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Follicle Exhibition RAW novel - Chapter 783
782화 한실과 조정에 드리운 암운 (1) >
가루약을 마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반응이 왔다.
소제의 눈이 거짓말처럼 총기를 내뿜더니 끓어오르는 힘을 주체하지 못해 몸을 들썩였다.
‘드디어 약발을 받는구먼.’
사자묘는 내심 쾌재를 불렀다. 하지만 표정은 변함없이 근엄했다.
“성상께 고합니다. 절대로 어떤 경우라도 찬물을 마시면 안 됩니다.”
“몸이 펄펄 끓어오르는데 찬물을 마시지 말라니……. 상부, 너무한 거 아니오?”
“소인이 어찌 성상의 용체에 위해가 될 일을 하겠습니까? 모두가 성상을 위한 것입니다.”
사자묘는 그리 말하고는 음양이 어떻고, 오행이 어떻고 하며 어려운 말을 늘어놓았다. 그러자 천자는 손사래를 쳤다.
“그만 하오. 짐이 어찌 상부의 마음을 의심하겠소? 상부의 말대로 하리다. 찬물을 마시지 말라 이거 아니오?”
“예, 성상. 어떤 일이 있어도 결단코 찬물만큼은 피하셔야 합니다.”
“하면, 찬물을 마시면 어찌 되오?”
“성상께선 칠공에서 피를 뿜으며 붕어하시게 될 겁니다. 그리고 소인은 감히 천자를 시해한 역도가 되어 태사록에는 이름이 남을 것이고, 소인의 시신은 갈기갈기 찢겨져 나가게 되겠지요.”
너무나도 섬뜩한 묘사에 천자의 입이 절로 닫혀버렸다. 하지만 넘치는 힘을 쏟아낼 곳이 필요했기에 이내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 해도 되는 것은 무엇이오?”
그러자 사자묘는 그를 향해 읍하며 고했다.
“오늘도 수녀들을 품으십시오. 많은 황자를 보시는 것은 한실의 힘을 늘리는 것과 같사옵니다.”
수녀(秀女).
후궁전에 뽑혔으나 아직 품계를 받지 못한 여인들을 그리 불렀다. 이름 그대로 빼어난 용모의 여인들이나 대부분은 천자의 그림자도 보지 못한 채 나이가 들어 출궁하거나 궁내에서 늙어죽었다.
그러니 어떻게든 천자의 눈에 들어 품계를 얻는 것이 그녀들의 지상목표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것이다.
사자묘의 말은 천자의 귀를 즐겁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는지 소제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역시 짐을 생각하는 사람은 세상에 오직 한 사람, 상부뿐이오. 오늘은 다섯 계집도 뻗게 할 것이니 두고 보오.”
소제는 자신의 가슴팍을 두들기며 턱을 치켜들었다. 그러자 사자묘는 그를 대단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물론 속내는 달랐다.
‘어린놈이 벌써부터 황음을 즐기니 천상 혼군 소리는 면키가 어렵겠구나.’
소제는 사자묘의 속내도 모르고 계집을 품을 생각에 몸이 달아올랐다.
“오늘은 어느 수녀와 합궁해야 할지 고민이오. 액정령을 불러야겠소.”
액정령(掖廷令)은 후궁전을 관리하는 관직의 이름이다. 보통은 환관들이 맡았으나 때때로 여인이라고 할지라도 액정령 관직을 얻을 수 있었다.
지금이 그렇다.
지금의 액정령은 ‘양화’라는 여인이다. 전각을 받지 못한 후궁이나 수녀들이 기거하는 액정궁을 관리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소제가 액정령 양화를 부르려는 것은 그녀에 의해서만 액정궁에서 수녀들을 데려올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천자라고 해도 자신이 직접 액정궁에 걸음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하물며 수하를 보내 수녀들을 데려오는 것이 어찌 가능한 일이랴.
* * *
소제가 액정령을 부르겠다는 말에 사자묘가 읍하며 고했다.
“성상께 청합니다. 소인이 이미 수녀들의 사주를 받아 합궁일이 맞는 수녀들을 뽑아 놓았습니다. 소인이 오늘 합궁할 수 있는 수녀들을 데리고 올 수 있도록 허락해주십시오.”
그러자 소제는 사자묘의 허리를 펴게 하고는 고개를 기울였다.
“상부, 그런 것에도 재주가 있소?”
