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1048
흥분을 가라앉히고 잠시 소강상태가 되었다.
순선은 여전히 내 앞에 엎드려 있고 난 내 옆에 둔 검을 만지작거렸다.
저걸 죽여야 하나 말아야하나.
“진짜냐?”
“…예.”
순선이 답하자 나는 휘를 보았다.
평소에 나와 눈이 마주치면 늘 아름다운 미소를 짓던 휘다.
그런 휘가 고개를 숙인 채 나와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있었다.
“휘는 나가있거라.”
“아버지.”
“나가.”
내가 지금까지 내 자식들에게 이렇게 싸늘히 말한 적이 있었을까?
움찔한 휘가 작게 고개를 숙이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난 그녀에게 말했다.
“나가서 당지 데리고와.”
“…예에.”
휘가 나가고 잠시 후 당지가 들어왔다.
자기를 왜 부른 것인지 모르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가 자리에 앉자 난 휘를 가리켰다.
“휘 진맥 좀 해봐.”
“예? 왜 그럽니까?”
“아. 좀 하라면 해봐.”
“어… 예.”
당지는 떨떠름해하며 휘의 손목을 잡았다.
말없이 진맥하던 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침도 꽂고 여기저기 만지작거리던 당지는 크게 당황했다.
“어… 어어? 이럴리가?”
“…임신했니?”
“예. 하지만 그럴리가 없… 헐. 설마.”
의아해하던 당지는 지금 방의 분위기, 그리고 내 앞에 납작 엎드린 순선을 보며 황당해했다.
“허…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더니.”
“당지야.”
솔직히 나는 명가로서 명예니 뭐니 딱히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딸내미가 임신했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이 문제는 나만의 일이 아니다.
순욱도 걸린다.
거기에 순선과 휘까지도 구설수에 휘말릴 수 있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쓸데없이 떠들 사람이 아니었으니 망정이지.
만약 엄한 놈이 있었다면 아마 내 옆에 있는 검이 뽑혔을거다.
“예. 비밀로 하겠습니다. 허… 거 참.”
당지는 입맛을 다시며 순선을 지켜보았다.
그가 나가려 하자 난 근처에 앉혔다.
“넌 잠깐 앉아 있어.”
“왜 그러십니까?”
“한놈 여기서 죽어나갈 수도 있거든.”
검자루를 잡고 내가 심각하게 말하자 양 사형이 다급히 날 잡았다.
“이보게. 사제. 너무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게. 그나마 다행이잖은가.”
“다행?”
“그래. 어차피 결혼도 얼마 남지 않았고. 그리고 좋은 선물 아닌가. 하하하하!”
“…사형은 그냥 입 다무십쇼.”
속 터지니까.
양 사형이 뻘쭘해하며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진짜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난 순선을 보았다.
“야.”
“…예.”
“내가 너 믿는다고 하지 않았냐?”
“그렇습니다.”
“날 실망시켰군.”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모두 제…”
“순 공자. 그건…”
“낭자는 조용히 하십시요!! 어디 아녀자가 남자들 이야기하는데 끼시려는 겁니까!!”
“어디 남의 귀한 딸에게 그런 짓을 해놓고 뭘 잘했다고 감히 소리를 쳐!! 망할 자식. 내가 너를 그렇게 키웠더냐!!”
“윽…”
순욱이 거칠게 외치며 그의 등짝을 강하게 때렸다.
순선은 아파하다가 다시 고개를 조아렸다.
“사돈. 내 잘못이네. 내가 잘못키웠어. 그동안 잘키웠다고 자부했는데 어쩌다가… 아아. 미안하네. 미안해. 순가가 진가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어.”
순욱이 일어나서 순선의 옆에 가 엎드리려 하자 난 그를 잡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순선을 빤히 바라보았다.
“너 나랑 잠깐 얘기 좀 하자.”
순선을 데리고 나갔다.
마당에 있던 흑귀대원들 몇몇과 장합, 서황이 안쪽에서 들린 소리 때문에 무기를 들고 있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안이 소란스러운데.”
누구든 여기서 행패를 부리면 끝장을 낼 생각을 하는 듯 보였다.
그들과 함께 성이도 진지한 표정으로 무기를 들고 있었다.
