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378
하후상도 아니요 고작해야 그의 대리인인 작자가 조조의 뜻을 헤아릴 능력이 있을 리가 없었다.
주유는 조비와 독대한 자리에서 말했다.
“황상께서는 아마 사흘 안에 탈출하고자 하실 겁니다.”
조비는 눈썹을 치떴다.
“탈출? 사흘?”
주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집금오에게 배속된 북문의 병력만으로는 업도의 숙위를 상대할 수 없습니다. 탈출만이 유일한 방책입니다. 설혹 탈출을 선택하지 않고 시가전을 선택하신다면, 전하께서는 부황의 늙어 어리석어지심을 한탄하고, 일이 쉽게 풀림을 기꺼워하시면 됩니다. 그러나 황상께서는 일세의 영걸입니다. 노쇠하셨다 한들 옥쇄를 선택할 정도로 무뎌지지는 않으셨을 겁니다. 하후상이 파직되었고 인수인계를 하도록 사흘의 말미를 주었으니, 반드시 그 틈에 업도를 빠져나가려고 하실 겁니다.”
주유는 잠시 쉬고 말했다.
“전하께서는 그 사흘 간 경계를 강화하고, 황상께서 탈출을 시도하신다면 사로잡아 유폐하시면 됩니다. 그 전에 우리가 먼저 손을 쓰기에는 불효와 불충이란 낱말의 힘이 너무나도 큽니다. 황상께서 먼저 아조의 중심인 업도를 버리시려 하신다면, 우리가 황상을 억류할 명분을 얻습니다.”
“으음……”
조비는 깊은 시름을 토해냈다. 아무리 냉혈한에 짐승의 도리를 따르겠노라 선언한 그였음에도, 아비를 유폐하는 계략을 꿈꾸는 일은, 없는 양심과 염치를 찔렀다.
조조는 대리인에게 말했다.
“주유는 자신이 완벽하게 판을 짰다고 생각할 거다. 백인을 경질하여 여지를 없애고, 사흘의 말미로 덫을 놓았다고 생각할 거야.”
조조는 늙었으되 여전히 야심이 넘치는 눈을 빛냈다.
“그러나 오판이지. 사람의 신경은 완벽할 수가 없다.”
그는 직접 주전자를 들어 잔에 술을 채웠다.
“잔에 술이 차면 주전자는 그만큼 비는 거다. 사람의 신경이 이와 같은 것이야.”
조조는 잔을 들어 술을 머금었다. 쓴맛이 유독 튀었다. 그는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
“주유는 사흘 간 경비를 강화할 것이다. 짐이 반드시 그 시간 안에 움직일 것이라 믿고 말이지. 집금오 하후상의 병력을 동원하여 말이지.”
조조는 다시 웃음을 띠었다.
“집금오가 맡은 북문에 특히 눈을 부라릴 거다. 왜냐, 동쪽과 서쪽과 남쪽은 이미 완전히 쥐었다고 생각할 테니까.”
그의 눈빛이 튀었다.
“오판이다. 북문은 잔이요, 나머지는 주전자다. 나머지에 들일 신경을 북으로 쏟은 거야. 주유의 판은 완벽하지 않다. 왜냐, 녀석도 사람이니까. 짐이 그를 이길 것이다. 왜냐, 짐이 그보다 나은 사람이니까.”
조조는 아래턱을 훅 잡아당겼다. 그러나 턱에 매달려있던 터럭이 썩은 잡풀처럼 쉽게 딸려 나왔다. 조조는 한숨을 쉬었다.
“이 거짓수염이 그리도 미웠건만. 수염 빠진 매끈한 턱이 그리도 부끄러웠건만.”
조조는 자조했다.
“오늘 도움이 되는구나.”
북문. 전후임 집금오, 그러니까 하후상과 여몽은 데면데면한 사이였다. 일절의 접점도 없었다. 둘의 성향도 달랐고, 모시는 주군도 달랐다. 그러하니 둘 사이에 이렇다 이를 말이 없었다. 하후상은 언뜻언뜻 입술을 붙였다 뗄 뿐이었다. 원체 과묵한 성정의 여몽도 먼 산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던 하후상이 입을 뗐다.
“이보오, 집금오.”
여몽은 집금오라는 부름이 어딘가 낯 간지러웠다.
“말씀하시지요.”
“나는 이 상황이 참으로 납득이 되질 않소. 부자간에 이토록 핍박하는 일이 어디 있단 말이오.”
“황상과 태자의 사이가 오로지 부자의 정리로만 설명되지는 않습니다.”
여몽은 하후상을 힐끔 바라봤다.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렇지… 헌데 또 납득이 안 되는 것이.”
하후상은 여몽을 노려보며 칼을 뽑았다.
