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1034
전쟁의 승패는 시작하기 전에 결정나는 것이다.
정치가들이 전쟁을 생각하는 견해는 이 말 한마디로 축약할 수 있다.
물론 압도적인 힘과 뛰어난 전술로 몇번의 전투에서 승리할 수는 있다.
신산귀모를 통해 병력, 물자가 부족한 상황에서 전투를 이길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
역사상 대부분의 전쟁은 적보다 더 많은 물량을 보유하고 그 물량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이가 승리했다.
관도를 정비하고 안정적인 보급로를 완성하는 것.
수송을 하기 위한 물자 관리하는 것.
병력과 물자가 모자랄 경우 각 지역에서 그것을 바로 공수할 수 있는 것.
이 모든 것이 정치 및 행정과 정책에 크게 관계되어 있었다.
전쟁이 시작하기 전에 얼마나 많은 정책을 시도하여 성공했느냐.
그 성공으로 병사들과 군역을 치루는 백성들의 사기와 충성심을 관리하느냐.
그리고 전장을 자신의 뜻대로 조율하여 만들어내느냐.
그 모든 것을 정치가들은 정치의 일환이라고 본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패배를 상상하기는 힘들군.”
관도도, 물자 정비도, 병사들과 백성들의 충성심과 사기관리도.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 전쟁에서 내가 할 일은 없다.
실제 싸우는 것은 장료를 비롯한 장군들에게 맡긴다.
내가 할 일은 그들이 제대로 싸울 수 있는 지원 정도 뿐이다.
이미 이 전쟁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손은 다 쓴 셈이니까.
“물자는 왔냐?”
“예. 중산군에서 지원 물자가 도착했습니다.”
상곡군은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나무나 연료로 쓰일 짚이 꽤 많이 소모될 예정이다.
그런만큼 그 연료는 다른 군에서 요청할 수 밖에 없었다.
견가에 요청하여 연료로 쓸 땔깜을 보내달라고 했는데 그게 도착했다는 것에 난 안도했다.
슬슬 날이 추워지고 있는데 잘됐다.
“야!! 땔감 왔으니까 불 아끼지 말고 팍팍 피워!”
“예!!”
병사들의 외침을 들으며 토벽 위에 올라가 적들이 물러가는 것을 보았다.
“토벽이 완성된 순간… 그리고 가 사형의 책에 걸린 순간 전쟁은 끝났다고 볼 수 있겠네. 지금까지 전투가 몇번이나 있었지?”
“아까 낮의 전투가 여덟번째 전투였습니다.”
여덟번의 전투 동안 토벽은 꽤나 손상되었다.
하지만 그 손상은 쉽게 고칠 수 있었다.
물만 열심히 뿌리면 되었기 때문이다.
물을 뿌리면 그 뿌려진 물 만큼 얼음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얼음은 추위에 얼어붙어 손상된 부분을 단단하게 만들어간다.
적들이 공격하여 부수는 것보다 얼음이 만들어지는 것이 더 빨랐다.
“와… 이거 진짜 좋네.”
성벽 보수를 위해 쓰이는 비용을 생각하면 진짜 이 토벽은 눈물날 정도로 기특한 효자나 다름없었다.
물만 뿌리면 복구되는 벽이라니!
모든 군대에서 이거 하나만 있으면 전쟁을 무척이나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흙 좀 더 가져다 붙여!!”
“예!”
얼음만으로는 복구하기 힘든 쪽에는 진흙을 바른다.
물론 적들이 오는 것을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쉽지는 않았다.
결국 토벽 위에서 밧줄로 고정한 상태로 매달린 인부들이 작업을 하는 수 밖에 없었다.
적들이 오면 바로 끌어올리면 되겠다 싶었다.
조금 흔들리지만 바깥에 있다가 괜히 죽는 것보다는 나았다.
인부들이나 병사들도 내 제안을 군소리 없이 받아들였다.
