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Follicle Exhibition RAW novel - Chapter 649
648화 허술함의 미학(美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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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추와 양소는 뒤에서 공격하는 위월군과 맞설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렇다고 병력이 많은 관서군을 돌파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택한 상대가 다름 아닌 가규군이다.
그들의 눈에 비친 가규군의 진세는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용맹으로 따져도 위월군에 비할 바가 아니고, 그 수는 관서군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
그러니 양추가 가규군을 돌파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공진의 강점은 진세의 변화무쌍함에 있었다.
중진을 이루는 군세는 작게는 오 열에서 많게는 스무 열 이상 줄었다가 늘어났다 할 수 있으니 순식간에 촉진과 공진을 오가며 진세를 바꾸었다.
그러나 숲 안에서는 숲을 볼 수 없는 법. 여러 군세가 뒤섞인 싸움판이었기에 양추군은 가규군 진세의 위용을 알지 못했다.
가규군은 촉진에서 다시 공진으로 진세를 바꾼 상태였지만 양추의 눈에는 그저 평범한 일자진으로 밖에는 달리 보이지 않았다.
“저놈들이 제일로 허술한 것 같구나.”
“총사, 저들을 뚫고 나가라는 말씀이시군요.”
“그래, 저자들이 제일로 허술하니 반드시 힘을 집중시키면 돌파할 수 있을 것이다. 나중에 흩어진 병마를 다시 모아 안정으로 가자.”
양추는 자신의 근거지인 안정으로 돌아가 후일을 기약하기로 했다.
하지만 올 때는 마음대로나 갈 때는 마음대로 갈 수가 없었다. 가규군이 아무리 오합지졸들로 머릿수를 채운 군세라고는 하나 양추군보다 몇 배나 병력이 많았다.
양추군이 여포군처럼 강군이 아닌 이상 병력의 열세를 뛰어넘을 방책은 없으리라.
양추군의 진군 방향으로 가규는 그들이 자신을 향해 밀려들 것을 예측했다.
‘이놈들! 이, 가규 양도가 그리 우습게 보였더란 말이냐? 내 공진세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온 몸으로 느끼게 해 주마!’
가규는 이빨을 뽀득뽀득 갈아대며 양추군을 상대할 군략을 생각했다.
하지만 공진도 급조해서 만들어진 진세고, 이를 위해 제대로 연습이라는 걸 해본 자들은 방패병들뿐이었다. 궁노병들은 물론이고 보군들도 방패병들을 따라 움직이는 것에 불과했다.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음에도 이런 대단한 진세를 만들고 또 실전에서 쓰고 있는 걸 보면 당연한 얘기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문제는 더하거나 뺌 없이 지금의 실력과 인원만으로 적병의 돌파를 막아야만 한다는 점이었다.
* * *
“우리를 노리고 돌파를 해 온다!”
겁 많은 보군들 중 하나가 양추군의 위세에 눌려 바보 같은 소리를 해댔다.
상대는 고작해야 수백에 불과하건만 수천 군세를 이룬 하동병이 무엇이 두려워 겁을 먹는단 말인가.
하지만 하동병 대부분이 그들만으로 제대로 된 전투를 해 본 경험이 없는 자들이었다. 위월이 이끄는 서하병들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자신들의 힘만으로 싸워야 하니 겁이 난 모양이다.
가규는 이마저도 이용해 임기응변으로 대응했다.
“중군, 백 보 뒤로!”
가규의 명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중군의 보군들이 물러났다. 보군들의 움직임은 가히 정병이라 불릴 만큼 기민했다.
안 그래도 뒷걸음질 치고 싶은데 그런 명령이 떨어졌으니 냉큼 움직일 밖에······.
“전(前)군, 안행진을 펼쳐라!”
가규는 왠지 한 박자 늦게 진세의 변용을 명했다. 그가 명을 내리기 전에 이미 방패병들이 늘어선 모습이 안행진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본 양추는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확신했다.
“양소, 보아라! 적병들이 도망치고 있다! 안행진으로 위장하고 있으나 그 모습조차도 허술하기 짝이 없구나!”
“대단하십니다. 총사께서 적장의 머리 위에 있으니 저들을 돌파하는 것은 이미 성공한 것과 진배없습니다. 여봐라! 나를 따르라! 단숨에 돌파한다!”
가규군의 움직임이 너무 엉성한 나머지 양추군은 조금의 의심 없이 격돌했다. 그러자 가규는 내심 쾌재를 불렀다.
‘되었다! 단번에 적병을 집어 삼켜 우리 하동 사내들이 큰 전공을 쌓을 수 있게 되었구나!’
가규는 낙승을 기대하며 공격 명령을 내렸다.
“활을 쏴라!”
가규의 명이 떨어지자 궁노병들은 방패병들 사이사이에서 활과 경노로 궁격을 가했다. 그들의 활솜씨가 정예 궁사만큼 된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이 같은 상황에서는 큰 위력을 발휘했다.
사실 정확하게 겨누고 말고 할 것도 아니다. 그저 달려오는 적병들을 향해 대충 쏴도 밥값은 한다고 할 것이다.
