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Follicle Exhibition RAW novel - Chapter 503
502화 경사제일검(京師第一劍)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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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포군은 하동 정벌을 위해 천정관을 나섰다. 이번 출정은 하내 평정 이후 나태해졌던 병사들의 마음에 불을 지폈다.
사실 병사들은 원소와 불가침조약을 맺었다는 소식에 크게 실망했다.
당장이라도 기주로 진격해 하북을 일통할 것으로 여겼으나 원소와 싸우지도 않았다. 나중을 위해 병량을 비축하지 않고 되려 하내 백성들을 구휼하는데 군량을 썼으니 ‘싸움은 없다.’라는 인식이 병사들 사이에 만연했던 것이다.
하지만 하동 정벌을 위해 출정한다는 소식을 듣자 병사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하동은 비옥한 농지가 끝도 없이 펼쳐진 곳이 아니다. 그러나 짠맛이 나는 호수는 하동을 천하에서 가장 부유한 땅으로 만들어 주었다.
하동의 염상들이 재물을 긁어모은다는 소리는 하북 사람이라면 다들 아는 얘기다. 그러니 그곳을 평정할 때 큰 공을 세우기만 한다면 떵떵거리며 살만한 재물을 상으로 받을 수 있을 거라 여겼다.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보는 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다름 아닌 하내의 호족들이었다.
여포는 본래 당예기와 호복기사, 고석 용사들만으로 출정을 계획했었다.
하지만 하내 동쪽을 대표하는 장씨와, 산씨, 서쪽을 대표하는 한씨와 두씨 등이 중심이 되어 호족가의 사병들을 집결시켰다. 그들은 한호를 전면에 내세워 사병들을 출정하겠다 청해왔고, 여포는 이를 받아들였다.
하내병의 수는 물경 일만을 넘겼다. 여러모로 어려운 상황에서 사병들을 모아서 일만이라는 숫자를 만들어냈다는 것은 그야말로 쥐어짜냈다고 보는 편이 옳으리라.
한호는 장인인 장왕과 선두에서 병마를 이끌며 하동으로 향하고 있었다.
“장 대인.”
“장인어른이라고 하게. 뭐 우리 사이에 딱딱한 호칭이 필요한가? 그래, 할 말이 무엇인가?”
“너무 무리하신 것 아닙니까? 병량도 부족한데 사병들을 몽땅 모아 출정하면······.”
한호는 사병을 보낸 하내의 호족들 모두가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장왕과 산본은 곳간을 열어 구휼미를 푼 탓에 수중에 양곡이 거의 없었다.
살림살이를 빤히 알기 때문에 이번 출정이 얼마나 무리한 것인지를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게다가 하동으로 출정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상대는 하동 호족들의 사병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십중팔구는 백파적과 싸울 생각을 해야만 했다. 조정에서도 어찌 하지 못했던 백파적을 말이다.
“이번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절호의 기회일세. 어떻게든 자네가 큰 공을 세워주어야겠네. 그래야 장 씨도 살고 산 씨도 사네.”
“백파적과 싸우게 되면 목숨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기병이 주축인 여 장군의 군세와는 다르잖습니까?”
“애초에 패배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있네. 후퇴? 그럴 바에는 하동에 뼈를 묻어야지. 그래야 여 장군이 내 가문을 다시 한 번 봐줄 테니까.”
한호는 장왕의 말을 듣고 그가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사꾼보다 더 손익에 밝고, 그 어떤 장수보다 용감하며, 그 어떤 모사보다 수 싸움에 밝아 보였기 때문이다.
“가문을 위해 목숨까지 아끼지 않고 던지시겠단 말입니까?”
“왜? 그게 나쁜가?”
그러자 한호는 못 믿겠다는 듯 장왕을 바라보았다. 자신을 향한 의심의 눈초리가 느껴지자 장왕은 속내를 다시 한 번 털어놓았다.