“침입자입니까!?”
“별 일 아니니 신경쓰지 말게나.”
“하지만.”
나와 순선을 본 성이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쓰게 웃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하. 별 일 아니라고 하시니 괜찮겠지요. 자자. 가서 쉬도록 합시다. 아버지. 여기는 제가.”
“그래. 부탁한다.”
그래도 내 아들이라 그런지 눈치가 백단이다.
빠르게 주변을 정리시키는 성이를 보던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들이 다른 곳으로 가자 난 순선과 함께 마당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마치 가시방석 위에라도 앉아 있는 것처럼 그가 어쩔 줄 몰라하자 난 그를 똑바로 보며 물었다.
“여기서 이야기를 나누면 주변에 들리지 않을거다.”
“어… 예.”
“솔직히 까놓고 말해봐라.”
“…예.”
“어쩌다가 그렇게 된거냐?”
“그… 제가 잘못한 것입니다. 다 제 잘못입니다.”
“네 잘못인지 아닌지. 원인과 결과를 알아야지. 머리 꼬리 다 자르고 얘기해봐야 내가 뭘 알겠냐.”
솔직한 심정으로는 이놈을 잡아 저기 술독 파뭍은 구덩이에 던져버리고 뭍어버리고 싶다.
하지만 참자.
일단 상황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의심가는 구석이 없는 것도 아니고.
“제가 술을 마시고 진 낭자를 유혹했습니다.”
“진짜냐?”
“예.”
“거짓은 아니겠지? 말해두겠지만 나는 날 실망시킨 자들을 용서하지 않아.”
내가 물끄러미 응시하자 순선은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
“모두 제 잘못입니다.”
각오를 마친 그를 지켜보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됐어.”
“예?”
“됐다고. 어쩌겠냐. 이미 해버린 것을.”
난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어쩐지 이런 일이 생길 것 같은 불안감이 있었지.
난 한숨을 내쉬며 얼굴을 감싸쥐었다.
“인과는 돌고 돈다더니… 이게 이렇게 될 줄이야… 하아.”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무것도 아니야. 들어가자.”
“예…”
문을 열고 안으로 문 근처에 서 있던 이들이 황급히 자리로 돌아갔다.
그들을 지켜보던 나는 떨떠름히 물었다.
“구경 났습니까?”
“하하, 구경은 무슨.”
“축하해야 할 일 아닌가.”
“사돈…”
자.
이제 어떻게 한다.
들어오자마자 휘를 일으켜 세워 자리에 앉히고 순선은 다시 납작 엎드렸다.
그를 지켜보던 나는 잔에 술을 따랐다.
속이 답답해서 술이라도 마시지 않고는 못 버티겠다.
“승상부주. 술도 못 드시면서 그런 독한 술을…”
“…크으…”
당지가 걱정스레 말하자 난 가볍게 손사레를 쳤다.
사람들이 왜 술을 마시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알딸딸한게 기분이 아주 묘하군.
난 술잔을 내려 놓은 후 다시 술을 따랐다.
“어이. 사제.”
“사형은 입 다무십쇼.”
사형이 말하면 속 터지니까.
난 얼굴을 몇번 문지르며 한숨을 토해낸 후 다시 술을 마셨다.
하…
내가 임신공격을 당할 줄은 몰랐네.
어떻게 해야하나.
내가 고민하고 있는 사이 순선은 고개를 들었다.
“아버님.”
“그래. 할 말이 있으면 해보렴.”
“비록 제가 실수를 하여 일이 이렇게 되었지만. 저 역시 남자이며, 또한 진 낭자를 지켜야 하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평생 아끼고, 평생 지탱하며, 평생 사랑하겠습니다. 그러니… 용서해주십시요.”
“오~ 남자다워.”
“거 사형은 다물라니까.”
“하하. 그래도 괜찮지. 변명따위 하지 않고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는 남자는 쉽게 찾아보기 힘들어.”
그것을 들은 내가 인상을 구겼을 때 조조는 느긋한 어조로 말했다.
“참… 남 일 같지 않구만.”
“…장인어른.”
“나는 누구보다 자네 마음을 잘 이해하네. 사위.”
그야 그렇겠지.
“하… 사돈.”
“으음.”
