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1049
어색하게 웃는 휘의 머리를 꽉 잡았다.
“보아하니 함께 술을 마시고 나서 네가 유혹이라도 한 것 같구나.”
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바라보았다.
그녀의 코를 한번 비틀어주고 난 차를 준비해 휘의 앞에 놓아주었다.
“어… 어떻게 아셨어요?
“나는 네 아버지다. 내 딸에 대한 것도 모를 것 같더냐?”
“…역시 아버지는 못 당하겠네요.”
“그럼. 어디 딸이 아버지를 속이려고 들어? 그리고… 내가 네 어미나 조부님에 비해 사람 보는 눈이 나쁘다지만. 순선이 그럴 깜냥이 있는 녀석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조금만 참으면 되는데 대놓고 그리 할 것 같지는 않았지.
오히려 순욱에게 내가 미안해야 할 만한 일이다.딸내미가 이런 폐를 끼쳐버렸으니.
그녀가 작게 고개를 숙이자 난 입맛을 다셨다.
“왜 그랬냐. 어차피 순선과 결혼하는 것은 기정사실인데.”
“그게…”
“아. 뭐 됐어. 얼마나 좋았으면 그랬겠냐? 나와 약속을 한 것은 순선이지 네가 아니니까.”
순선과의 약속.
결혼하기 전에 휘에게 손대지 말라고 했었다.
어기면 가맹관에 날려버리겠다고 했는데.
하지만 휘에게는 그런 약속을 하지 않았다.
고로 휘가 순선에게 손대면 약속을 어기는 것은 아니다.
물론 말도 안되는 개소리이기는 하지만.
“에헤헤~”
휘는 귀엽게 웃었고 난 그녀의 이마에 딱밤을 날렸다.
아파하는 휘를 다시 쓰다듬었다.
“그래. 그렇게 마음에 들었냐? 내가 화를 낼 것임을 알면서도. 그렇게 그와 함께 있고 싶었냐?”
“…예.”
살짝 볼을 붉히며 휘가 웃는다.
이래서 딸내미 키워봤자 다 소용없다더니.
금이야 옥이야 키워놨더니 다른 남자에게 홀라당 가버린다.
되게 섭섭하다.
하지만 그만큼 시원하기도 했다.
난 휘의 손을 잡았다.
“잘 살 수 있겠니?”
“…예. 순 공자가 저를 무척이나 아껴주니까요. 그리고…”
“그런 것 같더라.”
아까 순선의 모습을 떠올렸다.
이래저래 생각해봤지만 나와 무척이나 닮은 녀석이다.
청이가 임신을 한 것도 어떻게보면 청이가 술을 먹고 나를 덥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나도 좋기는 했지만 시작은 청이에게 있었고 나도 변명할 거리는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남자이며, 또 남편이 될 사람.
부인의 실수는 남편이 감당해야 할 일이었다.
특히나 이런 일은 더욱 그렇다.
호색한 여자는 세간에서 욕을 먹지만 남자에게 있어서 호색은 그저 친근함을 올리는 정도에 불과하니까.
그렇기에 나는 변명 한마디 안하고 조조의 분노를 그대로 받아들였었다.
“순선이 생각없이 그럴 녀석은 아니고, 내가 분노하면 어떻게 되는지 뻔히 아는데도 마냥 자기 잘못이라고 우기는 것이라면…”
나쁜 녀석은 아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이번에 그의 행동은 무척 마음에 들었다.
휘가 임신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만약 정혼도 하지 않고, 또 결혼이 며칠 남지 않은 상태가 아니라면 나도 노발대발했겠지.
하지만 이제 둘의 정혼은 얼마 남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좋은 선물이라는 이야기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좋게 생각한다면 말이지.
“나쁜 녀석은 아니야.”
그래.
그는 나쁜 녀석은 아니다.
오히려 만족스러울 정도로 괜찮은 녀석이다.
“다만… 네 유혹에 넘어갈 정도라면 참을성은 좀 없다고 봐야하나?”
아놔.
휘가 순선에게 넘어간 모습을 보니 어떻게든 좀 헐뜯고 싶어진다.
내가 투덜거리자 휘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작게 웃었다.
“후후후…”
“웃지 말거라. 이 녀석아.”
난 휘의 머리를 한번 더 쥐어박았다.
아파하는 휘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후 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더니.”
“제가 얌전한 건 아니잖아요?”
그렇지.
순선과 만난 이후부터 요조숙녀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휘의 본성은 꽤나 달랐다.
좌풍익에서 성이와 율이와 함께 양 타고 뛰어노는 왈가닥이다.
그것을 꾸준히 감추며 자신을 변화시켜나가는 모습을 보면 휘도 순선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듯 보였다.
순선도 휘를 아끼고.
휘도 순선을 따르고.
부부란 서로를 지탱하며 나아가는 것.
그런 삶을 살아가는 녀석들을 내가 나무랄 수 있을까 싶다.
“하아… 그래.”
“순 공자에게 더 화를 내시지는 않으실… 거죠?”
