있으니 맡겨만 주십시오.”
* * *
여포는 하동평정의 시작을 알리기 위해 천정관에 있는 현사와 맹장들을 모두 대청으로 불러들였다. 본격적인 얘기에 앞서 가후는 여포에게 두 손을 모아 들었다.
“장군, 감축드립니다.”
“가 선생, 대추 덕분에 내 한 숨 돌리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소.”
“옛 영웅이 당대의 영웅을 위해 큰 선물을 남겨주었군요.”
“대추는 초선이가 보내준 것인데 어찌 옛 영웅이라 하오?”
여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가후는 빙그레 미소 지으며 말했다.
“열국의 시절 명성을 날렸던 명장 악의(樂毅)를 아십니까?”
“갑자기 악의의 이름은 왜······? 나도 보고 들은 것이 있는데 설마 악의를 모르겠소? 그리고 공손찬군이 보연왕서를 이용해 비밀문서를 쓰지 않았소? 보연왕서가 악의의 명문이라는 것도 이제는 아오.”
여포는 악의가 열국의 시절에 유명한 무장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전쟁사를 꿰고 있을 정도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다만 악의 하면 ‘보연왕서’ 하나는 확실히 알았다.
“그럼 우북평의 대추나무를 뭐라 부르는지는 아십니까?”
“대추나무를 대추나무라 부르지 뭐라 부른단 말이오?”
“그 대추나무들은 원래 연나라 땅에 있던 것이 아닙니다. 제나라에 있던 것을 악의가 연나라 땅으로 옮겨 심게 했다하여 ‘악의수(樂毅樹)’라고 부르지요.”
“수백 년 전의 악의가 나를 위해 대추나무를 옮겨 심어 놓았다? 뭐, 듣기는 좋은 소리요.”
여포는 가후의 해석이 나름 기분 좋았다.
악의가 무슨 전공을 얼마나 세웠는지는 몰라도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의 무명을 칭송하고 있었다. 그런 자와 비교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큰 영광이었다.
역사는 승자의 것. 여포가 생각할 때 악의는 이미 승자였다. 그리고 자신도 승자로서 그 이름을 역사에 남기고 싶었다.
“서 공명이!”
“예, 장군.”
“하동에는 뭐가 유명하냐?”
“하동 하면 염호지요. 소금호수 빼고 나면 하동에 볼게 뭐 있겠습니까?”
그러자 여포는 너스레를 떨었다.
“나무면 옮겨 심어서 ‘여포수(呂布樹)’라 이름을 붙이려 했는데 소금호수는 옮기질 못하겠구나.”
“하동을 병주령으로 복속시키면 옮기는 것과 뭐가 다르겠습니까?”
“역시 서 공명이······. 배운 놈은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자, 다들 들어라! 하동을 평정하려하니 출정을 준비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