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Follicle Exhibition RAW novel - Chapter 600
599화 장비, 각성!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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챙! 챙! 차창!
귀청이 떨어져 나갈 것만 같은 쇳소리가 쉴 새 없이 울려 퍼졌다.
그 때마다 불똥이 튀며 밀고 밀리는 접전이 계속 되었다.
두 사람이 합을 주고받는 속도가 어찌나 빠르던지 창격을 뻗을 때마다 잔상이 남을 정도였다.
두 맹장이 서로를 향해 창격을 쳐낼 때마다 흙먼지가 일었다. 합이 거듭될수록 시야를 가리는 흙먼지도 더욱 세를 불려나갔다.
자욱하게 피어오른 흙먼지에 두 사람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지만 합을 주고받는 거친 쇳소리와 기합성은 잦아들지 않았다.
용권풍을 일으키며 두 사람이 흙먼지 속을 뚫고 나왔다. 그 와중에도 서로를 향해 뻗고 쳐내는 창격은 멈추지 않았다.
순식간에 삼십여 합이 지나버렸다.
명색이 일군의 장수라 하면 일당백의 용력은 지니고 있어야 했다.
그 말인 즉, 병사들을 상대로라면 하루 종일이라도 창칼을 휘두르며 싸울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하물며 장비나 마초 같은 맹장이라면 천인지적의 용력은 지니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막상막하의 상대와는 삼십여 합을 겨룬 것만으로도 숨이 차오르고,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힘든 것도 힘든 것이지만 까딱 잘못하면 그 즉시 목이 달아날 테니 잔뜩 긴장했기 때문이리라.
‘손아귀가 얼얼하구나. 힘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자신했건만 무명소졸이 나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신력을 지니고 있다니······.’
마초는 장비의 창격을 받아낼 때마다 내심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비록 그가 수년 전, 염행에게 크게 망신을 당한 적이 있지만 그래도 마 씨군 최강의 장수가 아닌가.
다시 염행과 맞붙어 싸운다면 전날의 일을 설욕할 수 있다 자신하던 그였다.
그런데 장비와 합을 나눠보니 천하에 영걸이 많기는 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장비도 마초와 겨루며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어린놈이 이토록 힘과 실력을 두루 갖추기는 힘든 일인데······.’
기량이란 나이와는 반비례하는 것이 통설이다. 경험이 쌓일수록 기량은 늘어나지만 그 경험이라는 것을 쌓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이도 한참 어린 마초가 자신과 겨루어 좀처럼 밀리지 않으니 이러다 자칫 망신을 당할까 두려웠다.
안량, 문추처럼 중원 전역에 용맹으로 이름을 날리는 맹장에게 패한다면 변명의 여지라도 있을 터. 하지만 마초에게 패한다면 정말로 여포의 얼굴을 볼 면목이 없을 것이다.
승부는 팽팽했다.
힘과 기량이 엇비슷하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둘 다 창을 쓰기는 했어도 창술은 큰 차이를 보였다.
장비의 무기는 사모. 찔렀을 때 그 피해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창날의 모습은 뱀이 움직이듯 휘어 있었다.
그 말인 즉, 장비의 모든 공격은 결국 찌르는 창격 하나를 위한 과정에 불과하다는 얘기였다.
마초 역시 창을 쓰기는 했으나 휘두르는 창격이 주류를 이루었다.
장비의 창술은 단조롭지만 거리를 이용하는 수법이고, 마초의 것은 비록 거리에 이점을 두는 방식은 아니나 마치 도객이 칼을 놀리는 듯 빠르고 강렬했다.
두 사람의 창술은 이렇듯 장단이 극명했으나 어느 쪽도 큰 실수 없이 팽팽한 접전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수십 합이 이어진 그 때까지도 누구하나 좀처럼 승기를 잡지 못했지만 모든 것에는 끝이 있는 법. 결국 오십여 합을 넘긴 시점에 마초에게로 승기가 기울었다.
연이은 마초의 창격에 장비의 창대에서 딱! 하는 요상한 소리가 수차례 터져 나왔다. 겉으로 멀쩡한 듯해도 속으로 곪아버렸다는 얘기다.
방귀가 잦으면 똥을 싼다더니 기어이 장비의 창대가 부러지고 말았다.
창대가 두 개로 나뉘며 장비는 마초의 창대에 어깻죽지를 얻어맞고 말았다. 그 힘이 어찌나 강력하던지 장비는 하마터면 어깨가 박살나는 줄 알았을 정도였다.