“하동의 이권이 탐나지 않다면 이는 거짓말이겠지. 그러나 그보다는 여포 장군의 휘하에 들었으니 그의 눈에 띄는 전공을 쌓고자 하는 것이네. 기세가 좋으면 자네가 큰 전공을 쌓고, 패색이 짙으면 내가 분전하다 저 세상 가는 거고······.”
“여 장군께서는 목숨을 중히 여기라 하셨습니다. 다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싸우는 것이라 하시면서요. 그런데 장인께선 여 장군의 말씀과 반대로 가시니 좋다고는 못하겠습니다.”
그러자 장왕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이보게, 사위. 자네도 알겠지만 집안에 가산이 어느 정도 있으면 그 위로는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네. 평고의 이, 장왕이 하루에 세끼 끼니 찾아 먹으면 회의 산 대인도 세 끼 먹네. 천자도 다섯 끼 여섯 끼 먹지 않을 걸세.”
선문답 같은 말이지만 한호는 장왕이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한호, 그 역시도 하내의 유력한 호족 출신이 아닌가. 그리고 또 한 가지. 그는 무장이기도 했다.
“무슨 말씀을 하시고 싶은지 알겠습니다. 먹고 사는 것만 해결되면 그 다음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다 이 말씀이 아닙니까?”
“역시 우리 사위로다. 훌륭하네. 우리 같이 경학을 익힌 자에게 남은 일이 무엇이겠는가? 결국은 ‘양명(揚名)’ 아닌가.”
“여 장군에게 건곤일척의 도박을 건 셈이로군요?”
이에 장왕은 고개를 설레설레 가로저었다.
“이거야 말로 질 수가 없는 싸움이네. 자네가 하동에서 전공을 쌓아도 내가 이기는 것이고, 패색이 짙으면 내가 전사해버리면 되니 그리되어도 내가 이기는 것이지.”
“이번 출정의 목적은 역시 여 장군의 환심을 사기 위함임을 알겠습니다.”
“환심이라니······ 섭섭하네. 자네가 중용되었으면 좋겠다 이거지. 자네가 하내를 대표하는 무장이니 자네가 중용되는 것은 하내 호족들의 위상이 높아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하하!”
장왕은 정말로 여차하면 하동에 뼈를 묻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한호의 말대로 그는 여포에게 전부를 걸었다고 해도 무방했다.
장왕은 제법 배포가 큰 사람이었던지, 아니면 여포에게 크게 교화되었던 것인지 통 크게 건곤일척의 승부를 걸었다. 그는 여포가 반드시 성공한다고 믿는 듯했다.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여포가 천하의 주인이 될 것이라 믿으며 가문의 미래를 위해 전부를 투자하기로 한 것이다. 한호라 할지라도 이런 승부는 걸지 못하리라.
“음······!”
“사위, 내가 너무 부담을 주었나?”
“목숨까지 거시겠다는데 부담이 안 되겠습니까? 보군으로 전공을 쌓자면 골치를 좀 썩어야겠습니다.”
“군사 선생을 위해서 작은 성의를 보여줄 생각이네. 그러니 사위는 아무 걱정 말게. 그까짓 재물, 내 어찌 아끼겠나? 죽을 때 싸짊어지고 갈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양명을 위해 아끼지 않고 내놓을 걸세.”
여포 때문에 곳간을 열었던 일이 장왕에게는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었던 모양이다.
하기야 지금은 난세가 아닌가. 힘은 있는데 명분이 없는 자는 도적이 되기 십상이고, 힘없는 자가 귀한 물건을 지니고 있으면 이를 지키지 못하고 비명횡사하기 딱 좋은 시절이다.
한호는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었다.
“가 군사는 재물에 움직일 사람이 아닙니다.”
“에이! 돈 싫다는 사람 본 적이 없네.”
“재물이 싫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좋습니다. 얼마나 준비하셨습니까?”
“오백만 전.”