“어쩌겠냐. 사돈께 내가 무릎을 꿇고 사죄를 청할 생각이다.”
이제와서 나무래봤자 어떻게 할 수 있는 일도 아닌데.
그냥 순순히 넘어가는 수 밖에.
휘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안겼다.
옛날에는 내 품에 자주 안기던 휘였는데.
이제는 내 딸이 아닌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어주겠구나.
그것이 아쉬워 난 휘를 더욱 꽉 안아주었다.
휘가 나가고 잠시 후 성이가 들어왔다.
성이의 손에는 작은 약사발이 들려 있었다.
“뭐니?”
“당지 형님이 가져다드리라고 해서…”
“음? 그래.”
걸죽한 약을 입에 넣었다.
약간 쌉싸름하면서도 끝에 단맛이 느껴지는게 꿀이 섞인 모양이다.
죽 같은 약을 내가 먹자 성이는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순 형님과 휘 누님이 사고를 쳤습니까?”
“알고 있었냐?”
“음… 예.”
성이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자 난 맥빠진 어조로 말했다.
“왜 말 안했니?”
“한두살 먹은 어린애도 아니고, 자기들이 알아서 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리고 제가 말해봤자 의미도 없고.”
성이는 빙그레 웃었다.
하긴 성이에게 먼저 들었다면 나는 난리를 치며 순선을 땅에 파뭍어버리려고 했을거다.
순선이 스스로 나선 것 때문에 그가 마음에 들었으니까.
성이의 판단이 틀렸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내가 한숨을 내쉬자 성이는 웃었다.
“순 형님이나 휘 누님이나 다들 현명한 사람들이잖습니까. 그러니 마음 푸세요.”
“풀린지 오래다. 순선의 행동도, 그리고 휘의 결정도. 나름대로 만족스러우니까.”
남아 있는 것은 아비로서의 아쉬움과 걱정 정도뿐.
그 외에 이번 일에 불만은 없었다.
성이는 의외라는 듯 날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싱글거렸다.
“아버지께서 난리를 치실 것이라 생각했는데.”
“음… 뭐 어쩔 수 없는 일이니…”
난리를 쳐서 되돌릴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지.
하지만 그럴 수도 없는 일이다.
내가 쓰게 웃자 성이는 빙긋 마주 웃었다.
“너는 아직 좋은 소식 없냐?”
“죄송합니다.”
이왕이면 성이에게 좋은 소식이 있기를 바랬는데.
내가 한숨을 쉬자 성이는 볼을 긁적거렸다.
“그… 뭐냐. 황충 가루를 얻어서 먹고는 있습니다만…”
“…많이 먹으렴.”
북방에서 쓴 수에 내 아들이 놀아날 줄은 몰랐다.
그래.
많이 먹고 너도 어여 손주나 보여주려무나.
다음날이 되자 순욱이 나를 찾았다.
그가 방에 들어오자 난 웃으며 말했다.
“순선에 대한 일은 걱정마십시요.”
“그… 내가 할 소리는 아니지만. 괜찮은가?”
“뭐… 제가 나무랄 만한 처지는 아니죠.”
청이의 일을 언급하자 순욱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로서도 설마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겠지.
어떻게보면 대단한 거다.
나도, 그리고 순욱도.
양 사형과 조조까지도.
위국에서 머리쓰는 것으로는 손꼽히는 이들을 한번에 이렇게 놀라게 했으니까.
내가 웃으며 농담을 건네자 순욱은 볼을 긁적거렸다.
그리고 난감함에 가득 찬 어조로 말했다.
“선이 녀석은 내가 교육을 잘 시켜놓겠네. 미안하구만. 자네 볼 면목이 없어.”
“아뇨…”
순욱도 알아는 둬야겠지.
그에게 휘와 나눴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하지만 순욱은 여전히 완고했다.
“비록 휘가 유혹했다 한들. 그 유혹에 넘어가는 것이 유학자로서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네. 예와 법은 지켜야 하는 것이야. 또한 휘가 그리 했다고 한들. 선이는 자네와 약속을 했어.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은 그 녀석의 잘못이야.”
“그리 말씀하지 마십시요. 그래도 자기 여자를 지키려고 했잖습니까. 엎질러진 물을 다시 담을 수는 없지만, 최소한 닦을 수는 있으니까.”
“끙… 이해해줘서 고맙네.”
“뭘요. 제가 사죄를 드려야 할 일인데. 못난 딸이 심려를 끼치게 해서 죄송합니다.”
옛날 일이 떠올랐다.
내가 사고 아닌 사고를 쳤을 때 아버지가 날 나무랬던 기억.
자식의 잘못은 곧 부모의 잘못이다.
내가 휘를 잘못 키운 것이겠지.
“하아… 그렇게 생각해줘서 고맙구만.”
“만약 순선이 그냥 뒷감당 안하고 도망치는 놈이었다면 용서하지 않았겠지만. 그 녀석도 나름대로 생각이 있으니까요.”
“아들 잘 키우셔서 좋으시겠습니다?”
