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Follicle Exhibition RAW novel - Chapter 593
592화 세 개의 지낭(智囊)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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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봉의 말 한 마디는 제법 큰 파급력을 지니고 있었다.
곽가와 순채는 이 말 한 마디에 마음을 놓았다. 하지만 순욱은 그렇지가 않았다. 그는 여포에 대해 깊이 알지 못했으니까.
‘설마 여포가 유비처럼 겉과 속이 달라도 너무 다른 사람은 아니겠지? 아니야······. 아닐 거야.’
순욱은 여포가 유비와는 다르기를 간절히 바랐다.
유비는 병마는 말할 것도 없고, 결의형제들마저 사지로 내몬 자다. 게다가 처자식도 얼마나 버렸는지 알 도리가 없는 자가 아닌가.
여포가 자신을 제거하기 위해 삼천 병사를 버린다고 한다면 유비와 다를 것이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순욱의 걱정은 그리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내가 뭐라고······.’
장비 만큼이나 순욱의 자존감도 바닥을 치고 있었다.
본래의 역사에선 조조를 도와 그로 하여금 천하를 취하게 했으며, 위나라를 삼국 중 최강대국으로 올린 사람이 바로 순욱이다.
하지만 여포로 인해 바뀌어버린 세상에서 순욱은 그저 패배자, 낙오자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순 씨 가문의 자손에다가 천하를 뒤집을 지모를 가지고 있다는 세간의 평가는 이미 무색해져버린 지 오래. 급기야 스스로를 비하하는 지경에 처해버린 것이다.
오히려 이것이 그의 걱정을 일소시킬 줄이야.
“아, 언제까지 섰소? 산중에서 밤이슬 맞기 싫으면 어서 출발해야 하오.”
미봉이 재차 재촉하자 그제야 순욱이 움직였다. 그는 곽가와 순채를 향해 슬쩍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말머리를 돌렸다.
“갑시다.”
순욱이 준비가 되었다는 듯 말하자 미봉은 대답 대신 타고 있던 말을 재촉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흙먼지를 자욱하게 일으키며 질주했다.
뿌연 흙먼지 속으로 흐려지는 순욱의 뒷모습을 보며 순채가 말했다.
“상공, 문약 오라버니는 괜찮으시겠지요?”
“별일이야 있겠소, 부인? 너무 걱정 마시오.”
“싸움터로 가는 길이니 걱정이 안 될 수야 있겠습니까?”
“죽고 사는 것은 오직 하늘에 달린 일이오. 나와 부인이 그 위험 속에서도 살아남았으니 순 형도 그리 되길 바라는 수밖에······. 부인, 이럴 게 아니라 우리 밖에서도······.”
곽가의 게슴츠레한 눈빛이 순채를 덮쳤다.
순채도 그리 싫지는 않은 모양인지 홍조를 붉혔다. 그들은 현내로 곧장 돌아가지 않고 둘만의 시간을 보내려 한적한 곳을 찾아 나섰다.
* * *
해현 현령부 대청.
여포는 순욱까지 동관으로 보냈음에도 여전히 뭔가 못 마땅한 듯한 얼굴이었다. 그러자 가후가 물었다.
“심기가 불편하신 듯한데 무슨 일인지 소신이 알 수 있겠습니까?”
“장비와 순욱을 동관으로 보낸 것은 그들의 실력을 시험해본다는 명분이라도 있소. 하지만 그들과 함께 동관을 지킬 삼천 군사가 걱정이오. 아무래도 동관에 병력을 더 보내야겠소.”
여포에게 있어 마음에 걸리는 것은 지난 날 가후가 한 말 때문이었다.
“혹, 소신이 한 번은 져야 할 것 같다고 한 말이 마음에 걸리셨습니까?”
“사실 장비나 순욱은 대수롭지 않은 자들이오.”
천하의 장비와 순욱이 여포에게는 그저 대수롭지 않은 자로 취급받고 있었다.
하기야 여포 휘하의 맹장과 현사들을 생각한다면 무리도 아니리라.
장비의 용맹은 팔건장에 미치지 못했다.
아무리 예리한 보검도 관리하지 않으면 결국 녹슨 철검이 되고 마는 것은 지당한 이치. 기본적인 기량이 아무리 출중하다고 해도 무예 역시 배움에는 끝이 없는 것이 아닌가.
“장 장군은 팔건장의 말석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하는 정도이나 저평가는 하지 마셔야 합니다. 조 장군도 안량을 꺾지 않았습니까?”
“말 등에서 겨뤄봐야 알 일이오. 조 자룡이가 상산에서 계속 수련을 하지 않는다면 언제고 승패는 다시 뒤집어질지도 모를 일이지.”
“어쨌거나 조 장군이 한 번 싸워 한 번 이긴 것은 사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팔건장이 용맹으로 천하 무장들의 순위를 매겨 놓은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하지요.”
여포군은 인재들에게 있어 가혹한 환경이다.
