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Follicle Exhibition RAW novel - Chapter 725
724화 적수부회(赤手赴會)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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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본은 고순을 대신해 사전교섭을 위해서 한관의 관문을 열고 나아갔다.
한관 관문이 열리자 마등의 군세는 크게 긴장했다. 지금이야 말로 마 씨군은 불면 날아갈 듯 허술한 존재에 불과했다. 아마도 군마 일천 기만 내보내도 단숨에 돌파당하고 말리라.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의 군세가 수만에 이른다고는 하나 먹지 못해 초근목피로 연명하고 있는 처지였다. 게다가 부상자도 많았다. 똥독에 올라 피가 나도록 긁어대고, 고열에 시달리는 자들도 적지 않았다.
그런 위태로운 처지에 있는 자들을 데리고 무얼 할 수 있으랴.
하나 마등도 영웅의 기개를 지닌 자. 죽을 때 죽더라도 일전을 피하지는 않을 터였다.
하지만 한관의 관문이 열리고 나타난 자는 고작 하나. 그것도 백기를 든 늙은이에 지나지 않았다.
‘무슨 속셈이지?’
거듭 충언으로 만류했다가 황보숭에게 버려진 관서군 군사 사원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했다. 물론 마등 역시 마찬가지. 마등과 사원은 약속이나 한 듯 시선을 마주했다.
“백기를 든 걸 보니 사신인 것 같소이다, 군사.”
“마 장군의 예상이 맞는 듯 합니다. 아마도 항복을 종용하러 온 것이겠지요.”
“한데 어째서 군마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지 모르겠소.”
항복을 종용하려면 위협은 기본이다. 그것이 세상의 상식이 아닌가. 상대에게 전력의 격차를 과시하려 위풍당당한 장졸들을 열병하게 해 시위를 하는 것 말이다.
그런데 그런 것은 없고 늙은이 하나만 내보내니 의아하게 여길 수밖에······.
“아마도 소생의 생각에는 우리를 잘 구슬려 볼 생각인 듯 합니다.”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려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저들은 우리와 더 이상 싸우고 싶어하지 않는 모양이오.”
“우리를 궤멸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그보다는 귀부시키는 것이 더 큰 전공이 되겠지요. 아니면 노식에게 다른 꿍꿍이가 있거나······.”
“다른 꿍꿍이? 무엇을 말하는 건지 모르겠소.”
“노식은 주공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한조의 영웅입니다. 주공처럼 그에게도 야망이 있을 수 있는 법이지요. 이미 주공의 세가 꺾인 이상 누가 그의 적수가 될 수 있겠습니까?”
사원의 예상은 논리적으로는 가능한 얘기였다. 하지만 노식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하고 판단한 것이니만큼 맹점이 있었다. 여포와의 관계나 한조에 대해 품은 노식의 충심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어차피 주공이 우리를 죽으라고 버리고 간 이상 새로운 주인을 찾아야 할 판이오. 이대로 앉아서 굶어 죽을 수는 없지 않겠소?”
마등은 사원이 황보숭의 사위인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런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사원이나 마등이나 황보숭에게 버려진 것은 매한가지니까.
“마 장군의 말씀이 실로 옳습니다. 주공께서 우리를 먼저 버렸으니 의리나 충을 운운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하나 노식의 정확한 의중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어찌해야 한다는 거요?”
“일단은 만나보는 겁니다. 하나 교섭에 적극적으로 응하지는 마십시오. 우리가 먼저 안달을 하면 귀부한다고 해도 좋은 자리는 얻기 어렵습니다.”
* * *
적진에 홀로 온 산본은 겉과는 달리 내심 긴장하고 있었다.
그를 맞이한 마 씨군 장수는 마초. 그의 장대한 체구나 풍기는 기도를 생각하면 겁이 날 수도 있다. 하지만 산본이 긴장하고 있는 것은 마초 때문이 아니었다.
‘어떻게든 본 교섭에 들어가게 해야만 한다. 내가 실패하면 분명 내 사위가 내 다음으로 오게 될 게야.’
