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Follicle Exhibition RAW novel - Chapter 782
781화 오석산(五石散) (2) >
조조가 인사를 건넨 ‘하 공자’의 정체. 그의 이름은 ‘하안’이다. 대장군 하진의 손자. 하진의 몰락 후에 조등이 손을 써서 빼돌린 아이이기도 했다.
조부는 하진의 손자가 여러모로 쓸모가 많다는 것을 알아보았다.
하지만 조조는 하안 따위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유부녀라면 사족을 못 쓰는 조조에게는 하진의 며느리 윤 씨만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이 조조에게는 하안을 움직일 수 있는 목줄이 되었지만 말이다.
하안은 조조를 노려보며 이빨을 드러냈다.
“어머니는 잘 계시오?”
하안은 애써 화를 누르며 어미의 안부를 물었다. 조조가 자신의 어미 윤 씨를 첩실로 들여앉혔기 때문이다.
하기야 절색으로 이름을 날렸던 윤 씨를 얻었으니 곁에 두고 운우지락을 나눌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미 하 씨 일족이 몰락했으니 뒤탈이 없을 테니까. 덕분에 하안을 마음대로 부릴 수도 있고 말이다.
하 태후는 건재했지만 그녀는 궁 밖의 일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의 관심사는 자기 아들이 성군으로 태사록에 기리 남을 수 있도록 하는 것뿐이다.
그래서 하진의 며느리와 손자가 조조 손에 놀아나고 있는 것이다.
“내 말만 잘 들으면 모자가 상봉할 수 있도록 해주지.”
“말은 바로 하시오. 오석산을……. 아니, 그 독약을 만들어 주어야만 내 어미를 만나게 해주겠다는 거 아니오?”
그러자 조조는 두 손을 모아들고 너스레를 떨어댔다.
“하 공자, 총명! 총명! 잠깐 안 보았다고 비 온 뒤의 대나무처럼 몸도 훌쩍 자라고, 생각도 그런 것 같구나. 그래, 네 말대로다. 너는 계속해서 오석산을 만들어주어야겠다.”
“흥! 이제 비방도 알겠다, 알아서 하면 될 것을 왜 내게 그런 참담한 일을 시킨단 말이오?”
하안은 아직 성인은 아니지만 자신의 처지가 얼마나 딱한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얼마나 참담한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어려서 이미 신동 소리를 들었던 그가 아닌가.
지금은 경학의 경서들을 줄줄 외우는 하안이 오석산의 용도를 모를 리 없었다.
“비방을 안다고 해서 오석산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비슷한 것은 만들 수 있을 테지. 하나 순도가 높을수록 중독성도 높아지니 경험이 쌓인 만큼 좋은 것을 만들 수 있지 않겠느냐?”
“본 공자가 처음 만들었던 오석산은 지금처럼 참혹한 것이 아니었소이다. 당신은 지금 대죄를 짓고 있는 거요.”
오석산은 이름 그대로 다섯 가지 재료를 바수어 가루로 만든 것이다. 하지만 그 다섯 가지 재료는 생산자마다 종류도, 비율도 달랐다.
재료가 조금 바뀌고, 그 양이 조금 달라지는 것만으로도 약효와 중독성은 그야말로 천양지차.
하진이 큰 권세를 누리며 큰 재물과 많은 인력을 들여 만들게 한 오석산은 지금 하안이 만들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당시의 오석산은 일시적인 각성 효과와 함께 심신의 피로를 물리치는 용도로 쓰였다. 당연히 중독성은 물론이고 효과도 제한적이었다.
물론 최적의 비율을 찾기 위해 연구한 기록이 남아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처럼 강력한 중독성과 약효를 지닌 오석산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기도 했다.
오석산의 재료와 그 비율이 비밀에 붙여지는 건 당연했다. 그런데 그것이 조조를 위해 쓰이고 있는 것이다.
“당신이라니? 어미의 새 부군에게 당신이라 부르면 쓰느냐? 아버지라 불러보거라.”
“흥! 당치도 않은 소리! 독약으로 사람을 묶어두려는 자를 아비로 두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소.”
어찌 보면 모멸감을 느낄 수도 있는 말이건만 조조는 도리어 미소를 지었다.
“네가 그걸 어찌 알았는고?”
“불출호지천하(不出戶知天下). 앉아서 천리를 본다 했소. 내 비록 이곳에 발이 묶여 옴짝달싹할 수 없는 처지이나 조 공이 하려는 바를 어찌 예상치 못하겠소?”
조조의 입가에는 비웃음이 번졌다. 마치 ‘어린놈이 제법이다.’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오호라! 네가 노장에 심취해 있는 모양이로구나. 기특하도다. 그 나이에 벌써 노장이라니…….”
“이 나이에 벌써 오석산 같은 극약을 만들고 있으니 가감하면, 본 공자는 천하에 둘도 없는 상놈이오. 그리고 나로 하여금 이런 대죄를 짓도록 강요하는 당신은 편히 죽지 못할 거요.”
