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1065
일단 침착하고 소수를 세자.
보즐도 사람인만큼 대화로 어떻게든 해결되겠지.
난 노기에 가득 차 있는 보즐의 눈을 보았다.
누구에게 먼저 화를 내야 할지 고민하는 듯 보였다.
일단 보연사가 보즐에게 보낸 서찰을 보는 것이 우선인 듯 싶었다.
“하하. 자자. 일단 앉지.”
“…그러지요.”
내가 웃으며 말하자 보즐은 화를 내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그토록 당당하던 보연사가 얌전히 자리에 앉자 난 보즐이 준 서찰을 보았다.
내용은 지금까지 길러줘서 고맙고 자기는 이제 진가의 사람이 될거다… 라는 내용이었다.
사실만 적혀 있었다.
사실은 사실인데…
이 서찰만 보면 속이 터지겠군.
보즐이 저렇게 화를 내는 이유도 알 것 같았다.
뭐라고 해야하나.
딱히 이런 기술직에 있는 이들을 나무랄 생각은 없다.
그들을 무시할 생각도 없고.
하지만 이전도 그렇고 모가도 그렇고.
사람을 상대하는 기술에는 조금 약한 듯 보였다.
이런 식으로 서찰을 보내면 나라고 몽둥이 들고 바로 찾아오겠다.
보즐이 진짜 상식과 지성이 넘치는 사람이 맞구만.
당장 내 멱살을 잡고 보연사의 머리끄댕이를 잡아 보가로 돌아가려 하지 않는 것이 다행이다.
난 서찰을 내려 놓은 후 쓴웃음을 지었다.
“일단… 언제 왔소?”
“언제가 중요합니까?”
중요하지.
나는 지금 보즐을 설득해야 하는 입장인데.
보연사와 나는 좀 다르다.
내 임무는 사람을 상대하는 일과 아주 밀접해 있다.
그런만큼 상대와 이야기를 할 때는 그 사람에 대해 알아두는 것이 유리했다.
그는 나를 지그시 응시하다가 툭 내뱉었다.
“한달 정도 되었습니다.”
한달정도면 대충 이곳의 상황 정도는 알 수 있겠군.
요화도 아버지만큼은 아니지만 사람 보는 눈이 있는 자.
그가 인재이며, 또 호감을 가지고 있다면 적어도 보즐이 나에게 분노하며 적대감을 갖지는 않았다는거다.
“음. 내성에는 들어가보셨소?”
“들어갈 수도 없었지만 들어갈 생각도 없습니다.”
“하지만 진가윤에 왔다면 많은 것을 보셨을 터. 어떻소?”
“…그거야. 아니 그게 중요합니까?”
중요하지.
지금 보즐이 바라보는 것은 나와 보연사의 관계뿐이다.
그가 직시하고 있는 사실은 보즐을 분노하게 할터.
하지만 그 사실을 둘러싸고 있는 현실을 들이민다면 그의 분노를 조금이나마 억누를 수 있을거다.
논점을 흐리게 해야한다.
“아주 중요하오. 보연사의 현재 삶을 증명하는 것이 바로 이 진가윤의 모습이니까.”
과거 엄백호가 다스린 이후로 강동 삼군은 살기 좋은 곳이 되었다.
하지만 살기 좋은 곳이라고 발전한 곳이라 보기는 어렵다.
발전 자체는 많은 기술력이 투입되어야 하는 것.
엄백호는 당장 백성들을 보살피는 것이 바빠서 기술 발전에 투자를 하지 않았다.
서주에서 보내지는 식량, 그리고 물자를 전부 농업에만 투자했을 뿐.
진가윤처럼 각 기술들에 대한 연구를 한 것이 아니었다.
“신기하지 않았소? 석재로 만들어진 집. 적은 사람만으로 거대한 물건을 옮기는 것. 막대한 식량 생산과 더불어…”
“…예. 백성들의 삶의 질이 아주 좋은 듯 싶더군요.”
진가윤의 성을 한번 돌아보면 누구라도 알 수 있을거다.
쓸데없이 전염병이 돌아 일의 소요를 늘리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에 비누를 넉넉하게 주고 길 주변에 쓰레기나 오물을 버리지 못하게 한다.
그것만으로도 거리에서 냄새가 나지 않는다.
거리는 깨끗하고 사람들에게서 냄새가 나지 않는다.
병에 걸린 이들은 적고 많은 이들이 삼시세끼를 챙겨먹어 건강하며 체격이 크다.
당장 거리에서 뛰노는 아이들만 봐도 강남의 아이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아직까지는 강남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것들이 진가윤에서는 당연스레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들의 삶의 질이 좋아지는데는 보연사의 공이 컸소.”
“그렇…습니까?”
거짓은 아니다.
그녀가 진가윤에 들어와서 세운 업적은 많다.
그 업적을 대가로 많은 식량과 물자를 제공받았으니까.