사전 교섭의 최대 목적은 역시 본 교섭으로 이어지게 만드는 것이었다. 산본은 하내의 명문 호족이기는 해도 관서와의 접점은 없었다.
하지만 관서 사람들의 특성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들은 풍월이 있었다.
‘관서 사람들은 말보다는 칼이 앞서는 자들이다. 적장을 만나기 전에 내 목이 먼저 달아날 지도 모른다.’
산본은 자신이야 살 만큼 살았으니 언제 죽어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 물론 사람인 이상 죽고 싶지는 않지만 피할 수 없다면 당당히 죽을 기개 정도는 있다는 얘기다.
하나 누울 자리를 보고 누워야 하는 것이니 당당한 장부의 기개를 펼치기보다는 사전 교섭을 무사히 끝낼 생각뿐이었다. 그래야 사위 한호가 나서는 일이 없을 테니까.
“언제까지 이 늙은이를 세워둘 거요? 나이가 들어서 오래 서 있기 힘드오.”
산본이 앓는 소리를 하자 마초의 미간에 주름이 접혔다.
“여봐라! 나무토막이라도 가져와서 사자를 앉게 해드려라!”
마초의 말에 산본이 기분 나빠하는 듯 인상을 쓰며 투덜거렸다.
“관서 사람들이 예를 모르는 구먼. 사자를 이리 세워두는 법이 어디 있단 말인가? 무도한 자들과는 말을 말아야지.”
이에 마초의 표정도 구겨졌다. 그는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살심을 억눌렀다.
“입을 함부로 놀리지 마오. 이곳이 그대에게는 적진임을 잊지 말아야 할 거요.”
“흥! 소생은 살만큼 살았으니 죽고 사는 것은 이미 초탈했소. 그러니 어디 한 번 마음대로 해보시오.”
그러자 마초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우악스럽게 산본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주먹을 말아 쥐고는 당장이라도 산본의 면상에 일권을 꽂아 넣을 기세였다.
하지만 산본 역시 지지 않고 맞섰다.
“관서의 야인들이 그럼 그렇지. 오냐! 죽일 테면 죽여라! 어서 죽이라는대도!”
산본은 마초가 주먹을 쥐고 위협을 하기는 해도 직접적으로 위해를 가하지는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어린놈의 자식이 젊은 혈기만 믿고 날뛰어도 거기까지다.’
산본의 짐작은 맞아 떨어졌다. 마초는 씩씩거리기만 할 뿐 주먹질을 하지는 못했다. 이에 산본은 마초가 마 씨군 총사에게 무언가 언질을 들었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이내 이 소란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고 말았다. 마 씨군 총사 마등이 관서군 군사 사원과 함께 나타났다. 그러자 마초는 황급히 산본의 멱살을 놓고는 물러났다.
마등은 상황을 대충 눈치 채고는 산본에게 두 손을 모아들고 사과했다.
“내 큰 놈이 무례를 범했소. 사과하리다. 이 몸은 마 씨군의 총사인 마등이라 하오.”
“관서군 군사 사원이라 하외다.”
이에 산본도 두 손을 모아들었다.
“소생은 하내 산 부의 주인인 산본이라 하오. 중앙군 총사이신 노식 자간 장군의 뜻을 받들어 투항을 권하러 왔소이다.”
산본은 간단한 인사와 함께 자신이 온 까닭을 밝혔다. 그러자 사원이 허둥지둥 그를 안으로 권했다.
“여기서 할 얘기는 아닌 것 같소이다. 귀빈을 밖에 오래 세워 두었소. 자자, 안으로 드십시다.”
사원이 산본을 군막으로 안내하려는 까닭이야 뻔했다. 산본이 투항을 권하러 왔다는 얘기를 병사들이 들어버렸기 때문이다.
이미 이곳의 장졸들은 절망에 빠져 있었다. 먹을 것도 없고, 말은 안해도 자신들이 황보숭에게 버려졌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한관에서 투항을 권하러 사람이 왔으니 마음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얘기리라.
“그럽시다.”