역시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나은 법이다.니 여
“그런데 저 시체들은 어떻게 합니까?”
“일단 그냥 내버려둬.”
토벽을 공략하기 위해 왔던 적들의 시체는 솔직히 보기 흉했다.
하지만 저걸 치울 여유따위는 없었다.
그나마 겨울이라는 것이 다행이군.
시체들도 꽁꽁 얼어붙어 전염병이 생기지 않을테니.
냄새도 안나고.
벌레들도 꼬이지 않는 만큼 일단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나았다.
말과 이민족들의 시체가 달려오는 적 기병들의 발을 잡기도 하니 말이다.
“적의 장비를 회수 안합니까?”
“회수해서 뭐하겠냐. 별거 없는데.”
승전시 적들이 보유하고 있던 갑옷 아니면 창이나 칼, 도끼 같은 무기들을 회수한다.
그리고 그것을 전쟁 물자로 삼는다.
하지만 지금 저기 파오에 있는 놈들은 우리가 밖으로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거다.
적들이 바라는 일을 나서서 해줄 필요는 없지.
내 대답에 여건은 쓴웃음을 지었다.
“식사 준비 다 되었습니다!”
벌써 밥때가 되었나보다.
병사들의 외침에 난 힐끔 밑을 보았다.
보초를 서지 않는 이들이 알아서 죽이나 밥을 지어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삼시 세끼 꼬박꼬박 챙겨먹게 하는 것도 적을 향한 수 중 하나다.
우리는 황충에게 공격을 받았지만 전시에도 세끼 챙겨먹을 정도로 이렇게 압도적인 보급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너희는 뭐지?
기껏 공격하러 와서 토벽 하나 넘지 못하고 쫄쫄 굶고 있는 것 아닌가?
이런 식으로 힘의 격차를 보여주기 위해서 일부러 토벽 위에서 식사를 하게도 했다.
오늘은 나도 토벽 위에서 밥을 먹는다.
의자에 앉아 탁발부의 적군들이 있는 곳을 보며 죽을 먹었다.
“죽 맛이 꿀맛이네. 남들 굶는거 보면서 먹으니까. 더 맛있다.”
“한 사발 더 하시겠습니까?”
“응. 줘봐.”
고기와 순무를 듬뿍 넣은 죽을 입에 넣으며 난 적들을 보았다.
“야.”
“예?”
내 옆에서 죽을 먹던 흉족 병사가 고개를 돌리자 난 한쪽을 가리켰다.
“저기 쟤들 뭐하냐?”
파오 바깥으로 나와 우리쪽을 죽어라 노려보고 있는 이들을 가리켰다.
너무 멀어서 표정까지는 보이지 않았다.
“어디보자…”
흉족 중에서도 시력이 제일 좋은 병사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뜬 후 지켜보다가 답했다.
“어… 그냥 보고만 있습니다.”
“뭔가 먹거나 하지는 않고?”
“예. 그냥 보기만 하고 있습니다. 몇몇이 건량을 먹기는 하는데… 대부분은 노려보고만 있습니다.”
“흠…”
난 그를 보았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십니까?”
“아니. 진짜 눈 좋다 싶어서.”
저게 보인단 말야?
내가 감탄하자 그는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하하하… 유목민들은 시력이 좋아야 합니다. 평원의 끝에서 늑대들이 오거나, 아니면 적들이 오거나. 이탈한 양이나 말을 잡으려면 멀리 볼 수 있어야 하지요.”
“그거 어떻게 훈련으로는 안되나? 나도 훈련을 받기는 했지만 그정도는 안되던데. 다른 장군들도 그렇고.”
“이건 타고나는 거라서…”
“끙.”
이마저도 재능의 영역이라니.
아쉽다.
유목민들의 시력을 지휘관들이 가질 수 있다면 좀 더 좋은 지휘를 할 수 있을텐데.
유리를 만들어서 망원경을 보급하는 수 밖에 없다는 건가.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는 사이 하후상이 올라왔다.