“부자의 정리를 제하더라도 태자께서 황상을 핍박할 아무런 까닭이 없다는 것이오.”
여몽은 살기를 느끼고 재빨리 자신도 칼을 뽑았다. 그는 침착한 표정으로 하후상에게 말했다.
“하후 공과 이 여몽이 칼날을 맞대는 것이 더욱 납득이 되질 않습니다.”
하후상은 콧방귀를 뀌었다.
“난 강동의 촌뜨기들이 이 나라를 쥐락펴락하는 것이야말로 그렇다.”
하후상이 여몽을 습격하는 찰나, 집금오의 명을 받아 업도의 북문을 지키는 병사들이 일제히 궐기했다. 여몽은 하후상의 내습을 받고 입술을 악물었다. 그는 수하들을 부려 불화살을 올리게 했다.
“역시.”
업도에서 가장 높은 전각에 올라 상황을 살피던 주유는 탁자를 탕 내리쳤다. 그는 반드시 북문에서 소란이 일고, 그 사이에 조조가 북문을 돌파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확신한 만큼 준비가 탄탄했다.
“마련한 대로 하라.”
주유가 명하자, 그대로 이루어졌다. 업도의 중앙에 대기하고 있던 병력이 일제히 북문으로 뛰쳐나갔다. 오관중랑장 풍해가 통솔하는 수천의 병마가 하후상에게로 몰려갔다. 서문, 남문, 동문의 병력도 북문을 지원했다. 어차피 대마만 잡으면 되는 일이었다. 조조가 북쪽으로 달아날 것이라, 누구나 확신했다. 대마를 잡으면 제후의 반열에 오르리라. 공신이 되리라. 부푼 꿈에 사로잡힌 장교들은 병사들을 재촉했다. 병사들도 즐겁게 명을 받잡았다. 이 작전은 호각을 이루는 전투가 아니라 일방적인 추격전이었다. 목숨이 위협당하지 않는 작전이었다. 게다가 장교처럼 벼락출세는 꿈꾸지 못한다 한들 얼마간의 재물은 챙길 수 있다는 충분한 동기가 있었다. 즐겁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천자는 사로잡힐 것이오! 어째서 공연히 목숨을 버리려 하는가!”
여몽은 하후상의 칼을 받아내면서 외쳤다. 하후상에게 적의는 없었다. 도리어 망한 싸움에 제 목숨마저 밀어 넣는 그 우직한 충의에 호의마저 느꼈다. 그러나 하후상은 더욱 거세게 몰아치며 여몽에게 외쳤다.
“공연하다? 평가는 일이 끝난 다음에 하라.”
조조는 천자의 침전에 남아있었다. 그는 비장한 표정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천자의 복식이 아니었다. 그와 같은 옷을 입은 자들이 주위에 숱했다. 그는 환관의 복식이었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손을 곱게 모았다. 곱게 모은 손은 치렁치렁한 소매에 가려 자연히 은폐되었다. 그 손은 장검을 쥐고 있었고, 빛나는 칼날은 검은 소매에 가려있었다.
“본디 환관의 후예라 흉을 많이 당했느니라.”
조조는 이를 악물고 모자의 끈을 꽉 조이며 말했다.
“그러나 짐은 부끄러워하지 않았느니라. 환관의 후예, 그래서 어쩌라는 것이냐.”
조조는 칼날의 예리함을 확인하고 다시 소매에 감췄다.
“그 잘난 유씨 황족의 후예나 명문세족의 후예랍시고 거들먹거리던 놈들은 다 어디 있느냐.”
그는 콧방귀를 뀌었다.
“다 죽었느니라.”
조조의 가슴이 쿵쿵 뛰었다.
“오로지 환관의 후예만이 지금까지 살아남았느니라. 살아남아 황제가 되었느니라.”
조조는 환관의 방정맞은 종종걸음으로 천자의 침전을 나섰다.
“환관의 후예, 그래서 어쩌라는 것이냐. 짐은 부끄럽지 않느니라. 환관의 후예란 것도, 지금 환관의 복식을 한 것도 부끄럽지 않느니라.”
조조는 침전의 바깥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그가 바깥으로 걸음을 내딛자, 족히 천 여에 달하는 환관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들은 모두 조조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까이서 보면 그들은 가엾기까지 했다. 그들은 죽음의 가능성으로 두려워하고 있었다. 몸을 떨고, 안색이 창백해지고. 그러나 멀리서는 그들의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멀리서본 검은 옷의 그들은, 먼 곳으로 날아가려하는 철새의 무리였으며 그 자체로 천하에 나부끼는 거대한 검은 깃발이었다.
“난세에 정녕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은 패배하는 것뿐이다.”
조조는 종종걸음을 내딛었다. 그러자 일제히 그 주위의 환관들도 같은 보폭의 걸음을 딛었다.