* * *
산본은 마등과 사원을 따라 군막으로 향하며 내심 쾌재를 불렀다.
‘한 번 찔러 보았으나 내게 위협을 가하지 않는 걸 보면 이들도 투항을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로다. 이거 어쩌면 일이 쉽게 풀릴 지도 모르겠구나.’
늙은 생강이 맵다 했던가. 산본도 나이를 허투루 먹은 인사는 아닌 모양이다. 그는 일부러 병사들이 듣도록 투항 얘기를 입에 담았다.
이는 사실 목숨을 건 도박이었다.
관서군이 투항의사가 있는지 없는지를 타진해보려면 이 방법이 가장 빠르고 확실할 터. 만약 마음이 없다면 산본의 턱 아래 칼이 겨누어질 것이나 있다면 지금처럼 환대를 받을 터였다.
“산 대인, 우선 차부터 한 잔 하십시다.”
사원은 아끼던 차를 당연하게 내놓았다. 그리고는 주전부리가 있을 리 없음에도 천연덕스레 물었다.
“식사는 하셨소이까? 아니면 아랫것들을 시켜 시장기를 면할 것들을 좀 가져오라 이르겠소.”
산본 역시 알 것을 다 알면서도 손사래를 치며 너스레를 떨었다.
“어이쿠! 괜찮소이다. 너무 많이 먹어서 속이 더부룩하니 음식은 내오지 마시구려.”
“이곳에 오면 목이 달아날까봐 노 중랑장께서 술과 고기를 내어주셨나 봅니다?”
“한관에서는 오직 노 장군께서만 관서군이 투항할 거라 믿고 계시지요. 게다가 한관에는 먹을 것이 처치곤란이외다. 병사들도 밥 때만 지나면 배를 두드리고 늘어지는데 어찌 이 산 모가 먹을 음식이 없겠소?”
산본은 떡밥을 뿌렸다. 그러자 마등이 곧장 떡밥을 물었다.
“노 중랑장만 우리가 투항할 거라 믿는다고? 그럼 다른 자들은 우리가 끝까지 결사항전할거라 생각한단 말이오?”
이에 산본은 일부러 대답을 늦게 하기 위해 차부터 한 모금 입에 물었다. 그리고는 또 딴 소리다.
“차맛이 좋구려. 관서군의 군량이 떨어진지 오래일 텐데 어찌 이리 귀한 찻잎이 남아 있는지 모르겠구려. 아아! 찻잎은 씹어봐야 배가 부르지 않고 입에 쓴맛만 남으니 병사들도 탐을 내지 않겠구려.”
“흥! 우리를 먹을 것으로 꾀려 한다면 큰 오산이오.”
“그럴 생각은 없소이다. 아무리 군량이 남아돈다고 해도 적으로 맞서고 있는 자들에게 군량을 내어줄 정도로 우리가 어리석은 줄 아시오?”
산본은 마등과의 대화가 남는 장사임을 직감했다. 마등은 감정조절이 쉽지 않은 모양인지 쉽게 역정을 내었기 때문이다. 역정을 낸다는 것은 곧 산본의 말이 정곡을 찔렀기 때문이 아닌가.
산본은 계속해서 언변을 몰아쳤다.
“한관의 맹장과 현사들은 투항을 받고 싶어하지 않소. 불면 날아갈 허수아비들을 받아들여봐야 군량만 허비한다고 다들 싫어하지.”
“뭐라? 한관에 맹장과 현사가 어디 있단 말이냐? 어디 있으면 나와보라 하라!”
그러자 산본은 피식 웃으며 조근조근 말했다.
“아직 마 장군이 돌아가는 판을 잘 모르시나 본데 지금 한관에 누가 와 있는 줄 아시오?”
“내가 알 게 뭐냐?”
“듣고 놀라지 마시오. 여포군 팔건장의 수장인 고순 장군이 와 있소.”
“고순이고 나발이고 난 모르겠다.”
“아셔야 할 게요. 고 장군과 휘하 칠백 병사가 그대들의 수만 군세를 궤멸시켰소.”
“그런 말도 안 되는······!”
