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Follicle Exhibition RAW novel - Chapter 766
765화 죽어서도 함께하자! (2) >
박릉 전투의 전후처리는 쉽지가 않았다. 박릉성은 물론이고 전장이 넓었기 때문이다.
우선 화공으로 인해 소실된 성안의 집들이 너무 많았다.
그나마 민가는 젖은 짚단을 얹어 지붕만 다시 올리면 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호족들의 저택은 대부분 잿더미가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하간왕군이 약탈을 목적으로 박릉성에 진입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어디로 향할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 뻔히 예상할 수 있는 곳을 어설프게 처리했다가는 의심을 살 위험이 있었다.
“에이! 싸움도 끝났는데 새끼나 꼬고 앉아 있을 건 뭐란 말이오?”
성렴은 바닥에 주저앉아 열심히 새끼줄을 꼬고 있다가 성질이 나는지 투덜거렸다. 그러자 여포 역시 새끼줄을 꼬다가 한 마디 했다.
“나도 이러고 있는데 네가 논다고? 안될 말이지.”
“대형, 이런 거는 백성들에게 맡깁시다.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지들 집 아니오? 지붕 정도는 알아서 하게 해야지 우리가 직접 이럴 게 뭐요?”
그러자 서막이 일장 연설을 했다.
“화공은 우리 군이 적군을 상대하기 위해 부득불 어쩔 수 없이 쓴 겁니다. 우리가 뿌린 씨앗은 우리가 거두어야 하는 법이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민심을 얻기에도 나쁘지 않습니다.”
이에 성렴은 서막의 허를 찔렀다.
“경산 선생이야 역 땅에서 둔전을 일구느라 이런 일이 손에 익었겠지. 하나 우리는 다르오. 이런 일보다는 창칼을 잡아야 하는 무장이란 말이오.”
“성 장군, 소생도 검이라면 자신있…….”
서막은 말끝을 흐렸다. 여포와 성렴의 시선을 받자 자신이 말실수를 한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검예에 제법 조예가 있…….”
이것도 안 맞는 말이다. 서막이 술 좋아하고, 검예로 제법 이름을 얻기는 했으나 고향바닥에서나 검호로 통하지 여포군에서는 장수의 반열에 조차 오를 수 없었다.
심지어는 여포에게 덤볐다가 맨손인 여포에게 농락당하고 패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자신의 입으로 검예에 제법 조예가 있다고 말한다면 비웃음을 살 일이 될 뿐이다.
아니나 다를까.
“익익익익!”
성렴이 키득거리자 웃음에 전염이 된 건지 여포도 돌연 폭소를 터뜨렸다.
“푸하하하! 경산 선생, 농법에만 재주가 있는 줄 알았는데 사람을 웃기는데도 이토록 큰 재주가 있는 줄은 몰랐소.”
악진도 곁에서 새끼줄을 꼬다가 배를 잡고 웃었다.
“푸흐흐! 크흐흐흐!”
“악 장군까지 이러면 곤란한데…….”
서막은 악진까지 비웃자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악진도 할 말은 있었다.
“동무양의 이, 악진도 여 장군 앞에서 도법에 자신이 있다고 말을 못하는데 선생이 그리 말씀하시면 어쩝니까?”
서막의 얼굴이 터질 듯 붉게 달아올랐다. 그는 씩씩거리며 말했다.
“장군, 소신이 실언을 했습니다. 검을 쓸 줄 압니다. 아니, 몇 번 휘둘러 봤습니다. 그래도 소신이 이번 싸움에서 혼자서 수십의 적은 베었을 겁니다. 제법 전공…….”
서막은 또 실언을 했기에 아예 입을 다물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새끼줄을 꼬는데 전념했다.
* * *
“조 자룡이가 안 보이는 구나.”
“그 녀석뿐이 아니오, 대형. 조 부 사람들이 모두 안 보이오.”
여포가 조운을 찾자 성렴은 이 때다 싶어서 일하지 않는 조 부의 사람들을 싸잡아 고자질했다.
그러자 악진이 조 부 사람들을 대변해 변명했다.
“조 부 사람들은 상산병 전사자를 처리하는 일로 잠시 자리를 비웠습니다.”
“그래?”
여포가 조용히 몸을 일으키자 성렴이 째려보았다.
“대형, 어디 가오? 새끼는 마저 꼬아야지.”
“전사자의 넋을 위로하는 의식이다. 응당 우리 군의 지존인 내가 가봐야지.”
“거 뭐, 자기들끼리 하는 건데 눈치 없이 끼고 그러는 거 아니오. 어서 새끼나 마저 꼬시오.”
성렴은 한 소리 들었다고 여포를 악착같이 물고 늘어졌다. 하지만 여포에게는 그의 입을 다물게 할 비장의 한 수가 있었다.
“자꾸 투덜거리지 마라. 장가 안 보내준다. 장 대인의 조카들이 하나같이 그리 절색이라지? 장 대인의 딸들도 못지않고 말이다.”