“어떻게 태어났는가를 생각하지 마라. 어떻게 끝나는가를 생각해라.”
조조는 눈빛을 서쪽으로 쐈다.
“그것이 네 인생을 평가해줄 것이다.”
조조는 환관들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너희는 환관으로 나서 환관으로 지냈지만 충신으로 죽는다면 너희를 충신으로 기억하리라.”
하후상과 북문의 병사들은 격렬하게 저항했다. 그들은 진정으로 천자의 충용한 병사들이었다. 그들은 죽어나가는 최후의 순간까지 저항했다. 팔이 잘리면 발로, 발이 잘리면 찢어지는 목청으로 저항했다. 그러다가 비로소 목이 잘리고 나서야 저항을 관뒀다. 혼백으로 저항할는지도.
환관들은 서쪽으로 갔다. 그들의 걸음은 시종 종종거렸지만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갔다. 물러섬이 없었다. 북문으로 정예를 파견한 서쪽의 병사들은 허약하고 나태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공을 세울 기회를 놓친 것에 아쉬워하면서도, 저 복잡한 곳에서 먼지 뒤집어쓸 일로부터 자유롭게 된 것에 기뻐했다. 숨겨둔 술을 은밀히 홀짝이고 음담패설을 요란하게 지껄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미래를 알지 못했다.
“비켜라.”
천자의 명령에 침전을 지키는 병력은 물러났다. 그곳까지는 아직 천자의 명령이 미쳤다. 그들 중 몇몇은 자원하여 환관의 옷으로 갈아입고 칼을 숨긴 뒤 조조의 곁을 지켰다.
“비켜라.”
환관들은 서문에 닿았다. 서문의 나태한 병사들을 향해 환관들이 일제히 말했다. 그들의 목소리는 애처럼 가냘팠으되, 수백에 달하는 이들이 일제히 외치니 그것은 가냘프지 않고 처절했다.
“비켜라!”
조조의 목소리도 수백 개 중의 하나가 되어 섞였다. 창을 눕히고 늘어지게 하품을 하던 그들은 당황했다. 개중 장교 하나가 꼴에 장교랍시고 서둘러 정신을 차린 뒤, 병사들에게 호령했다.
“미친 환관들이 날뛰는구나! 누구도 통과시키지 말라는 태자 전하의 명이 있으셨다! 명을 따르라!”
서문의 병사들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환관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에게 주어진 합당한 학살의 시간이었다. 환관들이 날래봐야 얼마나 날래겠는가. 애처럼 겁이 많고 노인처럼 연약한 것이 환관들이다. 그들은 두려움 없이 창을 쥐고 칼을 뽑았다.
천자를 모시던 환관들이 서문에서 난을 일으켰으나 진압하였습니다. 비록 그 저항이 약하지 않았으나 소장 또한 목숨을 걸고 진압해냈습니다. 서문을 지키는 장교는 자신의 공을 과장할 장계의 초안을 벌써부터 구상했다.
“모두 죽여라!”
장교가 명령하자, 병사들이 창을 비껴 쥐고 일제히 쇄도했다. 환관들의 틈바구니에 천자가 섞여있으리라고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다.
병사들이 덤비자, 환관들은 일제히 소매에 숨겨둔 칼을 뽑았다. 그들 역시 두려움 없이 대항했다. 환관으로 살면서 칼 부리는 법을 배웠겠냐마는, 그들은 성심과 성의를 다하여 칼을 휘둘렀다. 그들의 솜씨는 서툴렀으나 그 전의가 투철했다. 죽음의 문턱에 이르기까지 환관들은 병사들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그렇게 환관들의 끈질긴 저항이 이어짐에 따라 병사들의 체력도 소모되었다. 애당초 그 병사란 작자들도 그다지 유능한 군인은 아니었기에 서문에 남아있는 것이었다. 술로 동공이 풀리고 음담패설로 아랫도리가 부풀어 오른 그들은 전투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했다. 환관들의 저항에 그들은 촘촘한 대오를 유지하지 못했다. 틈이 생겼다.
“황상.”
중상시가 말하자 조조는 고개를 끄덕였다. 중상시는 뒤편의 환관에게 고갯짓을 했다. 그 환관은 이를 악물고 역시 고갯짓을 했다. 그는 환관의 옷처럼 검은 마필을 끌고 왔다. 중상시에게 넘긴 고삐는 곧 조조에게 넘겨졌다.
“황상, 부디……”
중상시는 길게 말하지 않았다. 조조는 치미는 눈물을 억지로 삭였다. 지금 그들이 죽어나가는 것은, 눈물이나 짜내는 주군을 위하는 까닭이 아니었다. 언제나 강고하고 언제나 냉철한 주군을 위하는 까닭이었다.
“너희의 헌신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