본디 이런 일은 액정령이 태사령이나 태사국의 승들이 천문과 사주를 살펴 합궁일을 택일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를 테면 황궁의 법도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를 액정령도 아니고 태사국의 사람도 아닌 사자묘가 하겠다고 나서는데 천자는 호통은 커녕 엉뚱한 소리를 하는 게 아닌가.
“성상, 소인으로 말씀드리자면 도통을 이은 선가의 제자입니다. 천문을 살피고 사주를 보는 일 따위야 소인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지요.”
사자묘는 천자의 눈치를 살피더니 말을 이었다.
“지금 성상께선 선단을 드셨습니다. 평범한 성점가는 합궁할 만한 수녀를 뽑아 올릴 수 없습니다. 그리고 성상의 절륜한 양기를 감당해낼 음기를 지닌 수녀를 알아볼 수 있는 사람 역시 소인뿐입니다.”
사자묘는 거드름을 피워댔지만 소제가 이를 알아차릴 리 만무했다.
황실의 혈통이라면 분명 바른 말도 의심해야 하거늘 소제는 사자묘의 말을 철썩 같이 믿었다.
“좋소. 상부께 일임할 터이니 어서 데려오시오.”
소제는 중상시 오합에게 영패까지 쥐어줘 가며 사자묘를 돕도록 했다.
사자묘는 액정궁으로 향했다.
침궁에서 액정궁까지 이르는 길 위에는 위사가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액정궁을 비롯해 이 길까지는 위사가 아니라 환관들이 관리하고 있었다.
이는 당연한 일이다. 후궁이며 수녀며, 궁 밖에서는 쉽사리 찾기 어려운 미인들이다. 위사들도 사내인데 미인을 보고 음심을 품지 않을 수 없을 터. 그러니 아예 접촉을 차단하기 위한 처사였다.
덕분에 사자묘만 신이 났다.
‘내게 설마 액정궁에 발을 들여 놓을 날이 올 줄 누가 알았으랴.’
액정궁이야말로 금남의 땅. 그 비밀스러운 곳에 사자묘가 첫 깃발을 꽂는 날이 바로 오늘이다.
사자묘가 액정궁의 편액을 보게 되었을 때쯤이었다.
“걸음을 멈추시오. 이곳은 액정궁이오.”
액정궁을 관리하는 환관들 몇몇이 나와 이들 앞을 가로막아 섰다.
“오 공공께서 이곳에는 어인 일이십니까?”
말은 제법 공손하지만 중상시를 상대로 관직도 없는 환관들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억지로 액정궁에 발을 들여 놓으려고 한다면 주먹을 휘두르는 것도 불사할 기세였다.
“천자의 명을 받아 수녀들을 데려가러 왔으니 어서 길을 열어라.”
중상시 오합은 제법 강단 있게 나섰다. 하지만 상대는 말을 들어줄 생각이 없어보였다.
“액정령께 아무런 언질을 받은 바가 없습니다. 게다가 천자께서는 오늘은 중궁전에 드실 예정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안된다는 말이냐?”
“물론입니다. 액정령의 명이 떨어지기 전에는 누구도 액정궁에 발을 들여놓을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액정궁의 환관은 사자묘를 흘겼다.
“액정궁은 금남지소입니다. 설마 공공께서 그런 것도 모르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러자 오합의 눈두덩이가 파르르 떨렸다.
“감히 하찮은 환자(宦者) 따위가 중상시인 나를 능멸하는 것이냐?”
“공공께서야 말로 궁의 법도를 어기실 생각이십니까?”
오합은 소제에게서 받은 영패를 상대의 면전에 들이밀었다.
“잘 보아라. 이것은 천자께서 내어주신 상방령이다. 그러니 어서 너희는 길을 비켜라!”
“액정령의 명이 없이는 어떤 명에도 따를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액정령을 데려오너라!”
* * *
액정령 양화는 조충 휘하의 환관 중연과 만나고 있었다.
액정궁 안에는 다른 부 소속의 환관들이 출입할 수 없는 게 원칙이다. 때문에 양화와 중연은 액정궁의 경계 밖에서 만나 담소를 나누었다.
환관과 궁녀의 밀회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그런 사이가 아니다.
“액정령, 답을 주시겠소?”
“중 공공, 아무래도 그것은 좀……. 아무리 어르신의 명이라고 해도…….”