그야말로 무한 경쟁. 현사들의 사정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무장들은 팔건장에 이름을 올리느냐 못 올리느냐에 따라 그 명성이 달라지는 판국이니까.
게다가 팔건장은 순서대로 순위를 정해 놓은 것과 같으니 다들 죽기 살기로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 수련을 하고 있었다. 조금만 게을러지면 제일 어린 조운이 치고 올라올 기세이기 때문이다.
“쇠는 두드릴수록 강해지는 법. 계속해서 무장과 현사들을 보강할 거요. 장비와 순욱의 경우도 마찬가지. 그들이 흠결이 많을 뿐이지 내 이미 휘하에 들이기로 했소. 어떻게 해서든 죽게 하겠다는 생각은 없다 이 말이오.”
여포는 장비와 순욱을 궁지에 몰아넣는 것을 원했었다. 하지만 휘하에 들이고 나서 보니 그런 마음이 점차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기야 여포가 그들을 어떻게든 제거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면 오명을 쓰더라도 화극을 들었을 터. 그러나 한 번 궁지에 몰아넣는 것만으로 지난 생에서의 원한을 털어내려 하는 것이다.
“소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굳이 동관 수비병력을 보강할 필요는 없습니다.”
“복안이 있는 모양이니 그럼 더는 걱정하지 않겠소. 어차피 군략이야 선생에게 일임했으니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혹시나 해서 하는 얘기지만 동관에 나가있는 삼천 병사를 비롯해서 내 휘하의 누구라도 허투루 목숨을 잃게 하고 싶지는 않소.”
“전장에서는 누구도 생사를 장담할 수 없습니다. 대신 그 이상을 두고 군략을 세우지는 않을 것이니 걱정 마십시오.”
* * *
순욱은 미봉을 향도관으로 삼아 동관 인근에까지 이르렀다.
길목마다 역참이 있어 말을 바꿔 탔다. 또 도적의 무리가 출몰할 걱정이 없었다. 그러니 예상보다 훨씬 빨리 이곳까지 이를 수 있었던 것이다.
나무 그늘 아래 말을 묶어두고 잠시 숨을 돌리는 시간이 왔다.
미봉은 순욱에게 다가가 품속에서 백색, 흑색, 적색으로 된 세 개의 주머니를 꺼내 내밀었다.
“이게 뭐요?”
“군사 선생께서 전하는 것이외다. 지낭(智囊)이라고 하면 알거라 하시며 먼저 백색 주머니의 글을 읽어보라는 전언을 남기셨소.”
순욱은 미봉의 손에 들린 세 개의 주머니 중 백색 주머니를 받아 들어서는 매듭을 풀어보았다. 그러자 그 안에는 편죽 하나가 나왔다.
편죽에는 간단한 글이 쓰여 있었다.
– 개전 후 닷새가 지나면 적색 주머니를 열어보시오.
밑도 끝도 없는 얘기였다. 하지만 순욱은 나름의 추리를 해보았다.
‘닷새를 버티라는 얘기가 아닌가. 결국 닷새는 내 능력으로 어찌 해야 한다는 소린데······.’
순욱은 저 멀리 보이는 동관의 위용에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관서군의 대군이 들이닥칠 거라는 얘기는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삼천 군사로 어찌 닷새를 버틸지 걱정이 안 될 수는 없었으리라.
“먼 길을 함께 해줘서 고맙소이다. 내 살아서 돌아간다면 독한 술 한 동이 같이 비웁시다.”
“선생은 너무 앓는 소리 하지 마시오. 떠나올 때에도 말을 했지만 우리 대형은 그리 야박한 사람이 아니오. 낭떠러지에 밀어 넣을 사람이 아니니 술을 사겠다는 약속이나 잊지 마시오. 그럼 조만간에 다시 봅시다.”
미봉이 두 손을 모아 들자 순욱도 작별 인사를 대신해 두 손을 모아 들었다.
“이제 또 온 길을 돌아가는 게요?”
“잠깐 보고 갈 곳이 있어서 들렀다가 갈 거요. 군사 선생도 너무하시지. 하나 뿐인 호위를 길바닥에서 시간 다 보내게 하시는 구려.”
미봉은 생각 없이 한 말이었지만 순욱은 마음을 놓을 수 있는 단서를 그 속에서 찾았다.
‘가 선생이 하나 뿐인 호위를 향도관으로 보낸 것이 마음에 걸렸는데······. 역시 뭔가가 있긴 있는 모양이로구나.’
* * *
동관.
순욱이 홀로 동관의 문 앞으로 말을 재촉하고 있을 때쯤이었다. 척후병으로 보이는 자들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와 그를 스쳐 지나쳤다.
순욱은 흙먼지를 뒤집어 쓴 채 문 앞에 섰다. 그러자 성곽 위에서 병사 하나가 소리쳤다.
“누구냐?”
“하동에서 오는 길이오. 동관의 진장 장 익덕 장군께 고하시오. 순욱 문약이 왔다고 말이오.”