순욱이 떨떠름해하며 나를 본다.
그때 그 자리에 순욱도 있었다.
조조의 분노를 순욱은 필사적으로 막아주었지.
미안해하는 그를 보다가 난 순선에게 고개를 돌렸다.
나의 분노를 오로지 자신이 받아내겠다는 그 표정.
그것을 지그시 응시하던 나는 술병을 들었다.
“사위.”
“예.”
“한잔 받게.”
“예?”
“빨리.”
순선이 잔을 들어 올리자 난 그의 잔에 다시 술을 따라주었다.
그가 고개를 돌려 조신히 마시고 나에게 잔을 돌려준다.
난 그 잔에 다시 술을 따랐다.
“…으음.”
“아, 아버지. 순 공자는…”
“넌 조용히 하거라. 너도 잘한 거 없으니까.”
휘가 고개를 숙이며 뒤로 물러나자 난 순선을 바라보았다.
독한 술을 연거푸 세잔이나 마셨지만 순선은 흔들리지 않고 있었다.
아니.
어떻게든 정신을 바짝 차리려는 모습이지.
그에게서 내가 보인다.
옛날 청이를 임신시키고 조조에게 술을 받던 나의 모습.
기가막히는 일이군.
난 다시 한번 그에게 술을 따라 준 후 술병을 주었다.
“한잔 주게.”
“예.”
따라진 잔의 술을 보았다.
찰랑거리는 붉은색 술을 단번에 들이마신 후 난 한숨을 내쉬었다.
“아까 말했던 거 지킬 수 있겠지?”
“예? 그럼…”
“이제와서 내 딸을 미망인 만들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리고 한번 실망시켰는데 두번은 실망시키지 않겠지. 자네를 다시 한번 믿겠네.”
“아버지…”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휘가 날 바라본다.
그것을 외면했다.
지금 휘를 보기는 좀 힘들다.
난 순욱에게 다가가 그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내 술을 받은 순욱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거 참. 이런 일이 내가 있을 때 일어날 줄이야.”
“뭐… 이 또한 제 팔자라고 할 수 있겠지요.”
“잘 참는구만. 훌륭해.”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조조가 피식 웃으며 말한다.
이제야 알 것 같다.
조조도 그때 속이 엄청 부글거렸을 것이다.
아무리 내가 조가에 도움이 되고, 그의 위업을 달성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도.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딸을 임신시킨 놈팽이가 당연히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조조는 그것을 꾹 참아내고 나를 받아들였었다.
“참 대단하십니다.”
내가 힘없이 말하자 조조는 킬킬 웃었다.
“그럼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그리 만만한 일인 줄 알았나? 자식들이 무조건 생각대로 움직여 줄 것이라는 마음은 버리는게 좋아.”
“하하…”
난 조조의 잔에도 술을 따라주었다.
그리고 양 사형에게도.
술잔을 손에 든 채 난 가볍게 잔을 들어 올렸다.
“좋은 일이지요. 좋은 일… 그래. 기쁘게 한잔 합시다.”
순선을 만취시켰다.
양 사형과 순욱, 그리고 조조도 꽤나 퍼마셔서 다들 손님을 위한 방으로 모셨다.
모두가 나가자 난 내 방에서 혼자 차를 홀짝거렸다.
나도 내 주량 이상으로 마시기는 했지만 이상하게 취하지는 않았다.
처음이다.
이렇게 술을 마시고 취하지 않은 적은.
난 방의 창가에 홀로 앉은 채 난 하늘을 보며 멍하니 생각을 이어나갔다.
“아버지.”
문이 열리며 휘가 들어왔다.
그녀가 내 앞에 다소곳이 앉자 난 인상을 찌푸렸다.
“왜 자지 않고 나온 거냐? 홀몸도 아니면서. 임산부는 잘 먹고, 잘 자고, 운동을 잘 해야 한다는 것을 모를리 없을텐데.”
“그게… 아버지는 알고 계셔야 할 것 같아서…”
망설이던 휘가 조심스레 말했다.
내가 알아야 할 것?
난 바보가 아니다.
그리고 내 딸은, 내 아들은.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머뭇거리던 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너지?”
“아하하…”
휘는 어색하게 웃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해요. 아버지.”
그럴 것 같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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