그런데 분명 장비가 일격을 먹었건만 도리어 마초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마초는 장비의 창대가 부러지자 염행에게 얻어 터졌던 당시의 기억이 떠올라 겁을 집어 먹은 것이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특정 조건에서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것은 흔한 일이다.
볼 때 마다 몽둥이로 매질을 하면 사람이든 개든 그 몽둥이만 보면 움찔움찔 놀라는 것과 궤를 같이하는 얘기다.
지금의 마초가 딱 그랬다.
수년 전, 염행과 겨루던 그 때도 마초는 염행의 모를 부러뜨렸다. 애병을 부러뜨린 것에 분기탱천한 염행이 마초를 때려잡았던 것이다.
지금도 장비가 부러진 사모를 들고 있는 모습에서 염행의 모습이 겹쳐져 보였다.
온 몸이 욱신거린다.
마초는 염행의 주먹과 발이 닿았던 뼈 마디마디가 쑤셔서 견딜 수가 없었다. 분명 수년 전의 부상이 아직 낫지 않았을 리 없건만······.
* * *
“으으으!”
마초는 괴이한 신음성을 흘리다가 장비의 모습에 염행의 모습이 포개어 보이자 더는 참지 못하고 그만 줄행랑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장비는 마초의 이상행동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 새끼가 실성을 했나?’
장비 입장에서는 이런 식의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잘 싸우다가 그것도 승기를 잡은 이 시점에서 마초가 이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것은 결코 정상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장비는 마초의 속사정을 알지 못했다.
그는 마초가 염행과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커녕 마초의 이름도 오늘 처음 아는 처지가 아닌가. 그러니 마초와 염행 사이의 일을 알 길이 없었다.
지금 마초가 보이는 행동은 관서 무장들의 독특한 습속 정도로 생각하기로 했다.
‘무기가 부서졌으니 새로 가져와 맞붙어 보자는 건가?’
장비는 사인 출신이라 그런지 싸움에도 예(禮)가 있다고 믿었다.
정정당당한 대결을 통해 무의 우위를 가려보는 일이니 적장이 예를 안다면 부서진 병장기를 바꿔 들 기회를 주는 거라 여긴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자존심이 상했다. 애병이 꺾인 것은 무장으로서의 자존심이 꺾인 것과 같았다.
그래도 명색이 천하제일의 도검장 진대가 만든 사모가 아닌가. 비록 나무로 만든 창대에 쇠붙이를 붙인 것이기는 했으되 이렇게 쉽게 부러질 물건은 아니었다.
장비는 씩씩거리며 동관으로 돌아왔다. 그는 부러진 사모를 바닥에 패대기쳤다.
“여봐라! 쓸 만한 무기를 찾아 가져오너라!”
장비가 닦달을 하자 병사들이 병장기를 몇 개 가지고 나왔다. 검, 도, 부, 모, 과 등등. 동관에 있는 병장기들을 죄다 하나씩 들고 나온 듯했다.
하지만 하나같이 장비의 눈에 차는 것이 없었다. 하기야 무장들이 쓰는 무기가 아니다. 병사들이 보기에 새 것이고, 번듯하게 보일 뿐 무장에게는 너무도 가볍고 약한 것에 불과했다.
“에잇!”
장비는 휘두르는 맛도 느껴지지 않는 가벼운 검을 패대기치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 보였다.
“다른 건 더 없느냐?”
“장군, 무기고에서 제일 좋은 것들로만 가져온 겁니다.”
무기를 가져왔던 병사들 중 하나가 장비에게 변명을 했다. 그러자 장비는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변명을 늘어놓는 수하에게 주먹질을 하려던 것일까? 하지만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금세 움켜쥔 주먹을 펴버렸으니까.
‘그놈이랑 같은 짓을 할 수는 없지. 나도 이제 떳떳하게 한 자리를 하고 있는 몸이다. 의리 없는 그런 놈을 닮지 말고 여 장군을 닮아야 한다!’
예전의 장비였다면 결코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 터였다. 출신도 한미한 여포를 동경의 대상으로 삼을 그가 아니다. 그는 사인 가문 출신으로 몰락한 가문의 부흥을 위해 세력가의 휘하에 들려 했었다.
원래는 공손찬의 휘하에 들려고 했는데 여의치 않아 공손찬의 결의형제인 유비의 도움을 받으려 했었다.
유주를 호령하는 세력가도, 황실의 종친도 장비에게 공명을 안겨주지는 못했다. 공명은커녕 일신에 괴로움만을 주었다.