조조는 피식했다.
욕을 들어도 그다지 기분이 나빠보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기분이 더 좋아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
“얼마든지 욕해라. 역사는 승자의 것. 어떤 방식으로든 천하를 취하고 난 후에는 내 성취에 대한 것만 태사록에 남을 뿐이다. 내가 천하의 주인이 되면 어찌 태사록에 내 허물이 남을쏘냐?”
“남의 눈에 눈물이 나게 하면 자기 눈에는 피눈물이 나게 되어있소. 언제고 반드시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될 거요.”
“네 제법 머리가 굵어졌다만은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는 어린애일 뿐이로다.”
하안의 말은 조조에게는 통하지 않는 것이다.
조조에게 있어 응분의 대가니, 피눈물이니 하는 것은 패자들의 변명에 지나지 않았다.
싸움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겨야 하는 것이며, 승자야말로 항상 선하고, 패자는 항상 악하다는 것이 조조의 지론이 아닌가.
“사필귀정이야말로 세상의 이치요.”
“아직도 그런 말을 믿는 사람이 있다니 참으로 어리석도다. 나는 승자가 될 것이고, 내 모든 허물은 태사록에서 지워질 것이다. 후세의 사람들은 잘 포장된 내 업적들을 읽고 추앙하게 되겠지. 이것이 바로 세상의 이치다.”
조조는 거만한 표정으로 턱짓을 하며 말을 이었다.
“너는 그저 내 말을 고분고분 따르기만 하면 된다. 그리만 한다면 오석산을 만드는 일도 세상 사람들이 모르게 될 것이고, 어쩌면 고관대작으로 한 시대를 풍미할 수도 있게 되겠지.”
“하늘이 알고, 땅이 아는데 어찌 거짓이 진실을 덮을 수 있으리오.”
“어린놈이 고집 한 번 대단하구나. 명심해라. 네 조부와 아비가 어찌하다 비명에 갔는지 말이다.”
하안은 조조를 노려보았다. 하진의 세력이 실각하지만 않았어도 감히 조조 따위가 자신을 이리 대할 일은 없을 터였다.
그러나 어쩌랴. 일어나버린 일을 돌이킬 수 없는 것 역시 세상의 이치인 것을…….
조조는 조소를 흘리며 돌아서서는 다시 하안을 흘깃 보았다.
“혹여라도 오석산에 중독되지는 않기를 바란다. 아직 너는 내게 쓸모가 많으니까.”
이 말만 해도 하안의 속을 긁는 말이었는데 이어진 말은 상처에 소금을 뿌린 것 같았다.
“선생, 오늘은 윤 부인과 합방을 해야겠소. 우물(尤物)도 그런 우물이 또 있겠소?”
“그리 하시지요. 그래야 하 공자께 동생을 만들어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동생? 하하하! 그거 좋구먼.”
조조 일행이 돌아가버리자 하안은 그제야 작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 치욕을 반드시 되갚아줄 날이 있을 것이다.’
* * *
조조는 장원을 나서자마자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자 희지재가 물었다.
“주공, 어찌 걸음을 멈추십니까? 윤 부인을 찾아가시는 것이 아닙니까?”
“윤 부인은 무슨……. 천하에 사내가 절반이면 계집도 절반인 것인데 어찌 한 여인을 오래 보겠소? 이미 질렸소이다.”
조조는 다른 사람의 여인을 탐하는 자이지 자신의 것이 되어버린 여인을 소중히 여기는 자가 아니다.
“그럼 어디로……?”
“일단 말에 오릅시다. 돌아가서 할 일이 많소.”
조조와 희지재는 악영을 남겨두고 말을 몰고 나아갔다.
“선생, 혹시 동탁 주위의 사람들 중에도 포섭한 자가 있소?”
희지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자 조조가 달리 물었다.
“그럼 천자는……?”
이번에는 희지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천자를 움직이는 사자묘가 조조의 뜻에 따르는 자이니 천자도 조조의 수중에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그것과 오석산을 이용해 부리는 것은 또 다른 얘기다.
“설마 천자도 오석산에 중독되었소?”
“아직은 아닙니다. 하나 주공께서 명을 내리시면 그 즉시 사자묘가 천자에게 오석산을 먹이게 될 것입니다.”
조조는 턱수염을 만지작거리며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말문을 열었다.
“천자는 슬슬 약한 것부터 시작하시오.”
“동탁 쪽은 어찌 하실 요량이십니까?”
“그 쪽은 내가 한 번 손을 써보리다. 동탁과 정적이거나 가까운 자들 중에 줄을 댈 만한 자가 있으면 추천해보오.”
희지재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한 사람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순우가. 소신은 그 사람을 추천합니다.”