“뭐냐?”
“교대입니다.”
강쪽의 토벽은 꽤나 한가했다.
덕분에 그곳에서 근무는 매번 부대를 나눠가며 시행했었다.
하후상이 자리에 앉아 죽을 먹는 것을 본 나는 쓰게 웃었다.
“슬슬 뭔가 승부수가 났으면 좋겠는데.”
“그럼 나가서 싸웁니까?”
“미쳤냐.”
적들이 여덟번의 패배를 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사기는 남아 있었다.
그리고 기병들은 팔팔하게 움직였다.
괜히 나가서 피해를 확산시킬 이유는 없다.
난 팔짱을 끼고 생각했다.
“적들의 식량이 얼마나 남았는지 확신할 수만 있으면 좋을텐데…”
“으음… 그건.”
정찰을 보낼 수 없으니 정확한 판단이 어렵다.
난 바닥에 쌓인 눈들을 보며 말했다.
“눈 한번만 더 오면 이제 더 진짜 추워지겠군.”
어젯밤에 내린 눈이 소담히 쌓여 있다.
그것을 퍼 입에 넣어 본 내가 말하자 하후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상곡군 주민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제대로 눈이 온다면 이정도가 아니라고 하더군요.”
“이게?”
나도 유주에 와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때는 겨울이 아니어서 북방에 눈이 얼마나 오는지는 모르지만.
난 토벽 근처에 쌓여 있는 눈을 보며 말했다.
“저번에 온 눈은 발목까지 왔는데… 이게 다가 아니라고?”
하후상은 죽을 크게 입에 담았다.
“한치 앞도 볼 수 없을 정도의 눈이 내린다고 하더군요. 제대로만 온다면 사람 키는 훌쩍 넘을 정도로 눈이 온답니다.”
“오… 그런 눈이 내린다고 하디? 언제쯤?”
“이제 슬슬 내릴 때가 되었다고 합니다. 뭐, 제 키 정도는 아니지만 이정도는 오겠지요.”
하후상은 자신의 허리께를 가리켰다.
그정도면 거의 4척 정도 오는건데.
진짜 많이 오는구나.
쟤들 어떡하냐 진짜…
“승상부주!!”
“어. 어서 와.”
토벽의 계단을 타고 올라 온 저수는 내게 서찰을 건네주었다.
뭐지?
내가 그것을 받자 저수는 웃으며 말했다.
“업에서 보낸 서찰입니다. 보급품을 더 보낸다고 하더군요.”
“오… 잘됐네. 연노를 좀 더 받았으면 좋겠는데.”
진가윤에서 개량한 연노들은 일단 업으로 보내진다.
업에서 승상, 그리고 장군부에서 일차로 확인한 후에 다시 전장으로 보내졌다.
만약 내가 승상부에 있었다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외부에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전쟁이 치뤄지고 있는 전장에 무기를 보급하는 일인데 아무나 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막말로 도적들이 병기를 탈취하면 어떻게 되겠나.
내가 만든 칼에 찔리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진가윤에서 업으로, 그리고 업에서 군대가 호송하여 병주에 보급하는 것이 정상적인 보급방법이었다.
“… 응?”
난 서찰을 다시 한번 읽어보았다.
그리고 저수를 보았다.
“이건 뭐냐?”
“아. 투석기 말씀이십니까?”
“그래. 하지만 난 투석기 보내라는 말은 하지 않았는데?”
내가 업에 요청한 것은 연노, 그리고 강노와 화살 의 보급 뿐이었다.
신청하지 않은 병기가 추가되었다는 것에 의아해하자 저수는 웃으며 말했다.
“이왕이면 몇가지 책략을 좀 더 섞었으면 싶어서. 괜히 시간 날릴 필요는 없잖습니까.”
“흠…”
저수가 뻘 책략을 쓰지는 않겠지.
추가된 보급품은 투석기 두대였다.