하지만 여포는 바닥까지 떨어진 자신을 받아주었을 뿐만 아니라 비록 속관이기는 하나 정식 벼슬자리까지 주었다. 은혜로 따지자면 전에 없던 큰 은혜를 입은 것이다.
“수고했다. 가보거라.”
병사는 장비에게 얻어터질 위기를 넘긴 것이지만 이를 알지 못했다. 최소한 여포군에서는 이런 일로 매질을 당할 일이 없었으니까.
장비는 누군가의 시선을 느끼고 그쪽으로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관우의 장남, 풍평이 자신을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 * *
‘운······ 장······ 형님?’
장비는 눈을 비볐다. 풍평의 모습 위로 관우의 모습이 겹쳐보였기 때문이다. 풍평이 관우의 언월도를 장비에게 내밀었다.
“동관에 이 만한 무기는 더 없습니다. 숙부님, 아버지의 언월도를 쓰십시오.”
풍평의 말은 장비에게 닿지 못했다. 장비의 눈과 귀는 환상을 보고 듣고 있었다.
– 익덕, 받아라!
관우의 목소리가 장비의 귓가에 맴돌았다.
“이, 장 익덕이는 사모에 능하지 언월도는 잘 다루지 못하오.”
“예? 숙부님, 대체 무슨······.”
풍평은 장비의 말투가 마치 딴 사람에게 말하는 것만 같아 의아해했다. 하지만 여전히 풍평의 반응 따위는 장비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 내가 월도와 대도를 다루는 모습을 가장 많이 본 사람이 누구더냐? 바로 익덕, 네가 아니더냐?
다시 한 번 환청이 장비의 귓구멍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의 눈앞으로 관우가 월도술을 펼치는 모습이 주마등처럼 펼쳐졌다.
– 익덕, 할 수 있겠느냐?
장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형님의 도법은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소. 하나 월도는 이제 형님의 장남, 평이가 써야 하오.”
– 풍 씨 자손들에게는 대도를 다루는 수법을 알려주면 될 일. 내 월도가 의제인 네 손에서 다시 빛을 발할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일 터.
“형님, 정녕 내가 월도를 들어도 되겠소?”
장비가 묻자 관우의 환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희미해졌다.
그는 굵은 눈물을 쏟으며 풍평의 손에 들린 언월도를 넘겨받았다.
착 감긴다고나 할까?
예전에도 몇 번인가 관우의 언월도를 만져본 적이 있지만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마치 오래 전부터 자신의 것처럼 익숙하게 여겨졌다.
후웅!
장비는 몇 걸음 걸어 나가 월도를 휘둘렀다. 그러자 파공성과 함께 월도가 일으킨 칼바람이 밀려나갔다.
쿵!
장비는 월도의 밑동을 지면에 박아 월도를 세웠다. 그리고는 풍평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때마침 동관 밖에서는 다시 마음의 평정을 되찾은 마초가 와서는 소리쳤다.
“무기를 바꿔 다시 나와라! 마저 싸워 승패를 가려보자꾸나!”
마초의 목소리가 동관의 높은 성벽을 넘어 들어오자 장비의 한쪽 입고리가 호를 그렸다. 그는 전에 없던 자신감을 보이며 풍평에게 말했다.
“평아, 잘 보아라! 네 부친의 도법 중에서 월도를 다루는 수법을 보여줄 것이니라.”
“예, 숙부님.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풍평이 장비의 승전을 기원하며 두 손을 모아 들었다. 그러자 장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말에 올랐다.
장비를 태운 말은 다시금 싸움이 있을 것을 알았던 모양인지 몸이 달아올라 연신 들썩거렸다.
명마 소리를 들을 수는 없을 것이나 싸움을 즐기는 것을 보니 전마(戰馬)로는 부족함이 없는 말이었다.
“너무 재촉 말거라. 입에 거품을 물때까지 나를 태우고 달려야 할 것이니······.”
장비는 말을 달래고는 지면에 곧추 세워진 월도의 창대를 움켜쥐어 뽑아들었다. 아래로 월도를 길게 늘어뜨리고선 말을 재촉했다.
“가자!”
월도의 도면으로 말의 엉덩이를 살짝 후려치자 장비를 태운 말이 용수철처럼 앞으로 튀어나갔다.
이에 보조를 맞춰 동관의 관문을 지키던 병사들이 문을 열어 장비의 출전을 도왔다.
“이놈, 마초야! 장비 익덕이 다시 상대해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