슈슈슈슉!
“끄아아악!”
양추군 병사들의 비명소리가 화살들이 시위를 떠나며 흩뿌리는 파공성에 뒤따랐다. 수십에 달하는 병사들이 궁격에 희생되었다.
하지만 전장에서 이 정도 피해는 피해랄 것도 없다. 게다가 이 정도로 양추군의 전의가 꺾인 것도 아니다. 그들로서는 어떻게든 가규군을 돌파해야만 전장을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동료들이 고꾸라지는 것은 목숨을 걸고 돌파해야만 하는 자들에게 있어 별반 감흥을 주지는 못하는 것이다.
그 사이, 가규는 백 보나 물러난 보군들을 모아 일자진을 이루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일자진이라고 하기에는 그들이 모인 모양새가 허술했다. 마치 들쑥날쑥한 사진(蛇陣)을 보는 듯했다.
그런데 그것이 오히려 양추군을 낚은 덫이 되고 말았다.
“전(前)군, 촉진세!”
진법에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바로 촉진과 일자진이다.
하지만 이 엉성한 군대는 손발이 맞지 않았다.
두려운 마음 반, 당황스러운 마음 반. 그런 마음들이 가규군 방패병과 궁노병들의 움직임을 묘하게 바꾸어 버렸다.
진세의 변용은 중군을 이루는 보군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안행진을 이루었던 방패병과 궁노병들은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중군의 보군들은 엉성한 일자진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니 졸지에 전열의 병사들은 후열의 병사들에게 막혀 일자진에 합류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일자진도 들쑥날쑥. 의도치 않게 사진을 이룬 게 된 셈이다.
양추군은 용맹스럽게 가규군과 격돌했다. 당연하게도 가규군은 양추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죽기 살기로 달려드는 양추군에 밀려 다시 의도치 않게 진세가 바뀌었다. 일자진의 진세가 끊어지며 중앙의 장졸들이 밀려나는 바람에 다시 안행진을 이룬 것이다.
그러나 가규군 진세의 변용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보군들이 더 밀려나 안행진의 좌우익 간의 거리가 점점 좁아졌다.
다행스럽게도 가규군은 양추군에 비해 병력의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들이 가규군의 진세를 엉겁결에 적들을 품에 안은 꼴로 만들어 버렸다.
‘이런 게 바로 천운이지. 이, 가 양도님에게 천운이 따르는구나!’
가규는 자신의 군세가 양추군을 포위하게 되자 주먹을 움켜쥐고 기쁜 마음을 드러냈다.
“한 놈도 살려 두지 마라!”
가규는 직접 칼을 뽑아 들고 양추군과 맞섰다.
그의 무예는 여포군 내에서는 하찮고 부실한 것이었지만 어찌 되었건 적병 하나둘쯤은 어렵지 않게 베어 낼 수 있었다.
“방패병, 앞으로! 궁사들은 일 마장, 뒤로!”
궁노병들이 전선에서 몸을 빼는 사이 난전은 극에 달해갔다.
양추군 장졸들이 제법 용감하게 싸웠지만 가규군은 병력의 우위를 믿고 포위를 풀지 않았다.
방패병들의 활약이 제법 대단했다. 그들은 싸움에는 큰 재주가 없었지만 어쨌든 방패를 들고 있었기에 적병들의 창칼을 막아 자신과 아군을 지켰다.
양추군 장졸들은 병력의 열세 속에 하나둘씩 쓰러져갔다.
* * *
양추와 양소는 서로 등을 맞댄 채 가규군의 공격을 막으며 마지막 저항을 하고 있었다. 수백에 이르던 그의 장졸들은 오간데가 없고, 겨우 이들 두 사람만 남은 것이다.
“총사! 아무래도 틀린 것 같습니다.”
“모두가 내 잘못이다. 적장이 사진(蛇陣)까지 자유자재로 쓰는 병법의 대가인 줄은 상상도 못했구나.”
“그래도 다행입니다. 마지막을 피할 수 없다면 이런 명장의 손에 최후를 맞이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야 두 말하면 잔소리지. 허술한 자에게 패해 죽는다면 내,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할 것이다.”
아마도 양추는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하리라.
으레 그렇듯, 오합지졸도 이긴 싸움의 끝에서는 세상 어느 군대보다도 강군이 되는 법. 자신들의 몇 분의 일에 불과한 양추군을 상대로 겁을 집어 먹었던 건 까맣게 잊고선 적장의 수급을 얻고자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양추는 병사 하나의 숨통을 끊어 버리며 고래고래 소리질렀다.
“적장은 자신 있으면 나와서 나와 결판을 내보자!”
양추는 가규군의 총사와 일전을 겨뤄 보고자 도발했다.
물론 멀지 않은 곳에 가규를 두고도 그가 적장임을 알아보지 못했다. 아무리 대장기 아래 있다 한들 가규를 보고 총사임을 알아채는 건 어려운 일일 테니까.
‘아아! 이 일을 어쩐다? 적장의 무예가 장난이 아니던데······.’