그러자 한호의 입가에 비릿한 조소가 걸렸다. 장왕은 이를 보고 흉중이 뜨끔했다.
“왜? 적나?”
“적지요.”
“작은 성의라 하지 않았나.”
“그래도 적습니다. 한 십억 전 정도 되면 아마 눈길은 한 번 주실 겁니다.”
“시······ 십억 전? 삼독좌 자리를 사는데 덤탱이를 써도 일억 전이면 되는데 십억? 사위, 농이 너무 과하네.”
장왕은 조조의 아비 조숭이 대사농 자리를 사며 일억 전을 썼던 일을 비꼬아 말했다.
삼독좌는 사예교위, 어사중승, 상서령을 묶어 가리키는 말로 이들의 지위는 삼공의 아래, 구경의 위에 해당했다. 그들 세 사람에게는 어전에서 감히 천자를 앞두고도 앉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었기 때문에 삼독좌라 불린다.
하지만 조조의 아비 조숭은 구경 중 한 자리인 대사농에 올랐음에도 어사중승을 제치고 자리를 차지했다. 그래서 어사중승을 빼고 대사농을 삼독좌로 치기도 했다.
한호는 코웃음을 쳤다.
“흐흥! 하내의 호족인 장인도 재물을 무겁게 보지 않으시는데 하물며 천하를 노리는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가 선생이 아닙니까? 앞으로는 결단코 그런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차라리 군자금을 내놓는 것은 좋겠습니다.”
“그리 함세. 내가 아주 큰 실수를 할 뻔 했구먼.”
* * *
세상의 가치는 시대가 흐르며 변해왔다. 생존이 최고의 가치가 되는 세상에선 자신을 지킬 힘과 목숨을 이어갈 식량이 최고의 재화였다.
도(道)가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진리가 최고의 가치이고, 재물이 지배하는 세상에선 돈이 최고며, 권력이 재력을 억누르는 세도가의 세상이 되면 직위와 명예가 세상의 기준이 된다.
하지만 지금은 난세. 누군가는 도를 좇고, 누군가는 권력을 탐하며, 또 누군가는 재물을 최고의 가치로 여겨 절대적인 가치가 없는 세상이다.
하내의 호족 장왕은 명예를 좇으며 재물 앞에 초연한 사람이 되어버렸지만 반대로 명예를 내던지고 무언가를 갈구하는 전대의 절세 검호가 있었으니······.
홍농과 하동의 경계 어디쯤에 자리한 명산 화산.
오악 중 서악이라 불리는 곳이며 태화산이라고도 하는 명산. 산세의 모습이 마치 꽃과 같다하여 그 이름도 화산(華山)이라 했다.
주나라 때부터 화산은 도가의 명산 중 하나로 지금도 수많은 도관들이 화산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도를 구하는 수많은 방사들이 화산의 많은 동굴들을 집 삼아 수련을 거듭하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두 명의 사내가 화산에 올랐다. 그들은 하동의 호족들에게 구원을 요청받은 백파적의 네 두령 중 이락과 호재였다.
백파적은 원래 황건잔당과 토착 도적패 등 열 개의 세력이 모인 도적연합세력으로 군벌과 다름없는 위세를 펼치던 대단한 도적떼였다.
하지만 여포가 남흉노를 평정하고, 백파적을 대표하던 세력인 곽태까지 토벌해버리는 바람에 세가 많이 줄었다.
백파적은 전성기 때에는 북으로는 태원부터 동으로는 하내, 서로는 우부풍에 이르기까지 위세를 떨쳤었다. 그러나 지금은 열 명의 두령 중 고작 양봉, 한섬, 이락, 호재 이렇게 네 사람 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백파적의 네 주인 중 두 사람이 수고로움을 무릅쓰고 화산에 오른 까닭은 과연 무엇인가.
“형님, 이 험한 산길을 타고 꼭 올라가야겠소?”