“끄응! 대형 몫까지 내가 열심히 새끼줄을 꼬아 놓으리다. 여기는 아무 걱정 말고 다녀오시오.”
성렴은 여포의 횡포 앞에 눈을 내리 깔고는 새끼 꼬는 일에 전념했다.
여포는 조 부의 사람들을 찾아 나섰다. 박릉성 성 밖에는 태항과, 역, 한단과 상산에서 온 군세들이 각기 따로 군영을 세워 놓고 있었다. 상산군의 군영은 텅 비어있었다.
하지만 그들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멀지 않은 곳에서 잿빛 연기가 높이 치솟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라도 한 마리 잡아야 하는 거 아니오?”
여포는 조완의 곁으로 가서 넌지시 말을 붙였다. 그러자 조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분하게 죽은 자들을 위해 또 살생을 하기는 좀 그렇소. 제물은 역시 적들의 수급으로 족하외다.”
“피해는 어떻소?”
“목숨을 잃은 자만 해도 삼천 가까이 되오. 그래도 수만에 달하는 적병을 상대로 첫 싸움 치고는 제법 잘 버텨주었소. 앞으로도 여 장군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듯하니 어느 싸움이건 불러주시구려.”
여포는 조완에게 두 손을 모아들었다. 그리고는 장작더미에 눕혀 타들어가는 전사자들의 시신을 향해 깊이 읍했다.
“천하를 위해 싸우다 전사한 여러 영웅들은 편히 쉬시오. 그대들의 가솔은 이, 여포가 책임지고 보살피겠소.”
그러자 조완이 여포에게 읍했다.
“장군께 거듭 감사드리오. 여 장군께서 천하대란을 끝내주시는 것만이 싸움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소이다. 그때까지 우리 상산의 사내들은 여 장군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겠소.”
“같이 잘 살자고 하는 일이외다. 어느 전장이든 하나라도 더 살아남아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오. 한데, 풍 공자는 어디 갔소?”
“가까운 자들을 제법 잃어 그들을 따로 위로하고 있을 거외다. 풍운대 고수들 중 열둘이나 목숨을 잃었으니 충격이 큰 모양이오.”
“내가 가서 위무해줘야겠소. 그래도 되겠소?”
“걸음해주시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소생이 앞장서리다.”
조완을 따라 간 곳에는 눈이 퉁퉁 부은 조풍이 뭔가를 갈아대고 있었다.
“풍 공자. 나, 여 봉선이올시다.”
여포가 인기척을 냈다.
그러자 조풍은 말없이 그를 향해 살짝 두 손을 모아들어 보이고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제야 말문을 열었다.
“결례를 용서하십시오. 형제들의 유골을 갈고 있었습니다.”
“상산까지 시신을 운구할 수는 없으나 굳이 골분을 만들 필요가 있소?”
조풍은 뼛가루를 작은 주머니 안에 부어 넣고는 말을 이었다.
“이 녀석들은 상산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당장은 말이지요.”
“그럼 어디 좋은 자리 봐둔 곳이 있소? 없다면 지관을 데려와 명당을 잡아드리리다.”
조풍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희는 모두가 피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친형제보다도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우리 모두 전사한다면 한 자리에 묻힐 것이고, 여 장군께서 천하를 평정해 싸움이 끝나는 날이 되면 상산으로 돌아가 묻어줄 생각입니다.”
“죽어서도 함께 한다? 뭐 그런 거요?”
조풍은 이들과 어울려 놀던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제법 높은 바위에서 깊은 계곡 물에 앞 다투어 풍덩 뛰어들던 그 시절의 추억들이 눈앞에 선했다.
“그렇습니다. 저희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함께 할 것입니다. 그리 맹세했으니까요.”
조풍은 전사한 벗들을 생각하니 자기도 모르게 눈가가 촉촉해졌다. 하지만 여포의 앞이었기에 애써 눈물을 참았다.
그의 감정은 여포에게 그대로 전해졌다.
“장군, 죄송합니다. 무장이라면 감정에 휘둘리지 말아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온데…….”
그러자 여포는 처음으로 그에게 말을 놓았다. 그는 자신의 가슴팍을 두들기며 말했다.
“사내라면 눈물마저 말려버릴 정도로 여기가 뜨거워야 하는 거다.”
* * *
‘조 자룡이 이 녀석은 대체 어디서 무얼 하는 게야?’
여포는 조풍의 곁에 누구라도 붙여 놓아야겠다는 생각했다. 그래서 떠올린 사람이 바로 조운이었다.
조운 역시 조 부의 사람이니 슬픔을 함께 나눌 수 있을 터. 게다가 까불거리는 모습이 조풍과 풍운대 고수들에게 웃음을 줄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조운의 행방을 찾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방법은 있었다. 조운은 우적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 때문에 사고방식이 조금은 남달랐다.
좋게 말해서 그런 거고, 나쁘게 말하자면 사고방식은 도적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얘기다.