장비는 정신없이 군사들을 부리고 있었다.
“화살을 넉넉히 쌓아두어라! 거기 맹화유는 조심해서 다루고! 뚜껑을 열어놓으면 필요할 때 불이 잘 안 붙는단 말이다!”
장비는 전투에 대비해 화살과 돌을 성곽 위에 충분히 준비하게 했다. 그의 지시를 받으며 삼천 병력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척후가 왜 이리 안 오는 게야? 닦달을 안 하면 당최 빨리빨리 움직이질 않는단 말이지.’
척후가 올 때가 되었지만 정해진 시간보다 늦어진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장비는 마음이 급했다. 삼천 병력으로 어떻게든 동관을 지켜 보이려고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장군, 척후가 돌아왔습니다!”
척후가 돌아왔다는 보고에 장비는 마치 받기로 한 물건이라도 온 것마냥 신나게 달려갔다.
성곽 위에서 문을 지키고 있던 번병 하나가 밖을 향해 소리치자 장비는 고개를 기울였다.
‘여기 올 사람이 또 있나?’
이내 장비는 성곽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러자 장비의 입이 귀에 걸렸다.
“어서 문을 열어라! 동관의 군사 선생께서 오셨느니라!”
문이 살짝 열리고 순욱이 안으로 들어서자 장비가 기다렸다는 듯 그를 반겼다.
“선생, 어서 오시오. 소생이 걱정이 되어 왔나보오?”
“걱정은 무슨······. 어련히 알아서 잘 할 텐데······.”
태산을 떠나 하동까지 함께 오며 두 사람은 정이 많이 든 모양이었다. 그리고 아마도 서로를 의지하고 있었으리라.
“알아서 잘하고 있었으면 소생이 이렇게 맨발로 달려왔겠소?”
“신발도 신고 있구먼. 그래, 상황이 어떻소?”
“안 그래도 척후가 방금 돌아온 참이오. 같이 가서 얘기를 들어봅시다.”
장비는 순욱의 손을 덥석 붙잡고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척후병들에게로 갔다.
거리라고 해봐야 고작 수십 보. 성곽 위에서 뭐가 굴러 떨어질지 알 수 없어 척후병들은 제법 안쪽으로 들어와 있었다.
“척후는 고하라!”
“예, 장군. 화음(貨陰)까지 보고 왔으나 특이점은 없습니다.”
척후의 보고는 다행스러운 것이었다. 동관을 치자면 동관 서쪽에서는 화음이 군영을 세우기에 가장 가까운 곳이었다.
화음까지 오지 않았다는 것은 관서군이 아직 동관을 치지 않을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왜 아직까지 관서군이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가가 수상했다.
* * *
풍익 하규(下?) 현.
동관을 공격하는 임무를 맡은 마 씨군은 아직 공격을 허락받지 못한 채 이곳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 씨군 총사 마등은 중천에서 관중십걸이 회합을 가질 때 병력 2만 정도를 데리고 있었다.
병마 2만이라면 그것만으로 동관을 칠 수 있는 수다. 동관의 수비병력은 삼천에 불과하니까.
문제는 공격 명령도 떨어지지 않았고, 동관 수비병력이 얼마나 되는지도 모른다는 점이었다.
“아, 언제까지 기다리란 거야!”
다리가 불편하다는 핑계로 아비 앞에서도 다리를 벌리고 앉은 마초가 불만을 토해냈다. 그러자 마 씨군 군사 부간 언재가 그에게 주의를 주었다.
“맹기, 우리끼리 있는 자리가 아니다.”
마 씨군 총사이자 마초의 아비인 마등이 있는 자리이니 언행을 조심하라 주의를 주는 것이다. 하지만 마등은 손을 내저었다.
“냅둬라. 나도 슬슬 지루해진 참이다.”
마등이 편을 들어주자 마초는 기세가 등등해졌다.
“아버지, 소자에게 병마 일만만 내주십시오.”
“일만 병마로 무엇을 하려고?”
“열흘 안에 동관에 마 씨 깃발을 꽂아 보이겠습니다.”
“제장들은 우리 큰놈을 좀 본 받아라. 젊은 놈들이 패기가 없어, 패기가!”
마등의 아들 자랑에 제동을 건 사람은 군사 부간이었다.
“아직 주공의 명이 오지 않았는데 어찌 군사를 함부로 움직일 수 있겠습니까?”
“우리 큰놈이 나서겠다하지 않느냐? 자식이 대업을 이뤄보겠다는데 아비가 되어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군사는 어서 군략을 내어보라.”
마등은 부간에게 마초가 출병할 수 있는 구실을 만들어보라는 명을 내렸다. 그러자 마초는 부간의 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곧장 아비에게 졸랐다.
“언재에게는 물어볼 필요도 없습니다. 간단합니다. 소자에게 병마 일만을 내어주시고, 이를 문제 삼으면 전초부대라 하십시오.”
“다들 보았느냐? 우리 큰놈이 이리 총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