마등은 산본의 말을 헛소리라 치부했다. 강이단은 관서군의 두 주력 중 하나이고 그 군세가 3만에 이르렀다. 그런데 고작 칠백을 당해내지 못하고 궤멸당했다니 누가 그 말을 믿을 수 있으랴.
하지만 사원은 조금 달랐다.
‘강이단이 무너졌을 거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고작 칠백에게······? 한관에 맹장과 현사들이 득실거린다는 얘기가 헛소리는 아닐 터.’
강이단으로부터 소식이 끊기고 불길한 예감을 가누질 못했다. 그런데 이제 어찌된 판국인지를 알았으니 그나마 조금은 마음이 편했다.
“산 대인, 아직 우리 관서군의 군세가 수만에 이르니 결사항전을 한다면 한관의 군세도 편히 머무를 수는 없을 것이오.”
“투항을 할 거요? 말 거요?”
산본은 말 몇 마디로 사원의 도발을 꺾어버렸다.
이는 사실 산본의 언변이 뛰어나서 그런 것은 아니다. 사원이 허술한 인사이기 때문에 당한 것도 아니다.
한관에서 관서군의 동도행이 막혀버렸다.
비장의 한 수로 여겼던 강이단과의 협공마저도 물거품이 되었다. 게다가 군량은 떨어지고 총사인 황보숭마저 전장을 이탈했다. 그러니 사원이 무슨 말을 해도 말에 무게가 실리지 않는 것이다.
사원은 씁쓸한 기분을 애써 감췄다.
“조건을 보고 투항을 할지 말지 결정할 것이오.”
“조건이라······. 어차피 소생 역시 유세를 하러 온 것일 뿐 결정권이 없소. 조건을 내건다면 전해는 드리리다.”
“그럼 누구와 얘기하라는 거요? 조건이 맞아야 교섭이 성사되는 것이 아니겠소?”
“한관으로 오시오. 노 장군을 직접 뵙게 해드리리다.”
사원이 이에 대해 답을 하기도 전에 마등이 발끈하며 벌떡 일어섰다.
“뭐라? 한관으로 오라고? 우리를 초회왕처럼 허술한 인사로 보았다면 오판이다.”
마등은 노식이 자신과 관서군 군사 사원을 한관으로 끌어들여 억류하려는 것으로 오해했다. 그러자 산본이 피식 실소를 터뜨렸다.
“흐흥! 그리 겁이 많아서야······. 아쉽다, 아쉬워. 노 장군께서는 마 씨군을 높이 사서 어떻게든 품으려 하시거늘······. 그리고 마음만 먹으면 한관의 군세가 반 시진 안에 이곳을 초토화시킬 수 있는데 그런 얕은 수를 써서 무얼 하겠소?”
그러자 사원이 끼어들었다.
“그러면 노 장군이 직접 이곳에 오시는 것은 어떻소?”
마등이 화들짝 놀라 사원의 팔을 붙잡았다. 그러자 사원은 그에게 눈짓을 했다. 이번에는 자신의 뜻대로 하게 해달라는 의미임을 알고 마등은 손을 놓았다.
갑작스런 제안에도 산본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노 장군께 고하면 당연히 오실 것이오. 하나 내 한 가지 충고하건대 노 장군을 인질로 삼아 뭔가를 얻어낼 생각은 하지 마시오.”
“하늘이 돕지 않아 관서군이 한관을 넘지 못했으나 어찌 그런 얕은 수를 쓰겠소?”
“그렇다면 다행이오. 하나 다시 한 번 충고하리다. 흘려듣지 마시오. 소생이 늙어 쓸모가 없으니 이렇게 험지에 나선 것임을 잊지 마시오.”
산본은 그 말을 끝으로 두 손을 모아들어 보이고는 천천히 군막을 나섰다. 그가 한관으로 걸음을 옮기는 모습을 마등과 사원이 지켜보고 있었다.
당장에라도 달려가 칼을 휘두른다면 죽은 목숨이건만 산본은 결코 서두르질 않았다. 하나 그의 등줄기에는 이미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