“이제 우리는 큰 어르신의 사람들과는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는 걸 잘 알거요. 조 아만이가 가만히 있을 놈이 아니지. 분명 수녀들 중에 조 아만의 끄나풀이 있을 거요. 하나일지 수십일지 알 수 없소.”
양화는 고심했다.
중연이 조충의 이름을 들먹이며 부탁한 것은 다음번 채녀행에서 자신이 원하는 여인들을 수녀로 간택해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단순히 미모만으로 수녀로 뽑혀 입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조상 중에 역적이 있는지부터 천자의 사주와 어울리는 사주를 가지고 있어야 했다. 뿐만 아니라 입궁해서도 몇 가지 심사를 거쳐야만 비로소 수녀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절차를 무시하고 수녀로 뽑아달라는 청을 해오니 양화는 난처했다.
양화가 말문을 닫자 중연은 다시 한 번 그녀를 설득했다.
“액정령으로서의 소임을 다하려는 것은 아오. 하나 세상이 바뀌고 있소. 우리 같은 자들이 양지로 나서려면 우리의 입김이 닿는 여인이 천자의 여인이 되어야 하오.”
“솔직히 말씀해보시지요. 큰 어르신이 그랬던 것처럼 다음 천자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싶은 것이 아닙니까?”
양화는 자신이 핵심을 찔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중연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이어진 중연의 말이 양화를 충격에 휩싸이게 만들었다.
“황통을 끊어버리고 싶소.”
그 말을 듣는 순간 양화는 마치 천길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끝도 없는 나락으로 곤두박질치는 섬뜩한 느낌 말이다.
“어…… 어찌 그런 참담한 말을…….”
“한조가 오래가지 못할 것은 이미 짐작하고 있을 거라 믿소. 아니, 한조는 반드시 끝나야 하오. 고여 썩어버린 물이오. 버려야지. 전부 쏟아버려야지.”
양화는 검지를 세워 자신의 입술 위에 포개며 연신 눈알을 굴렸다.
“그만 하십시오. 누가 들을까 겁납니다.”
중연의 손이 그녀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그러자 양화는 중연의 손에서 자신의 손을 빼려 했다. 하지만 중연은 쉽게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그는 품속에서 작은 주머니 하나를 꺼내 그녀의 손에 쥐어주었다.
“이게 무엇입니까?”
“홍화, 능소화, 담죽액에 몇 가지 약재를 더해 만든 환단이오.”
그 말을 듣는 순간 양화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앞서 들은 세 가지 약재만으로도 그 환단의 효능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환단의 재료들은 하나같이 임산부가 복용해서는 안 되는 약재들이었다.
“서…… 설마 정말로 황통을 끊…….”
너무나도 큰일이라 양화는 좀처럼 말을 잇지 못했다.
양화도 궁에서 잔뼈가 굵은 몸이다. 중연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다는 얘기다.
중연이 바라는 것. 그것은 바로 후궁들의 수태를 막는 것이다. 환단의 효능은 임신을 막고, 이미 임신한 후궁은 유산을 하게 만드는 것일 터.
양화는 여인이었다. 같은 여인으로서 그런 일을 받아들이기가 싫었다.
“못합니다. 그리는 못합니다.”
“왜? 왜 못한단 말이오? 양 액정령이 여인이라서 그런 것이오? 같은 여인으로서 차마 할 수 없는 일이라서? 그런 거요?”
“예, 저도 여인입니다. 그리고 액정령이기 때문입니다.”
중연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한조의 액정령으로서 마땅히 천자가 많은 황손을 보도록 해야 할 테지.”
“당연한 말씀입니다. 예로부터 액정령은 중궁영항령과는 세불양립이지요. 중궁전에서 아직 소식이 없는 걸 보면 제 대에서는 액정궁의 후궁 중에서 먼저 황자를 생산하게 될 겁니다.”
이에 중연은 의미심장한 표정과 함께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 멀었소.”
“예? 방금 뭐라 하셨습니까?”
“아직 멀었다고 했소.”
“무엇이 아직 멀었다는 말입니까?”
중연은 검지를 세워 까딱였다.
“사람이 어찌 그리 무르오? 액정령이 입궁한지 몇 해가 지났소?”
“도무지 무슨 말씀이신지…….”
양화는 중연이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인지 조금도 예상치 못했다.
그러자 중연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쳤다.
“중궁전이나 후궁전에서 태어날 황손들이 모두 천자의 핏줄이라 확신할 수 있소?”
양화는 중연의 그 말 한마디에 고개를 떨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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