보즐이 떨떠름히 답하자 난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논점을 흐리게 하는 것은 상대가 나에게 가지는 감정부터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보가주. 연사를 잘 키워주셔서 감사하오. 진가윤의 백성들도, 그리고 나아가 진가윤의 기술의 혜택을 받은 위국의 백성들도.”
난 내 옆에 어깨를 움츠리고 고개를 푹 숙인 보연사의 어깨에 살짝 손을 올렸다.
“보가의 보옥이 노력하여 얻어낸 것에 감사하며 살아갈거요.”
“끙…”
“그리고 그 영광은 보가에게 있겠지. 보연사를 이만큼 길러내고, 이만큼 성장하게 한 것은 당연히 보 가주의 가르침이 있기 때문일거요. 그렇지 않소?”
“그런… 것은 아닐 겁니다.”
보즐은 아니라고 말했지만 내심 뿌듯해하는 듯 보였다.
그의 겸양에 난 고개를 저었다.
“보연사가 비록 노숙에게 배웠다고 하나, 그 기반은 보가에 있는 것. 보가의 가르침이 있지 않았다면 연사가 어쨌겠소? 가진 지식을 마음대로 이용해서 혼란을 일으키지 않았겠소?”
“계집 하나가 혼란을 일으켜봤자 무슨 혼란이 있겠습니까?”
연사가 가진 지식은 아주 대단하오. 지식은 곧 힘. 그 힘을 함부로 쓰지 않고 만민을 위해 쓴다는 것. 그것을 당연하다 여기는 것은 보가주의 가르침 덕분일거요. 진심으로 감사드리오.”
난 보즐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나는 천하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위국의 승상부주.
내 입으로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상당히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고개를 숙인다는 것, 그리고 감사를 표현한다는 것.
어찌보면 가문의 영광이라고 할 수 있을거다.
보즐처럼 가문을 중요히 여기는 명사라면 당연히 그것에 기뻐할 것이고.
“아, 아니… 고개를 들어주십시요. 그런 공치사를 듣고자 이리 온 것이 아니니…”
보즐의 목소리는 한결 누그러져 있었다.
다짜고짜 보연사는 내거다! 라고 외치지 않은 것이 올바른 방법인 듯 싶었다.
만약 내가 보연사를 데리고 가서 냉큼 첩으로 만들어버리고, 그녀의 미모에만 빠져 있는 자라면.
그랬다면 이런 얘기가 통하지 않았을거다.
승상부주든 뭐든 보즐의 입장에서 나는 보가의 보옥을 훔쳐간 놈팽이에 불과할테니까.
하지만 보연사를 데리고 가고 거의 반년 이상이 지났다.
그동안 그녀에게 손가락 하나 대지 않고 일만 시켰다.
보연사를 중하게 여기는 보즐 인만큼 진가윤에 오고 보연사에 대해서 알아봤을 것이다.
그런만큼 내가 결백하다는 것 쯤은 그도 알거다.
지금이야 성질이 뻗쳐서 이렇게 나오고 있지만 그도 내심은 뿌듯해하고 있을 터.
그것을 공략의 기반으로 삼아보자.
“…그래서? 승상부주께서 연사를 중하게 여기시는 것은 알겠습니다. 그럼 이건 뭡니까?”
올 것이 왔구나.
보즐이 서찰을 들어 올리자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건에 대해서는 그저 내 잘못이라고 밖에 할 수 없구려.”
“무슨 소립니까?”
“솔직히 말하지. 보연사를 보가에 돌려주고 싶지 않소.”
“승상부주!!”
“오해는 마시오. 내가 단순히 보연사의 미모와 재색에 빠져서 이러는 것은 아니니까.”
난 보연사를 보았다.
그녀가 나를 보려 하자 난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살짝 잡았다.
그리고 보즐이 들리지 않게 속삭였다.
“넌 나만 믿고 얌전히 있어. 내가 다 알아서 할테니까.”
“….”
괜히 보연사가 얘기해봤자 보즐의 속만 터질거다.
난 쓴웃음을 지은 후 사람을 불렀다.
잠시 후 이전이 들어왔다.
“이 소장. 연사를 안으로 들여보내도록 하게나. 그리고 자네는 잠깐 함께 자리하도록 하고. 보 소장. 들어가서 해야 할 일들을 하게.”
“어… 예. 보 소장을 모셔라!”
시녀들이 들어와 보연사를 데리고 나간다.
이전이 자리에 앉자 난 이전의 어깨를 잡았다.
“여기 이 소장은 위국에 새로운 철을 만드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사람. 지금은 진가윤의 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소.”
“이전이라고 합니다. 인사는 저번에 드렸지요?”
“크흠. 그렇소만.”
“이 소장. 자네에게 묻지. 지금 진가윤에 보 소장의 위치는 어느정도인가?”
“흐음…”
이전은 턱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별다른 생각 없이 대답했다.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가진 지식이 대단하고, 또 연구에 대한 열정이 강합니다. 많은 연구원들이 그녀를 존경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어린데도? 계집애 인데도?”