가규는 양추의 도발에 내심 겁이 났다. 변변찮은 무예로 양추 앞에 나서기가 어디 쉽겠는가.
가규 스스로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쉽사리 앞에 나설 수가 없으리라.
잠깐 고심하던 그는 두려움을 벗어 던졌다.
‘적장의 무예가 대단하다한들 여 장군은 말할 것도 없고, 장군 휘하의 맹장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양추가 관서에서 무명을 날렸던 자임은 틀림없는 사실. 하지만 여포군 장수들의 용맹과 비교하면 빛이 바랬다.
뿐만 아니라 가규에게는 두려움조차 잊게 만들 야심이 있었다. 그에게도 멋지게 적장의 수급을 베어 넘기는 공훈을 세우고 싶은 커다란 야심이 있었다.
“내가 하동병을 이끄는 가규 양도니라!”
가규는 실력도 없으면서 양추 앞에 나섰다. 하지만 양추는 큰맘 먹고 나선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기야 가규처럼 풋내 나는 애송이가 자신을 농락한 병법의 대가와 동일인일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아하하하! 대단한 병법자인 줄 알고 내심 기대를 했는데 천하에 둘도 없는 겁쟁이였구나! 졸개를 내보내지 말고 어서 나타나 나와 겨뤄 보자!”
“내가 총사라 하지 않느냐!”
“어린놈이 간덩이가 부었구나! 어서 너희 총사를 데려 오너라! 이, 양추의 칼이 숨통을 끊어 놓을 것이다!”
가규는 번번이 무시당하자 수하들을 향해 손짓했다. 다시금 하동병들이 양추와 양소의 수급을 얻고자 승냥이 떼처럼 달려들었다.
양추는 신경질적으로 칼을 휘둘러 병사들을 베어 넘기며 소리쳤다.
“이 비겁한 놈! 어딘가에 숨어서 나를 지켜보고 있음을 안다! 사내대장부라면 어서 나와 겨뤄 보자!”
이에 가규는 고개를 설레설레 가로저었다.
“사실을 말해도 듣지 않으니 어찌 할 방도가 없다.”
가규는 질렸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그러자 양추와 양소의 모습은 수많은 하동병들에 가려져 버리고 말았다.
수많은 하동병들을 상대로 양추와 양소는 선전했지만 오래 가지는 못했다. 손발이 어지러워져 이내 그들은 창칼에 베이고 찔리며 최후를 맞이했다.
* * *
중천의 나루터.
여포군이 밀려들자 황보숭은 장희의 손을 잡고 배에 올랐다. 여포군을 피해 목숨을 건져 보고자 병사와 짐꾼들이 배에 오르려 아우성쳤다.
“나도 데려가시오!”
“여포가 온다! 나도 좀 타자!”
서로 뒤엉켜 악다구니를 치는 모습에 황보숭이 호사들에게 명했다.
“저것들을 좀 치워 버려라.”
그러자 적병을 향해 보여야 할 호사의 용맹이 아군과 짐꾼들을 향했다. 황보숭의 호사들은 가히 일당백의 용사들이었기에 하찮은 병졸들과 짐꾼들은 그들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몇 사람이 그들의 칼에 맞고 물에 빠졌다. 그 사이 몇 명의 호사들이 배에 오르는 다리를 붙잡고 힘을 썼다.
다리가 그들의 용력에 단번에 뒤집어졌다. 다리에 올라 있던 자들이 일거에 강물에 떨어지고 말았다.
“출항하라!”
군사 사원의 명이 떨어지자 노잡이들이 노를 젓기 시작했다.
여포가 군세를 몰고 당도했을 때 황보숭을 태운 배는 이미 나루터에서 멀어져가고 있었다.
배의 후미에는 황보숭이 떡 하니 서서는 여포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여포는 화극을 지면에 꽂고는 보요궁을 뽑아 들었다.
두 대의 화살이 시위에 걸렸고, 이내 화살들은 시위를 떠났다.
팅!
황보숭은 귀신같은 검술로 눈깜짝할 사이에 칼을 뽑아 여포가 쏜 화살 중 하나를 갈랐다.
하지만 다른 한 대의 화살이 황보숭의 대장기를 훑고 지나갔다.
화살촉에 대장기가 찢겨져 버리자 황보숭의 눈두덩이가 파르르 떨렸다.
대장기는 총사의 자존심과 같은 것. 더군다나 황보숭은 동한의 삼신장 중 첫 손가락에 꼽히는 자가 아닌가. 대장기가 찢겨진 것은 황보숭의 자존심을 찢어발긴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놈, 여포야! 두고 보자! 언제고 이 빚을 돌려받을 날이 올 것이다!”
그러자 여포도 한 마디 않을 수가 없었다.
“그대의 전공은 이미 하늘에 닿았다. 천수를 누리다 죽으면 자손만대가 부귀영화를 누릴 것이니 더는 욕심을 부리지 말라!”
“네놈이야말로 의기양양할 것 없다! 중천은 내가 버린 것이지 빼앗긴 게 아니다. 네놈은 그저 내가 버린 것을 주워 먹은 거지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