‘이번 싸움에서 가장 큰 수확은 역시 하간왕을 사로잡은 것이지. 도적놈들은 빼앗은 보물을 감상하길 좋아한단 말이야. 하여간 우적, 이 녀석 덕분에 그래도 조 자룡이 찾기는 쉽겠구나.’
아니나 다를까. 박릉성 태수부 옥사에 찾아가니 정말 조운이 그곳에 있었다. 하간왕이 그곳에 갇혀 있었으니 조운이 그를 감상하러 간 모양이었다.
여포는 조운의 목소리가 들리자 고양이처럼 발소리를 낮춰 천천히 다가갔다. 조운은 그것도 모르고 하간왕을 괴롭히고 있었다.
“양곡이 얼마나 있다고?”
“한 십만 석은 있을 겁니다.”
“야! 똑바로 말 안해? 또 줘 터지고 싶냐?”
하간왕은 명색이 한실의 종친이며 한조의 번왕이 아닌가. 그런데 지금 몰골은 정말 말이 아니었다. 눈두덩이가 퍼렇게 물들어 퉁퉁 부어올라 한쪽 눈은 뜬 건지 감은 건지 분간이 안될 지경이었다.
코피 흘린 자국이 그대로 말라붙어 있고, 봉두난발에 옷가지도 엉망진창이었다. 누가 보면 남색을 밝히는 자에게 겁간이라도 당한 줄 알 지경이었다.
이게 다 성렴과 조운의 합작품이었다.
성렴이 하간왕을 못 죽여서 불만이 가득했기에 여포는 죽지 않을 만큼만 두들겨 패라고 했다.
죽다 살아난 하간왕의 수난은 끝나지 않았다. 조운이 찾아와서는 속량금을 책정한다며 하간왕부의 재산을 말하라 매질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협, 사가의 호족들도 자기 재산이 정확하게 얼마나 되는지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간왕은 매질을 피하려 어떻게든 조운에게 변명을 해댔다. 하지만 조운에게 그런 수법이 통할 리 없었다.
“소협은 무슨……! 이 몸이 바로 그 유명한 여포군 팔건장 조운 자룡이니라. 관동군 상장 안량이 내 창 앞에 열 합도 못 버티고, 무릎을 꿇었지.”
안량이 열 합도 못 버텼다는 것은 뻥이다. 하지만 안량이 조운에게 진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
진의록과 어울린 것이 이럴 때 빛을 발했다. 사실에 거짓을 섞으면 거짓도 진실로 받아들여지기 쉽다는 것 말이다.
“오오! 조 장군이셨군요. 대명을 익히 들어 흠모하고 있었습니다.”
“시끄럽고! 양곡이 몇 석이나 있어? 정확하게 말 안하면 이 갱생봉으로 정신이 번뜩 들게 해줄 게야.”
조운은 ‘갱생(更生)’이라고 직접 쓴 나무몽둥이를 손바닥에다 탁탁 두들기며 위화감을 조성했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출납이 일어나고, 가솔이 몇인데 쌓아놓은 양곡이 얼마인지 어찌 알겠습니까?”
“그래? 그럼 생각날 때까지 맞아야지. 맞다가 보면 생각이 날 거야.”
그러자 하간왕은 더는 참지 못하고 화를 냈다.
“내, 참을 만큼 참았느니라. 천한 것이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주둥아리를 함부로 나불거리는 게냐? 본왕은 한조의 번왕이며, 한실의 종친이다. 나를 능멸하는 것은 한실을 업신여기는 것과 같거늘 정녕 하늘이 무섭지 않느냐!”
하간왕이 잔뜩 으름장을 놓았다. 보통은 이 정도 말이면 기세가 꺾이기 마련인데 조운의 반응은 그가 기대하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그는 이빨을 드러내보이며 하간왕을 향해 씽긋 미소지어 보였다.
“골라봐라. 손가락을 하나하나 부러뜨려서 젓가락질도 못하게 할까? 아니면 다리를 분질러서…….”
하간왕은 기겁을 하며 엎드려 싹싹 빌었다. 올려다 본 조운의 모습은 그야말로 흉신악살이었다.
“케헥!”
조운은 하간왕을 위협하다가 돌연 뒤에서 나타난 여포에게 목이 졸리고 말았다.
“이 녀석, 어디갔나 했더니 여기서 하간왕을 괴롭히고 있었구나?”
“켁켁! 장군, 항복! 항복!”
여포가 풀어주자 조운은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억울한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러자 여포는 그의 어깨에 손을 얹고는 옥사에서 발길을 돌렸다.
“소장, 억울합니다. 괴롭히고 있었다니요. 이게 모두가 다 여 장군을 위해서 하는 일입니다.”
“뭐라? 나를 위해서 포로를 매질하고 있었다고? 내가 그 귀 큰 놈 같은 자인줄 아느냐?”
그러자 조운은 여포를 향해 씽긋 웃어보였다.
“히히! 소장은 두 가지 연유로 하간왕을 고신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들어보시면 이, 조 자룡이에게 잘했다, 장하다 칭찬해주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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