“현인은 길가에서 마주친 다섯살 아이도 스승으로 모신다고 하였습니다. 어리든, 여인이든. 그게 무엇이 중요합니까?”
그의 대답에 보즐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난 고개를 끄덕인 후 다시 물었다.
“만약 보 소장이 익주에 간다면? 그리고 그 지식이 익주에 퍼진다면… 어찌 되겠나?”
“음…”
이번에는 골똘히 생각한다.
한참동안 생각하던 이전은 머쓱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생각만해도 끔찍하군요. 지금 진가윤에, 그리고 내성에 있는 주요 연구원들과 소장들이 가진 지식은 아주 중요합니다. 그들이 익주나 타국에 가서 그 지식을 퍼트린다면… 끔찍하군요.”
끔찍하겠지.
솔직히 개량된 연노, 그리고 충차나 발석거.
그 외에 거중기의 기술이라든가 다른 기술들.
그것들을 이용하면 할 수 있는 것이 무궁무진했다.
아니, 그 뿐이 아니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앵속에 대한 지식.
그것만 퍼져도 난리가 날거다.
“그, 그렇소?”
“예. 보 소장은 여인이지만… 많은 이들이 존경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지식이나 발상은 저희 같이 머리가 굳은 이들은 따라가기 힘든 부분이 많은지라…”
보연사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 그정도인지는 몰랐던 건가?
보즐의 표정이 바뀌었다.
“연사가… 그정도였습니까?”
“보 가주께서도 외성에서 보셨겠지만… 지금 개량된 많은 기술 중에 보 소장의 손이 닿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물론 그녀가 처음부터 만든 것은 아니지만.”
“…으음.”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보즐도 이제 알게 된 것 같다.
그가 신음하자 난 고개를 끄덕인 후 이전을 내보냈다.
“보 가주. 연사를 되돌려 줄 수 없다는 것은 내 욕심만이 아니라오. 이것은 연사를 위함이기도 하며, 천하 만 백성들을 위함이기도 하고, 또한 보가를 위함이기도 하오.”
“연사를 지키시려는 겁니까?”
“그렇소.”
지식은 곧 힘이며 보물이다.
하지만 그것을 지킬 수 없는 자에게는 오히려 독이 될 뿐이다.
익주, 혹은 북방, 혹은 바깥의 다른 나라들.
하다못해 이민족들까지.
만약 보연사의 지식이 알려진다면.
그녀를 납치하기 위해서 많은 요원들을 보낼지도 몰랐다.
“다른 소장들은 남자이니 험한 꼴은 그리 많이 당하지 않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연사는… 아시다시피 그 지식 뿐만 아니라 미모도 대단하오. 어쩌면…”
강제로 다른 이들이 취해버릴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보즐의 얼굴이 딱딱히 굳었다.
“오에 있을 때는 주환이 그를 원했다고 했던 것을 보면 그렇지 않겠소?”
“….”
“보 가주. 이 일은 이렇게 흥분하며 받아들일 일은 아니라오.”
보즐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그는 고민을 할거다.
“내 말이 거짓같다면… 어떻소? 내성에 한번 같이 들어가보시구려.”
자리에서 일어나 보즐을 데리고 내성으로 향했다.
그를 호위하기 위해 왔던 보가의 사병들이 나서려 하자 내 병사들이 그들을 말렸다.
“하후상. 따라와라.”
“예.”
하후상만 호위로 데리고 내성으로 향한다.
내가 데리고 오자 내성을 지키던 흑귀대원들이 문을 열어주었다.
“아… 이건.”
“놀랍지 않소?”
내성에 들어 온 보즐은 주변을 보며 감탄했다.
강동에 있다가 올라와 진가윤의 외성을 본 것만도 놀라울 것이다.
하지만 내성의 모습을 보니 더욱 감탄하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시행되는 무기의 연구와 실험, 그리고 작물들의 재배.
거대한 장비들이 움직이는 것.
그것을 보며 감탄하던 보즐은 한쪽 구석에서 모가, 그리고 순선. 그 외에 다른 남자들과 열띤 토론을 하고 있는 보연사를 발견했다.
그녀가 거칠게 말하며 용광로를 가리킨다.
커다란 흙 벽돌이 불길로 가득 차 있는 화로 안에 들어가자 다른 화로들에도 벽돌을 넣었다.
저건 내화성 실험을 하는 것 같군.
유리를 만들기 위한 내화벽돌의 준비다.
뜨겁고, 위험하고, 괴로운 곳이다.
그곳에서도 열정적으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실험 결과를 지켜보려는 보연사를 말없이 응시하던 보즐이 고개를 숙였다.
“…전부터 저런 것을 좋아하던 아이였습니다.”
“그렇소?”
“실험이니, 연구니… 여아에게 그런 것이 왜 필요하고 뭐가 중요한가 싶었는데…”
보즐이 고개를 숙이며 작게 중얼거리자 난 그의 어깨를 잡아주었다.
“그녀는 더 이상 아이가 아니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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