“흐흐…빈정거리는 건가?”
“그럴리가. 칭찬하는겁니다.”
내가 차를 홀짝이는 사이 문이 열리며 양 사형과 조조가 들어왔다.
숙취가 남아 있는지 피곤해하던 양 사형은 머리를 감싸쥐며 한숨을 내쉬었다.
“흐아… 진짜 술 엄청 독하네. 많이 마실 만한 것은 아니군.”
“나중에 화신주를 보내줄테니 한번 마셔보게나. 그 술은 독하지만 숙취는 별로 없어.”
자리에 앉은 둘에게도 차를 타 주었다.
그들이 차를 마시는 사이 난 팔짱을 끼고 말했다.
“뭐… 다들 아시겠지만 어제 일은 함구하도록 합시다.”
어차피 순선과 휘의 결혼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때까지는 이번 일은 최대한 숨기는 것이 옳았다.
내 명예 때문이 아니라 우리 휘를 위해서도 중요한 일이었다.
다들 동의하는지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아버님. 기침하셨습니까.”
바깥에서 순선의 목소리가 들렸다.
기침이야 아까 전에 했지.
난 문 밖을 향해 외쳤다.
“들어오게나!”
문이 열리며 잘 차려입은 순선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나를 향해 가볍게 절했다.
“아침부터 무슨 일인가?”
“왕부에서 전령이 왔습니다.”
“왕부?”
“오늘 오전에 회의가 있을 것이라고…”
“흐음… 그래. 알겠네. 그리고 자네.”
“예?”
“자네도 나와 함께 등청하도록 하지.”
“하지만 저는…”
관에 등청한다는 것은 관리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는 아직 임관하기를 바라지 않고 있었다.
나도 딱히 그를 임관을 시켜 업에 둘 생각은 없다.
“해야 할 일이 있으니 잔소리 말고 따라오게나.”
“아, 알겠습니다.”
순선이 공손히 인사하고 나가자 양 사형은 나를 보았다.
궁금해하는 그를 향해 난 천천히 말했다.
“저 녀석을 주변에 소개시켜주려고 합니다. 어쨌든 이제 제 사람이고, 제 가족이 되었으니까.”
내 말에 양 사형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물었다.
“진가윤의 연구소장으로 순선을 내세울 생각인가?”
“예. 지금까지는 진가 소속의 작은 연구소였지만… 이제는 슬슬 관으로 편입 시켜야겠지요. 본격적으로 무기와 농업에 대한 연구를 하려면…”
진가윤의 연구소는 지금까지 진가의 자금만으로 운영하던 연구소였다.
물론 개발을 위한 인력과 연구자금을 관에서 타내기는 했지만 진가의 사설 연구소나 다름없었다.
이제 슬슬 연구소를 관으로 옮기고 제대로 연구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선이라면 충분히 소장으로서도 잘 움직일 수 있겠지.
내 딸의 남편이 관직 하나 없이 빌빌대는 꼴은 보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관직에 오를 것이라면 이번 기회에 진가윤의 연구소를 관으로 만드는 것이 나을 듯 싶다.
언젠가는 그리 할 것이었으니까.
“안그래도 그것 때문에 할 말이 있었는데.”
“아. 그러고보니 저희에게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셨지요? 뭡니까?”
우리가 궁금해하자 조조는 씩 웃었다.
“서주에도 연구소를 만들었으면 하네. 서주에서 배운 이들이 연구소에서도 제대로 공부를 하는 것이 나을 듯 싶군.”
“어… 그 말씀은 진가윤의 연구소를 서주로 옮기시자는 말씀이십니까?”
“그런 것은 아니야. 다만 진가윤에서 연구하지 않는 것들을 연구해보겠다는 거지.”
진가윤에서도 꽤 많은 것을 연구하고 있는데?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조조는 웃었다.
“양식, 그리고 양봉, 그 외에 다른 것들도 연구하게 해보고 싶군. 진가윤에서 연구하는 것은 두가지 아닌가. 농법, 그리고 무기.”
“뭐 그렇죠.”
내 대답에 조조는 품에서 작은 조각 하나를 꺼내었다.
“이건…?”
“유리라네.”
“설마…”
만들어 낸건가?
나는 황급히 유리를 들어 빛에 비춰보았다.
검은색에 가까운 녹색의 유리는 확실히 빛을 통과하고 있었다.
“이걸 어떻게…?”
“모래에 열을 가하면 유리가 만들어진다는 이야기가 있지. 괜찮은 시설들이 서주에 있는만큼 이곳에서도 연구를 제대로 한다면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겠나? 그리고…”
조조는 빙긋 웃었다.
“태학의 인재들이 연구에 참여한다면 더욱 많은 것을 얻어낼지도 몰라. 어떤가?”
그의 제안에 나와 양 사형은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
솔직히 그럴싸하기는 했다.
하지만 지금 그게 가능할까?
양 사형은 고민하다가 조심스레 대꾸했다.
“그것은… 저희도 좀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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