설치의 필요가 없는 신형 투석기다.
그가 왜 이것을 요청했는지 생각을 해보았다.
내가 물끄러미 응시하자 저수는 히죽 웃었다.
“밖에서 좀 흔들어 볼 요량으로… 절망은 늑대를 개로 만들지요.”
“그런가. 하긴. 나쁘지 않네.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저수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난 고개를 끄덕인 후 그의 어깨를 잡았다.
“한번 잘 해보도록.”
“예!”
또다시 의미없는 전투가 몇번 있었다.
물론 적들도 약이 오르고 악에 받혔기 때문인지 집요하기는 했지만 그거 막지 못할 정도로 우리가 허접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탁발부의 공격이 시작된지 십일째 되는 날.
투석기와 다른 병기들, 그리고 보급품들이 도착했다.
“연노 빨리 교체해!!”
“예!!”
토벽을 통과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성문을 뚫는 것이다.
내가 성문을 만들게 한 이유 중 하나는 일부러 그쪽에 공격을 집중시키기 위해서였다.
막다른 골목에 도착한 쥐는 고양이를 문다.
빠져나갈 길을 만들어줘야 하는 것이다.
내 경우에는 들어 올 길을 만들어 주는 것이지만.
아무것도 없이 사다리든, 아니면 밧줄을 걸든 해야 하는 토벽에 비해서 성문은 통과만 하면 말을 타고 공격할 수 있다.
적들이 가지는 일말의 희망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성문 근처에 연노가 집중적으로 설치되었다.
하루에 한대의 연노가 쏘아내는 화살은 거의 천여발.
아무리 진가윤에서 개랑하여 내구성을 압도적으로 올렸다고 하더라도 이정도면 소모가 크다.
그렇기에 매일매일 연노를 교체해가고 있었는데.
시위나 다른 부품들도 상태가 영 좋지 않았었다.
딱 맞춰서 보내준 것에 감사해야겠군.
병사들이 연노의 부품을 교체하는 사이 저수는 두대의 투석기를 설치했다.
“이제 하려는 건가?”
“예. 그런데 좀 걱정입니다.”
“그렇겠지?”
적들의 식량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니까.
“정 뭐하면 더 기다려보자고. 저들도 식량이 떨어지면 뭔가 반응을 할테니까.”
내가 말을 마쳤을 때 칼바람이 불었다.
엄청난 추위에 자연스레 몸이 움츠려든다.
“아오. 뭔 바람이…”
잠시 후.
하늘에서 하얀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야. 눈 온다.”
“그러게요. 슬슬…”
다시 거센 바람이 불며 눈이 쏟아졌다.
“어우 씨. 이게 뭐야!! 야!! 눈 가림막 설치해!!”
바람과 눈.
설마 이게 그 눈보란가?
“와우…”
거센 바람은 그쳤지만 눈발은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진짜 한치 앞도 보기 힘들 정도의 눈이다.
바람 한번 불때 마다 세계가 하얗게 물든다.
이거 진짜 장난이 아닌데…?
“하늘에서 하얀 똥이 내리는군. 토벽 위에 눈 쌓이지 않게…”
말을 하던 나는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이를 갈았다.
“이런 젠장.”
“왜 그러십니까?”
“눈을 절대 바깥 쪽으로 버리지 말고 안쪽으로 버려!”
토벽 위에 눈이 쌓인다면, 그리고 그 눈을 바깥쪽으로 버린다면.
상대적으로 토벽의 높이가 낮아진다.
물을 잠깐 내놓으면 몇시진 안에 꽁꽁 얼어버릴 정도의 추위가 일반적인 곳이다.
저 눈이 쌓여서 얼어붙는다면?
토벽 밑에 있는 시체들을 덮고 쌓이고 쌓여 길이 만들어진다면?
난 다급히 외쳤고 저수 역시 그것을 생각치 못했는지 딱딱히 굳은 얼굴로 지휘관들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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