하지만 조조는 희지재가 내놓은 답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순우가라면 명문회의 수장이니 동탁의 정적이라 할 만하오. 하나 그는 명문 출신이니 오석산을 쓰는 것에 도움을 주지는 않을 듯하오.”
그러자 희지재는 반색하며 답했다.
“주공, 순우 사공이 아무리 명문 출신이라고는 하나 그도 결국은 사람입니다. 정적을 몰락시키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 정치 아닙니까?”
“그래도 그들이 좋아하는 의로움이 빠졌지 않소? 불의한 방법을 쓰는 것은 그 일이 실패했을 때 가져올 후폭풍 때문에 쉽사리 나서지 않을 거요.”
조조는 나쁜 놈이지만 최소한 자신이 하는 짓이 나쁜 짓임은 아는 자다.
희지재는 조조의 의견이 자신의 것과 갈리자 동민을 밀었다.
“정히 내키지 않으시면 동민을 이용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번에도 조조는 탐탁지 않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동민이라면 동탁의 동생이 아니오? 피를 나눈 형제 사이인데 나를 위해 동탁에게 오석산을 쓸 수가 있겠소?”
이에 희지재의 한쪽 입고리가 호를 그렸다.
“동민은 동탁의 그늘 아래 가려져 있는 호걸입니다. 그에게 야심이 없겠습니까?”
“그가 야심을 지니고 있다? 사내라면 모두가 다 가슴 속에 야망을 품고 있을 것이나 그것을 천륜을 저버려야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행할 자가 많지 않을 것이오.”
“사람은 다 똑같습니다. 동탁이 건재하면 동민에게는 영영 기회가 없을 것입니다. 동탁의 조카 동황도 마찬가지. 동탁의 아들 동열 또한 같은 입장입니다.”
인생 오십 년이라 하여 오십을 넘기면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지만 남들보다 장수하는 자들은 항시 있게 마련이다.
무장들은 전장에서 죽거나 부상을 입는 경우나 토사구팽 당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장수하기 일쑤다.
동탁 같은 영걸이 위험에 처하지 않고 천수를 누린다면 아마 백수를 누리는 것도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리라.
그렇다면 동탁의 그늘 아래에서 권력을 누리는 실세들에게는 영영 1인자가 될 기회가 오지 않는다는 얘기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확인된 얘기요? 아니면 선생의 짐작이오?”
“동민의 경우는 확인된 것입니다. 이미 뇌물로 챙기는 액수가 상당하다는 걸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얘긴 줄로 압니다.”
그제야 조조의 입가에도 미소가 번졌다.
“그러면 얘기는 끝난 것 같소. 하면 동열은 어떻소?”
“들리는 소문에는 여포를 그렇게 질투한다고 합니다.”
“하긴 동탁이 아들보다 여포를 더 챙기는 판국이니 안 그럴 수가 없겠지.”
조조는 손바닥을 비벼댔다.
“일이 잘 풀리려고 하니 이리 풀리는 구려. 동탁이 참으로 불쌍하오. 동생과 아들이 자신을 도모하려는 걸 알면 무슨 표정을 지을까?”
“동탁뿐이겠습니까? 이제 천자도 머지않았습니다.”
“좋소. 천자도 동탁도 오석산의 노예로 만들어줍시다.”
* * *
낙양. 황궁. 천자의 침전.
사자묘는 천자를 등지고 정좌해 있었다. 천자에게 등을 보인다는 것은 천자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다. 자칫 목이 달아날 수도 있는 대죄라는 얘기다.
그러나 당금천자가 아비처럼 대하는 사자묘를 그런 일로 벌할 리 없었다.
사자묘는 뭔가 주문 같은 것을 웅얼거리며 한참동안 향을 흔들어댔다. 그리고 잠시 후. 거짓말처럼 정적이 찾아들자 천자가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상부, 끝이 난 거요?”
사자묘는 감히 천자가 묻는데도 돌아서지도 않은 채 고개만 천천히 끄덕였다.
그러자 천자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사자묘에게 다가갔다. 사자묘는 천자와의 거리가 가까워짐을 짐작하고는 천천히 돌아앉았다. 그리고 작은 종이 위에 소복이 쌓인 가루를 내밀었다.
“이게 지난 번 그 영약이오, 상부?”
“예, 성상.”
“이번에는 성상께서 납헌금을 넉넉히 주시어 지난번보다 효험이 더 좋을 것입니다.”
소제가 가루약에 손을 뻗자 사자묘의 손이 그의 손을 가로막았다.
“부적을 태운 재를 섞은 물과 함께 드셔야만 효험을 보실 겁니다.”
사자묘는 미리 준비해둔 물그릇에 부적을 태운 재를 섞었다. 그러자 소제는 더는 참지 못하고 빼앗듯이 가루약을 들고는 그대로 입 안으로 털어넣었다. 그리고 물 한 사발을 비워냈다.
‘그렇지. 쭉쭉 들이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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