“호재, 이게 뭐가 험하냐? 조금만 더 가면 찰이애(擦耳崖)가 나온다.”
“아이쿠!”
한숨이 절로 나오는 까닭은 찰이애가 험로 중의 험로이기 때문이다. 입촉하는 세 개의 잔도보다도 이곳 화산의 찰이애가 더욱 험하다. 오죽하면 그 이름이 귀를 절벽에 바짝 대고 가야 한다하여 찰이애겠는가.
“형님, 대체 그자가 뭐라고 우리가 이런 생고생을 해야 한단 말이오?”
“하동에서 막대한 재물을 보내와 우리에게 구원을 청해온 일을 잊었더냐?”
“그거랑 이거랑 무슨 상관이오? 그리고 막말로 수하들을 보낼 수도 있는 거 아니오? 왜 굳이 우리가 직접 화산에 올라야 할 필요가 있소?”
“그를 초빙하는 일을 아무에게나 맡길 수야 있느냐?”
하지만 호재는 입술을 삐죽거렸다.
“양봉 형이랑 한섬 형은 왜 직접 안 나서고······.”
“나이 먹고 엉덩이가 무거워졌는데 움직이려 들지 않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
“우리는 아직 이팔청춘인가?”
“적당히 투덜대고 빨리 가자.”
이락과 호재는 걸음을 재촉했다. 몇 개의 절애를 지난 후에야 만난 작은 도관. 하지만 특별한 것은 없어보였다. 화산에 이런 도관은 수십 개는 될 테니까.
이락은 앞장서서 도관의 문 앞에 섰다. 살짝 손만 댔을 뿐인데 문이 스르르 열리며 길을 내주는 게 아닌가.
열린 문틈 사이로 계절에 맞지 않는 싸늘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이에 뒤따르던 호재는 자기도 모르게 패검에 손을 가져가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락과 호재가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검을 지닌 방사들이 그들을 맞이했다. 도를 구하는 방사라고 보기에는 다들 살기가 너무 짙었다.
더욱 이상한 것은 이락과 호재를 본 방사들의 반응이었다. 보통은 외인의 출입을 금지한다며 정중히 축객령을 내리든 아니면 오랜만에 본 외인들을 반기든 할 터. 그런데 이들은 마치 이락과 호재를 원수 보듯 노려보고 있었다.
수십 개의 시선이 이락과 호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듯 따라다녔다.
“형님, 아무래도 빨리 나가야 할 것 같소. 여기 이대로 있다가는 살인을 면키 어려울 것 같소.”
범인(凡人)이라면 방사들의 흉흉한 기세에 눌렸을 것이다. 그러나 호재는 오히려 자신이 사람을 죽일까 걱정을 하고 있었다.
하기야 호재는 백파적의 네 두령 중 한 자리를 차지할 만큼 대단한 무예와 용맹을 지닌 자였다. 그러니 흉흉한 기세를 흘리는 방사들을 보고서 기가 죽지 않은 것이다.
다만 그가 아무리 도적의 수괴라고 해도 도관을 피로 물들이는 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이락도 점잖아 보이기는 하지만 한번 눈이 뒤집히면 시신도 온전히 남겨주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락은 방사들의 반응에 기분이 나빠져서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듯 말했다.
“이곳에 그가 없다면 방사들에게 분풀이를 해야지. 한 놈도 살려두지 않으면 누가 우리의 소행이라 생각하겠느냐?”
경내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질 때쯤 방사 하나가 다가와 합장하며 말했다.
“누구를 찾아오셨소?”
용건을 묻자 이락이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경사제일검이 이곳에 있다해서 왔소. 이곳에서 미리 만날 약속까지 잡았는데······.”
이락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삼백(백발, 백미, 백염)의 노인 하나가 나타났다.
“경사제일검이라······ 그 이름은 실로 오랜만이로구먼.”
그러자 호재가 노인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반신반의하는 말투로 말했다.
“노인장이 그 유명한 경사제일검 왕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